[호남정맥 - 10] 호남 제일봉 무등산 두 번 오르다
◈ 언 제 : 2012. 2. 11 ~ 2. 12 (1박 2일)
◈ 어 디 를 : 호남정맥 10구간(유둔재~돗재) – 무등산, 천운산
◈ 누 가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12일차: 맑음, 13일차: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129시간 04분(10구간: 14시간 35분)
11일차 유둔재(6:10)→어림마을(16:03) 9시간 57분
12일차 어림마을(6:00)→돗재(15:24) 9시간 24분
◈ 정맥 산행거리 : 214.0Km (10구간: 32.8Km)
정맥 거리 11일차: 17.0Km, 12 일차: 15.8Km
◈ 총 산행거리 : 유둔재→북산→신선대삼거리→무등산장→서석대→장불재→안양산→어림마을(1박)→별산→천왕산→천운산→돗재(약 36.4Km)
오늘은 호남 제일의 명산 무등산을 오르는 가슴 설레는 날입니다. 매회 눈앞의 우뚝 솟은 그 웅장함을 마주 보면서 호남정맥 길을 열심히 달려오며 이제나 저제나 무등산 오르는 그 날만을 꿈꾸며 행복해했습니다.
무등산(無等山)은 빛 고을 광주를 상징하는 산이며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이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하니 충분히 가슴 두근거려도 될 만한 산입니다.
호남정맥 10번째 구간은 약간 지저분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여태까지 더러워서 참아왔지만 이제는 밝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바람에 날아서 사라지는 놈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 하겠지만 나 고집통은 산타나 방귀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엉덩이에 황소개구리를 한 마리 키우는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우렁찬 개구락지 소리와 홍어 매운탕 향기를 뿜어대니 그 뒤따르는 나로서는 숨이 『커억』 멎게 됩니다. 비탈길을 오를 때면 으레 고집통의 얼굴 앞에 산타나의 엉덩이가 포진하고 있어 하루에 100방도 더 직방으로 두들겨 맞습니다. 가끔 점잖은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만 거리를 띄우는 방법 외는 달리 방안이 없고 그저 인내 할 뿐입니다. 오늘도 고요한 유둔재(6:10)는 산타나가 몰고 다니는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정적을 깹니다. 고른 눈길에는 토 선생 한 마리 지나간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한방에 저삼봉(6:53)까지 올라섭니다. 동쪽에는 새 날을 밝히는 해님이 솟아오르고 밤새 못 다한 일이 남았는지 달님은 아쉬움에 넘어가지 못하고 서성입니다.
앙증맞은 무돌길(7:30) 표지판이 있어 반갑습니다. 무돌 또한 무등의 옛 이름입니다. 힘겨운 급 비탈길을 올라서니 확 트인 억새평원(8:30)이 맞이하고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하얀 무등산의 황홀한 자태가 드러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무등의 품 속으로 안겨보고자 합니다.
작은 돌탑 세 개와 송신 안테나가 있는 북산(8:50)에 올라섭니다. 멀리 광주광역시가 시야에 들어오고 한참도 더 전에 지나온 추월산이 아직도 조망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신선대 바위 위에 달랑 앉은 작은 묘지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무슨 연유로 만인이 찾는 무등산 명품 신선대 위에 묘지를 썼어야만 했는지? 그래서 후손은 천하를 얻어 셨는지? 아님 살아평생 소원이시든 신선이 되셨는지?
궁금증은 바로 해결됩니다. 신선대에서 둘러보는 주위의 빼어난 경관에 잠시나마 나 역시도 신선이 된 듯해지니 충분히 그러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신선대 억새평원을 지나 규봉암과 무등산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9:17)를 만납니다. 여기서 북봉과 지왕봉, 천왕봉, 인왕봉을 지나가야 옳으나 정맥길을 군 시설물이 막고 있어 갈래야 갈수가 없습니다. 보통은 규봉암 방향으로 좌틀 하지만 우린 무등산장으로 우틀 하였습니다. 정상적인 호남정맥 길은 아니지만 무등산의 서석대와 입석대를 꼭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꼬막재(9:40)에서부터 무등산장(10:15)까지 하염없이 내려갑니다. 오늘 새벽부터 3시간 동안 쌩 고생하며 올랐던 무등산이 단박에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순간입니다.
무등산 옛길을 따라 죽을힘을 다해 치고 올라갑니다. 어느 순간 산타나 뒤에 아가씨 한 명이 무서운 속도로 뒤따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가씬데 입을 열면 줌마로 변신하기에 닉네임이 「가만히」가 되어버렸다는 광주의 한 일식집 여사장이며 이후 장불재까지 심심찮은 동행인이 되었습니다.
서석대 오르는 길목의 나무에 걸린 하얀 상고대가 환상적입니다. 그 아름다움에 눈이 부셔 감탄사의 연발입니다. 과히 등급을 매길 수 없어 무 등급 산이란 말에 공감이 됩니다. 천왕봉이 정상이긴 하지만 군 시설물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더 갈 수가 없어 서석대(11:55)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무등산은 빠른 시일 내에 군 시설물을 철거하여 광주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줌이 마땅할 것 같고 국립공원으로 승격을 시킴과 동시에 산정의 주상절리대인 서석대, 입석대는 천연기념물에서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영구히 보존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서석대와 입석대는 백악기인 1 억만 년도 전에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흘러내리다 냉각되면서 5~8각으로 생성된 돌기둥 주상절리대가 되었다 합니다.
신선대에 이어 입석대(12:10) 앞의 작은 묘지 또한 많은 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어떻게 저런 자리에 저렇게 자리를 잡으려고 생각했는지 참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입니다. 장불재에 내려서니(12:20) 광주 화정산악회 시산제가 벌어졌습니다. 동행한 줌마 사장님이 빨리 오라고 손짓합니다. 오늘 화정산악회 시산제로 인해 횡재수를 만났습니다. 광주 비아막걸리, 홍어회무침, 시루떡 등등 인정사정없이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니까 산악회원님들은 다른 길로 먼저 도착하여 시산제를 준비하고 줌마 사장님 홀로 옛길로 오르다 우연찮게 우리랑 만나게 되었고 장불재에서 배 터지도록 먹을 것을 제공해주시고 산악회와 함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MBC 송신탑 앞으로 돌아 이제 몇 안 되는 산님들만이 가는 백마능선으로 향합니다. 장불재에서 올챙이 배가 되어버렸기에 작은 높낮이의 오르내림도 숨이 가쁩니다. 안양산 오름길에 한 무리의 산님을 만납니다. 『광주에서 오셨습니까?』『거제에서 왔습니다』『서울에서 왔으며 광주의 맛 집을 알아보려 했는데 거제 분들이라면 이 곳 아무 곳에나 들어가셔도 맛있을 겁니다』 듣고 보니 정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서울 사시는 분들이 거제도 음식에 얼마나 뼈가 사무쳤으면 이렇게 거침없는 말이 흘러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난 아주 불행합니다. 거제도 사는 음식점 사장님들 진짜로 반성 많이 해야 됩니다.
안양산(14:00)에서 둔병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이면서 얼었던 눈이 녹아 질척질척 아주 미끄러워 산타나와 감자바우가 진흙바닥에 연속으로 넘어집니다. 둔병재(14:38) 출렁다리를 건너고 버섯재배지인 편백나무 숲을 지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팔각정 전망대도 지났습니다. 대나무 밭이 나온다면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더니 첫째 날 목적지인 어림고개(16:03)로 내려섭니다. 10분이면 도착한다는 동면개인택시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습니다. 지름길로 오려다 도로가 얼어붙어 돌아서 왔다는 기사의 변명이 믿기지 않더니만 택시요금 또한 바가지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화순읍 내 시장의 금성식당에서 홍어탕으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산타나의 방귀냄새, 식당 홍어냄새 하루 종일 콤콤합니다.
화순읍에는 24시간 영업하는 해장국 밀집지역이 있습니다. 호천해장국집에서 선짓국으로 속을 풀고 어림고개로 향합니다. 어림고개(6:02)에서는 어제 안면을 턴 개떼들이 왕왕 거리며 다가왔다 사라지고 개 짓는 소리에 주인아저씨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바깥 동정을 살펴보곤 문을 닫습니다.
어제 산행이 무리가 있었는지 장딴지 근육이 약간 땡깁니다. 거대한 보호수 소나무 옆을 지나 연산(6:30)정상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 갑니다. 물론 같은 임도이겠지만 임도를 세 번씩 이나 지납니다. 오산이기도 하고 별산(6:50)인 암봉 정상에 올라섭니다. 좌측에는 동복호가 있고 그 뒤에 모후산으로 태양이 솟아오릅니다. 아마도 이쯤에서 산타나가 일출 사진 찍겠다고 뛰어 다니다가 선글라스를 분실한 것 같습니다. 본인이야 아쉽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같은 모델을 보아온 나로서는 식상 했었으니까 안구 정화가 되어 속으로 미소 지었습니다.
화순 동복호에 유명한 적벽이 있답니다. 직접 갈 수는 없으나 물염정에서 볼 수 있다니 언제 한 번 구경 가야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묘치고개(8:26) 삼거리에 커다랗게 『적벽가는 길』이라는 입석 간판이 있습니다.
이후 약 300m 고지의 산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천왕산(10:02)을 지나고 아홉의 봉우리인 구봉산(10:33) 옆을 지날 적엔 다리가 살살 풀려갑니다. 지도상 낮게 포진한 산들을 보고 정맥 길을 쉽게 생각한 내 잘못입니다. 구봉산 인근의 화순탄광은 한때 1,700여명의 광부가 일을 했으며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고 멀리 순천권 경제까지도 좌지우지 하였다지만 지금은 석탄산업의 사양으로 거의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하니 여기도 빨리 봄날이란 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밧재(12:28)에는 4차선 국도가 있고 차량 통행량이 많아 위험을 무릅쓰고 가로지를 수 없어 굴다리를 통과하게 되고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니 광주학생수련원(12:50)이 나옵니다. 천운산 3.6Km 간판이 있습니다. 1박 2일에 걸친 장거리 산행에 이미 심신이 지친 마당에 마의 천운산을 오르려니 마음이 부담스럽습니다.
걸었습니다. 그냥 천운산이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죽을힘을 다해 걸었습니다. 눈앞의 능선에 올라서면 또 능선이 있고 또 올라서면 또 있고 거의 죽을 지경에서야 천운산2봉(14:03)에 올라섭니다. 그렇지만 기대하는 천운산 정상은 까마득합니다. 태자봉(14:20)을 지납니다. 그리고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었는지 모릅니다. 송신탑이 있고 산불 감시카메라가 있는 천운산(14:40) 정상에 올라서니 온 몸은 땀범벅이 되고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살살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한천 자연휴양림 갈림길을 지나 너덜바위 지역도 벌목지대도 지나고 전망 팔각정에도 올라봅니다. 그리고 한천자연휴양림 주차장이 있는 돗재(15:24)에 내려섭니다.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1박 2일의 일정을 계획하였고 첫째 날보다 둘째 날이 쉬울 것이라 예측하고 마음 편하게 도전했었는데 무등산을 두 번 오르는 등 거리와 시간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1박 2일 일정은 심각하게 고민하기로 하였습니다. 산행이야 내가 선택한 것이니 어쩔 수 없이 고통으로 즐겨야 할 일이기에 일백 번이라도 감수해야 될 일입니다.
오늘의 마무리는 그 유명한 화순의 흑두부 정식이 해결하였습니다. 피로가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