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휴가 중 지리산 종주!
정신세계가 조금 의심스러운 사람. 추석휴가 중에 왠 등산?
작년 2박3일에 걸친 화대(화엄사-대원사)종주가 너무 좋아 시간만 허락되면 1박2일로 성삼재 - 백무동을 종주해야지 고민하던 중 추석연휴가 생각났습니다. 추석연휴 중 산행계획을 아내와 의논하니 좋아서 하는 일이니 잘 갔다 오라는 흔쾌한 대답이 실행에 옮기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산장예약은 9월 26일 저녁으로, 추석 다음날이라 다행스럽게 장터목산장 예약이 비어있습니다. 작년에는 간단했는데 올해는 어렵습니다. 먼저 국립공원 사이트에 가입하고 선불 결제해야 만이 예약이 됩니다. 컴맹은 이제 산에도 못 가겠습니다.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 짐을 주섬주섬 챙겨 봅니다. 작은 배낭에 챙기니 배낭이 터지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다시 큰 놈으로 바꾸었습니다. 추석날 내 고향 합천에서 차례 지내고 성묘하고 거제로 돌아오니 오후 5시입니다. 눈을 붙여 보니 잠이 올 리 만무합니다.
정확하게 자정입니다. 아내도, 딸도, 강아지들(삼손, 삼식)도 똥그란 눈으로 배웅해 줍니다. 잘 갔다 오겠다 하고 자동차 시동을 걸고 백무동으로 향했습니다. 26일 2시 30분 백무동의 장터목펜션 앞 주차장에 도착한 후 펜션 주인이자 택시기사인 이봉수씨에게 전화(011-678-5330)를 걸었습니다. 인터넷에 평이 좋아 연락을 해 보았는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 40분간에 걸쳐 성삼재에 도착하니 택시비 35,000원입니다. 주차비 공짜에 하산하여 샤워까지 무료로 할 수 있다니 그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만약에 같은 코스를 이용할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새벽 3시 30분 기사님께서는 잘 다녀오시라고 깍듯이 인사하고 휑하니 사라져 버리니 이제 혼자가 되었습니다. 배낭 끈 단단히 동여매고 후래쉬 양손에 들고 성삼재를 출발하니 분위기가 썰렁합니다. 너무 일찍 왔나? 4시 화엄사 삼거리인 무넹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움추려집니다. 라디오를 켰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합니다.
노고단산장 너무 조용합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힘 한 번 쓰니까 4시 35분, 노고단입니다. 불빛 속에 한 사람이 보입니다. 추석 보름달 보러 대구에서 반야봉 간다고 합니다. 정신세계가 나 보다 조금 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흐려 구름으로 인해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고속도로에서 비포장도로 바뀌었습니다. 피아골 삼거리, 임걸령 샘터, 노루목에 도착하니 6시 10분. 날이 밝아오고 휴식을 취하니 세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옵니다.
정말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두 분 노인. 난 친구인줄 알았는데 구례시장에서 만나 얘기하던 중 엉겁결에 지리산을 따라 나섰답니다. 한 분은 벽소령에서 하산 하시고 또 한 분은 서둘러 가시더니 그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또 한 사람 아저씨. 새벽 1시에 노고단산장에서 길을 몰라 먼저 가고 있는 두 사람을 무작정 따라가다 피아골로 잘못 길을 들어 다시 돌아오다 보니 거의 탈진 상태입니다. 결국에는 목적지까지 못 가고 벽소령산장에서 음정으로 하산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또 하나의 지리10경을 구경했습니다. 노고단 아래 펼쳐진 운해의 아름다운 모습은 과히 장관입니다.
반야봉을 뒤로 하고 경남, 전북, 전남의 경계 삼도봉에서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꽤 많은 나무계단을 걸어내려 화개재에 도착하니 몇몇 비박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작년에 하루 밤을 보낸 뱀사골산장을 정상 운영 한다는 팻말도 있습니다. 난 폐쇄된 줄 알았는데....
8시 50분! 두 번째 대피소 연하천산장입니다. 김밥 한 줄로 아침밥을 대신하고 물통을 채우고, 다시 길을 재촉했습니다. 또 혼자입니다. 한참을 가니 연하천에 도착할 때 출발하던 아가씨가 혼자 쉬고 있습니다. 인사하고 또 가고 마주 오는 여승 두 분께도 인사하고 또 가고. 쉬었다 또 가고.
두 시간을 부지런히 걸었을까 10시 50분 벽소령산장입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니 이태까지 지나쳤던 산님들을 거의 다 만났습니다. 그러나 막상 벽소령산장을 출발하니 세석산장까지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석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계획하고 지루한 길을 걷고 있자니 길이 장난이 아닙니다.
쿵! 머리를 나무에 두 번 부딪혔습니다. 퍽! 이번에는 머리가 쌔게 아픕니다. 나무가 아니고 바위입니다. 나흘이 지난 지금도 머리가 불룩합니다.
선비샘,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니 가히 경치 하나는 죽여 줍니다. 이런 것들이 가만히 있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그것도 명절날 산으로 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오후 2시 10분 그렇게도 지루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세석산장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늦은 점심식사를 라면 1개와 맥주 1통으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을 휴식하고 장터목산장을 향하려 하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서울 아가씨가 장터목산장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어 봅니다. 약 1시간이 걸릴거라고 대답했는데 욕 먹을 대답을 한 것 같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1시간 반, 경치가 좋기 때문에 구경 삼아 천천히 걸으면 2시간은 족히 걸리겠습니다.
드디어 오후 4시 50분, 장터목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외국인 부부와 아이들, 산악회 회원인 듯한 여러 무리들의 소주판, 그리고 정말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운 많은 사람들 완전한 장터목입니다. 성삼재를 출발하여 13시간 20분, 26.3Km를 하루 종일 걸음으로써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여기 장터목에서 산행 중 만난 산님들과 함께 저녁식사와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풀었습니다. 서울서 오신 분은 백두대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고 청주에서 오신 분은 새벽 4시에 화엄사를 출발하여 이 곳까지 왔다고합니다. 작년에 난 이틀 걸려 왔는데....
잠자리 배정받고 모포 2장 빌리고 이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27일 새벽 비닐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3시입니다. 어제 저녁 구름으로 인하여 아쉽게도 장터목에서의 낙조를 구경 못해 천왕봉 일출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에 별과 달이 초롱 초롱합니다.
새벽 4시에 장터목 산장을 출발하여 5시 35분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며 천왕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나도 한 컷 했습니다. 집에 사진 천지로 있는데 말입니다.
6시 10분. 붉은 태양이 저 멀리 구름을 뚫고 솟아 오릅니다. 그런데 오르자마자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환한 태양으로 바뀌어 쑥 올라옵니다. 멋진 광경을 기대했는데 기대를 채워 주지 못합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본다고들 하는데, 종주 두 번만에 이 정도 수확을 얻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내년에는 오늘 부족한 덕을 조금 더 채워서 다시 와야겠습니다.
천왕봉에서 일출이 끝나니 대원사로, 중산리로 뿔뿔이 사람들은 떠나고 나는 장터목산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통천문, 제석봉을 감상하며 천천히 내려오니 7시 30분입니다.
이제 시간이 넉넉해 라면국물 끓이고, 햇반 데워서 배 채우고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찾으며 멀리 지리2봉 반야봉과 발 밑의 백무동, 중산리도 돌아본 후 8시 35분에 백무동으로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한참을 내려가다 잠깐 휴식을 취하니 어제부터 안면이 있는 서울아가씨 혼자서 내려옵니다. 심심하던 차에 얼른 말을 붙였습니다. 덕분에 심심찮게 백무동까지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3박 4일 동안 지리산종주를 하고 있으며 이번이 종주 네 번째랍니다. 잠시 계곡에 들러 발을 담가 봅니다. 물이 너무 차가워 담갔다 빼기를 여러 번. 드디어 발이 평화를 찾았습니다.
3시간을 걸어 11시 30분. 계곡 하류에 도착하니 야영장이 보이고 장터목펜션의 내 자동차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들게 1박 2일의 여정을 산에서 보냈으니 그냥 갈 수 없습니다. 펜션 사모님께 맥주 3병, 도토리 묵 1접시를 부탁했습니다. 꿀맛입니다.
이로써 오늘도 9.2Km, 7시간 30분을 걸었습니다. 이번 종주에는 전체 거리 35.5Km, 30시간 50분을 추석연휴 중에 지리산과 함께 함으로써 나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그 무엇과 내 몸의 건재한 체력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으며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내 자신의 만족감에 괜히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지리산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내가 지리산과 사랑에 빠졌는가 봅니다. 내년에도 꼭 사랑 찾아 길을 나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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