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2011. 1. 13 (당일)
□ 어 디 를: 한라산 동능(1,933m)
□ 누 가: 고집통 홀로
□ 날 씨: 맑음
□ 산행 시간: 성판악(6:45)→사라오름(8:40)→한라산 동능(10:40)→관음사(13:45) 7시간
□ 산행 거리: 성판악 휴게소→속밭 대피소→사라악→사라오름→진달래밭 대피소
→한라산 동능→삼각봉 대피소→탐라계곡 대피소→관음사 주차장(19.5Km)
우리 집은 강아지 세 마리가 꼼지락거립니다. 집이 시쳇말로 완전 개판이라는 소립니다. 몇 개월 전에 영심이가 입양되어 삼손이, 삼식이에 이어 내 허락도 없이 안씨 성을 가진 식구가 또 불어났습니다. 그리곤 나보고 걔들 아빠랍니다. 그~참.
회사 근속휴가를 제주도를 선택하였으나 이 녀석들이 문제가 됩니다. 사상 유례없는 엄동설한 이 겨울에 장기간 강아지들만 두고 떠나려니 눈에 밟혀 어쩔 수없이 같이 동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거제에서 세 시간을 달려 노력항 가는 길목인 정남진 토요시장을 들러 소문난 장흥 키조개삼합과 매생이 떡국 맛에 흠뻑 매료됩니다. 돌아올 때 꼭 다시 들르기로 마눌님과 약속도 했습니다.
세상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오렌지호는 딱 두시간만에 제주도 성산 항에 우릴 내려놓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한 이래 제주도에서 그나마 따뜻하다는 서귀포마저도 연 이틀 눈보라가 휘날립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남부해안 절경을 드라이버로만 감상합니다. 변덕스런 날씨가 가끔 하얀 모자를 쓴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을 눈앞에 내놓아 마음만 간절합니다. 하루를 더 머물면서 날씨에 관계없이 한라산 산행을 위해 성판악까지는 무조건 가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성판악으로 가는 길은 폭설로 인해 승용차는 체인 없이 못 올라간다는 TV뉴스에 서귀포 발 새벽 첫 버스(6:00)를 나 홀로 올랐습니다. 예상외로 겨울 한라산을 찾는 산님이 많아 성판악(6:45)은 인산인해로 왁자지껄합니다. 헤드랜턴 밝히고 겨울산행 채비하고 바쁜 걸음 옮겨보지만 눈 덮인 외길에는 앞서 출발한 단체 산님들로 인해 추월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옆으로 빠져 나갈 수도 없습니다. 잘 못 헛디디면 1미터가 넘는 눈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생각 없이 앞서 지나간 산님의 발자국만을 따라야 합니다. 눈이 많으니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고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계단이 없어졌습니다.
속밭휴게소(7:52) 지날 즈음은 발자국 개수가 몇 안 되는 것을 보니 내 앞에 몇 사람 가지 않은 모양입니다. 날이 밝아지니 발걸음 속도가 서서히 느려집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아침 햇살 받은 한라산의 속살이 너무 눈부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 셔터가 자꾸 눌러집니다.
40분이면 사라오름 오를 수 있다는 표지판(8:20)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내가 언제 또 겨울 한라산을 오르겠습니까?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사라오름 눈을 내발로 줄을 그어 가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넓은 분화구 내부에는 하얀 도화지입니다만 괜히 그림 한번 그려보자고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그 눈 깊이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라오름 전망대(8:40)에서 바라보는 올망졸망 각종 오름들과 이국적인 서귀포시 경치 또한 놓치면 안 되는 그림이었습니다.
진달래밭 대피소(9:40) 입구의 쌓인 눈이 만들어낸 그림도 너무 멋집니다. 컵라면이 불티나게 팔려나갑니다. 1,500원이라니 참 착한 가격입니다. 대신 껍데기는 직접 가지고 가랍니다.
이전까지는 어렵지만 추월이 가능한 길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앞사람 발자국이 무조건 길입니다. 그나마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나무들이 없어지고 찬바람이 뺨을 스치는걸 보니 한라산 정상이 가까워졌나 봅니다. 그렇게 좋아라 했던 사라오름도 한참 아래에 보입니다. 한라산 동능통제소 건물 위의 안테나는 멋진 도깨비 눈 방망이가 되어있습니다. 동능정상(10:40)을 알리는 정상표지목도 백록담의 안전 목책에도 눈보라가 두꺼운 옷을 입혔습니다. 그 광경은 내 눈으로 직접보고 느껴야지 말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돌아갈까 그냥 관음사로 갈까? 결정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관음사 방향 한라산 주목을 익히 알기 때문입니다.
숨이 깔딱 멈춰집니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 광경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화상통화 하는 법을 몰라 추운 날씨에 손가락만 고생시킵니다. 이놈의 아이폰이 짜증스럽습니다. 여기서 똑딱이 카메라 배터리가 말썽을 일으킵니다. 이번에는 그 밉던 아이폰이 있어 다행입니다.
급경사 5미터 정도는 엉덩방아 찧은 채로 예사로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혹시 잘못되어 계곡으로 미끄러져 내려갈까 걱정이 됩니다. 만약 들어갔다가는 내년 봄 되어야 계곡을 벗어날 수가 있으니까요. 한라산의 아름다움이 너무 좋아 가슴이 쿵쾅거리고 혹시 계곡으로 들어갈까 두려워 가슴이 쿵쿵거립니다. 쨌든 오늘 나는 하늘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맑은 하늘을 주셨고 한라산의 비경을 내게 주셨습니다. 여기가 세인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별천지였습니다.
대전 소월산악회 민선생님의 도시락을 삼각봉 대피소(12:17)에서 약간 거들었습니다. 당연 내 곳간에서는 맥주, 소주가 나왔습니다. 사진 정리하다 보니 성판악휴게소 출발하면서 생각 없이 찍은 사진에 민 선생님 얼굴이 들어 있었고 사람오름도 한라산 정상에도 같이 있었습니다.
미칠 뻔했습니다. 좋아서 미칠 뻔했습니다. 좋았습니다. 미치도록 너무 좋았습니다. 숨이 막혀 넘어갈 정도로 미치도록 좋았습니다. 한라산이 말입니다.
탐라계곡 대피소(13:00)를 지나 가파른 언덕길의 계단은 미끄럼틀이 되어 정말 위험했습니다. 정말 큰일 나겠습니다. 모노레일 구경한다고 가까이 접근하다 발을 헛디뎌 눈 속으로 넘어져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이 스틱에 의지해 가까스로 일어났습니다만 눈길은 등로를 무조건 벗어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관음사 주차장(13:45)에서 엔진 달린 모노레일 기계가 궁금증을 해결해줍니다.
한. 중. 일 정상들의 만찬 주에 올랐다는 귤막걸리가 알딸딸하게 만듭니다. 눈으로 한라산을, 입으로 막걸리를 마셨으니 최상의 기분으로 서귀포 행 버스 타는곳을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 걸어가면 제주 산업대 앞 정류장이 나오니까 걸어가랍니다. 미터기 누르지 않는 택시로 인해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시 제주특별자치도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의심스러웠지만 현실이었습니다.
국무총리로 계셨던 정운찬 세계 7대 자연경관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께서 제주도를 선정되도록 하자는 D-300일 선포식을 가졌노라고 뉴스에 나옵니다. 자연경관만 좋으면 뭐합니까? 작은 것부터 잘 해야지요.
제주도 그곳은 별천지였습니다. 마눌님은 돈 생기면 제주도에 땅 좀 사서 삼손, 삼식, 영심이 데리고 이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답니다. 그건 희망사항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거제도도 꽤 괜찮은 곳입니다.
근속휴가 제주도에서 잘 먹고 잘 놀다 왔습니다. 제주도에는 제주흑돼지,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옥돌구이가 맛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정남진 토요시장에 또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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