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1. 3. 13 (당일)
▣ 어 디 를 : 조령산(1,017m), 신선암봉(967m), 깃대봉(835m)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72명과 고집통
▣ 날 씨 : 맑음
▣ 산행 시간 : 이화령(9:20)→조령산(10:44)→신선암봉→조령3관문(16:15) 7시간 55분
▣ 산행 거리 :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깃대봉삼거리→깃대봉→깃대봉삼거리
→조령3관문→조령산자연휴양림(약 12.8Km)
백두대간 열네 번째! 난 그때 조령산구간을 지나면서 몇 번이나 딴 세상을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운 겨울밤 무수한 로프에 매달려가며 무조건 앞만 향해 달렸습니다. 그때 폭설이란 명시에서 나오는 "X" 이야기를 많이도 떠올렸습니다.
삼성중공업 산악회에서 조령산을 간다는 공지가 올랐습니다. 망설임 끝에 그때의 아릿아릿한 기억이 있어 도대체 그땐 어떤 상황이었기에 내가 그렇게 공포에 떨었어야만 했는지 맑은 날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결론으로 얘기하자면 조령산은 이번에 한 번 더 가본 것으로 만족을 하고 말아야 될 곳이었습니다. 어떤 유혹이 와도 앞으로는 다시 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마눌님 새벽같이 일어나서 따뜻한 떡국 한 그릇 끓여서 식탁에 올립니다. 평소 짹짹거려도 속으로는 신랑을 많이도 아끼고 사랑하나 봅니다.
이화령 주차장에는 우리 말고라도 많은 차량들과 사람들로 붐빕니다. 대간 산행 때 꼭두새벽에 만났던 부리부리한 괴산 고추 할아범이 반가이 맞이하지만 섬뜩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경칩이 이미 지난 춘삼월이건만 산자락엔 하얀 잔설이 오늘 산행의 어려움을 미리 예고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동반한 일반 산행길이니 엄청난 줄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진행속도는 당연 완행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령샘의 물맛이 아주 좋습니다. 조령산 정상부터는 길바닥이 꽁꽁 얼어붙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아저씨, 아지매들 쭉쭉 미끄러져 보기에 안쓰럽지만 어쩔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아이젠을 섣불리 내놓았다간 똑 같은 경우를 당하니까요. 지금의 산행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고 앞으로 벌어질 조령산 암벽 길을 내가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가족 여러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발 디딜 틈조차 용납하지 않는 꽁꽁 언 암벽 길을 로프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려가며 어쩌면 그렇게 잘 나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조령산은 산세가 험한 만큼 반대로 경치는 아주 빼어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많은 산님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고개는 갸웃거려지고 여러 번 찾을만한 곳은 못되는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프. 놓고 한 발짝 옮기면 또 로프. 그 로프들이 징그럽습니다. 작년 대간길에 보지 못했던 조령산 최고의 절경인 신선암봉에 올라섭니다. 신선암봉은 신선들이 놀다 가서인지 아니면 누구라도 여기에 올라서면 신선이 된다 해서인지는 몰라도 나도 신선대열에 올라 천하절경 속에 있는 것만은 사실 입니다.
약간의 음료를 곁들인 에너지를 보충하고 신선암봉에서 깃대봉으로 향합니다만 내리꽂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길입니다. 물론 바위에 로프는 기본이고 눈과 얼음으로 걷는다기보다는 미끄러져 내려간다고 해야겠습니다. 뒤에서는 아지매들의 곡소리가 들립니다. 지난번 로프 끝단을 놓쳐 오금을 저렸던 그 장소가 생생합니다만 그냥 혼자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냥 흙바닥에 잘 내려섰었는데 어둠이라는 놈이 공포 속으로 물아 넣었었나 봅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아서 큰일입니다. 대간길에 그만큼 고생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말일이지 무엇 때문에 그것이 확인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덕분에 오늘도 팔, 다리를 제대로 고생시킵니다.
지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삼거리에서 믿었던 아이폰 GPS가 나를 속입니다. 이번 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대한민국 땅이 약간 비틀어졌나 봅니다. 앞으로 기계를 믿을 때는 신중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깃대봉에 단숨에 올랐습니다. 국기봉처럼 쪼뼛한 산꼭대기가 오늘 처음으로 땀을 흘리게 만듭니다.
조령3관문이 무척 반갑습니다. 산행 내내 짊어지고 다니던 동동주를 비웠습니다. 건너편 막걸리하우스에도 들렀습니다. 옛날 과거 길을 따라 괴산 방향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갑니다. 길가의 단풍나무들은 옆구리에 링거병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있습니다. 나무들 힘든 겨울 보낸다고 수고했으니 영양제를 주사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고로쇠 받아 한 살림 챙기겠다고 나무의 피를 뽑고 있는 인간의 욕심입니다. 나무는 사시사철 인간에게 아낌없이 바칩니다만 인간에게서는 온갖 해코지를 당합니다.
조령산은 참 험하고 무서운 산입니다. 그러나 경치는 아주 죽여줍니다. 오래 살려는 생각보다 남은 의무를 마저 이행 해야 한다 생각하니 앞으로는 가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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