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0. 3. 13 (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6구간(죽령~고치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0명과 고집통
◈ 날 씨 : 맑음(-3도)
◈ 대간 산행시간 : 205시간 03분(16구간: 11시간 40분)
21일차 죽령(3:50)→고치령(15:30) 11시간 40분
접근거리: 고치령→좌석리 연화2교 20분
◈ 대간 산행거리 : 395.26Km(16구간: 24.83Km) 접근거리: 2Km
21일차: 24.83Km
◈ 산 행 코 스 : 죽령→제2연화봉→천문대(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소백산)→국망봉→늦은맥이재→마당치→고치령→좌석리(26.83Km)
『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캐땅인들 화초가 없으련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기러기가 미모에 반해 날개 짓 하기를 잊어 떨어졌다는 중국의 절세미녀 왕소군이 지었다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요즘은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날씨입니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이미 봄이 왔노라고 고했는데 춘삼월의 날씨는 그 꼴을 샘이 나서 못 봐주겠답니다. 엄동설한 그 길고 긴 지난 겨울 내내 아껴 놓았던 눈들을 하늘은 삼월의 어느 한날 밤새 폭탄으로 제조하여 우리 거제도에 융단 폭격을 해놓았습니다. 눈을 대동한 꽃샘추위란 놈을 함께 보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닭 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갱상도 출신 모 인사가 그랬는데 거제 바닥에 눈 뿌린다고 봄이 오지 않을 것은 아닙니다. 약간 늦은 봄을 만날 뿐입니다.
전국에 뿌린 눈길이 위험하니까 3월의 예정된 하늘재 구간을 뒤로 미루고 겨울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백산 구간으로 간다는 메일을 산악회로부터 받고 조렸던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지난번의 놀랜 아리아리한 기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에 마음이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먼저 내린 일행이 버스로 다시 뛰어들며 죽령고개(3:15)의 밤 추위가 장난이 아니라며 역시 소백산의 칼바람이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버스에서 내려보니 1월의 저수령 고개 출발할 때를 생각하면 견딜만합니다. 국립공원은 야간산행을 금하기에 출발 전 몸풀기도 생략하고 혹시 있을 단속이 염려되어 헤드라이트마저 끈 채로 도둑고양이처럼 발 뒤꿈치를 들고 「시인의 마음」옆을 살금살금 지나쳐 죽령을 출발(3:50)합니다.
죽령에서 소백산 천문대까지는 차량 이동이 가능한 시멘트길이며 장장 7.2km의 거리입니다. 시인의 마음을 지나 헤드라이트에 불 넣고 본격적인 대간길 산행을 시작했으나 차량들이 이동하며 다져놓은 눈이 빙판길로 변해있어 이내 아이젠도 끄집어 내도록 만듭니다.
차량바퀴의 자국을 따라 걷자니 폭이 좁아 일자 걸음걸이가 되고 길 가운데로 가자니 눈이 쌓여 발목까지 푹푹 빠져 걷기가 이만저만 상그럽은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시멘트 오르막길을 오르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캄캄한 하늘에 희미한 건축물 같은 것이 보입니다. 소백산 천문대인줄 알았는데 송신탑이 있는 제2연화봉(5:10)이랍니다. 소백산에도 봄이 오고 있는지 잠시 쉬고 있는 내 옆에서 버들강아지가 저 존재를 밝힙니다. 어느 정도 길을 따라 내려가다 다시 한번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우리나라에서 하늘이 제일 맑고 깨끗하여 별이 밝기로 유명하여 세웠다는 소백산 천문대(5:50)가 나타납니다.
알고 봤더니 여기까지는 고속도로라고 해야 했었습니다. 이곳까지 차도는 끝이었고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게 되고 사람의 통행이 없어 쌓인 눈 깊이 때문에 양다리를 번쩍번쩍 들어가며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고 지나가야 되는 고달픔의 연속인 울퉁불퉁 비포장길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니까 새벽은 오긴 오는 모양입니다. 제1연화봉(6:32)의 나무계단을 힘겹게 올라서니 눈을 잔뜩 머리에 이고 있는 소백산 최고봉 비로봉과 비로봉으로 가는 한 줄의 펼쳐진 계단 가이드라인이 멋있는 새벽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그 계단에는 형형색색으로 줄지어서 가고 있는 일행들의 뒷모습들 또한 풍경화 속의 꼭 필요한 그것들입니다.
비로봉(7:20)에서 죽령으로 가고 있는 두 사람의 산님을 스쳤는데 어디서 산행을 시작해 이른 이 시간에 그쪽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부지런함이 도가 넘칩니다.
잠깐 비로봉에서 기념될만한 사진을 남기고 국망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국공에서 금줄로 막아놓고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 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산방기간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막고 저래서 막아야 된다니 당연 지켜야 함이 국민 된 도리로써 타당하지만 하라는 대로 다하면 백두대간은 언제 가겠습니까? 그냥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하지 말란 짓을 한 탓인가요? 소백산이 잔뜩 화났습니다. 비로봉부터 어의곡리 삼거리 이르기까지 나는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제대로 된 칼바람과 조우했습니다. 소백의 칼바람이라면 소문으로만 들어왔었는데 그 칼바람이 내 왼쪽 뺨을 싹 핥고는 이마빡도 쓱 훑고 지나갑니다. 꽁꽁 언 아이스께끼를 마구 부숴 먹었을 때가 이랬을까 아니면 얼음물을 한 순간에 벌컥벌컥 들이켰을 때가 이랬을까 이마가 띵하며 순간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재킷의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는 상체와 얼굴은 최대한 바람을 등지고 빠른 걸음으로 어의곡리 삼거리로 마구 달렸습니다.
상황은 자꾸 어려워집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눈 덮인 길을 선두는 힘겹게 러쎌하고 눈 깊이가 깊어 속도가 잘나지 않습니다. 마흔명이 지나간 발자국이지만 한 사람이 지나간 것과 같이 한 줄로 꼬리를 남깁니다. 조금은 때 지난 아침 식사를 위해 자리를 골라 보지만 도저히 땅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발로 다져 자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나의 기동이 아침 반주의 안주로 돼지 족발을 준비해 왔습니다. 나는 그냥 고맙고 감격할 뿐입니다.
국망봉(10:00)에 도착할 즈음에는 다행히 바람이 많이 잠들었으며 기상청 예보한 것과 같이 기온이 많이 상승해 산행 끝날 때까지 추위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
신라 말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고 금강산으로 떠나던 마의태자가 이곳에서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여 국망봉이라니 나름 아픔의 전설이 있는 산 봉우리라 하겠습니다.
상월봉(10:30)정상에는 무슨 동물 머리 같은 바위가 우뚝 서있습니다. 상월봉을 비켜서 한참을 가다 보니 제법 험로가 나오고 그곳에서 서울 산님 세분이 고치령을 통해 올라오다 우리와 만납니다. 아주 길게 늘어져 있는 목이라서 늦은맥이재일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한 늦은맥이재(11:00)가 나옵니다.
햇볕 잘 드는 양지를 찾아 빵 몇 조각으로 점심을 때우고 결코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아니 쌓인 눈으로 당연이 빠를 수 없는 걸음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니 마당치(14:15)도 나옵니다. 오른쪽 아래 저만치에 오늘 최종 산행목적지 좌석리 소재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고치령으로 돌아야 하기에 아직 갈 길은 구만리입니다. 형제봉 갈림길(14:52)을 지나 넓은 공터에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고 뒤따르는 일행과 합류하여 고치령으로 내려갑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은 비로봉에서부터 고치령까지 줄곧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온 것입니다. 고치령에서는 산님들이 종종 국공에 걸려 적잖게 개인 자산이 손해를 입는다기에 죽령에서 출발할 때처럼 살금살금 내려가봅니다 .
걱정은 범법하는 우리들의 기우였으며 비포장길 고치령(15:25)에 도착하니 길 양편에 태백대장군과 여러 장군 장승들이 나의 열다섯번째 대간길의 성공적인 산행을 축하해주며 활짝 웃고 서있습니다.
고치(固峙)라 함은 옛 고개이기에 옛날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함인가 비포장 흙 길이고 차량 두 대가 비껴가기 어려울 정도의 소로길입니다. 지리적으로는 경북영주와 충북단양을 이어주는 옛날 고개이며 태백산 줄기가 여기서 끝나고 소백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된 단종을 위해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흥주도호부로 위리안치를 당할 때 금성대군이 넘었다 돌아가지 못한 슬픈 역사가 깃든 길이기도 합니다. 태백산신(단종)과 소백산신(금성대군)을 모시는 산신각도 여기 고치령에 있습니다.
누가 불렀는지 좌석리 이장님께서 운행한다는 포터 트럭이 대기하고 있고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짐칸으로 오릅니다. 여유가 없어 포기하고 그냥 좌석리 방향으로 부지런이 걸어 내려가니 일부 포장이 되어있는 꼬부랑길이 정말 멉니다. 좌석리 동네 어귀까지 한 차례 내려갔다 다시 고치령에 갔던 트럭이 연화2교 쯤 내려왔을 때 내 옆에 멈춥니다. 좌석리 이장님은 정말 심하게 운전하십니다. 짐칸에 올라탄 사람들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짐 값은 단체요금 적용하여 두당1,500원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백에서의 즐거운 하루 한때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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