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14] 유명 시인의 「폭설」이 생각나다

산안코 2010. 2. 6. 16:39

◈ 언            제 : 2010. 2. 06 (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3구간(이화령~하늘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9명과 고집통
◈ 날            씨 : 맑음(영하 7도)
◈ 대간 산행시간 : 19시간 23분(1구간: 1시간 40분)
                        20일차: 이화령(01:55)→하늘재(13:35) 11시간 40분
◈ 대간 산행거리 : 370.43Km(13구간: 18.36Km) 20일차: 18.36Km
◈ 산 행     코 스 :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제3관문→마역봉→동암문→평천재
→탄항산→모래산→하늘재(18.36Km)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며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 나게 내려부렸당께! 』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
-- 중 략 --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 되버렸쇼잉! 』

 

지난 희양산, 대야산 그 직벽 바위길 그런 것들은 좆도 아닙니다. 정말 좆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웃고만 말았던 오탁번 시인님의 「폭설」이란 시 내용이 산행 중 내내 자꾸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컴퓨터 키보드를 만지는 팔뚝 떨림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놀래긴 단단히 놀랜 모양입니다.
금요일 저녁 9시에 열네번째 대간길 산행을 위해 거제를 출발한다니 그 많은 술 유혹을 마다하고 퇴근을 서두르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있습니다. 지난 도솔봉구간 외발 아이젠으로 고생 꽤나 하였기에 육발 아이젠으로 챙겨놓습니다.
지난번 그 이화령(1:35)에서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북진을 합니다. 괴산의 청정고추를 홍보하는 고추 할배가 두눈 부릅뜨고 무섭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애초 우려와는 달리 이화령은 잔설이 남아있지 않고 길바닥이 뽀송 뽀송 잘 말라있습니다. 이제 우리 일행들은 올빼미족이 다 되었나 봅니다. 야간 산행준비를 척척 알아서 잘도 챙깁니다. 

   

◈ 이화령 괴산 청결 고추할배 - 백두대간 열네번째 13구간 산행 들머리

   

처음부터 가파른 산길이 체력 테스트를 합니다. 길은 그냥 평범한 흙 길로 약간의 먼지도 발생합니다. 잘 정돈되어 있는 헬기장을 지나고 두 번째 헬기장(2:20)에서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니 경북 문경의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과 반달 그리고 저 멀리 불빛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설 날이 일주일 남았으니 그믐으로 가는 하현반달입니다.
얼마 후 약간의 내리막길에서는 잔설에 대비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령샘(2:56)에서 가쁜 호흡을 조절합니다. 조령샘은 겨울가뭄이 물을 주지 않아 바가지들만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조령이라 함은 한자를 풀어보면 새재입니다. 새 마저 이 산을 넘으려면 힘이 들어서 쉬어간다는 조령산(3:28)정상에는 안나푸르나에 올랐다 아직까지 내려오지 못한 고 지현옥님도 함께 쉬고 있습니다. 

 

◈ 조령샘 - 물 얼었음

 

◈ 조령산 정상 - 고집통

 

◈ 애 (哀)

   

갑자기 잘 나가던 행렬이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히 먼 산 꼭대기에서 깜빡이는 불빛이 보입니다. 아하 다른 산님들이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우리 일행의 선두가 달려가고 있는 불빛이랍니다. 눈 앞엔 천길 낭떠러지의 로프가 행렬의 진행을 막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이 내가 아슬아슬 그 로프에 매달려 있습니다. 조령산정 찬바람은 얼굴을 에듯이 차갑습니다. 발을 디딜 수 있는 여유 공간에는 어김없이 눈과 얼음이 차지하여 미끄럼이 장난이 아닙니다. 가지 않으면 안되기에 어쩔 수 없이 달달 떨어가며 한 고비 두 고비를 넘는 곡예를 합니다. 그래 봤자 또 로프가 기다립니다. 스틱이 자꾸 거슬려 배낭에 장착을 합니다. 로프 타는데 한결 편해졌지만 대신에 바닥이 미끄러워 두 다리에 힘이 쏠립니다.
어느순간 「어 ~ 쿠」갑자기 내 입에서 신음소리가 튀어 나옵니다. 로프의 끝자락이 내 손아귀에 없습니다. 몸이 살짝 허공인가 싶더니 발이 바닥에 착 달라 붙습니다. 휴우~~~~~~. 

발 밑은 얼마나 높은지 가늠이 안됩니다. 헤드랜턴의 불빛으로 발 아래를 쳐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후 로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오금이 저려 무조건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로프를 잡고 통 사정해 손아귀와 팔에는 힘이 점점 빠져나갑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급기야는 왼쪽 허벅지 경련이 오락가락하며 신경을 자극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니 그 경련도 사정을 봐주지만 걱정은 끊이지 않습니다. 한시 바삐 이 암릉구간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수직강하에 이은 수직상승 로프가 심장을 멎게 만들고 그것이 부족할까 봐 이번에는 수평로프까지 숨통을 죄어옵니다. 어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40여개의 로프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입에서 욕 나오도록 로프가 많습니다.
여기서부터 오탁번 시인님 「폭설」의 내용이 산행 내내 떠오릅니다. 어제 좆은 좆도 아닙니다. 지난번 그 좆은 정말 좆도 아닙니다. 계속 입으로 되뇌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로써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한번은 저쪽에 갔었는데 염라대왕이 아직 때가 이르다고 돌려 보내주셨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딱 잘라 말하면 이번 조령산구간은 겨울산행을 하면 안 되는 구간입니다. 더구나 야간산행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며 부녀자나 어린이, 노약자는 애당초 생각 자체가 금물이며 요행이 나처럼 다녀왔다 한들 절대 자랑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바보가 제 자랑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신선암봉(4:52)에 올라설 때까지 얼마나 많은 로프에 매달렸는지 몇 개의 봉우리를 넘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야 할 눈앞에 희미한 봉우리들의 실루엣이 여럿 아른거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신선암봉을 약간 지나 삼거리에서 내리막길 50m 가량의 알바까지 하고 나니 짜증스럽습니다.
  

◈ 깃대봉 삼거리

    

이후에도 무아지경인 상태로 지긋지긋한 암릉구간을 지났으며 긴장 속 물 한 모금 음식 한 점 입에 넣지 못했기에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이 녹아내려 체력 보충을 위해 쵸콜렛 한개 입에 물어봅니다. 그렇지만 턱에 힘이 없어 씹어 넘길 힘 조차 허락하지 않아 절반은 그냥 버립니다.(6:35) 오밤중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이토록 진을 빼 버렸으니 천하장사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암릉 길이 흙 길로 바뀌었지만 땅이 얼어 미끄러워 위험하기는 피차 일반입니다. 30m 앞에 깃대봉(7:25)이 있다는 이정목이 있지만 지금 시간에 조령3관문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어 선두와 조금의 시간차이를 줄이기 위해 무시하고 그냥 앞만 보고 내달립니다. 작은 돌멩이들을 줄 세운 산성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나무계단이 있고 조령3관문의 웅장한 자태가 시야에 들어 옵니다.
  

◈ 조령 3관문

    

문경새재 조령3관문(7:45)의 넓은 공터에 내려서니 산신각이 있고 여기도 물 없는 조령 샘터가 있습니다. 건너편 비닐지붕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왁자지껄 청국장으로 따뜻한 아침식사에 열중입니다. 아침식사 준비는 사전 예약이며 청국장 6,000원에 배달비 1,000원을 보탰으며 후식으로 커피까지 제공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동주 한잔으로 바짝 얼어 붙었던 가슴속 긴장도 풀었습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한 이후로 약 40분이 지나서야 마지막 일행이 도착했으며 선두와 후미간의 시간차가 시간 반 정도로 벌어질 정도이니 얼마나 고생하면서 쫓아왔는지 안 봐도 실감됩니다. 허기사 마흔 명의 인원이 2 분씩만 로프에 매달려 있었다면 1시간 20분의 갭이 발생하는데 선두를 달리던 일행들은 뒤따르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문경새재 길은 조선 왕조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반드시 넘어가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백두대간의 조령을 중심으로 동편 죽령 길은 대나무 잎에 미끄러지고 서편의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미끄러진다 하여 어쩔 수 없이 한양으로 가는 과거 길은 위험을 무릅쓰고 험준한 조령을 넘었다 합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의 1관문은 주흘관이며 2관문은 조곡관이고 3 문은 지금 내가 서있는 조령관 이곳이며 지척에 수안보 온천, 충주호와 월악산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식후의 따뜻한 아침 햇살을 등에 업고 조령3관문의 성곽 옆을 스쳐 나머지 길을 찾아 출발(8:40)하는데 치고 올라가는 이 길도 장난이 아닙니다. 새벽 조령산 오르는 길이나 조령에서 마패봉 오르는 길이나 피차 일반입니다. 어사 박문수가 새재 고갯길을 넘다가 너무 힘이 들어 쉬면서 마패를 산꼭대기에 걸었다 하여 마패봉(9:20)이라 하고 혹자는 마역봉이라고도 합니다. 마패봉에서부터 다시 아이젠을 착용한 이후 하늘재까지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은 없으나 꽁꽁 언 길바닥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합니다.
  

◈ 마패봉(마역봉) - 피곤한 고집통

 

◈ 백두대간의 멋진 소나무

   

고만 고만한 산길을 무심으로 걸어가노라니 오늘 처음으로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산님을 만납니다. 동암문(10:47)에서 단체사진 촬영을 내게 부탁합니다. DSLR의 무게가 듬직한 것이 내 똑딱이 디카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수원에서 오셨다는데 아저씨 한 분이 아줌마 여럿을 거느리고 오셨으며 조령에서 출발하여 하늘재까지가 목적지랍니다.
부봉삼거리(11:03)까지 경사길도 힘이 듭니다. 눈앞의 엄청 높은 부봉으로 오르면 어쩌나 바짝 긴장했는데 다행이 그 곁을 스쳐 지나고 주흘산 갈림길(11:47), 평천재(12:03)도 지났습니다. 지도상의 로프구간을 걱정하였는데 그곳에는 다행이 나무계단이 힘든 길손들의 고통을 들어줍니다.
오늘 마지막 고비 탄항산(월항삼봉, 12:42)에 올라 정상석 보듬고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폼 잡으려니 꼭두 새벽부터 얼마나 고생을 하였든지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아 엉거주춤한 포즈로 끝냈습니다.
  

◈ 오밤중에 걸었던 길 - 조령산, 신선암봉, 923봉, 깃대봉

 

◈ 동암문 전경

 

◈ 탄항산 정상 - 힘든 고집통

   

모래산(13:20)이라해서 그런지 물길이 흙을 다 갉아 먹어버려 움푹 패인 산길을 따라 모래주머니로 흙 쓸림을 채워놓았습니다.
지난번 지나갔던 희양산이 왜 또 앞에 있는가 의심스러웠는데 그건 다음에 넘어야 할 포암산이랍니다. 엄청난 바위산이라 내심 다음이 또 걱정입니다.
하늘재(13:30)에 도착하고 나면 차량이 올라오지 못하기에 포함마을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예쁜 대경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무지막지한 무박 2일의 백두대간 열네번째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 모래산 정상 모습

 

◈ 포암산 - 3월에 넘어야 할 산

 

◈ 하늘재의 고집통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 - 백두대간 열네번째 13구간 산행 날머리

     

남들 곤하게 잠든 이 오밤중에 백두대간을 찾는 이들의 목적과 목표는 같을것이라 생각하기에 서로 발들이 골라 시작과 끝맺음을 같이하는 것이겠지만 그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상호협조와 믿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나 아닌 타인들과 만나 마음을 맞추는 일인만큼 체력의 높고 낮음의 불균형은 당연지사이며 순간순간의 상황에 따라 컨디션도 달라지기에 서로 끌어주고 의지해가며 힘들게 시작한 엄청난 대사(백두대간 종주)를 슬기롭게 진행해 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꼴찌 덕분에 일등이 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주고 구성원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체에게 치명적인 영향이 올 수 있기에 여럿이서 합심하여 만든 작품이 한 사람이 만든 작품같이 나와야 더욱더 빛나는 결과물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탁번 시인님의 어제 그 좆 이야기는 이제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가야하며 멈출 수 없으니 이제 제발 그~만이었으면~~~~~.

징그러운 로프는 이제 그~만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