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17] 대간길 절반을 허락하다

산안코 2010. 5. 13. 19:18

◈ 언            제 : 2010. 5. 08 ~ 5. 09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4구간(하늘재~저수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3과 고집통
◈ 날            씨 : 5/08 ~ 5/09 아주 맑음
◈ 대간 산행시간 : 233시간 47분(14구간: 15시간 54분)
                        23일차 하늘재(8:20)→작은차갓재(17:00) 8시간 40분
                        24일차 작은차갓재(5:46)→저수령(13:00) 7시간 14분
                       접근 거리 작은차갓재(17:00)→안생달마을 한백주양조장(17:26) 26분
                                    안생달마을 한백주양조장(5:25)→작은차갓재(5:46) 21분
◈ 대간 산행거리 : 454.42Km(14구간: 33.16Km)
                        23일차: 19.02Km, 24일차: 14.14Km  접근거리: 3.0 Km(왕복)
◈ 산 행    코 스 : 하늘재→포암산→마골치→부리기재→대미산→작은차갓재→안생달마을
 한백주양조장(1박)→작은차갓재→황장산→벌재→문복대→장구재→저수령(36.16Km)
 

난 태양이 녹슬었을 것을 염려했습니다. 4월에 눈이 내리지를 않나 빗물을 잔뜩 머금은 구름이란 놈은 항상 하늘을 뒤덮고 있다가 시시때때로 쏟아 부어대니 대지는 마를날이 없고 햇살 구경 못한 식물들은 아예 싹 틔우기를 포기하였으며 요행히 세상 구경 잘못한 새싹들은 냉해로 말라 비틀어지기 일쑤입니다. 500년도 더 전에 조선시대 그 시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문헌에 전해져 내려온다니 가끔 이런 경우도 있긴 있었던 모양입니다. 구름 뒤에 숨어 제 역할 하지 않고 그렇게도 민초들 애간장을 태우던 태양이 어떻게 고집통 대간 간다는 소식을 접했는지 오늘따라 머리 내밀고 잘도 훼방을 놓습니다. 뭐든지 사용치 않고 방치하면 녹슬기 마련이거늘 태양은 아무 짓도 않고 자빠져 놀아도 절대로 녹슬지 않는 위인인 모양입니다.

삐릭~ 삐리릭~~ 삐리리릭~~~.  이미 퇴근한 오후 6시. 빨리 전화 받지 않으면 잡아먹을 것처럼 목청 돋우어 빽빽거리는 전화통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17차 대간길 우째 잘해보자고 소주잔 기울여가며 의기투합한 기동이가 회사 일이 너무 밀려 이번에는 못 가겠다고 합니다. 이를 어쩌나. 이번 구간 빠지면 땜빵 하기가 예사로 힘든 일이 아니라던 데. 기꺼이 회사를 위해 대간길 이어감을 포기하는 기동이 갑자기 존경스럽고 한편으론 걱정입니다. 회사가 어째서 잘 돌아가고 있는지 기동이 분들이 좀 알아 주셨으면 좋을 텐데... 알겠지요 아마도. 어쨌든 대간은 뒤로 미루고 일을 선택하는 기동이 대단합니다. 매번 일용할 양식을 단도리 해주었는데 기동의 빵구로 인해 먼 길 가야 할 서방님을 위해 내 사랑하는 마눌님이 엄청 바빠졌습니다. 나중에 공은 내 마눌님에게 모두 돌려 공로상을 줘야겠습니다.

  

◈ 하늘재 - 백두대간 열일곱번째 14구간 첫째날 산행 들머리

   
어버이날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는 대경이는 34명의 단출한 대간 식구만을 담아 싣고 지난 겨울 아끼고 아껴 놓았던 열네번째 하늘재에서 저수령까지의 구간을 위해 마구 달립니다. 월악산 국립공원 산방통제 기간이 5월15일까지 연장한다는 문구의 입산통제 표지가 있고 8시 반이면 단속요원이 뜬다는 하늘재 농장사장님 말씀에 얼른 하늘재 바리케이드의 개구멍을 통과(8:20)해 버립니다. 지난번 하늘재에 접어들 때 맞은편 포암산의 모양이 희양산과 너무 닮아 착각 했었던 그 쌍둥이 같은 산입니다. 거대한 바위 하나로 형성된 포암산에 올라가는 길도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너무 빡십니다. 이곳의 나무들은 아직 한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혀 새 옷을 입지 못하고 이제 갓 진달래가 듬성듬성 피어나고 있어 여긴 어느 천 년에 녹색 코트 바꿔 입고 제 모습 갖출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땅이 결코 좁지 않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 거제도에는 꼭 2개월 전 이 맘 때에 진달래 축제까지 했는데 여긴 아직 멀었습니다. 포암산 정상(9:18)을 지난 후로는 만수봉을 안내하는 이정목이 계속 나오지만 정작 만수봉을 따라가면 대간길을 벗어나니 조심해야 될 구간입니다. 만수봉 갈림길에서 좌회전은 무조건 금물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직진해야 됩니다.  잠시 후 남진하는 몇 몇의 산님들이 일행과 떨어져 머시기야 머시기야 고래고래 고함 질러가며 우리에게 하늘재 단속이 어떻느냐고 물어옵니다. 그렇담 당연히 조심해서 조용히 지나가야 할 것인데 저렇듯 떠들어대는 양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하늘재 단속요원들 어서 오십사하고 손님 맞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포암산 오르는 길목의 진달래

 

◈ 포암산 정상

 

◈ 포암산 정상의 고집통

 

◈ 마골치 (간판 바깥쪽 오른쪽으로 지나가야 함)

   
관음리 하산길과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끊임없는 능선의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잎이 채 생기지 않은 나뭇가지 사이로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열로 얼굴에는 소금기가 자글자글 거리고 가슴 속은 답답해지는가 싶더니 점점 다리의 힘이 풀어집니다. 기동이가 같이하지 않아 기댈 데가 없어 부담이 되어서일까 아무래도 오늘도 오버페이스를 해버린것 같습니다. 급기야 대간길 시작이래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구토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연속으로 세번에 걸쳐 토하고 나니 뱃속은 시원해졌으나 허기로 인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빵 쪼가리 몇 조각을 물과 함께 입에 넣어 깨작깨작 씹어 보지만 도저히 목구멍에서 받아주지 않아 씹었다 뱉고 씹었다가 뱉기를 수 차례 해보지만 해답이 없습니다. 내 체질은 알코올성 특이체질을 타고 났나 봅니다. 도저히 받아주지 않던 음식을 맥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나니 언제 그랬냐고 일사천리로 흡수해줍니다. 근처 부리기재(13:04)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로 체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 갓 피어나는 대미산 진달래

 

◈ 부리기재 전경

   
크게 아름다운 산이라는 대미산(大美山)(14:00)은 그냥 둘러만 보면서 지나치고 약간 앞으로 더 진행을 하니 대간길 70m 아래 얼음물 보다 차고 꿀맛 보다 더 달콤한 샘터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눈물샘입니다. 짊어졌던 물은 모두 쏟아 버리고 새롭게 가득 채웠습니다. 검푸른 눈썹의 대미산(黛眉山) 눈물샘(14:15)은 눈썹 밑의 눈물샘이란 참 잘 어울리는 고운 이름을 가진 샘입니다.  포암산 중턱에 하늘샘도 있다 하니 이 고장 사람들의 심성이 고와서일까 샘들 이름들이 참 곱습니다.

  

◈ 대미산 정상

 

◈ 대미산 눈물샘 이정표

 

◈ 대미산 눈물샘

   
백두산 가는 길과 지리산 가는 길의 이정목(14:40)을 제천시에서 세웠는데 지리산이야 그렇다 쳐도 백두산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휴전선이 열리고 백두산이 나오리라는 기대치가 가미된 조금 허무맹랑한 익살로 받아 들여야겠습니다. 서울 늘푸른산악회 소속의 산님들 한 무리가 벌재에서 단속을 피해 샛길로 출발하였다며 오늘의 목적지는 부리기재까지 가야 한다는데 남은 길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픕니다. 백두대간 남한 땅의 중간지점을 알리는 표지석(15:57)이 나타나고 누구랄 것 없이 기념사진을 남깁니다.
이미 30구간 중 16구간을 넘었으며 거리상, 시간상 계획대비 절반을 넘은 지 오래되었기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긴 뭣하지만 내 두 다리로 한 발 한 발 뽀작 뽀작 걸어서 이룬 절반의 성공이기에 기쁨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낡은 전봇대가 있고 엄청나게 큰 철탑도 지났습니다.  차갓재(16:35)에는 또 다른 남한의 중간지점을 알리는 표지석과 함께 백두대장군, 지리여장군의 장승 두 분을 모셔놓았습니다.

  

◈ 지리산과 백두산 이정목

 

◈ 첫번째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

 

◈ 두번째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과 백두대장군, 지리여장 군

 

◈ 작은차갓재 (생달리 마을로 하산) - 백두대간 열일곱번째 14구간 첫째날 산행 날머리

    
고개 하나 넘고 나니 작은차갓재(17:00)이고 오늘 대간길의 목적지가 여기까지이기에 바로 급 우회 하여 안생달마을로 향합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이 곳 안생달마을(17:26)에도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소금기로 절은 얼굴을 씻어내고 하룻동안 고생하여 팅팅 부은 발을 계곡물에 담가봅니다. 손과 발의 뼈마디가 너무 차가워 아립니다.
비박지로는 한백주양조장 마당에 자리를 펴는 대신 불끈주 몇 병을 팔아주기로 사장님과 합의가 끝났습니다. 홀로이니 양조장의 평상 위에 비비쌕과 침낭을 펴고 직전회장에게로 젓가락만 들고 이동하여 저녁 신세를 지기로 했습니다. 과실와인과 불끈주로 인해 얼굴이 알딸딸하게 오를 즈음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비록 초저녁이지만 내일의 여정을 염두에 두고 침낭 속에 몸을 눕혔습니다.

  

◈ 안생달 한백주양조장 (마당에서 비박)

  
꼬리곰탕 한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해치우고 채비를 챙기고 나니 이미 날이 밝아 버렸습니다(5:18). 다시 작은차갓재(5:46)를 올라 가다 보니 어제 하산 길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물쇠가 굳게 잠긴 폐광이 보입니다. 어찌된 요령인지 어제 내려올 때 보다 오르는 시간이 더 단축됩니다.  작은차갓재 바로 위의 헬기장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빡시기로 소문난 황장산 칼 능선을 향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눈앞에 떡 허니 버티고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만납니다. 징글맞은 로프가 매달려 있는 황장산 묏등바위(6:30)이며 이곳부터 줄곧 로프지대이고 위험구역이기에 산악회에서 겨울산행을 이번5 월로 미룬 연유를 알만했습니다. 만약 순서를 고집하여 겨울산행을 강행했다면 지난 조령산 구간을 능가하는 괴로움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점 산악회에 아주 고맙게 생각합니다.

  

◈ 작은차갓재로 오르는 일행들

 

◈ 작은차갓재 - 백두대간 열일곱번째 14구간 둘째날 산행 들머리

 

◈ 황장산 묏등바위

   
넓은 광장의 황장산 정상(6:43)을 지나고 아슬아슬한 암릉길을 간신히 통과하여 돌아 본 황장산 칼능선의 위세가 가히 압권이며 쫙 펼쳐진 치마바위 사이에 비집고 나온 꼬불꼬불 소나무가 생명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폐백이재(7:53)를 지나고 나니 왁자지껄하던 일행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줄어들고 분위기가 엄숙해집니다. 출발 전 총대장이 벌재에서의 단속을 염려하여 특별이 주의를 요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벌재 바로 앞 헬기장(9:38)에 모두 집합하여 단속을 피해 샛길로 빠지기로 미리 입을 맞추어 놓았습니다.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속구간을 있는 대로 다 걸렸다면 건당 50 만원씩 집구석 거들 났겠습니다. 그래도 아직 한 번도 당하지 않았으니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샛길을 통해 벌재고개(10:01)에 내려서니 국공에서 샛길 통행금지 문구의 경고문을 설치해 놓았다는 것은 대간꾼들의 비밀통로를 알고 있지만 약간의 운영의 묘를 발휘해 준 것 같습니다. 벌재에서 시간을 허비하다간 혹시 국공의 입산통제가 염려되어 바로 문복대를 향해 바로 출발합니다.

  

◈ 황장상 정상 (1,077 m)의 고집통

 

◈ 황장산 치마바위 근처 소나무

 

◈ 시루떡 돌들 (산성인가? 구들장하기에 딱 안성맞춤임)

 

◈ 벌재 샛길 (샛길 출입금지 표지가 있음)

 

◈ 벌재 표지석

   

내가 좋아하는 둥굴레차의 살아 생전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소 그냥 보았던 그런 풀들이었는데 쭉쭉 뻗은 낙엽송 밑에 둥굴레로 융단을 깔아 놓았습니다. 들목재(10:47)를 지나고 복이 들어온다는 문이라 하여 문복대를 찾아 나섰는데 날씨는 더워 죽을 지경이며 복은 고사하더라도 고통만이 들어오고 가도가도 그 문복대는 나오질 않습니다. 짜증이 막 밀려 오는가 싶을 즈음 문복대(11:56)가 나타나고 저 아래 저수령의 공터에 파란색 선명한 대경이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오늘의 산행 끝은 눈앞의 저수령인데 빤히 눈에 보이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길이 사람을 더욱더 미치도록 만듭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밑 국도로 내려가 걸어가고 싶지만 그러자고 대간길 나선 것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장구재에서는 이제 다 왔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죽기로 지고 다녔던 물도 거의 다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능선을 넘고 드디어 해발 850m 높이의 저수령(13:00)에 내려섬으로써 기나긴 1박 2일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지난 겨울 새벽의 저수령 주유소에 철조망이 쳐져 있어 겨울이라 영업을 접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인근에 고속도로가 생긴 이래 계절에 관계 없이 차량통행이 적어 지금까지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으며 화장실마저 자물쇠로 걸어 잠가 놓았습니다. 장구재에서 버린 물이 너무 아까워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손수건에 남은 식수를 적셔 온몸을 닦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처량합니다.

  

◈ 낙엽송과 둥글레 밭 (짝퉁 둥굴레라고 함)

 

◈ 문복대 가는 길은 이런 돌들이 (두꺼비 등 닮았음)

 

◈ 문복대 정상에서 고집통 - 복이 그 복이 아니다

 

◈ 저수령 해맞이 제단 (전봇대가 막아 해가 잘 보일런지...)

 

◈ 저수령 (해발 850 m) - 백두대간 열일곱번째 14구간 둘째날 산행 날머리

  
 잠자던 태양이 드디어 일을 하기 시작했고 이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지 오래된 더운 계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어느덧 백두대간 절반을 넘겼습니다. 지금까지 매회 고비는 있었지만 슬기롭게 극복했고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수여야 할 것이며 부실 체질도 앞으로는 개선해야 될 나의 나머지 숙제입니다. 심신의 단두리 만이 고집통의 백두대간 종주 성공여부를 판가름 할 것입니다. 절반을 허락해 준 대간길에 감사하고 같이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 산악회회원 여러분들께도 감사 드리며 향로봉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하길 바라는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