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16] 알바는 이래저래 힘들다

산안코 2010. 4. 15. 16:04

◈ 언             제 : 2010. 4. 10(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7구간(치령~도래기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7명과 고집통
◈ 날             씨 : 흐린 후 맑았다가 흐림(영상2도)
◈ 대간 산행시간 : 186시간 12분(17구간: 12시간 50분)
                         22일차: 고치령(3:20)→도래기재(16:10) 12시간 50분
                         알바 거리: 자개봉삼거리→자개봉 57 분,  자개봉→자개봉삼거리 53분
◈ 대간 산행거리 : 421.26Km (17구간: 26.0Km)
                        22일차: 26.0Km   알바거리: 왕복 6.4Km
◈ 산 행     코 스 : 고치령→자개봉갈림길→자개봉→자개봉갈림길→마구령(매기재)
→갈곶산→늦은목이→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32.4Km)
 

작년 4월 대간길 덕산재에서 우두령까지 더위와 갈증으로 숨이 깔딱 넘어간 기억이 있어 바짝 긴장하면서 새로운 4월인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기상청의 영상 2도 예보에 하늘에 대한 걱정은 약간 안심이 되지만 대간 시작이래 당일 산행 중 가장 긴 30Km라는 산악회의 예보가 마음에 찜찜하게 걸립니다.
지 지난주에 이어 지난주 거제 동서지맥을 이어 걸으며 다리의 힘을 올렸건만 20Km만 넘어서면 장딴지 속에 숨어있다가 고개를 내미는 쥐라는 내부의 적이 걱정되어 평소 하지 않던 무릎보호대를 이중으로 준비해봅니다. 봄이라 각종 행사가 많아진 모양인지 식구가 38명으로 단출해졌습니다.
좌석리(2:40)에 대경이가 멈추자마자 절반의 인원은 대기하고 있던 이장님 화물차 짐칸에 바로 올라 타 쪼그리고 앉습니다. 적막강산 고치령 골짝에 탱크 소리 같은 요란한 화물차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먹이 찾아 내려온 놀란 너구리 한 마리 걸음아 날 살리라고 후다닥 꽁무니를 내 빼는 모습이 미안합니다. 적재 용량을 넘긴 트럭은 고르릉 고르릉 숨쉬기를 힘들어 합니다. 약 15분을 달려 지난번 그 고치령(3:00)에 올려놓고 마을에서 기다리는 일행을 위해 부리나케 내려갑니다.  키 크고 잘생긴 장승이 양쪽길목을 지키는 것과 산령각은 그대로인데 고치령에는 무엇인가 달라져 있습니다. 백두대간 마크를 찍은 고치령 표지석을 올 4월 2일자로 세웠으며 산 들 머리에는 산불방지 기간 입산금지를 알리는 경고문을 국공에서 설치해 놓았습니다. 바람 없고 조용하던 고치령에 다시 한번 탱크 소리를 몰고 온 그 트럭은 나머지 인원도 쏟아놓고 쏜살같이 가버립니다. 늙어 힘들어 보이지만 이장님에게는 큰 돈 벌어주고 우리 같은 대간 꾼들에게는 많은 발길 들어주는 고마운 트럭입니다. 이장님 이 새벽에 오늘 일당 톡톡하게 챙기셨습니다.

  

◈ 고치령(2010년 4월 2일 세움) - 백두대간 열여셧번째 17구간 산행 들머리

 

◈ 산령각 - 단종과 금성대군을 위한 산령각

  
일행이 합류하자마자 고치령엔 발자국만 남겨두고 산령각 곁으로 마구령을 향해 출발(3:20)합니다. 최근 봄눈이 녹아서인지 쫀득쫀득한 흙이 신발에 쩍쩍 달라 붙습니다. 고치령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이곳 산길도 여느 고개들처럼 가팔라 시작부터 호흡을 거칠도록 만듭니다. 헬기장 하나가 나오고 이제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즈음 나뭇가지터널이 나타나고 네 발로 기어서 사뿐이 통과하고 또 다른 헬기장(4:10)이 있어 호흡 조절을 위해 잠깐 휴식을 합니다. 그리고 약 5분 간을 앞서가던 선두가 낌새가 이상한지 갑자기 멈췄고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보니 옛날 나무꾼이 지나간 그런 길입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간길을 잘못 들어 전혀 엉뚱한 길로 가게 되면 오늘 목표한 산행에 치명적인 차질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지도정치를 끝낸 선두가 헬기장 좌측편의 빤질빤질하고 넓은 길로 방향을 잡고 나니 마음이 놓이고 역시 고수들이라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모습 드러낸 지난 가을의 뽀송뽀송한 낙엽이 발목까지 푹푹 빠집니다. 능선을 타고 양쪽 계곡에 밝혀진 불빛을 바라보며 오르락 내리락 숨가쁘게 걸어 새로운 헬기장(5:07)에 도착하자 산악회자문님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행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롭게 지도정치를 합니다. 그리고 보니 그 흔한 대간 시그널과 이정목을 전혀 구경하지 못하였고 대간길에서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이 이상했으나 헬기장에서 갈 수 있는 길이 이 길 밖에 없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엄청 걸었으니 아마도 그 곳이 자개봉이었을 것입니다. 가던 발길 돌려 세번째로 그 헬기장(6:00)에 올라서니 헤드라이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날은 밝았고 휴식 중 바라본 지도에는 이곳이 자개봉 삼거리이며 바로 아래 「진행하는 방향에서 좌측 길」이라는 친절한 표시가 있었으나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직진 방향의 막아 놓은 나뭇가지 터널을 기어서 그냥 통과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산행 중 계획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들어섰다가 돌아가는 경우를 알바를 한다 하기도 하고 학생이나 주부들이 본업 외에 부수입을 얻기 위해 하는 부업을 알바라 하는데 이런 알바든 저런 알바든 하고 나면 알바생은 돈도 되지 않고 힘들고 고달프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시간 당 3Km 를 계산해서 왕복 6Km 의 보너스를 다리에 짐을 얹어 주었는데 집에 돌아가면 다리란 놈이 무슨 불만을 토해낼지 걱정입니다.

  

◈ 알바 중 헬기장에서 고집통

 

◈ 일제시대 송진 채취 흔적

  
조금 질러 가보겠다고 길이 아닌 낙엽 위를 밟는 일행들은 낙엽 아래 꽁꽁 언 땅이 아직 녹지 않아 단체로 미끄럼을 타고 내립니다. 대간길을 찾아 몇 발자국 띄니 고치령 1.5Km라는 이정목이 나옵니다. 소백산국립공원 공단에서 500m 단위로 이정목을 세워 대간 타는 산님들 길 잃을 염려 없도록 이렇게 친절하게 해놓았는데 우린 생각 없이 그걸 간과한 것입니다. 미내치는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났고 고치령 4Km 이정목(6:30)도 지나고 완만한 능선을 한참을 달리다시피 가파른 능선을 타고 1096.6봉(7:38)에 올라 오래간만에 알바한 자개봉을 뒤돌아 보고 삼각점 앞에서 사진도 한 장 남겨봅니다. 이상스럽게 크게 상처를 입은 소나무가 많이 눈에 띄어 이유를 알아본즉 일제시대 때 망해가던 왜인들이 송진을 채취하여 연료로 쓰기 위해 일부러 소나무 껍질을 벗겼다니 그들의 막판 발버둥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 마구령 철조망을 통과하는 일행들

 

 

◈ 마구령 - 부석면 임곡리와 남대리 연결

  
얼마 후 그렇게 밤새도록 애타게 찾아 헤매든 마구령(8:05)에 내려섰습니다. 밤새 마구마구 뺑뺑이를 돌려서 마구령일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부석사로 유명한 부석면의 임곡리와 남대리를 연결하는 이 고개의 유래비에 의하면 옛날 보부상들이 이 고개를 통하여 경상도와 충청도, 강원도로 말을 타고 왕래 하였다 하여 그래서 마구령이랍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혹시 어물쩍거리다 국공의 단속에 걸릴까 얼른 맞은편 언덕으로 숨어들고 바로 위의 헬기장(8:20)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자리를 폈습니다.
마음이 바빠서일까 최소한의 민생고 해결시간만을 가지고 다음 목적지인 늦은목이재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쭈뼛한 바위가 있는 1,058봉(9:25)을 지나고 정상석 없이 이정목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갈곶산(10:17)도 지났습니다. 소백산 국립공원 끝자락 늦은목이재(10:40)에 도착하고 나서 국공 단속의 긴장에서 벗어 났습니다. 바로 10m 아래 늦은목 옹달샘 물은 힘들고 고달픈 산님들의 갈증을 확 해소해 주기에 충분하도록 시원했습니다.

  

◈ 늦은목이재 전경

 

◈ 늦은목이재 옹달샘

 

◈ 선달산 정상의 고집통

  
체력의 부담 때문에 한발 앞서 출발해 보지만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일행들에게 추월 당하고 맙니다. 오르막 또 오르막 끊임 없는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늦은목이재에서 0.9Km를 왔으니 선달산까지는 아직 0.9Km가 남았다는 이정목을 보는 순간 공황상태에 빠지면서 다리의 힘이 풀리고 양손의 스틱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다 쉬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해가며 사력을 다해 선달산(11:50)에 올랐습니다. 내 나름 다리의 힘을 올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건만 아무렇지 않게 살랑살랑 추월해가는 일행들을 보니 내 노력은 노력도 아니었나 봅니다.    선달이라면 과거 급제를 하고도 벼슬을 못한 사람을 일컫는데 어째 그 이름 요상한 선달산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동강 물 팔아 먹었다는 봉이 김선달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고 인근에 방랑시인 김삿갓의 묘가 있다니 그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4월의 얼음길

  
내 어깨를 짓눌렀던 맛 좋은 외포 막걸리를 비우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산이 높아서인지 지난 겨울 얼었던 얼음이 여태껏 녹지 않아 조심을 요하는 곳도 가끔 나옵니다. 이번 산행 중 나는 새로운 것을 한가지 알았습니다. 음식이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아 에너지가 고갈되면 정신력과 의지만 가지고 산행을 할 수 없으니까 무조건 먹고 또 먹어주어야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점심식사(12:30)에 오리훈제 고기 몇 점을 뱃속에 투입해 주니 그렇게도 가기를 거부하던 내 두 다리가 산행 끝날 때까지 거뜬하게 견뎌내 주는 것을 보고 「아하 이것이었구나」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난 이런 간단한 것을 느끼는데도 왜 이리 시간이 많이 걸리는 줄 모르겠습니다. 빨리 알았으면 지고 다닐 것이 아니라 배에 넣고 갔을 것인데 말입니다. 일행들이 다 쉬고 있는 박달령(14:08)을 그냥 스쳐 지나가도 이제는 다리가 나무라지 않습니다. 박달령에도 산신각이 있어 조령3관문, 고치령등 유난이 이 지역에는 산신각이 많이 눈에 띕니다. 산이 높고 고개가 험해 산신령님께 요구할 것이 많은 고을인 모양입니다.

  

◈ 박달령의 고집통 - 천둥산 박달재 아님

  
선달산만은 못하지만 옥돌봉 오르는 길도 가파름은 만만찮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다리는 크게 나무라지를 않으니 불만 표하기를 포기해 버렸는가 봅니다.
어딘가에 옥석이 많이 있으니까 옥돌봉(15:25)이라 했겠지만 옥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도래기재까지는 줄곧 내리막 길입니다. 길목에는 수령이 550년 된 철쭉나무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발길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진달래 터널 밑으로 통과합니다.

  

◈ 옥돌봉 정상의 고집통

 

◈ 옥돌봉 철쭉나무 - 550년

 

◈ 딱따구리 구멍

 

◈ 진달래 터널 - 4월인데 꽃 봉우리도 없음

  
이미 거제에는 진달래 축제가 끝난 마당인데 진달래 터널에는 아직 꽃망울 조차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여기 진달래 나무는 유난이 춥고 긴 겨울을 보내느라 꽃 피우는 법을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의 봄은 참으로 더디게 옵니다. 그리고 도래기재( 道驛嶺 )(16:10)가 나를 반깁니다. 아니 내가 도래기재를 반가워합니다.

  

◈ 도래기재 - 백두대간 열여섯번째 17구간 산행 날머리

  
대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알바 같은 알바를 해보고 그로 인해 예정된 거리보다 약 6Km를 더 걷게 되었고 잃어버린 시간 만회를 위해 속도까지 배속 하였으니 힘든 하루 여정을 보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길 32.4Km 이상을 걸었지만 집에 돌아온 지금 다리가 불만을 품지 않고 있다는 일입니다.
대간길 같은 장거리 산행을 하면서 어찌 길 한번 잃어먹지 않고 완주 하겠냐만은 돈 버는 알바든 길 잃은 알바든 어쨌든 둥 알바는 이래저래 힘든 일입니다.
내 친절한 기동 다음달에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 돈 벌러 간다하고 지난 겨울 아껴 놓았던 황장산 코스를 1박 2일로 추진한다니 머리를 잘 굴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