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19] 필연 닮은 우연을 만나다

산안코 2010. 7. 18. 23:04

◈ 언            제 : 2010. 7. 17 (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9구간(피재~댓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2명과 고집통
◈ 날            씨 : 7/17 (비, 흐림)
◈ 대간 산행시간 : 264시간 42분(19구간: 11시간 30분)
                        27일차 피재(삼수령) (3:05)→댓재(14:35) 11 30분
                        접근거리: 건의령 삼거리(4:54)→수석식당(5:05) 11분
◈ 대간 산행거리 : 526.17Km (19구간: 26.1Km)
                        27일차: 26.6Km  접근거리: 0.5Km
◈ 총    산행거리 : 피재(삼수령)→삼거리→수석식당→건의령(한의령)→푯대봉→구부시령
→덕항산→환선봉(지각산)→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약 26.6Km)
 
여기 밥통 속의 밥은 당연히 내 것인데 그렇기 땜에 내 혼자서 먹는 밥이고 그래서 내 입 속으로만 들어가는 밥인데 그 밥으로 인해 나는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밥맛이 좋아 밥숟갈은 자꾸 놀리면서 줄어드는 밥 그것이 눈물겹도록 아깝습니다.
서른 그릇을 밥통에 담았었는데 밥 맛있다는 이유로 허겁지겁 퍼 먹다 보니 달랑 아홉 그릇이 남아 버렸습니다. 그럼 내년 5월에 밥 떨어지면 나는 어쩌죠? 밥 먹든 그 순간들이 너무 좋았었는데요.
아이고 밥 타령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대간 다녀왔으면 대간 얘기 정리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기억 도망가기 전에 빨리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렸습니다.
살짝 흐트러진 발걸음으로 탈랑 탈랑 집으로 가다 반가운 사람들 만나 일 잔 해버리고 술이 맛있어서 또 일 잔 해버리고 이러니 정리가 자꾸 흩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살살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장맛비는 퇴근시간이 되었음에도 도무지 그칠 줄 모릅니다. 장마 전선은 남부지방에 이미 물 폭탄으로 초토화를 시켜놓고 중부지방으로 북상을 하고 있어 괜시리 축구 하다 발 다쳐 갈수 없다고 연락 온 후배 승철이가 부럽기도 합니다. 천지가 개벽을 하면 몰라도 이까짓 비 온다고 대간길 멈출 일은 아니기에 배낭 꾸리는 내 모습 바라보는 마눌님, 삼손, 삼식이 눈초리가 심상습니다.
10시입니다. 그렇게 쏟아 붓던 빗님이 때 맞추어 틈을 주어 버스에 올라타기 전 비에 젖는 최악의 경우는 피했습니다. 눈을 잠시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대경이 숨소리 거칠게 고르릉 거리고 어깻죽지 뻣뻣해져 자세 고쳐볼까 생각했는데 어느새 피재에 도착됩니다. 또 다른 이름 삼수령이기도 하고 동으로 오십천, 북으로 한강이며 남으로는 낙동강에 물을 주는 분수령이면서 삼척 백성들이 난리통에 난리를 피해 황지로 피해 넘어 왔다하여 피재랍니다. 

  

◈ 피재(삼수령)의 삼수정 - 백두대간 열아홉번째 산행 들머리

 

◈ 피재 출발하기 전 눈 풀린 고집통

    

타닥타닥 떨어지는 새벽비가 옷을 적시매 우의를 덧입고 삼수정(3:05) 옆을 스쳐 열아홉 대간길을 출발합니다. 몇 발자국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비옷 속은 땀 범벅이 되고 풀섶의 빗방울은 바짓가랭이를 적셔 장딴지랑 허벅다리가 벌써부터 축축해져 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중 비가 멈춤과 동시에 우의를 벗어보니 시원하기가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아닙니다. 선두가 출발을 지체합니다. 사유인즉 일행 중 한 명이 오버트라우저를 배낭에 패킹하다 언덕배기에 떨어뜨려 어디로 가버렸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답니다. 무려 50만원이나 하는데 그냥 두고 갈수 없음에 일행들 합심하니 간단하게 수배에 성공할 수 있었고 고마움의 표시로 나중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두 당 한 개씩의 아이스께기를 돌렸습니다.

  

◈ 오십만원(오버트라우저)짜리 찾는 일행들

     

우의를 벗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이젠 우의를 입지 않기로 했습니다. 비에 홀딱 젖으나 땀에 홀딱 적시나 피차 옷 젖기는 마찬가진데 번거롭기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벌써 삼수령에서 6Km를 걸어 공터(4:54)가 나오고 바로 왼쪽으로 발길을 돌려 아침식사가 예약된 수석식당으로 내려갑니다. 35번 국도의 강릉과 태백의 안내표지판을 보고 우리가 언제 강릉 근처까지 올라왔나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일찍 먹는 식사라 그런지 수석식당(5:05)의 아침 된장국은 정말 맛 없습니다. 하산 후에 다시 들를 것이라며 식당 밥맛을 평가하지 말았어면 하는 등반대장님의 특별 주문이 없었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궁지렁 거렸을 것입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 건의령 500m 전 삼거리 - 수석식당(아침 식사)으로 하산

 

◈ 수석식당 앞 35번 국도의 태백, 강릉 갈림길

  

건의령 차도는 터널이 생긴 이래 옛길은 생태복원 중입니다. 빗줄기가 더 굵어진 건의령(5:57)에서는 빗물에 개의치 않는 몇 안 되는 일행들이 아침 민생고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때 공양왕이 살해되자 그의 충성스런 신하들이 다시는 이 고개를 넘지 않겠다고 관모와 관의를 벗어 걸었다고 건의령이라 한답니다.
대간길 약간 벗어난 푯대봉(6:32)은 아무도 찾지 않아 살짝 발길만 주고 오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돌아왔으나 이미 행렬의 꼬리는 시야에서 벗어나고 없습니다. 신발 속 새끼발가락은 고통을 호소하지만 일행들 놓칠 새라 무시하며 마구 내달려 민 벌거숭이 한내령(7:17)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 뒤에 아직 많은 사람이 남아 있음을 알았습니다.

  

◈ 장맛비 내리는 한의령(건의령)

 

◈ 한의령 유래 표지판과 이정표

 

◈ 푯대봉 정상에서 고집통

 

◈ 한내령과 구부시령 사이 능선에서 비에 젖은 잘난 고집통

    

아홉의 지아비를 모셨다는 기구한 팔자를 가진 여인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구부시령(8:50)과 화전민이 많이 살았다는 덕항산(9:15)을 지날 때는 이미 비가 멎었기에 산행하기에 아주 죽여주는 날씨로 변해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오른쪽 언덕배기는 석회암 동굴이 많이 산재해 있는 대이계곡지대이며 그 유명한 태백의 환선굴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낭떠러지가 줄곧 이어지기에 로프로 위험구역임을 표시해 놓았지만 조금만 관심 기울인다면 생각보다 아주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삼척시와 동해바다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날씨가 흐려 시계가 좋지 않아 조금은 아쉽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남해바다 바라본 이래 백두대간 하면서 바다는 이곳 동해 바다 구경이 처음입니다. 

  

◈ 구부시령 - 옛날에 지아비를 아홉씩이나...ㅎㅎㅎ

 

◈ 덕항산 정상의 고집통

 

◈ 덕항산 아래 대이동굴지대

  

환선봉(9:57)을 지나고 정우빠봉(11:39)이라고 누군가 마음대로 표지판 설치해 놓은 말도 안 되는 이름의 봉우리도 지납니다. 인근에 광동 저수지가 생기면서 주민들을 집단 이동시킨 귀네미마을(11:45)과 함께 끝이 어딘지 구분이 분간이 되지 않는 고랭지 배추밭도 나타납니다. 배추밭 언덕배기 가장자리를 삥 둘러 한참을 진행하니 시멘트길 임도가 나오고 KBS의 오락프로 1박 2일 촬영지였노라고 작은 표지판도 나옵니다.
배추밭 끝나는 지점의 백두대간 안내지도(12:20)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는데 선두가 돌아서 갈 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보니 대간길이라면 있어야 할 발자국 흔적이 없습니다. 한참 길을 찾아 갈팡질팡하다 그냥 풀숲을 헤치고 지나가니 큰재(12:40)와 연결된 임도가 나옵니다. 안내지도에서 약간만 더 앞으로 나아갔었더라면 별탈이 없었을 것인데 지나고 보면 항상 2%가 부족합니다. 

  

◈ 환선봉(지각산) 정상의 고집통

 

◈ 귀네미골 광동 이주단지 - 고랭지 채소밭

 

◈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

 

◈ 환선봉에서 본 동해시 - 멀리 동해 바다가 보임

 

◈ 요건 무슨 열매?

  

걸음이 느려 일행들과 거리가 약간 벌어져 버렸다는 서울의 카페 『좋은 사람들』 회원이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걷다 보니 시간은 잘도 흐르고 거리 또한 순식간에 줄어듭니다.
1,015m봉(14:00)에서 잘 믿기지 않는 만남이 생겼습니다. 한발 앞서 봉우리에 올라서던 기동이의 반갑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수년 전 LNG선 건조할 때 내가 배 만들어서 검사 신청하면 배가 잘되었나 못되었나 검사해주시던 김순용감독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악수와 함께 포옹까지 해가면서 반가이 맞이 해주십니다. 내가 백두대간 시작하기 한참도 전에 고향 친구분들과 의기투합하여 백두대간 하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나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대간길에서 만나게 되다니 필연 같은 우연이 눈앞에 나타날 줄 미쳐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생에 억만 겁의 인연이 있었어야만이 이생에서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있다는데 무슨 깊은 인연이 있어 이렇게 장맛비 쏟아지는 이런 날 태백의 깊은 산중에서 만나야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 거제에서 일 잔 하자는 약속의 인사말을 남기고 오늘의 마지막 고지 황장산(14:19)에 오릅니다.

 

◈ 필연 같은 우연 - 백두대간 남진중인 김순용감독님

 

◈ 황장산 정상

  

파~앙 파~앙 시멘트 바닥에 신발 두드리는 소리가 고요한 산정상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저 댓재(14:35)에 하산한 일행들이 단체로 등산화 바닥에 달라붙은 흙먼지 털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댓재의 고집통 - 백두대간 열아홉번째 산행 날머리

 

◈ 삼척시에서 이런 멋진 조형물을

  

아침식사를 해결한 수석식당에 다시 들러 먹는 옥수수 막걸리와 김치찌개는 일품입니다. 만드는 손 맛 차이인지 먹는 입 맛 차이인지 몰라도 아침식사는 F급 인데 반해 지금은 A급 입니다.
오늘은 시작할 때부터 밥 타령이었고 끝날 때까지 밥 타령입니다. 또 아까운 밥 한 그릇을 해치웠습니다. 그냥 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줄어드는 밥그릇 수만큼 뭔가가 내 자신도 모르게 내게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애써 위안이 됩니다.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백두대간 이것 아니더라도 정맥, 기맥이 전국에 널렸는데 또 챙기면 그것도 달콤한 내 밥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