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0. 6. 19 ~ 6. 20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8구간(도래기재~피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6명과 고집통
◈ 날 씨 : 6/19 ~ 6/20 흐림
◈ 대간 산행시간 : 253시간 12분(18구간: 19시간 25분)
25일차 도래기재(7:05)→화방재(17:35) 10시간 30분
26일차 화방재(5:15)→피재(삼수령) (14:10) 8시간 55분
◈ 대간 산행거리 : 500.07Km (18구간: 45.65Km)
25일차: 24.24Km, 26일차: 21.41Km
◈ 산 행 코 스 : 도래기재→구룡산→곰넘이재→신선봉→차돌배기재→깃대배기봉→부쇠봉→태백산→사길령→화방재(1박)→수리봉→만항재→함백산→은대봉→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낙동정맥 갈림길→피재(약 45.65Km)
대한민국이 온통 새빨갛습니다. 빨간 옷 하나 없으면 애국자 대열에서 제외입니다. 언제는 축구장에 물 채워서 박태환이 수영 시키라고 아우성이었는데 월드컵 이맘때만 되면 양은냄비 물 끓듯 열광하는 전 세계에서 이해 잘 안 되는 민족 중의 희귀민족입니다. 바깥으로 돌면 또 술이라는 놈이 따를 것이니 토요일 새벽 2시에 떠나는 열여덟번째 대간길이 부담스러워 조용히 집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아가 끓어 올라 복창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나 역시도 이해 잘 안 되는 대한민국 속 이상한 민족의 일원인 모양입니다. 언감생심 세계 3위 아르헨티나를 깨부수겠다고 장담하는 소리를 믿고 혹시나 했었으나 결과가 너무 비참합니다.
애초 무박 2일 도래기재에서 화방재까지 였는데 1박 2일의 도래기재에서 피재까지 두 구간을 뭉떵거려 한꺼번에 해치우겠다는 공지를 보고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45.6Km 의 거리입니다. 대간 시작이래 새로운 도전이고 이제 막 장마시즌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출발하는 날 새벽에는 비가 엄청 올 것이라고 합니다. 새벽 2시 거제를 출발한 대경이가 죽어라 달려 봉화 애당리 수진식당에 들러 동태국에 아침식사를 해결해 주고 해발 750m의 도래기재에 우릴 내려놓기가 무섭게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뒤 꽁무니를 내빼더니만 결국에는 배낭 하나를 챙겨가지 않아 다시 불려옵니다.
간단한 스트래칭으로 몸을 풀고 출발(7:00)하는 도래기재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오늘도 불만이 많은 얼굴로 찌푸려 있지만 길 나서는 나로써는 정말 안성맞춤식 날씨입니다. 선답자들 시그널 전시장을 통과하고 잠시 후 임도를 만나게 되고 거대한 노송 금강송(7:32)이 가던 발길을 멈추게 만듭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다른 종류들의 나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저들끼리만 붙어서 자란다는 금강송의 성질머리도 아주 우리네 민족 하는 짓과 너무도 일맥상통합니다.
또 다른 임도(8:15)를 건너고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고 있는데 물긷는 아낙이 꼬리를 잡아당겨 그만 뱀이 되어버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의 구룡산정상(8:53)에 올라서기 까지는 그다지 힘이 들었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중간중간 벤치를 만들어 힘든 대간꾼이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영주시가 고맙지만 시설물들이 약간 사치스럽습니다. 고직령(9:30)을 지나고 곰넘이재(10:00)에 도착하니 아침식사를 해결한 수진식당 홍보물이 버젓이 대간길 옆에 서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이렇게 부지런을 떨어야 벌이가 남들보다 낫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무슨 곰이 그리도 많이 넘어다녔는지 곰넘이봉, 곰넘이재가 구석구석 깔려 있습니다. 곰들이 웅담 배달 다녔나 봅니다?
신작로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노라니 앞에서 누군가 길 옆의 생소한 꽃에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찍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주 빛깔의 산죽화가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보고 만져도 보고 기특하여 살짝살짝 쓰다듬어도 주었습니다. 경운기가 지나갔을까? 아님 자전거 타는 이들이 길바닥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대로를 한참 따라가다 어느 순간 길이 좁아지고 산죽 밭 속을 내가 지나고 있습니다. 처음 그렇게 신기하게 생각했던 산죽화가 지천에 널려져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년 또는 수십년 만에 한번 꽃을 피웠다가 죽음으로 일생을 마무리한다니 우리네 즐거운 인생이나 꼿꼿한 대나무 인생이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매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한시간 가량을 산죽 꽃 속의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신선이고 싶었어 일까 신선처럼 살다 가셨어일까 처사 김공께서 신선봉 정상(10:52)에 누워 지나다니는 대간꾼들의 애환도 들어주고 할딱거리는 산님들의 쉼터도 제공해주고 외로운 이의 말벗까지 되어주니 다음 세상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신선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제 먹은 차돌배기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지만 이해 안 되는 차돌배기재(11:45)가 엄연히 여기에 있습니다. 가까운 계곡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여유를 찾아 충무김밥으로 허기도 보충합니다. 배가 부르니 당연히 다리에 힘 오르고 몸에 생기 도는 법입니다. 날씨까지 산행에 보탬을 주니 순식간에 깃대배기봉(13:42)도 접수해 버립니다. 차돌배기에 이어 깃대배기봉이라니 아마도 배기와 이 고장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건만 따지고 있을 여념이 없습니다. 한참을 걸어 왔는데 또 깃대배기봉 정상석(13:56)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어 나 같은 초보 대간꾼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일기예보가 장마를 예보한 까닭인지 오늘은 산님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습니다. 부쇠봉(14:42) 헬기장 도착하기까지 한 쌍의 산님과 스쳤을 뿐이고 단지 엄청 큰 보따리를 앞뒤로 짊어진 나물 따는 아낙 두 명과 그저 그런 인사말 나눈것이 전부입니다.
이제 그 머나먼 경상북도의 땅을 봉화로 마지막으로 해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 강원도에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운무 속에 숨어있는 완만한 태백의 능선을 따라 그렇게 유명한 태백의 주목들이 하나 둘 자태를 뽐내고 있고 유유자적 걸음의 내 앞에 약간 왜소한 첫 번째 천제단(15:09)이 기다립니다. 그리고 태백산 정상의 천왕단 천제단(15:16)에 도착하게 되고 삼성중공업 산악회 창립 30주년 기념 백두대간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이곳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하늘, 땅, 바다의 신께 조촐한 음식을 바치고 백두대간 끝나는 그날까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예식이기에 내 마음 또한 정갈해지고 경건해집니다. 300m 뒤에 있는 장군봉 장군단(16:11)까지 합하면 3기의 천제단이 있기에 가히 신들의 산이라는 생각에 한치의 의심이 없습니다.
살아서 천년이고 죽어서 천년이기에 합해서 이천년을 산다는 태백의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하산길은 좀처럼 눈과 발길을 떼어내기가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멋진 주목들이 나를 홀리고 눈을 너무 즐겁게 합니다. 그다지 경사지지 않은 완만한 내리막길을 두 시간 남짓 걸어 내려오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이 지역에서 많이 보아온 산령각이 또 있습니다. 그리고 가파른 시멘트 길을 밟노라니 화방재라 착각하기 쉬운 사길령(17:18)이 나타나고 잠시 후 화방재 (17:35)가 나옵니다.
태백의 당골 한 민박집을 찾아가다 만난 6월의 유채꽃밭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랍니다. 내 사는 거제도에는 두 달도 더 전에 유채꽃 만발했었고 어제 유채씨앗 받아 말려놓고 왔는데 좁은 나라에서 여럿을 경험합니다. 곤히 잠든 꿈결 속의 민박집 지붕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립니다. 천둥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빗님이 우리 곁에 찾아오는 소리가 너무 요란합니다. 제발 이러지만 말기를 학수고대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오늘은 그냥 밥만 먹고 거제로 내려갔으면 하는 바램인데 언제 한번인들 비 온다고 눈 온다고 포기한적이 있었습니까? 차라리 내가 포기하고 말아야지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비는 가고 구름 사이로 언뜻 별 하나 보입니다. 하늘의 속임수일 수 있으니 신발을 비닐로 야무지게 똘똘 감싸고 새로운 하루를 준비합니다. 어젯밤 내린 비로 바지 가랭이가 염려스러우니 살짝 눈치 봐가며 얄팍하게 뒤로 빠집니다.
둠 짙은 화방재(5:00)에는 아직도 천둥이 쾅쾅거리지만 반면에 뻐꾸기는 배가 고파서일까 임 찾아서 일까 뻐꾹 뻑꾹 뻑뻐꾹을 외칩니다. 경쾌한 뻐꾸기 소리가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라 생각하며 심한 급경사를 차고 오릅니다. 화방재에서 수리봉(5:45)은 무릇 600m라는 고도 차이가 나지만 한번도 쉼 없이 차고 올라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체력보강이 많이 되었나 싶어 내자신도 대견스럽습니다. 높낮이 없는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고 군사시설의 철조망(6:23) 곁도 지나고 1.330m 고도의 만항재(6:30)에 도착합니다.
안개 자욱한 만항재의 새벽에 어마어마한 시커먼 대포 하나씩 둘러메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작품 하나 만들려는 사진 동호회 그 사람들이 참 신기합니다. 이 양반들은 도대체 아침밥이나 제대로 먹고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올라 왔는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이 안개 속에서 셔터를 눌러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 궁금하지만 물어보면 당신은 뭣땜시롱 이 새벽에 산중을 헤매는지 반문할까 봐 그냥 꾹 참기로 했습니다. 그 찍사들 뒷모습만 내 똑딱이에 담았습니다.
414 지방도를 따라 내려서다 함백산 등산로 안내 화살표의 안내를 받아 계단 길을 한참 오릅니다. 어젠 산죽화 만개한 산길을 밟았건만 오늘은 산불에 타버린 모습처럼 새까맣게 말라 죽어버린 조리대를 봐가면서 지나갑니다. 차~암 화무십일홍이라 어제의 그 멋진 꽃들이 내일이면 처절하게 변해 있을 그 신선봉의 산죽화들이 안타깝습니다. 넓은 공간에 거대한 고인돌(7:15) 1기가 있어 잠시 쉬고 있으려니 부릉부릉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높은 산중에 노란색 차량이 휙 지나갑니다. 우리 바로 밑에 태백선수촌이 있다고 합니다.
가파른 너들길이 턱 밑에 있는 숨마저도 못 쉬게 하는 함백산(7:52) 정상에 올랐건만 허무하게도 승용차 여러 대가 바로 곁에 올라앉아 불쌍한 우리네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2의 실크로드가 시작됩니다. 짜다라 올라갈 일도 없고 그렇다고 내려갈 일도 없는 그냥 하염없이 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길들이 펼쳐져 있으니 내가 아는 마음씨 좋고 포근한 강원도 지인들의 성격과 너무 흡사하니 어찌 강원도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겨울 속리산, 조령산, 월악산을 죽기 살기로 지나온 길에 비하면 이 곳은 그저 먹기라 해야겠습니다. 주목 군락지를 보호키 위해 설치한 철조망은 자칫 산님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겠지만 조심조심 그곳을 지나고 헬기장이 있는 은대봉(9:30)까지 도착하고 그냥 그렇게 또 걷습니다.
그리고 두문동재((10:00)에 도착하니까 대덕산 금대봉 생태보전구간은 사전 인터넷 예약이 되지 않으면 갈수 없다고 합니다. 기 산악회에서 예약을 하였으니 통과하는데 큰 아규가 없었지만 여기서부터 금대봉까지 등로 외는 벗어 나지 못하도록 밧줄로 펜스를 막아 산행의 잔재미는 그다지 없습니다. 금대봉(10:27)은 한강과 낙동강의 양강 발원봉이라는 또 다른 표시도 있습니다. 새벽의 천둥과 빗님을 걱정했지만 나의 기우였으며 오히려 산행하기에는 최상의 날씨를 공급해줍니다. 그래서인지 짭짤하게 많은 산님들이 이곳에 산행을 즐기러 왔습니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봄이 이제서야 왔었나 야생화 지천에 흐드러졌고 내 눈엔 모든것이 그냥 풀 이파리건만 몇 몇 일행들은 뭘 알고 그러는지 잘도 산나물 잎을 꺾어 모읍니다. 혹시 잘 못 골라 곤란을 당할까 염려스러운데 막상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식을 합니다.
은대봉, 금대봉에 이어 이젠 비단봉(12:10)이라니 산 이름이 보석 같고 고급스럽습니다.
어느 순간 확 트인 고랭지 채소밭이 눈 앞에 나타나면서 그 속에 거대한 풍력발전기 1기가 떡 허니 버티고 있습니다. 팔랑개비 돌아 가는 소리가 「우~웅 우~~웅」 혹시 저놈이 자빠질까 무섭기도 하고 내 아끼는 후배 상용이가 저것으로 밥 벌어먹고 산다니 관심 종목이기도 합니다. 채소밭을 가로지르는 밭 고랑에는 샛노란 민들레가 「날 잡아 잡수시오」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았으면 남들처럼 뜯어서 차도 담고 술도 담았으면 좋겠지만 자연 예찬론자인 고집통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는 7기의 풍력발전기가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바로 아래 매봉산 일대를 깎아 만든 고랭지 채소밭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보슬비가 얼굴에 내려 앉습니다. 아이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피재인데 여기서 빗님을 만났구나 발길을 재촉하는데 어째 냄새랑 맛이 야릇합니다. 비가 아니고 저 멀리 채소밭의 농약 물이 바람 타고 날아와서 내 뺨을 적십니다.
매봉산 천의봉은 사실상 내가 상상만 해왔던 낙동정맥의 시발점이기에 언젠가 내가 찾아야 할 곳이기에 단단히 눈도장을 찍어 놓고 발길을 돌려 한참 내려가니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갈림길(13:53)을 알리는 앙증맞은 표지석이 나옵니다. 이 또한 잘 담아 놓아야 할 그 곳입니다. 그리고 피재이면서 삼수령(14:10)입니다.
이제는 강원도 땅만 신나게 올라가면 백두대간이 완성됩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강원도가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산세와 지형이 이렇게 온유하고 포근하니 그 품 속에 사는 주민들의 성격이 닮아가는 모양입니다. 이후로 강원도랑 정 붙여 한번 절친하게 지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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