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20] 사십대 남자도 행복할수 있다

산안코 2010. 8. 22. 23:37

◈ 언            제 : 2010. 8. 21 (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24구간(한계령~조침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9명과 고집통
◈ 날            씨 : 아주 맑음
◈ 대간 산행시간 : 274시간 57분(24구간: 10시간 15분)
                        28일차 한계령(2:30)→조침령(12:45) 10시간 15분
                       접근거리: 조침령(12:45)→설피마을(13:10) 25분
◈ 대간 산행거리 : 550.07Km (24구간: 23.9Km)
                        28일차: 23.9Km  접근거리: 3Km
총    산행거리 :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단목령(박달령)→조침령
→설피마을(약 26.9Km)
   

중앙일보의 한국인 행복지수 설문조사에서 40대 남성이 가장 불행하다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40대 여성이 가장 행복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대문짝만하게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나는 대다수의 40대 남성들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주역으로써 가장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가정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에서는 직장의 일과 스트레스로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나 불행 하요』하고 하소연하면 『아~ 그렇습니까』하며 누군가 행복 갖다 줄 일도 아니므로 나도 40대이니까 알아서 행복 찾아 길 나서야겠습니다. 대간길 가면 거기에 행복이 있을것 같습니다. 스무 번째가 기다려집니다.
이번 대간길은 다가올 겨울 폭설로 차량접근이 어려울것을 대비하여 25구간인 한계령에서 조침령까지인 점봉산 구간을 미리 끊기로 한답니다. 버스를 타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당연 출발시간도 앞당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금요일 저녁 8 시가 출발시간입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배낭의 배를 불립니다. 간다 간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기동이가 브라질 지난주에 갑자기 출장을 떠나는 바람에 혼자만의 먹거리를 챙기는 내 가슴이 휑합니다. 잠시 눈을 붙였는가 했는데 시간은 12시가 지났으며 영동고속도로상의 여주휴게소는 야심한 이 시간에도 불야성입니다. 내 스무살 시절 한번 지나간 기억이 있는 양양 읍내를 지나고 오늘 산행 시작점 한계령 고개마루로 오르는 버스 숨소리가 고달픕니다. 

  

◈ 한계령 - 백두대간 스무번째 24구간 산행 들머리

 

◈ 직벽 암벽구간 - 안개로 사진 촬영불가

    

이곳 한계령(2:30)에서 단목령까지 점봉산구간은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지정되어 전면 입산이 통제되기에 아차 잘못하면 인당 50만원으로 산악회 전체 액수 2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날아갑니다. 대간 하면서 이렇게 밤중에 살짝살짝 통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생쥐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지방도를 따라 약 100m 이동하여 입산을 금하는 철망의 개구멍을 통과하고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라서니 굳게 잠긴 입산통제소가 나타납니다. 할딱거리며 한참을 치고 오르다 보니 꿈속에서라도 나타날까 두려운 직벽 암릉의 로프가 기다립니다. 서투른 줄타기에 총대장님 발을 받쳐주니 한결 오르기가 수월합니다. 여기서부터 가슴 조아리며 네발로 기어야 하는 영락없는 강아지 신세로 전락합니다. 암릉은 계속 이어지고 안개 자욱하여 등로가 선명치 않아 어려움이 많으나 다행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출발한 대간꾼이 있어 중간중간 신문지를 찢어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선두의 길 찾기에 착오가 있었던 바위문(3:43)을 지나고 암릉구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타고 계속 내려서는 길이 혹시 알바로 돌아와야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요소요소의 교차로 신문이 마음을 놓이게 해줍니다.

  

◈ 1157봉 근처

      

남자 1명에 여자 3명의 대단한 산님들을 추월하여 지나갑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난다면 이 분들 또한 우리와 같이 단속을 피해보고자 하는 한결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교차로 신문의 대전 정보가 생각나서『대전에서 왔지요?』 물어보니 아니랍니다. 대전팀은 앞서 지나갔다고 합니다. 나막한 산죽길입니다. 암벽길을 기어갈 때는 전혀 몰랐는데 평길을 걷노라니 짧은 바지를 입은 것이 후회막급입니다. 신발 속으로 흙과 돌 부스러기가 자꾸 들어와 산행 내내 신발 털어내는 큰일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다시는 산행 중 짧은 바지는 입지 않을 것이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급 오르막을 치고 올라 망대암산(5:40)에 오르니 여명은 밝았지만 안개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오르막을 빡시게 치고 올라 오늘의 최고봉 점봉산(6:11)에 이릅니다. 점봉산 정상은 야생화로 천상화원이며 세찬 바람은 안개를 몰고 왔다 사라져가고 태양은 얼굴을 빼꼼이 내 밀었다 감추기를 번갈아 합니다. 단목령 통제소를 직원들 출근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목표가 있기에 잠깐의 휴식만을 취하고 오색삼거리(7:18)를 지나치고 옛날에는 박달령이라 일컬었던 단목령(8:05)으로 내달립니다.

  

◈ 망대암산

 

◈ 점봉산(1,424m)의 고집통

 

◈ 단목령 가는 길목의 야생화

 

◈ 단목령 지킴터

  

단목령은 운 좋게 통제소 직원은 없었으며 백두대장군과 백두여장군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만 있을 뿐 이곳을 지난다고 절대로 쓰다 달다 말하지는 않습니다. 첩첩 산중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간 하면서 이렇게 계곡 물가에서 식사시간을 가져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본의 아니게 우리의 안내원이 되어준 대전 대간꾼들을 여기에서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에 출발한 그 분들은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만 조침령까지도 멋진 안내원이 되어주었습니다. 땀 냄새를 맡았는지 작은 파리떼가 극성을 부려 간단하게 충무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다음의 목적지 조침령을 향했습니다. 밤새 걸었던 대간 길을 뒤돌아보니 쾌청한 날씨 속에 멋진 풍광이 조망되기에 밝은 날에 걷지 못한 지나온 길들이 너무 아쉽습니다. 

  

◈ 단목령 계곡

 

◈ 북암령 가다 뒤돌아 본 망대암산

 

◈ 작은 입 내민 바위

  

북암령(10:16)을 지날 즈음은 불볕더위가 여느날과 다름없이 기승을 부립니다. 등로 우측 편에는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에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 판에 『희귀식물 굴, 채취금지 및 산불조심』이라는 문구가 있어 무슨 민물에 굴이 살고 있어 채취를 금하나 산님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아마도 굴취와 채취를 줄여 사용하겠다고 만든 문구가 아닌가 생각되지만 굴취라는 단어는 어떤 사전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옛날 조선시대 때 쓰던 단어가 최근에 없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관용 단어이든지. 

  

◈ 양양 양수발전소장 경고문 - 굴,체취 금지는 무슨 소리?

 

◈ 양양 양수발전소 댐

 

◈ 조침령 전망대의 고집통

   

간혹 나뭇잎 사이로 상부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근접하기에는 아주 먼 거리인것 같습니다. 발 아래 임도가 나타나고 멀찌감치 양수발전소가 있는 하부댐도 보입니다. 전망 좋은 전망 데크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임도에 내려서니 날아가는 새도 힘들어 자고 가는 조침령(12:45)입니다. 여기가 오늘의 산행 끝점인지 알고 긴장을 풀었는데 구불구불 임도가 아래로 하염없이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418지방도가 연결되는 진동리삼거리(13:10)에 도착합니다. 인정사정 볼것 없이 배낭을 벗어 던지고 도로변 계곡물로 뛰어내려 알탕을 합니다. 새벽부터 쌓인 하루의 피로가 싹 씻겨 내려 갑니다. 

  

◈ 조침령 - 백두대간 스무번째 24구간 산행 날머리

 

◈ 진동리 삼거리

  

양양의 뚜거리탕이 일품이랍니다. 순천 짱뚱어탕처럼 이름도 요상하고 생긴 것도 못생긴 물고기인데 요리법과 맛이 아주 흡사합니다. 양양에 들르면 한번쯤 맛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공자님은 나이 마흔이면 불혹으로써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어떠한 유혹에도 잣대가 기울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네 40대 남성들은 가장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노라고 고백했다니 40대 후반을 막 벗어나려는 내 자신이 갑자기 슬퍼지려고 합니다. 비록 세상의 이치까지는 깨닫지 못해도 내 자신이 불행하다 생각한적이 아직은 없었습니다. 40대이기에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40대이기에 좋아하는 산을 벗삼을 수 있어 백두대간 도전이 가능했고 40대이기 때문에 새로운 꿈도 이상도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40대를 갓 넘은 마눌님을 모시고 살고 있기에 최고로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