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2010. 7. 31 ~ 8. 01 (1박 2일)
◈ 어 디 를: 산청 수양산
◈ 누 가: 고집통 홀로
◈ 날 씨: 아주 맑음
◈ 거리 / 시간: 덕산 사리마을(12:15)→홍계리 동촌마을(21:15) (약 13.0Km, 9시간)
◈ 산행 코스: 덕산 사리마을→시무산→수양산→마근담삼거리→사방댐→홍계리 동촌
서른번째 맞이하는 여름휴가입니다. 올해부터는 알토란 같은 내 연차 휴가 사용하여 휴가를 가야 한다는데 내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깨갱~깽입니다. 지리산 태극종주라는걸 나이 더 들기 전에 꼭 해보리라 마음먹고 날짜만 잡히기를 학수고대하다 D-DAY를 올 여름휴가로 잡았습니다.
마눌님 목 디스크 치료 차 진주 다녀오고 나면 몇 일간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그저께 다녀왔는데 내가 의사 아니니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지리산으로 향했고 막상 산에 간다고 집 나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냥 힘 닿는 대로 가다가 힘들면 그 자리에서 자리를 깔겠다고 생각없이 챙긴 짐이 너무 많았나 봅니다. 배낭 무게가 어깻죽지를 짓누르지만 한가지라도 빼서는 안되겠다 싶어 그냥 짊어지고 집을 나섭니다. 휴가철이 맞긴 맞는 모양입니다. 중산리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 행렬로 막혀 내가 탄 버스는 이길 저길 잘도 돌아 덕산 사리마을에 나만 달랑 내려놓고 사라집니다. 덕산다리 아스팔트길 한낮의 열기가 얼굴로 확 달굽니다. 신발끈 조여 매고 배낭끈 조절하고 역사적인 지리산 태극종주 고집통 홀로 산행을 시작(12:15)합니다.
시멘트길 임도를 타고 오르다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고 홀로 오르는 7월의 마지막 날 오후 더위는 온 몸을 푹 삶습니다. 시무산이라 생각되는 첫 삼각점(13:17)까지 원만한 산행에 자신감을 얻고 배낭의 가슴 끈을 조정하기 위해 왼쪽 줄을 당기고 오른쪽 줄을 당기는 순간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별일은 없었지만 이후 배낭은 왼쪽으로 쏠리면서 오른쪽 어깨에 과중한 무게가 전해져 오며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홀로 오르는 산행이 너무 힘들고 외로워 라디오를 틀어보니 남부 지방에 30도가 웃돌아 폭염주의보가 내렸으니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는 야외 활동을 금하라고 연신 방송을 해댑니다. 가다 쉬다 여러번 드디어 첫 목적지 수양산(14:40)이 나옵니다. 잠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니 감나무 농장 가운데로 길이 나오고 농장 한가운데서 몇 개의 시그널을 따라 좌측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그 길이 잘못 들어선 길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잘 한일이리라 생각됩니다. 맞은편 쪼뼛한 봉우리 벌목봉을 넘지 않고 산 허리를 타고 넘어가며 계곡의 시원한 물(15:16)을 만나 세수하고 물 뒤집어 써가며 더위를 식힐 수 있었으니까요. 온 몸에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니 하루살이등 별별 벌레들이 귓가를 앵앵거리며 맴돌다 눈이며 귓구멍으로 그냥 자살특공대마냥 그냥 추락해 옵니다. 어쩌다 잠깐 앉아 쉴라치면 모기까지 가세하여 팔뚝에 회를 칩니다. 판넘재(17:45)에 도착하니 눈에서 사라졌던 시그널들이 나타나고 얼마 전 다녀왔다던 삼성중공업 산악회 총대장이 매달아 놓은 시그널도 가끔 눈에 띕니다. 여기까지 시간을 너무 허비하면서 여유를 부렸나 봅니다. 소나무 사이로 해가 서쪽하늘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약간 바쁜 걸음을 놀려보지만 자꾸 비뚤어지는 배낭을 추슬러야 하고 오른쪽 어깨는 힘이 빠집니다. 그제서야 배낭 버클에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챘습니다. 겉으로 표시 나지 않던 버클이 완전 파손되진 않았지만 금이 생겨 배낭무게에 의해 오른쪽 끈이 느슨하게 풀려 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근담봉(18:59)에 도착하고 보니 무려 6시간 45분이나 걸리고 말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웅석봉 갈림길 정도는 도착되었어야 될 것을 너무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아주 높은 안테나가 있는 딱바실계곡 삼거리(19:02)에서의 정면 웅석능선이 까마득합니다. 순간 딱바실계곡 표시와 함께 엄청 많은 시그널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버리고 어둠은 내 곁에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 지경에서 내가 지리산 태극종주를 고집할 때가 아님을 직감하고 딱바실계곡이 얼마나 먼지 몰라도 무조건 하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내리꽂는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길입니다. 캄캄한 산 길을 무지 내려왔건만 언제나 끝이 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언젠가는 끝이 나오겠지 생각하며 하염없이 걷습니다. 터벅터벅 내려가는 내 귓전에 드디어 물소리가 들리고 정말 멋진 폭포와 함께 아담한 웅덩이(19:34)가 나타납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담이 커졌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머리에 헤드라이트만 낀 채 팬티까지 홀랑 벗고 캄캄한 웅덩이에서 알탕을 해봅니다. 옛날 나뭇꾼과 선녀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그림입니다. 선녀가 내 팬티 훔쳐갈까 걱정했습니다.
지금부터는 물과 함께 계곡 트래킹입니다. 어느 순간 길이 뚝 끊어졌다가 계곡 반대편에 희미한 길이 나타났다가 또 사라집니다. 사람의 통행이 잦지 않아 온통 거미줄이 길을 막습니다. 새로운 무명폭포(20:11) 앞에 홀로 맥주 한 깡통을 비우고 앉아 있어도 무섭다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계곡을 타고 내려갑니다. 멀리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입니다. 커다란 사방댐이 나오고 그 옆의 시멘트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묘합니다. 하얀 소복 입은 여인이 저수지에서 쑥 올라올 것 같습니다. 꽹과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각종 노래 가락이 들려옴에 저녁시간에 무속인이 굿판을 벌였구나 생각했는데 휴가철 놀러 온 행락객들이 이미 만취상태에서 차량 앰프 틀어놓고 물통, 프라이팬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캄캄한 산중에서 홀로 내려오는 나를 보고 그 사람들 적이 놀라는 눈치입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수박이랑 맥주 몇 잔을 받아 마시고 배낭에서 소주 한병을 내주고 한참을 걸어 내려가니 홍계리 동촌마을(21:15)이 나오고 멋진 평상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듭니다. 그곳에 짐을 풀고 계곡물에 다시 한번 알탕하고 브랜디만 마신다는 맞은편 집 사위들과 소고기 맛 좀보고 동촌 평상에서 조용한 밤을 보냈습니다.
일요일 일찌감치 배낭 정리하고 지리산 태극종주길을 접었습니다.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이번 산행은 실패해야만 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마눌님이 아픕니다. 체력훈련에 소홀했습니다. 출발 전날 술을 마셨습니다. 복중 중복입니다. 낮 12시 이후 출발했습니다. 짐 무게가 무거웠습니다. 장비 점검이 서툴렀습니다. 등로 파악이 미흡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리산 태극에 대한 정신상태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지리산 태극종주는 다음에 생각하고 이번 금요일 천왕봉에나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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