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21] 매봉 매직에 홀리다

산안코 2010. 9. 12. 12:08

◈ 언           제 : 2010. 9. 11(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22구간(진고개~대관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6명과 고집통
◈ 날            씨 : 9/11(장대비 후 흐림)
◈ 대간 산행시간 : 287시간 02분(22구간: 12시간 05분)
                        29일차 진고개(4:30)→대관령(16:35) 12시간 05분
 왕복거리:소황병산(7:29)→계곡 갈림길(8:52,9:39,10:22,10:57)→소황병산(12:29) 4시간
◈ 대간 산행거리 : 575.87Km (22구간: 25.8Km)
                        29일차: 35.8Km  매봉 매직거리: 약 10Km
◈ 총    산행거리 : 진고개→노인봉→소황병산→계곡갈림길→소황병산→매봉→선자령
→대관령(약 35.8Km)

 

한 사람만을 제외한 서른여섯명이 기막힌 매직쇼에 홀렸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스물한번째 백두대간 스토리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호우로 인해 설악산 전면통제가 걸렸습니다. 무박 3일의 빡신 설악산 코스에서 노인봉, 선자령,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코스로 변경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대경이는 이미 진고개에 도착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가 무서워 차에서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버틴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갈리 없기에 신발 단두리 하고 우의 뒤집어 쓰고 백두대간 스물한번째(4:30)를 시작합니다. 「그래 이정도 비 같으면 한번 걸어 볼만 하다」입니다.

  

■ 오대산 진고개 - 백두대간 스물한번째 22구간 산행 들머리

 

■ 비내리는 진고개

   

이번 대간길은 종전의 길과는 달리 초반에 치고 오르지 않고 완만한 평길이 이어집니다. 몇 일전부터 중부지방에 많은 비를 퍼부었다던데 언제쯤이면 하늘의 비가 모두 떨어져 비가 없어 질지? 금새 찹찹한 빗물이 허벅다리를 타고 내립니다. 질퍽 질퍽 진흙탕이 바짓가랑이에 칠갑을 합니다.
지리산 화개재의 계단만큼은 족히 될만한 나무계단(5:00)이 이어지고 노인봉 갈림길((6:08)이 나오고 노인봉 정상(6:05)에 올라섭니다. 정상은 안개비로 오래 머물진 못하고 다시 노인봉 갈림길을 통해 내려와 무인대피소(6:15)에 들러 잠깐의 휴식을 취해봅니다.

  

■ 오대산 노인봉 오르는 계단

 

■ 노인봉 갈림길

 

■ 오대산 노인봉 정상 (1,338m)

      

대피소 내부에는 다섯명의 건장한 아저씨들이 밤새 주무셨나 봅니다. 각종 장비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으며 라면 끓이고 있기에 등산객이냐 물어보니 바로 위 정상부근에서 공사하는 인부들이라십니다. 이 장대 우중에 산꼭대기에서 공사라니 아저씨들 팔자도 편한 팔자는 아닙니다.
소금강 방향으로 발길 떼는 내게 화장실 앞에선 만호형님이 자꾸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알고 보니 여기서부터 매봉까지 자연 휴식년제라 출입을 통제하기위해 교묘하게 화장실로 대간길을 막아 놓았습니다. 만약 혼자만의 대간 산행이었다면 알바하기 십상입니다.
완만한 경사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싶더니 순간 진행이 멈춰지고 조용히 하라는 메시지가 뒤로 전달됩니다. 혹시 있을 단속에 대비해서입니다. 앞에 철조망이 나오고 소황병산 정상(7:25)의 탐방 통제소가 나옵니다. 눈 앞에 광활한 목초지가 펼쳐졌습니다. 목초지 한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 풍향풍속계 안테나 옆을 지나고 다시 한번 출입을 금지하는 철조망을 넘습니다.

  

■ 노인봉 무인 대피소

 

■ 철조망 뛰어 넘는 일행들

 

■ 소황병산 정상 지킴터

 

■ 소황병산 지킴터를 접수한 일행들

     

그 철조망을 넘는 순간부터 무려 네시간을 매봉 매직에 우린 홀딱 홀려 버렸습니다. 잘 뚫린 길을 따라 무난하게 내려가던 중 세 갈래 길을 만나게 되고 한쪽 길은 목책으로 막혀있고 한쪽 길은 그냥 열려 있습니다. 출입통제 대간 길이라면 당연히 막았으리라 믿고 목책을 통과하여 내려갑니다. 급경사 길을 한참 동안 내려가다 약간의 평지가 있어 아침식사(8:20) 자리를 펼쳤지만 소나기성 빗방울이 아침 밥상을 편케 두지 않습니다. 항상 뒤를 지켜주는 학성이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그랬듯이 알아서 식사를 해결할 것으로 믿고 그냥 무심히 넘깁니다.

  

■ 매봉 가던중 두번째 목책 갈림길

      

아침식사가 끝난 후론 계곡물을 건널 일도 있고 작은 폭포를 보아가며 걸을 일도 생깁니다. 또 삼거리가 나오고 그곳에도 목책으로 길이 막혀 있습니다. 여전히 학성이가 보이 않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일행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목책을 사뿐이 뛰어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입을 통제하는 안내판(8:55)과 함께 또 다른 목책이 나옵니다. 이번은 목책을 넘지 않고 잠깐 망설이다 계곡 방향은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그냥 직진하기로 합니다. 약 1Km를 잘 나아가던 선두가 갑자기 알바를 선언하며 되돌아 가기를 명합니다. 어디에서 힘이 났을까요? 항상 부실체력으로 후미를 지키던 내가 어쩌다가 선두권에 들게 되었고 왔던 길로 죽기 실기로 내달렸습니다. 출입통제 안내판(9:40)을 지나고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는데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본래 가던 길이 옳은 대간길이니 다시 되돌아 가야 한답니다.
이런~. 제길~. 매회 비실거리며 뒤따르던 내가 어째서 힘이 솟아 선두에 서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본래 진행하던 방향이 매봉일수 밖에 없기에 나중 잘못되면 이 길로 탈출한다는 결론으로 다시 그 안내판(10:22) 앞을 세번째로 지나게 되었고 이번에는 약 1.5Km를 지날즈음 행방을 알 수 없었던 학성이와 전화 통화가 되고 저 혼자서 이미 선자령을 통과하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뒤따르던 학성이는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난 적이 없는데 이미 매봉을 지나 선자령이라면 틀림 없이 우리가 엉뚱한 길로 알바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더 볼 것 없이 소황병산 목초지까지 원위치 하기로 했습니다. 그 안내판(11:00)을 네번째로 쳐다보며 빡시디 빡신 소황병산(11:30)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 출입금지가 있는 안내판 - 안내판 앞을 다섯번 지나침

   
소황병산 철조망을 넘고 첫번째 삼거리에서 목책을 넘지 말았어야 했는데 거기서부터 탈이 발생 한걸 알았기에 이번에는 목책이 없는 우측길로 일사천리로 달려 내려갑니다. 아니 이거 뭐 이래? 부지런히 달려갔는데 아침에 넘었던 두번째 목책이 눈앞에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가는 지금 길과 오전 네시간 동안 왕복한 길이 같은 길이었다니 정말 기가 막힐 일입니다.
오늘 아침 일을 정리해보니 우리 서른여섯명은 넘지 말았어야 할 첫번째 목책을 넘어 가던 중 아침식사로 시간을 지체하였고 세상 모르고 뒤따르던 학성이는 아무 의심없이 앞에 일행들이 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목책이 없는 길로 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일행들보다 앞서게 되었고 가도 가도 일행들이 보이지 않으니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 전화를 걸었는데 공교롭게도 매봉을 향해 잘 가고 있을 때 통화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학성이가 참 밉습니다. 왜 하필 제대로 잘 가고 있을 때 전화질은 해가지고 이 고생을 시킨단 말입니까? 통화만 되지 않았더라면 최소 두시간은 까먹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소나기 흠씬 맞아가며 네시간 동안 헤매고 있었던 그 길이 알바길이 아닌 정상적인 대간길이었다니 오매한 힘없는 백성들은 매봉과 학성이의 합작품 매직쇼에 그냥 홀려 있었던 것입니다.

  

■ 되돌아 와 찍은 소황병산 목초지 풍향풍속계

   

결국 다섯번째로 그 안내판(12:15) 앞을 지나게 되었고 대간 길의 잊지 못할 평생 추억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이젠 머뭇거릴 이유가 없으니 잽싸게 내달려 삼양 대관령목장 젖소 방목지에 도착(12:38)하게 되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을 보노라니 도대체 자연생태 보존지역이 누굴 위해 지정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산을 깎아 목장 만들어 소 풀어놓고 등산객들을 통제한다고 자연생태가 복원될까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내 젖소 귀에 살짝 귓속말로 물어보니 소가 피식 웃고 말더이다.
목장 길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대간꾼들의 통행을 막는 철조망이 또 있습니다. 여기가 생태복원 구역의 끝인 매봉(13:34)입니다. 

  

■ 매봉 매직쇼 탈출

 

■ 매봉 목초지

 

■ 매봉 젖소 방목지 1

 

■ 매봉 젖소 방목지 2

 

■ 매봉 출입통제 철조망

     

지금부터 선자령까지는 목초지가 하염없이 펼쳐져 있는 삼양 대관령목장입니다. 임도와 목초지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다가 언덕배기를 올라서는데 갑자기 안개 속에서 귀신 같은 시커먼 물체가 눈 앞에서 얼렁거립니다. 그 유명한 선자령 풍력발전기의 팔랑개비가 돌고 있습니다. 맑은 날씨에 선자령에 오르면 그 팔랑개비들이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들었기에 그 모습 보기를 꿈꾸었는데 가던날이 장날이라 안개 자욱하여 눈에 보이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 선자령 일대에 마흔아홉 기의 풍력발전기가 줄을 섰다니 상상만으로도 그 멋진 풍광들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특히 눈 쌓인 선자령은 황홀 그 자체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 선자령 풍력발전기 팔랑개비

  

일출장관 망망대해 희망의 전망대(14:03)에 올랐건만 안개의 심술로 역시 눈에 뵈는게 없습니다. 일부 관광객들이 목장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전망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 처지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입장료만 날릴 뿐이지요.
풍차 있는 곳은 어김없이 바람의 언덕이 있습니다. 그 바람의 언덕 끝에서 좌회전하여 넓은 임도를 타고 지루하게 걷습니다. 길 옆 바위 몇 개가 어우러진 곤신봉 (14:40)을 스쳐 지나갑니다. 두타산, 청옥산 가신 재택이 형님이 안부를 물어오십니다. 우리가 오늘 고생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가 봅니다. 힘들지만 열심히 걷고 있노라고 말씀 드리고 또 걸었습니다.

  

■ 일출장관의 선자령 정망대의 행복한 고집통

 

■ 선자령 전망대 앞의 표지 안내석 - 운무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음

 

■ 선자령 정상의 풍력발전기 - 선자령에 49기가 있다고 함

 

■ 선자령 목초지 임도를 따라가다 만난 곤신봉

      

보현사갈림길이 있는 나즈목이(15:00)도 지나고 오르막길 임도 치고는 제법 힘든 길을 오르다 보니 선자령 가는 등산길이 좌측에 보입니다. 임도를 따라가도 대관령에 갈수 있고 선자령에 올랐다 가도 대관령과 연결되니 대간길 가면서 선자령에 발길 주지 않고 갔다 왔노라 말할 수 없으니 300m를 단숨에 내달려 선자령(15:20)에 올라섰습니다. 일행들은 임도를 택했기에 나 홀로 산능선을 따라 정말 열심히 걸었습니다. 새봉 우회로를 지날 즈음에는 몇 명의 일행들이 나를 추월해갑니다. 그 양반들은 도대체 지치지를 않는 불도저인 모양입니다.
얼마 후 시멘트 포장도로에 올라서고 거대한 통신중계소(16:10) 옆을 지나면서는 흐르는 빗물에 흙 칠갑된  바짓가이도 씻어가며 여유도 부려봅니다. 

  

■ 선자령 정상의 고집통

 

■ 대관령 인접 통신 중계소

     

21번째 대간길의 마지막을 알리는 대관령 표지석(16:35)이 있고 옛날 영동고속도로에는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간간히 통행하는 차량들이 보입니다. 대관령 휴게소의 대경이가 무척 반갑고 그 속에 요술부린 학성이 팔자 편하게 잠자고 있습니다. 

  

■ 대관령 - 백두대간 스물한번째 22구간 산행 날머리

 

■ 대관령 휴게소

     

학성이가 귀가 많이 아팠나 봅니다. 식사 때 뒤풀이 막걸리는 학성이가 계산했다나 어쨌다나요.  그랬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