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지리산 화대종주

[지리산 화대종주] 멋진 산님들과 함께한 지리산종주

산안코 2011. 2. 3. 01:17

□ 언         제 : 2011. 1. 30 ~ 2. 01 (2박 3일)
□ 어   디   를 :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유평마을)
□ 누         가 : 노고단대피소에서 만난 산님 5명과 고집통
□ 날         씨 : 맑음
□ 산행   여정 : 거제→통영→순천→구례→화엄사주차장→노고단대피소→세석대피소
→천왕봉→유평마을→대원사주차장→진주→거제
□ 산행   시간 : 1일차 화엄사주차장(12:08)→노고단대피소(15:18) 3시간 10분
                     2일차 노고단대피소(6:26)→세석대피소(17:36) 11시간 10분
                     3일차 세석대피소(7:47)→유평마을(17:00) 9시간 13분
□ 산행   거리 : 화엄사주차장→노고단대피소→세석→천왕봉→유평마을(약 43.7Km)
  

◐ 겨울 지리산 화대종주 중 천왕봉에서 고집통

  
신묘년 설 연휴가 결정되었습니다. 연차 하루 포함하니 설전 휴일이 5일이나 됩니다. 딱히 노는 법을 못 배웠기에 이번에도 가고 싶은 겨울 지리산 화대종주길 나서기로 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아무리 빨리 집을 나서도 12시가 되어서야 화엄사주차장에 내려서게 되고 구례에서 같은 차에 올랐던 산님 한분은 곧 바로 화엄사 방향으로 사라지고 식당할머니의 애절한 손짓에 이끌려 홀로 인근 식당에 들러 배를 채웁니다.

  

◐ 화엄사 골짜기 입구 - 문화재 관람료 3,500원 받는 곳

   
문화재 관람료 3,500원은 절 앞에서나 받든지 왜 지리산 입구를 털어 막아놓고 꼬빡꼬빡 챙기는지? 도대체 무슨 문화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강탈 당해 기분 잡칩니다. 지나가다 힐끔 쳐다본 화엄사(12:32) 문짝이 그렇게 비싼 문화재인가 봅니다. 시간만 나면 크고 작은 사찰 법당에 들락거리는 편이지만 지난 연말 세금폭탄 맞은 이후부터는 절 일이라면 작은 것에도 자꾸 심기가  빼빼 꼬입니다.

  

◐ 화엄사 문짝 - 이것이 문화재라면 어쩔 수 없지요. 안 보고 지날 수는 없으니까

 

◐ 무넹기 고개에서 본 노고단

   
참샘(13:16) 근처에서는 화엄사주차장에서 먼저 출발한 산님을 따라잡게 되고 또 다른 산님 두 분이 나를 추월하고 잠시 휴식을 하며 막걸리 한잔을 권합니다. 오늘 연하천까지 간다며 노고단까지 간다는 내게 동행하자 합니다. 여기서부터 지리산 종주길 나선 네 사람이 마음이 맞았습니다.  언제나처럼 화엄사골짜기의 코재까지는 숨이 깔딱 넘어가며 온몸에 땀 범벅이 되고 곧바로 올라선 무넹기고개(15:02)는 오늘 맛보지 못한 칼바람에 몸이 오싹해집니다. 순간 연하천은 무리이며 오늘은 무조건 노고단대피소에서 머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참 잘한 결정이었으며 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는 빠른 판단이 최선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 눈 쌓인 노고단대피소

   
노고단대피소(15:17) 취사실에 잘 익은 삼겹살과 만인의 친구 이슬이 앞에는 네 사람 외에 또 한 사람이 합류 했습니다. 김밥 다섯줄로 지리산 종주를 계획한 우리의 젊은 형국씨가 있었습니다. 혈기 무지 넘치는 너무 멋있는 총각입니다. 그리고 내일 반야봉을 거쳐 뱀사골로 하산 하신다는 충남의 모 고등학교 선생님 세 분도 함께 합류합니다. 그를듯하게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대피소로 자리를 옮겨 약간의 알코올을 추가하면서 예쁜 삼천포 아가씨 한 분도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그 아가씨 포함 합 여섯 명은 무조건 천왕봉을 향해 출발하기로 다짐하고 지리산의 첫날밤을 노고단에서 그렇게 보냈습니다.

  

◐ 노고단대피소에서 본 석양

   
새벽공기 무지 차갑습니다. 여섯 명 모두 노고단대피소(6:26)에서의 출발준비는 되었습니다만 삼천포 아가씨 선임씨가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엉겁결에 약속은 했지만 과연 같이 행동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기에 은근이 포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종주길의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노고단을 넘었을 때는 우리의 선임씨도 같이 있었습니다. 마음씨 그만인 오 선생님의 화려한 달변으로 합류시킨 공을 알 것 같습니다.
돼지평전(7:32)에서의 일출도 천왕봉, 촛대봉 일출 못지않게 멋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난 정말 복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지리산은 내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그 화려한 일출을 아낌없이 선사합니다. 너무 멋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리산을 오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 돼지평전에서 본 일출 Ⅰ

 

◐ 돼지평전에서 본 일출 Ⅱ

   
우리들보다 앞서 지나간 산님들이 있었으나 새벽바람이 눈을 날려 발자국이 사라져버려 길 찾기가 장난이 아니며 잘못 발을 디딜 경우 허벅지까지 푹푹 빠집니다. 선비샘(8:10) 물은 꽁꽁 얼어붙었으며 노루목삼거리(8:48)에서 반야봉 오르는 길은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습니다.

  

◐ 노루목 삼거리에서 본 노고단 방향 지리 주능선

  
삼도봉(9:10)에 올라 불무장등과 왕시루봉 능선 경치를 둘러보며 한 바퀴 휘돌아 보고 있노라니 지리산 산신령님 내 까만 모자가 탐이 나셨나 봅니다. 거머쥘 틈을 주지 않고 바람이 순식간에 가져가 버렸습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9:32) 내려가는 551계단은 쌓인 눈으로 인하여 엄청 미끄러우며 위험하기에 조심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눈 쌓인 551계단

 

◐ 눈 덮인 화개재

 

◐ 지난여름 1박한 화개재 나무 데크

  
토끼봉(10:25)의 눈꽃이 정말 멋지게 피었습니다. 어제 연하천을 목적지로하고 계속 진행하였다면 아마도 우린 무슨 큰일을 당했을 거라 생각이 들 정도의 멀고도 먼 길입니다. 새삼 다시 겨울산행의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애초 벽소령대피소에서 점심식사를 계획하였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연하천대피소(11:55)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으레 신용운 총각이 우리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2주전 지리 종주길 나섰다가 벽소령으로 탈출하고 억울해서 다시 도전한다는 의지가 강하면서 깔끔한 살짝 나이가 있는 총각입니다. 덕분에 산행 마무리까지 손에 물 묻히지 않고 매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 토끼봉의 눈꽃 Ⅰ

 

◐ 토끼봉의 눈꽃 Ⅱ

 

◐ 토끼봉의 눈꽃 Ⅲ

 

◐ 토끼봉의 눈꽃 Ⅳ

 

◐ 연하천대피소 겨울 전경

    

눈 앞에 있어 손에 잡힐 듯한 벽소령대피소(14:40)에 도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평소 오후 2시 30분 이후에는 산행을 통제한다는 국립공원직원이 잠깐 숨을 돌리고 빨리 출발하랍니다.  덕평봉 오르는 오름길은 정말 힘듭니다. 선비샘(15:50) 역시 꽁꽁 얼어붙어 한 방울의 물도 주지 않습니다. 영신봉에 올라서니 촛대봉 아래 하얀 세석평전과 세석대피소(17:36)가 눈앞에 있고 때맞추어 뉘엿뉘엿 해가 서편으로 넘어갑니다. 오늘 함께한 여섯 명의 마음이 척척 잘도 맞습니다.  오 선생님과 용운이 총각은 음식 만들어 내는데 귀재입니다. 한정된 재료임에 불구하고 순간순간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게 나옵니다. 전날 아껴 두었던 참이슬과 오리고기가 하루의 피로를 해소해줍니다.

  

◐ 꽁꽁 얼어붙은 선비샘

 

◐ 명신봉 넘어서며 촛대봉과 세석평전

   
약간 늦은 아침식사(7:47)를 먹고 출발하는 오늘도 날씨는 여느 때와 같이 좋습니다. 촛대봉 오르기까지는 몰랐습니다. 젊은 형국이 총각 걸음걸이가 이상해졌습니다. 내리막길이면 왼쪽 무릎이 아파온답니다. 속도가 약간 늦어지기 시작합니다.

  

◐ 연하봉 근처에서 반야봉을 뒤로하고 고집통

 

◐ 연하봉의 그때 그 고사목

     
장터목대피소(9:20)에서는 압박붕대로 약간의 응급조치를 하고 천왕봉으로 출발합니다. 제석봉 오르는 길은 완전 급경사 길이기에 밧줄을 잡지 않고는 도무지 못 오르는 미끄러운 길입니다. 내가 앞서 천왕봉(10:35)에 올랐습니다. 지리산을 수태 올랐지만 오늘 같은 날은 처음입니다. 남녘 땅 최고봉 지리산 정상에 나 홀로 있었습니다. 천왕봉 정상석이 내 차지가 되었기에 셀카 찍고 별짓을 다 해봤습니다. 마눌님에게 사진 찍어 문자도 날렸습니다.

  

◐ 제석봉 고사목 Ⅰ

 

◐ 제석봉 고사목 Ⅱ

 

◐ 천왕봉 설경 Ⅰ

 

◐ 천왕봉 설경 Ⅱ

 

◐ 천왕봉 설경 Ⅲ

 

◐ 천왕봉에서 본 중산리

  
모두 함께였으면 좋으련만 형국이 총각의 무릎이 염려되어 마음은 아프지만 부득이 중산리로 혼자 내려 보내야 했습니다. 김밥 다섯줄로 지리산 종주길 나선 혈기 왕성한 형국이 총각은 힘들었지만 나름 지리 주능선 종주를 성공적으로 해내었고 이번 산행을 계기로 겨울 산의 준비 안 된 도전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란 것을 실감하였으며 산에 대한 겸손함도 가져야 함을 깨달았다 합니다.

  

◐ 천왕봉의 삼천포 선임이 아가씨

 

◐ 천왕봉의 오경서 선생님

 

◐ 천왕봉의 김석호 선생님

 

◐ 천왕봉의 형국이 총각

 

◐ 천왕봉의 신용운이 총각

   
천왕봉에서 중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사람들의 통행이 없어 쌓인 눈으로 아이젠 착용과 관계없이 쭉쭉 미끄러져 흘러 내려갑니다. 자칫 잘못하면 길을 이탈하여 곤두박질칠 수 있어 각고의 조심을 요합니다. 중봉(11:35)에서부터 장황하게 펼쳐진 태극종주길의 동부능선과 남녘땅 최고봉 천황봉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코스로써 지리산 최상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 번의 엉덩방아 찧기와 미끄럼타기에 힘입어 써리봉(12:15)에는 순식간에 도착이 됩니다. 써리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과 중봉의 뒤태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나중에 날 풀리고 눈 녹은 후 거꾸로 다시 한 번 올라야겠습니다.

  

◐ 천왕봉에서 본 중봉

 

◐ 중봉의 설경 Ⅰ

 

◐ 중봉의 설경 Ⅱ

 

◐ 중봉에서 본 천왕봉

 

◐ 써리봉에서 본 경치

 

◐ 써리봉에서 본 천왕봉

   
내려가는 길에는 지난밤 치밭목대피소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며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로 하산하겠다는 산님 한분 달랑 만났을 뿐 아무도 이 길을 오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째 우리 발걸음이 빨랐는지 치밭목대피소(13:02)에서 우리보다 앞서 내려가는 산님 세분을 따라 잡았습니다. 대피소 지기는 이전의 젊은 친구가 아닌 연세 지긋하신 두 분으로 바뀌었고 강아지 보리는 사람이 많이 그리웠는지 날 보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다가옵니다. 치밭목대피소에서 끓이는 라면은 그 어느 곳보다 한 맛을 더합니다.

  

◐ 치밭목대피소 전경

 

◐ 치밭목대피소 아래 샘터

   
종주길의 유일무이한 무재치기폭포(14:30)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어있습니다. 지난주의 유암폭포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가까이 접근하니 얼음 속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올겨울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긴 추위에도 오는 계절은 버티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니라 해도 이미 봄은 우리 곁을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얼어붙은 무재치기 폭포

    
대원사 계곡 정말 멉니다. 작은 능성이를 오르내리길 여러 번, 엄청 긴 계단 길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선임이 아가씨의 오른쪽 무릎도 형국이 총각의 무릎과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마음씨 넉넉한 김 선생님이 선임이 아가씨를 에스코트 하신다기에 오 선생님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 결국 유평리(17:00) 앞 도로까지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배낭을 내리고 계곡의 얼음을 깨고 물속으로 발을 담가봅니다. 뼛속 깊숙이까지 파고드는 짜릿한 저려옴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단 10초의 냉찜질 한방에 사흘 동안 쌓였던 발의 피로가 말끔히 날아갑니다.
봄의 전령사 버들강아지가 벌써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저 할일 다하는 그 버들강아지가 참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봄이 아니고 봄이 올 것이라는 예고편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됩니다.

  

◐ 유평마을 경치

 

◐ 봄소식 - 버들강아지 싹 틔움

  
김 선생님은 이미 내려오셨는데도 선임이 아가씨가 내려오 않습니다.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날씨는 점점 추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대원사 골짜기에 혼자 있게 되기에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어두워질 것에 대비하여 헤드랜턴을 준비하고 다시 계곡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선임이 아가씨 엄청 반가웠습니다. 노고단 눈 구경 왔다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화대종주를 얼떨결에 해버린 대단한 대한민국 낭자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 하나를 삼천포로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유평리 이장님과의 잘된 협상으로 대원사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하고 인근 식당에서 더덕막걸리와 파전을 식탁 위에 올렸지만 갑자기 진주에서 통영 가는 막차가 궁금했습니다. 진주시외버스 주차장 ARS는 사람 복창을 뒤집어 놓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 놈의 못돼먹은 여자는 내 심정과는 무관하게 통화료를 올리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씨부렁거립니다. 7시 10분이면 막차라고 합니다.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오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단숨에 막걸리 네 잔을 들이켜고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6시 30분 버스를 타기 위해 대원사주차장으로 마구 달렸습니다. 그래 봤자 통영 가는 버스는 못 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진주까지는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중산리로 하산한 형국이 총각이 생각나 전화해보니 진주 시외버스주차장에 있으며 내가 진주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겠답니다. 아무래도 ARS가 미심쩍어 통영행 버스를 알아보라니까 고맙게도 8시 15분에 장승포까지 가는 막차가 있다고 알려옵니다. 형국이 총각이랑 주차장 인근 국밥집에서 소주 한 병을 비웠습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서니 예쁜 내 딸내미와 마눌님이 반겨줍니다. 집 나설 때는 아들래미가 배웅했는데 참 집이 좋습니다. 내일은 시골로 설 명절 보내러 가야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설 명절 전 장기간 휴가를 받아 지리산 화대종주를 나섰고 멋진 산님들을 만나 안전하고 무사하게 산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했던 귀하고 멋진 다섯 산님들과 다시 한 번 산행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