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2. 10. 19 ~ 21 (2박 3일)
■ 어 디 를 : 지리산 화대종주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아주 맑음
■ 산행 여정 : 거제→통영→진주→하동→화엄사→노고단→연하천대피소(1박)→
벽소령→세석→장터목대피소(2박)→천왕봉→치밭목→새재마을→대원사→진주→거제
■ 산행 시간 : 21시간 54분
1일차 화엄사주차장(10:25)→연하천대피소(17:52) 7시간 27분
2일차 연하천대피소(7:30)→장터목대피소(16:03) 7시간 33분
3일차 장터목대피소(4:49)→대원사주차장(12:45) 6시간 54분
■ 산행 거리 : 약 49.3 Km
1일차 화엄사주차장→노고단→연하천대피소 (17.5 Km)
2일차 연하천대피소→벽소령→세석→장터목대피소 (13.3 Km)
3일차 장터목대피소→천왕봉→치밭목→새재→대원사주차장 (18.5 Km)
혜민스님께서 마음이 머문 곳에 세상이 있다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곳, 맑은 곳, 더러운 곳. 마음 두는 일은 자신만의 일이고 어떤 세상을 만나느냐는 것 또한 마음 둔 데로 따라가니 세상 속의 마음 이 아닌 마음속의 세상을 살라 하시니 나 고집통은 도대체 무슨 소린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아닌 척 모르는 척 마음을 지리에 슬쩍 올렸습니다. 아~하! 마음 가는데 몸이 있었습니다. 로또 5등 당첨 조차도 하늘의 별 따기인 내게 하나님께서 손가락에만 천운을 걸어 주신 모양입니다. 그렇게 어렵다는 연하천과 장터목 대피소 예약이 이틀 연속으로 단박에 성사 시킵니다.
허구한날 산 찾아 집을 나서는 서방님이 미워서 속에 천불이 날 법도 하지만 그래도 건강 상할까 염려하며 돼지 족발 챙겨주는 마눌님이 가슴 시리도록 고맙습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하루만이 라도 내 마눌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 달래는 소박한 부탁이 따르긴 하지만 내겐 아주 쉬운 일 입니다.
얼굴 예쁜 아가씨가 많이도 고팠나 봅니다. 버스가 화엄사 주차장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맛나게 빨아 땡깁니다. 시선이라야 달랑 나 혼자 뿐이니 무시해 버린 것 같습니다.
안 줄 것도 아니지만 그 놈의 문화재 관람료 3,500원을 두고 궁지렁 거려봅니다. 그렇다고 아주머니 인상으로 봐서 안 받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통행료를 지불하고 마음이 약간 상해버려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을 화엄사 경내에 발을 살짝 넣었다 빼는 소심한 돈 값을 했습니다.
화엄사 계곡은 가을일 것이리라 믿었는데 아직까지 녹음이 짙은 여름입니다. 7부 능선 지나고부터 단풍잎 색깔에 약간의 변화를 보이더니 불과 100m를 지나지 않았는데 나뭇가지 앙상한 겨울로 변해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3계절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벌컥벌컥 찬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가 봅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여유롭게 가을을 즐기시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세 분이 구운 계란, 커피, 단감 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주십니다. 결코 마다할 고집통이 아닙니다. 지금에서야 잘 먹었노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노루목 삼거리까지는 간간히 반야봉을 다녀오는 산님들이 보였으나 이후로는 살아서 움직이는 그 무엇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해 넘어가기 전까지 연하천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을 염려하니 발걸음이 빨라 지고 자연스럽게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호흡이 가빠집니다. 최근 산행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한번도 쉬지 않고 토끼봉 정도는 넘을 수 있을 체력이 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많이 멀었습니다. 내 욕심이 과했습니다.
반야의 두 봉우리 사이로 해가 넘어갑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가던 발걸음 멈추고 퍼질러 앉아서 태양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넋 놓고 구경하고 있습니다. 삐리릭~~~~. 휴대폰에 문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확인하니 공단 직원이 연하천대피소 도착시간을 물어 옵니다. 다행이 어둠이 다 밀려오기 전에 대피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구례 행 시외버스에서 얼굴 익히고 성삼재로 가신 두 분의 회사 직원과 다시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박인홍, 임종승님이며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의 지리주능선 종주를 계획 하였으며 장터목대피소까지 즐거운 동행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연하천에는 소주와 삼겹살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마눌님 정성 담긴 족발은 그냥 살살 녹습니다. 고마워요 내 마눌님.
멀리 천왕봉에서 해가 오릅니다. 그렇게 지리산을 들락거려도 연하천에서의 일출은 처음 맞이 합니다. 그렇게 웅장하진 않지만 나름 맛깔스런 일출입니다.
경주에서 오신 조석보님과 걸음을 맞췄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약간 어려워 하셨지만 같이 이동하는 데는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장거리 산행에서는 홀로 아리랑 보다는 누군가와 발을 맞추고 말을 섞어 가며 걷는 일이 최고의 산 벗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맛있는 라면은 뭐니뭐니해도 지리산 산행 중 대피소에서 먹는 맛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세석대피소 에서 라면을 끓였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 대피소 취사실에 잘 모셔놓은 내 앞발인 스틱이 사라졌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큰일입니다.
도둑보다 도둑 맞은 놈이 죄인이라고 했는데 부끄럽게도 대피소의 LEKI 스틱이 전부 내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틱이 아직 대피소를 떠나지 않고 주위에서 맴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나이께나 드신 영감님이 자기 것을 어디에 둔지 몰라 비슷하게 생긴 스틱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별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으로 보아 나도 저렇게 늙어질까 걱정입니다.
어제 약간 빡시게 해 놓았으니 오늘 목적지 장터목까지는 여유로운 걸음이 됩니다. 반야봉으로 넘어 가는 해님 모습은 오늘도 가슴이 설레게 합니다. 바람이 일어 다소 불편함이 있어도 장터목 마당에 자리를 펴고 보니 졸지에 여섯 명이라는 대식구의 만찬장이 되었습니다. 이번 종주길에는 인홍, 종승 님과 줄곧 함께 하면서 도움을 받아 산 친구를 참말로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술잔을 권커니 자커니. 그러다 주위는 어두워졌습니다.
캄캄한 제석봉 전망대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으려니 헛구역질이 올라옵니다. 아무래도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한달음에 고바위를 쳐낸 것이 화근인 것 같습니다.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보니 안정 이 찾아옵니다. 해맞이 장소로는 인산인해 북새통인 천왕봉을 뒤로하고 중봉으로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간만의 중봉 해맞이입니다. 주능선상의 해맞이 명소는 천왕봉과 촛대봉 그리고 중봉, 연하천, 돼지령등 많이 있습니다만 어디에서 일출을 맞이하든 나름의 느낌이 다르며 언제나 가슴이 벅찹니다. 좋긴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그런 것이라 보면 되겠고 사진으로 담아 보아도 그 또한 눈으로 보는 것과는 천양지차이기에 무조건 지리산에 올라 직접 보는 것이 해답입니다. 그렇게 혼자 30여분을 일출 속에 고집통은 빠져 놀았습니다.
꿈속에서라도 가고 싶은 동부능선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언제 동부 능선 가기를 마음먹게 될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서두에 혜민스님께서 마음 가는 곳에 세상 있고 그 속에 내가 있다 하셨는데 동부능선에 마음 주는 때가 내년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재치기폭포 위 바위에 올라 대원사계곡을 내려다 봅니다. 정말이지 아름답기가 그지없습니다. 막 폭포로 떨어 질려는 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발목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차가움을 느낍니다. 사흘 동안 씻지 못한 얼굴을 깔끔하게 씻고 또 한참을 신선놀이에 빠졌습니다.
꺄~~~~~~악! 내 입에서 틔어 나온 소리입니다. 무의식 중에 사람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새재 삼거리 주변의 숨이 멎을듯한 단풍들 때문입니다. 조금 전 폭포 주변 만 했어도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로만 남아 있었는데 이 곳은 별천지입니다.
단풍놀이 나오신 분들이 계곡에 앉아 「참이슬」에 빠져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 한마디에 한 잔하고 가라십니다. 스트레이트 깡 소주 세 잔에 다리가 풀렸습니다. 첫 화대종주 때 발톱 2개가 빠져버렸던 고통스런 그 콘크리트 내리막길이 너무 싫어 새재마을로는 다시는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 했건만 또 내가 그 길을 밟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고집통입니다.
대원사 대웅전에는 스님들께서 어떤 영가를 극락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법당 한쪽 귀퉁이에서 내 모든 일에 감사 드리며 부처님께 무릎을 세 번 꿇었습니다. 그냥 편안합니다.
대원사에 도착했다고 화대종주가 끝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원사 주차장까지의 거리도 만만찮습니 다. 등 짝에 번호판 매단 사람이 기우뚱거리며 스쳐서 달려갑니다. 내가 2박 3일을 죽으라고 걸어온 이 길을 어떤 몹쓸 단체에서 마라톤 경기를 열어 10시간 만에 들어왔답니다. 지리산 화대종주에 대한 환상이 확 날아갑니다.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에서 누구 마음대로 이런 행사를 한답니까? 나 처럼 뜻뜻하게 문화재 관람료를 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단직원들은 차곡차곡 들어오는 순서대로 10만 원짜리 고지서 한 장씩 날려야 되는데 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내가 이런 마음 가지면 안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리에 들어 지혜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듬고 살았는데 내려 오자마자 이러면 도로아미타불 됩니다. 혜민 스님께서 뭘 자꾸 내려 놓으시라 합니다. 짊어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전부 내려 놓아라 하심은 항차 날더러 어찌 살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세상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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