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1. 8. 04 ~ 8. 06 (2박 3일)
□ 어 디 를 : 지리산 화대역종주(대원사→화엄사)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1,2 일차–맑음, 3일차–비온 후 갬
□ 산행 여정 : 거제→통영→진주→대원사주차장→새재마을→천왕봉→반야봉→
화엄사주차장→구례→순천→통영→거제
□ 산행 시간 : 25시간 30분
1일차 대원사 주차장(9:40)→장터목대피소(18:15) 8시간 35분
2일차 장터목대피소(4:00)→노고단대피소(18:15) 14시간 15분
3일차 노고단대피소(6:50)→화엄사 주차장(9:30) 2시간 40분
□ 산행 거리 : 약 52.5Km
1일차 대원사주차장→대원사→새재마을→천왕봉→장터목대피소(17.7Km)
2일차 장터목대피소→선비샘→삼도봉→반야봉→노고단대피소(25.8Km)
3일차 노고단대피소→화엄사→화엄사주차장(9.0Km)
초(秒)와의 전쟁에 도전하였습니다. 여름 휴가중 지리산 장터목대피소 예약입니다. 영광스럽게도10시 00분 08초에 예약자 명단에 고집통 이름을 올렸습니다. 과히 천운이 내게 내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평소와 달리 지리산 화대종주를 거꾸로 종주하기 위해 대원사행 버스(8:35)에 타려고 일찌감치 진주 버스터미널에 고집통이 도착해있습니다. 행색이 나랑 비슷한 차림의 산님 한분이 터미널에 있어 커피 한잔으로 말을 붙여보니 순천 사는 신방식님이며 오늘 일정이 공교롭게도 나랑 일치합니다. 버스 내부가 할머니들로 시끌벅적한 것으로 보아 산청 덕산에 5일장이 서는 날인 모양입니다. 정겨운 시골의 모습입니다.
대원사 주차장에서는 몇몇의 젊은이들은 근처 계곡을 향해 달리고 달랑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다지 바빠야 할 이유도 없지만 대원사(10:07)까지 숨 가쁜 걸음으로 올라갑니다. 유평마을 이장님 댁에서 동동주로 목만 축이기로 하였으나 욕심에 금방 배가 쑥 불러옵니다. 유평 삼거리(10:40)에서 신방식님은 장터목 대피소에서 만나자는 인사말을 남기고 천왕봉을 향해 계곡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고집통 홀로 외로이 땡볕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시멘트길 따라 새재마을을 오릅니다. 전신에 땀범벅이 되고서야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윗새재마을(11:33)에 도착하고 시원한 계곡물에 세수를 해봅니다.
계곡의 다리를 하나 건넙니다. 그리 오래 걷지 않았는데 부산에서 오셨다는 산님들이 식육식당을 통째로 배낭에 짊어지고 와서는 삼겹살에 소주 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면 참새가 아니고 독수리일겁니다. 이렇게 찌는 듯한 더위에 약간의 겸손을 가져도 무방하거늘 후일을 생각지 않고 나는 참새가 되어 어느새 손에 소주잔이 잡혀 있습니다.
소주 열기로 뿜어져 나오는 땀 냄새가 모기의 신경을 자극시켰나 봅니다. 더위에 지쳐 잠깐 앉아 쉴라치면 그놈의 독하디 독한 대밭 모기가 웬 횡재냐며 집중공략을 합니다. 할머니 한분이 길 가다가 넘어 지셨다며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낭패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같이 움직일 형편이 못되어 조심해서 올라오시라 인사하고 새재삼거리(13:23)에 도착하니 순천 신방식님이 지나갔노라고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쏟아지는 무재치기폭포수에 몸을 던지고 싶으나 그런 여유를 보이기는 시간적으로 너무 이른 것 같아 간단하게 세수만하고 치밭목대피소로 향했습니다. 치밭목대피소(14:42)에는 조금 전 할머니와 일행인 손자 2명이 대피소예약을 위해 먼저 도착해있어 할머니 근황을 설명해주니 모시러 내려가겠답니다. 써리봉(16:09) 오르는 길, 중봉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파릅니다. 2년 전 화대역종주할 때 다시는 이 길로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거늘 오늘 또 후회해가며 이 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머리가 나쁜 것인지 아니면 나쁜 척 하는 건지 내 자신을 나도 모르겠습니다. 저만치가 하봉, 저쯤이 청이당, 저긴 왕등재일 것이라고 비록 내발로 가보지 않았지만 동부 능선이 머리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지금 저 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데 써리봉 능선을 걷는 내 자신이 뭔가 잘못되어 크게 차질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중봉(17:05)엔 잠자리 천국입니다. 밟혀 죽는 잠자리가 부지기수라 발자국을 띄기가 겁날 정도입니다. 도망 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중봉에서 천왕봉 가는 길목은 천상화원이 펼쳐져 눈과 발을 잡아끌어 당깁니다. 황홀경에 빠져있는 내게 중봉 까마귀가 스산한 울음소리로 갈길 빨리 가라합니다. 잔뜩 찌푸린 천왕봉(17:37)의 하늘이 열리길 고대하며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산님들이 있어 나도 기다려 볼까 생각했지만 장터목대피소 입실시간이 임박하여 바로 내려가기로 하였습니다.
장터목대피소(18:16)에는 한 시간도 더 전에 도착했다는 신방식님은 어느덧 취기가 있어 기분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20년 만에 지리산을 찾았다는 대전 산님, 화성에서 왔다는 젊은 총각 산님 2명과 함께 소주병 앞에 놓고 지리산 이야기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으레 대피소 안은 새벽 4시면 천왕봉일출을 보겠다고 부산을 떨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신방식님과 함께 촛대봉 일출을 생각하며 세석대피소로 안개 자욱한 길을 따라 새벽 발걸음을 재촉 하였습니다. 안개구름은 바람에 춤만 출 뿐 오늘도 쉽게 하늘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한두 번 보는 지리산 일출이 아니니 그냥 포기하고 세석대피소(5:45)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기로 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지리 주능선을 타고 갑니다. 칠선봉 아래 나무계단에서 오르는 길이 죽기로 힘겹지만 지리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젖어 힘을 얻어 산행한다는 두 부자를 만났는데 이 말은 순전히 그 집 아버지의 생각입니다. 따라 온 아들의 인상은 보기에 그렇게 씌어 있지 않습니다. 엄청 많은 산님들이 몰려오니 인사하기에 바쁩니다. 힘들지만 마주 오는 사람이 있어 반갑다는 산님들도 있습니다만 아마도 오늘은 나와 신방식님 둘 밖에 보지 못했을 겁니다.
선비샘(8:38)에서 염치불구하고 웃통을 벗고 수건으로 땀을 닦았습니다. 덕평봉 올라오는 길은 그다지 경사는 없지만 그 거리가 멀어 많은 산님들이 고통스러워하는데 지금 나는 내려가고 있어 한결 여유롭습니다. 전날 새벽 2시에 지리산 태극종주길 나섰다가 흥부골과 구인월마을 들머리를 몰라 한참 헤매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셨다는 대단한 산님 한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천왕봉을 넘어 10Km를 더 지나가시겠다니 그 체력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무 불상사 없이 꼭 완주하시길 기원 드렸습니다.
벽소령대피소(9:50)에서는 약간의 간식과 커피한잔으로 허기를 채우고 곧바로 출발합니다. 대성골이 잘 조망되는 전망바위에서 3대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는 일가족을 만났습니다. 얼핏 보아 60대 할아버지 노부부, 30대 아들 부부, 10대 손자손녀가 움직이는 일가족들의 지리산 행차가 여유롭고 보기 좋아 한참을 이야기하며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형제봉(10:50)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멋진 소나무를 감상하고 멀리 천왕봉과 벽소령을 조망하는 여유도 부렸습니다. 연하천대피소(11:45)에서는 간단하게 누룽지로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
총각샘 위치가 궁금했는데 이번에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토끼봉과 삼도봉 오르는 551계단을 단숨에 해치우기로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가능했습니다. 반야봉 옆구리에 묘향대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언젠가 저기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내가가면 스님이 받아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대로 노고단으로 직행한다면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 반야봉(15:40) 정상을 찍기로 하고 반야봉도 단방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물론 반야봉도 되긴 됩니다만 너무 힘들기에 앞으로는 이런 무리한 산행은 지양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노루목삼거리 근처에 배낭을 두고 갔다 오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산님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부질없는 걱정입니다. 노루목 근처라면 자기 배낭도 책임지기 벅찬 거리인데 남의 배낭 신경 쓸 산님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에 다니는 산님들은 모두가 선량한 백성들입니다.
임걸령 샘물(16:10)은 지리산 중에서도 최고로 알아주는 물입니다. 그냥 웃통 벗어 재끼고 물 뒤집어쓰고 발 담갔습니다. 손이 너무 시려 손수건을 헹구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이제 막바지 산행이라 마음이 풀려서인지 돼지령 올라가는 길도 힘듭니다. 멀리 노고단의 돌탑이 보이고 노고단 구경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습니다. 오늘의 기나긴 여정이 노고단대피소(18:15) 쉼터에 배낭을 내림으로써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황태 미역국 맛이 일품으로 끓었는데 소주가 없습니다. 애태우는 우리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마음씨 좋은 옆집 사모님이 소주를 반병이나 선뜻 내어줍니다.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소나기를 확 뿌립니다.
요즘 지리산에 큰 이슈꺼리가 생겨있습니다.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 케이블카를 무려 네 곳이나 설치하겠다고 야단들입니다. 아주 지리산을 조져 버리려고 작정들을 했나봅니다. 환경을 지키는 일부 시민단체와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캠페인과 함께 이곳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루 저녁 머무는 우리들 대상으로 떨어지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촐한 행사를 합니다. 내 마음도 저분들과 같지만 저 정도의 행사로는 거대한 지방자치단체를 이겨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노고단대피소의 아침에는 비가 제법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을 끓이고 라면을 집어넣는데 공교롭게도 가스불이 꺼져 버립니다. 그냥 먹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다 옆집에 놀고 있는 버너를 잠깐 빌려 그런대로 구색을 맞추었습니다.
신방식님은 새벽에 바래봉으로 가셨고 우의 뒤집어쓰고 홀로 노고단대피소(6:50)를 출발합니다. 무넹기 고개에서 새벽 3시에 화엄사를 출발했다는 한 무리의 산님들을 만납니다. 나도 보통 이 길을 올라왔었는데 내려가는 길이 장난은 아닙니다. 코재 아래로의 경사 정도가 써리봉에서 중봉 올라가는 길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나야 뭐 내려가니 룰루랄라지만 올라오는 산님들이 애처로워 보입니다.
참샘(8:40) 근처에서 계곡으로 무조건 들어갔습니다. 그냥 팬티까지 훌러덩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보통 알탕이라고 하는 놈입니다. 경상도 말로 바리 죽여줍니다. 한참을 혼자서 풍덩거리며 놀았습니다. 8월의 주말 아침 화엄사(9:07) 앞마당에는 한산합니다. 문화재 관람료가 부담스러워서인지 관광객도 등산객도 얼마 보이지 않습니다. 내 소원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놈의 관람료 그것을 없애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화엄사주차장(9:30)에는 오늘도 예원의 주인아저씨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손짓합니다. 권하면 잘 하지 않는 고집통의 고집이 발동하여 바로 아래 집으로 발길을 돌려 막걸리 반 되에 산채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 구례읍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순천, 통영, 거제에 돌아옴으로써 2011년 여름휴가를 빌어 지리산 화대역종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추후로는 지리산 화대 거꾸로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멀고 외로운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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