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지리산 화대종주

[지리산 화대종주] 홀로 또 둘이서 지리산종주

산안코 2009. 8. 9. 01:22

▣ 언      제 : 2009. 8. 02 ~ 8. 05 (3박 4일)
▣ 어  디  를 : 지리산 화대종주 (화엄사~대원사)
▣ 누      가 : 8/2~8/4(고집통),  8/4~8/5 (고집통과 만수)
▣ 날      씨 : 맑음
▣ 산행  거리: 약 46.1Km
▣ 산행  시간: 총 32시간 50분 
                 2일차(10시간 40분), 3일차(9시간 10분), 4일차(13시간)
▣ 산행  여정: 1 일차 거제→진주→하동→화엄사야영장
                2 일차 화엄사야영장→화엄사→연기암→노고단→삼도봉→화개재
                3 일차 화개재→연하천→벽소령→세석대피소
                4 일차 세석→장터목→천왕봉→치밭목→유평→대원사→진주→거제
 

토, 일요일 끼워 여름휴가가 무려 9일이나 주어졌습니다. 정말 좋은 회사입니다. 그런데 휴가비는 땡전 한 푼 지원 없습니다. 그래도 좋은 회사다?
없는 사람이 남들과 같이 여유부릴 형편 못되니 이번에도 지리산이나 들어갔다가 남는 일정은 시골에 고추나 따러 가야겠습니다.
동행하기로 약속했던 만수는 「 비가와도 밥 먹으니까 우천 시라도 강행해야 된다 」고 내게 몇 번씩이나 다짐을 주더니 친구 부친이 돌아가셔서 같이 시작하기 곤란하니까 3일차 거림을 통해 세석산장으로 올라오겠다고 연락이 옵니다.
구례 찜질방을 이용할까 계획했었는데 그냥 화엄사 야영장에서 홀로 비박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거제(14:20)를 출발하여 통영에서 한번, 진주에서 또 한번 버스를 갈아타 하동에 도착하니 화엄사까지 가는 버스가 무려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있다고 합니다.
마침 화엄사까지 가는 부부가 있어 삼만오천원으로 합의를 보고 화엄사주차장까지 택시로 이동하니 저녁 7시가 되어버렸습니다.
늦었지만 산행을 시작하여 연기암 근처에서 눈을 붙일까도 생각 했는데 이 시간에도 화엄사입구에서는 문화재관람료 삼천원을 받고 있습니다. 급한 일도 없는데 택시비에 관람료까지는 너무 아깝습니다. 바로 우측 편 계곡을 건너 야영장이 있는 다리를 향했습니다.
화엄사 야영장 화장실 처마 밑에 자리잡고 홀로 번데기 마냥 비비쌕 속에 드러누워 밤을 지새우기 위해 있노라니 잠은 오지않고 온갖 생각과 잡념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뒤척이다 날은 밝았고 기상청에서는 비가 올 것이라 예보했는데 하늘은 아니라며 웃기지 말랍니다. 오랜만에 풀 배낭을 어깨에 걸머지니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장난이 아닙니다.   
야영장 출발(5:50)하여 계곡 속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니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지리산 화대종주를 세 번째 도전하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며 병이 들어도 큰 불치병이 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더구나 오른발 아킬레스의 고통은 삭지 않아 아직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다리에게 못할 짓을 내가 하고 있습니다. 

  

◈ 화엄사 경내 전경

  

삼천원 아꼈으니 제대로 화엄사(6:15) 구경하고 한달음에 연기암(7:15)에도 들러 또 둘러보고 참샘터(7:32)의 물맛도 느껴보고 널널 산행으로 계곡 길을 오르니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새소리, 물소리가 머리를 맑게 해줍니다. 이곳에서만큼은 혼자이나 혼자가 아닙니다. 새, 물, 공기등이 같이 하니까.
많은 산님들이 나를 제치고 스쳐 지나가지만 오늘 아침 내가 처음으로 한 가족을 따라잡았습니다. 대전에서 오셨다는 40대 초반의 부부가 초, 중딩 3명의 자녀를 이끌고 화대종주를 나섰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가족들이 화대를 완주하였다면 지리산은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지혜라는 아주 큰 선물을 그 가정에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작은 폭포가 있는 집선대(9:25)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이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전투식량에 물을 부었습니다. 아침부터 약간의 소주도 곁들이면서....
이전에는 코재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힘든 곳인지 처음 느꼈습니다. 이마에서 길바닥으로 땀방울이 그냥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그런데 몸속에서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기분은 좋았습니다.
눈썹바위(11:10) 위에 배낭 올려놓고 호흡 고르기 전까지 한마디로 난 힘들어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시끌벅적한 전라도 아줌마들 소리가 들리고 물길의 방향을 구례로 넘겼다는 무넹기(11:30)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성삼재에서 올라오는 인파로 인해 인산인해입니다. 바보같이 무거운 배낭지고 땀 뻘뻘 흘리는 내가 이상한지 연신 힐끔거리며 희희낙낙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11:50)에서는 무슨 자랑거리인양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아야 한다고 좌판대를 펼쳐놓고 주절주절 홍보물을 깔아 놓았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해 올라오는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이 판에 이제는 케이블카로 짐짝 갖다 나르듯이 사람들을 마구 풀어놓겠다는 심사이니 지리산이 골병 들어버리겠습니다. 이제 제발 그만 해라. 다리에 힘없는 사람은 힘 길러 산에 올라오던지 아니면 집에서 놀 꺼리를 찾던지.... 

  

◈ 지리십경 - 노고운해

 

난 노고단(12:20)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지리10경 중 노고운해가 몇 번째인가? 서북능선 만복대와 주능선의 반야봉 등허리를 기준으로 발아래 세상은 온통 하얀 구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냥 풀쩍 뛰어내리면 손오공이 되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돼지평전을 지날 즈음 맞은편에서 내게 아는 채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 회사에서 안면만 있는 사람이지만 정말 반가웠습니다. 

  

◈ 돼지평전에서 본 서북능선의 만복대

  

지난 1월 백두대간 길에는 꽁꽁 얼어붙어 한 방울의 물도 흘려주지 않았던 임걸령샘터(14:10)에서는 수량이 풍부하여 철철 넘쳐흐릅니다. 작년에 만났던 그 다람쥐도 어김없이 발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반야봉에서 비박하며 낙조를 감상하고 일출까지 보고 갈 요령이었는데 노루목삼거리(15:05)에서 울산 H중공업에서 근무하신다는 산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은 전날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너무 힘든 나머지 빨리 휴식이 하고싶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지도의 거리만보고 피아골대피소를 찾아가는 일생일대의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리산을 오를 때는 항상 사전지식이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동행이 되었으며 그분은 몸이 무거워 가다 쉬기를 정말 자주합니다. 삼도봉(15:55)을 지나고 551개 계단을 내려서니 화개재(16:30)가 나옵니다. 뱀사골 방향은 등반로이고 하동 쪽은 전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세 분의 산님이 자리를 깔고 비박을 할 태세입니다. 우리도 여기서 묶겠노라고 하니 같이 자리하자며 소주잔을 앞으로 내밉니다. 다섯 명이 해 넘어 가는 줄 모르고 권커니 자커니 하고 있는데 한 떼의 일가족이 나타나더니 나를 보고 엄청 반가워하며『 아까 그 아저씨 아닙니까? 』합니다. 오전에 집선대에서 만났던 그 가족들이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한숨 자고 오는 길이라며 여기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부지런히 이곳까지 달려 왔다고 합니다.
데크 위는 모두 열 명이 되었고 거의 동년배 여섯 명이 소주잔에 세상을 담아 마시고 있노라니 컴컴한 텐트 뒤편에서 다짜고짜 『 여기 몇 명입니까? 』하며 묵직하고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비박 금지구역에서 비박하고 있던 우리는 깜짝 놀라 「 아이고 국공에게 걸렸구나 」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겨우 열 명이 이렇게 넓게 자리를 잡아 텐트를 쳐놓고 있으면 되느냐고 우리에게 예의가 있느니 없느니 난리 부르스를 칩니다. 놀란 가슴 쓸어 담고 밉지만 자리를 할애해 주니 오히려 주객이 바뀌어 나중에는 거의 안방 차지하고 처음 세분은 바깥에 이슬 맞아가며 밤을 새우셨습니다. 

  

◈ 화개재에서 본 뱀사골계곡

  

간단하게 누룽지로 아침밥을 해결하고 인연있으면 지리산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을 남기고 둘이서 토끼봉을 향했건만 울산 산님은 몇 발짝 가지 못해 쉬고 또 쉽니다. 속도가 너무 느려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연하천에서 만나자 하고 먼저 앞장섰는데 그 뒤론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리산 주능선을 지날 때 마다 오늘은 기필코 총각샘을 찾고 말리라고 여기저기 훑어가며 조금이라도 길이 열린 곳은 다 들러보았으나 모두 지뢰밭이었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총각샘은 찾지 못하고 연하천산장(10:00)에 도착하게 되었고 연하천 샘물은 손수건을 씻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워 손이 시립습니다.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세갈래길이 나오고 당연히 아무길이나 가면 또 만나겠지 생각없이 가다보니 길이 영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약 100m를 지나 빽해보니 음정으로 빠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마트면 큰 일 날뻔했습니다. 

  

◈ 형제봉의 두그루 소나무

  

바위 위의 소나무 두 그루가 신비스러운 형제봉(11:45)입니다. 중등1학년 딸래미가 끊임없이 조잘 조잘거리며 아빠를 뒤따르는 모습이 너무 좋아 어떻게 힘든 길을 따라 왔느냐고 물어보니 엄마 때문이랍니다. 엄마는 바빠서 못 오게 되었기에 혼자 가는 아빠가 너무 외로워보여 같이 가라해서 나섰다고 하니 우리 딸래미도 저랬으면 좋겠습니다.
벽소령대피소(12:30)에서 라면 끓이는데 바로 옆 산님이 라면에 날계란을 풀고 있습니다. 감탄조의 어조로 어떻게 날계란을 여기까지 가지고 올 생각을 하느냐고 하니 계란 하나 선뜻 권합니다.
어느샌가 왼발 뒤꿈치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새 등산화 신고 나서는 내게 마눌님 헌것 신고 가라고 권하는걸 막무가내 신고 나왔는데 할 말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산에서 내려 올 때까지 줄곧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국립공원 지리산에 텐트라? 거제도 총각 네 명이 아주 텐트를 짊어지고 종주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정말 거제도 답습니다. 장터목까지 오늘 목적지라고 했으나 세석대피소에서 머물고 말겠다는 총각들에게 소주랑 돼지고기 일부를 공급해주니 엄청 고마워했습니다. 

언제나 선비샘(14:50)의 물은 목마른 길손들의 청량음료 역할을 해줍니다. 갈증해소하고 세수하고 발 닦고 나니 조금 살만합니다.
칠선봉(16:05)바위 위에 올려놓은 돌탑을 보면서 어떻게 저곳에 돌탑을 올렸을까 신기하기도 합니다. 도저히 오를수 없는 장소에 쓰레기 끼워넣기, 「 누구랑 누구랑 왔다 감 」같은 낙서등등을 하는 한국인들의 재주에 한마디로 감탄입니다.
가까스로 세석대피소(17:10)에 도착하여 거림에서 출발하여 올라온다는 만수에게 전화해보니 불통입니다. 자리 잡고 한참을 기다리니 옆에서 광주의 K자동차에서 근무하신다는 두 분이 소주잔을 내밉니다. 이내 만수가 엄청난 물량을 짊어지고 도착하였고 맞은편 젊은 두 친구와 같이 여섯 명이 소주가 없어질 때까지 마셨습니다. 대피소 예약은 미리 해놓았기에 잠자리는 문제가 없었으며 어깨의 고통을 마다하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온 고마운 만수와는 맥주 한 깡통씩을 더 비우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제저녁 조금 무리하여 마시더니 밤새 부스럭거리는 만수가 갈증이 아주 심했나 봅니다.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고 세석대피소(5:00)를 떠나 촛대봉(5:25)에 올라섰습니다.
여기 촛대봉도 새로운 세상이 열려있습니다. 천지에 하얀 구름으로 융단이불이 깔려있습니다. 저 아래 세상은 이 이불을 덮고 아직 한밤중일 것입니다. 

  

◈ 촛대봉에서 본 천왕봉과 운무 그리고 일출

 

착한 만수가 삼대가 덕을 잘 쌓았나 보다. 덕분에 오늘 지리산 일출을 원 없이 만끽하였습니다. 촛대봉에 앉아 바라보는 천왕봉과 그 옆 구름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은 삼위일체가 되어 일대 장관(5:50)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가 지리산에서 본 일출 중 으뜸의 일출이었습니다. 

  

◈ 연하봉 아래 펼쳐진 운무

  

연하봉(7:10)에서 장터목대피소(7:30)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좌우로 펼쳐진 운무의 향연은 가히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치였으며 언제 내가 이런 절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금은 늦었지만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석봉(9:35), 통천문(10:10)을 통과하니 숨이 턱밑에 차오릅니다. 아직까지 천왕봉(10:30)에는 많은 산님들이 천왕봉 정상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가까스로 단독 사진과 둘이서 함께 찍는 사진도 이쁘게 남겨두었습니다. 

  

◈ 천왕봉에서 잘생긴 고집통

 

◈ 중봉의 천상화원

     

바로 대원사 방향으로 하산을 서둘렀고 지리산 제2봉 중봉을 다 다을즈음 중봉의 허리에 천상화원을 방불케 하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여기야말로 진짜 천상화원입니다. 

중봉에서부터 대원사 주차장까지 만난 산님은 10명 내외이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연속으로 결국 진주까지 거의 동행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중봉에서 이어지는 하산 길은 위험하기 그지없으나 경치는 일품입니다. 저 아래 치밭목대피소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써리봉(11:53)도 지나고 치밭목대피소(12:40)까지의 내리막길은 정말 힘들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라면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무재치기폭포(14:30)에 도달하니 네 명 일가족이 폭포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 지리산에 들르면 꼭 한번하고 싶은 알탕을 해야겠는데 눈치 없는 그 집 딸래미 비켜주지 않습니다.  

  

◈ 무재치기에서 알탕하는 고집통

  

어쩔 수 없이 옷을 입은 채 폭포수 아래 물속으로 들어가니 온몸이 냉장고속에 들어간 마냥 얼얼 얼어 붙습니다. 

새재삼거리(15:25)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여기서부터 계곡을 따라 산 언덕배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엄청난 너덜길을 정말 짜증나도록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이 길을 작년 여름에는 내가 거꾸로 타고 올랐고 겨울에는 기동과 이 길을 내려온 적도 있지만 이렇게 길게 느끼기는 처음입니다.
오른쪽 다리는 아킬레스건이 아우성이고 왼쪽 다리는 물집이 잡혀 터져 따가워 죽겠습니다. 어차피 신체적 고통은 감수하기로 하고 나선길이기에 정말 이를 악물고 걸었습니다. 이제는 나무토막을 하나씩 쌓아놓은 하염없는 계단입니다. 그리고 또 끊임없는 산길이 나옵니다. 실오라기 같은 독사새끼 한 마리가 발자국소리에 놀라 도망치지만 계속 우리가 가는 발 앞으로 내뺍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 위에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은 독사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있었는데 만수가 눈치 못채고 그 옆을 밟고 지나칩니다. 깜짝 놀라 주의를 주니 보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큰 일 날뻔 했습니다.
고대하고 고대했던 유평리삼거리(17:00)입니다. 계곡물로 세수하고 유평리 상가 슈퍼에 들러 맥주 한 깡통씩을 단숨에 들이켜 버렸습니다.
대원사(17:25)까지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고 더 이상 구경하기도 그러니까 대원사주차장(18:00)까지 딱딱한 시멘트 길을 한걸음에 내달렸습니다. 

  

◈ 대원사 주차장에서 만수님과 고집통

  

동동주 한 사발과 파전으로 화대종주를 마무리하며 마눌님이 신고 가지 말라고 했던 그 등산화를 벗어보니 발목이 팅팅 부어있고 발뒤꿈치 물집이 터져 엉망진창입니다. 대원사 주차장(18:35)에서 진주로 또 진주(20:15)에서 거제로. 바쁜 걸음쳐서 밤 10시가 훌쩍 넘긴 시간에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 화대종주는 계획은 둘이서 그리고 시작은 혼자하고 마무리는 둘이서 훌륭하게 해냈다. 매년 한 번씩 화대종주를 생각하고 누가 오라 하지 않는 이 길을 죽기 살기로 걷고 있는 내가 참 미련스럽기도하고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왜 이리도 자꾸 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주 후 사흘이 지난 지금도 부은 발목은 그대로이고 새까맣게 변해버린 새끼발톱이 너무 불쌍한데 내년에는 또 거꾸로 가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네요. 당장 다음 주 이어질 백두대간 육십령에서 신의터재 42Km가 눈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같이 하고자 했으나 친구 아버지가 말리니 어쩔 수 없이 같이 못해 내내 아쉬웠고 나머지 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무거운 보급 식량을 짊어지고 거림에서 세석까지 올라와준 만수가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필요하다면 화엄사에서 거림까지 화대종주 끊어 잇기를 권하고 싶고 여의치 않으면 내년에 다시 한 번 시간을 할애하여 좋은 추억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리산은 항상 그기에 우뚝 서있고 그 곳에 가고 안 가고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고 우리는 항상 어리석으니까 그래서 그곳에 가면 지혜를 얻어 슬기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 지리산이 그래서 지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