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8. 7. 30 ~ 8. 01 (2박 3일)
● 어 디 를 : 지리산 역 종주(대원사~ 화엄사)
● 누 가 : 고집통 단독
● 날 씨 : 1일(소나기), 2일(흐림), 3일(맑음)
● 산행 거리 : 약 46.1Km
● 산행 시간 : 총 25시간 50분
1일(5시간 45분), 2일(12시간 30분), 3일(7시간 35분)
● 산행 여정 : 1일차: 거제→진주→대원사주차장→유평마을→새재삼거리→치밭목대피소
2일차: 치밭목대피소→중봉→천왕봉→장터목→세석→벽소령→연하천대피소
3일차: 연하천대피소→토끼봉→화개재→삼도봉→노루목→노고단→코재
→화엄사 주차장→구례→순천→진주→거제
“♬♪♩~~~ 만약에 당신이 그 누구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을 위해서 무얼~~~ 홍알~~ 홍알~~ ♩♪♬~~~”그 누구가 누군가 했더니 바로 지리산인가 봅니다.
복 중 왕복, 더위가 최고의 기승을 부리는 중복입니다. 복중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보양식으로는 장어구이가 최고라며 아내가 무려 다섯 마리의 장어꼬리를 내게 권합니다.
어찌어찌 하다가 막판 화롯불에 발등이 데여 500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생겨버렸습니다.
누가 제출하라고 압력 넣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속의 숙제가 자꾸 마음에 걸려 이번 여름휴가 중에 산청 대원사부터 구례 화엄사까지의 지리산 역 종주를 위해 짐을 꾸리는데 배낭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올 봄 아내가 집 정리하면서 재고처리 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피소 예약을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 사이트에 부지런히 들락날락 해 보았지만 예약은 남의 집 얘기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숙제는 해보고 싶으니 어쩔수 없이 작은 배낭을 준비해 침낭을 들어내고 소주, 맥주도 들어 낸 최소한의 양식만을 챙기고 비닐 5m만 꼬깃꼬깃 챙겨 넣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아침 5시 55분, 집을 나서니 날씨가 잔뜩 찌푸리고 있습니다. 고현 발 진주 행 첫차가 6시 18분에 출발인데 통영, 고성, 사천 등등 곰탕곰탕 안 들르는데 없어 무려 8시 20분이 되어서야 진주에 도착합니다.
가까스로 8시 30분 대원사행 버스에 오르고 보니 버스 차창에는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히고 있습니다.
대원사 주차장(9:35)에는 덕산시장 다녀오시는 부지런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몇 분 계실뿐 등산객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입니다. 다행히 여기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혹시 동행할 사람이 있나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대원사 계곡에 들어서니 계곡에는 옛날 태풍 매미의 아픈 추억을 잊었는지 휴가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꽉 들어 차 있습니다.
바쁜 마음이 다리를 빨리 가자고 재촉하니 대원사(10:00)는 기념사진만 남긴 후 바로 통과하고 유평리 삼거리(10:20)에서 본격적인 고집통 단독 지리산 화대역종주 산행이 시작됐습니다. 산행시작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가파른 상승길이 숨을 턱밑에까지 차게 만듭니다. 새벽 천왕봉에서 출발했을 듯한 산님들이 좋은 산행하시라는 인사를 하면서 내려갑니다.
어디까지 갈 것이냐는 질문에 오늘 세석대피소가 목적지라고 하니 오후 4시까지 천왕봉에 닿을 수 있겠느냐고 내게 반문합니다. 그러면 가능할 것이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목표가 택도 없는 욕심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가다 쉬기를 여러 차례. 왠지 몸은 축 쳐지고 기운이 빠지는 것이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어제 불에 덴 발은 이미 껍질이 훌렁 벗겨진 상태이고 거제에서 진주까지 오는 길에 배탈이 나서 버스를 정류장에 세워두고 큰 볼일을 본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직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설상가상 천둥번개가 일더니 갑자기 장대비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우기철 등산 중 번개 맞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혹시 내가. 새삼 걱정이 밀려옵니다. 오늘 비 제대로 한번 흠씬 맞았습니다.
산길 4km가 이렇게 멀게 느끼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세재삼거리가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어렵게 새재삼거리에 도착(13:20)하니 위 새재마을에서 출발하신 산님이 1시간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기는 장터목 대피소까지 간다며 휑하니 사라집니다.
빗소리, 계곡 물 흐르는 소리, 가끔 새소리까지 산행하기에는 그지없이 좋으련만 몸이 잘 응해주지 않으니 힘들기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재치기 폭포(14:00)에 가면 알탕하기에 좋으니 한번 해보라고 하산하시는 산님이 추천해 주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혼자서 그런 여유를 부리기에는 너무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이제 인적도 드물어지고 천둥번개는 여전하며 다리는 풀려 걷기를 거부하니 세석 대피소, 천왕봉이 다 귀찮아지고 빨리 치밭목 대피소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건만 도저히 나타나지를 않고 애를 태웁니다.
갑자기 나무 사이로 주위가 밝아 지는가 싶더니 나무 계단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내 치밭목 대피소(15:20)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밤은 만사 제쳐두고 여기서 머물기로 작정하고 배낭을 푼 뒤 젖은 옷을 취사실에 걸어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으니 나 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울산 아가씨가 취사실로 들어옵니다. 이 아가씨는 이미 무재치기 폭포에서 홀로 비박으로 1박을 했으며 게다가 알탕까지 하고 이곳까지 올라 왔답니다. 무모하다 할까 아니면 대단하다 할까. 목적지가 성삼재라고 했는데 아마도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대피소에는 화엄사에서 출발했다는 허풍 많은 창원아저씨, 안내산행 가이드만 20년 동안 했다는 대전아저씨, 꼬장꼬장 진짜 말 많은 서울아저씨 등이 차례차례로 모여들고 결국에는 소주가 준비되고 대피소 관리원의 소등한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술판이 벌어져 이런저런 얘기들로 산중의 밤은 깊어 갔습니다. 한가지 미스테리는 서울 남자들인데 무슨 남자가 한결같이 말이 그리도 많은지 정말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새벽 2시 30분 울산에서 왔다는 총각 세명이 부스럭거리며 식사를 하지 않고 바로 출발하겠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발해 고생한 어제 배고픔의 경험이 있어 얼른 라면 하나 끓이고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바로 대피소를 따라 나섰습니다.(3:20)
후래쉬 2개를 양손에 들고 캄캄한 산길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걸어 올라가는데 갑자기 뭔가가 내 오른쪽 발을 잡아 당깁니다. 나무뿌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진 것입니다.
오른쪽 팔꿈치와 오른쪽 정갱이 부분이 푹 찍혔습니다. 배낭이 뒤집어 지면서 옆에 끼워놓은 물병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천리인데 큰일입니다. 생명수 두 개중 반 남은 물병은 그대로 있고 가득 차있던 물병은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편편한 바위들로 깔려있는 캄캄한 써리봉 정상(4:15)에서는 큰 대자로 쫙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엄청 편안합니다. 어둠으로 인해 아스라히 보이는 중봉과 천왕봉에서 후래쉬 불빛이 깜빡 거리고 있습니다. 누워있으면 누가 데려다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발 품을 한 발이라도 더 팔아야 천왕봉에 도착할 수 있으니 다시 힘을 내어보니 바로 앞에서 불빛 몇 개가 반짝이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 보다 30분 먼저 출발한 울산총각 들입니다. 그들은 지리산에는 처음 올라오는 초보 산꾼들이랍니다.
중봉(5:15)에 올라서니 이제 아침 여명이 밝아오고 동쪽 저편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천왕봉에 비해 중봉의 일출 광경이 더 멋있다는 소리를 익히 들은 적이 있어 중봉에서 일출을 맞을 준비하였으나 살짝 붉어지던 동녘하늘은 다시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리고 이것으로써 오늘의 일출은 끝이나 버렸습니다.
이번 1년 동안에도 내가 해 놓은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덕 쌓을 일을 한 적이 별로 없는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발 아래에 솜보다 더 뽀얗게 깔려있는 운무들의 향연이 새로운 감동을 먹기에 충분합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산행에서 얻을 것은 다 얻은 느낌입니다.
3월, 눈과 비 그리고 바람을 동원해 내 발길을 그렇게 막았던 천왕봉(6:20)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집 떠나 꼭 20시간만입니다. 이미 일출 시간이 지나버렸기에 몇몇 산님들만 남아 천왕봉 정상석을 향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나 또한 항상 똑 같은 그 자세로 정상석 옆에 선채로 사진 한판 찍고 다음 목적지인 장터목 대피소로 향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천왕봉을 뒤로 두고 아가씨들의 엉덩이를 연상케 하는 반야봉을 마주보며 하염없이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일출을 보기 위해 컴컴한 새벽 시간에 반대쪽으로만 올랐던 통천문(6:35)을 통과하고 고사목으로 유명한 제석봉(7:00) 쯤 내려서니 이제는 내려가는 길도 힘이 듭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여기는 역시 장터목(7:15)입니다. 아침인데 고기를 굽고 술판이 여기저기 벌어져 있습니다. 작은 속세를 이곳까지 옮겨 놓았습니다. 고생한 발을 들여다보니 내가 못할 짓을 한것 같습니다. 불에 데인 화상부위는 껍질이 훌렁 벗겨졌고 신발은 빗물에 젖어 다 마르지 않아 발이 팅팅 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도 가지 않습니다. 모든 산님들은 나와 역 방향입니다. 연하봉(7:55), 촛대봉 (9:00)을 지나 세석대피소 근처에 도달하니 젊은 산님 3명이 등산로 쓰레기를 줍고 있어 어떤 단체에서 좋은 일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피소에서 몰래 쓰레기를 버리다 공단직원에 걸려 벌금 5십만원 대신 쓰레기 3봉지를 줍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남들이 다 버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개를 버리다가 적발되었다나 어쨌다나. 등산하다 쓰레기 줍는 심정이 어땠을까요? 내가 좋아해서 즐기는 것만큼 내가 지켜야 할 의무도 당연히 따라주어야 되는것이 상식인데 말입니다.
세석대피소(9:15)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위해 판을 벌리고 한 숟가락 뜨려고 하니 때 맞추어 헬리곱터가 나타나 회오리바람으로 내 만찬을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올 때마다 요놈의 헬리곱터가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종주 세 번에 세 번 모두입니다.
지금부터는 물론 내 앞에 가는 사람 없고 동행할 만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냥 죽여주는 지리 경치를 사방 둘러보며 발걸음만 옮겨 놓을 뿐입니다. 엄청나게 몰려오는 산님들을 스쳐가며 영신봉(10:40), 칠선봉(11:25)을 지나 선비샘(12:25)에 다다르니 몇몇 산님이 쉬고 있습니다.
세수하고 수건에 물을 적셔 조선간장 냄새 배여 있는 몸을 닦아보니 시원하기 그지없습니다. 물이 차가워 손 씻는 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구벽소령 자리(13:05)를 지날 즈음 전화기 벨이 울립니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부산에 입원하셨답니다. 지금 상태로서는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산하는 시간만해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며 요행히 내려간다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거제까지 돌아가는 일이 오늘 중으로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벽소령대피소(13:15)에 도착하여 의신 쪽으로 하산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아버지께서는 다행이 상태가 좋아지셔서 고향 합천에 가신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 힘을 얻어 형제봉(14:40)을 지나 연하천대피소(15:50)에 도착했습니다. 연하천 대피소는 공사판으로 주위가 어수선하면서 비박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입니다. 대피소 예약이 되어있지 않아 만약을 대비해 대피소 귀퉁이에 명당 자리 하나는 잡아놓고 다른 사람이 예약 펑크 낸 자리만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산장지기 털보 아저씨가 드디어 비박 준비 안되신 분들을 부릅니다.
내게 주어진 평수에 모포 한 장 빌려 반으로 접어 바닥에 깔고 누우니 양쪽 팔은 남의 땅을 침범합니다. 그래도 밤이슬 맞지 않는데 만족하고 꿈나라로 들었습니다.
옆 자리에 자리잡은 두 부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어제 저녁에도 나더니만 오늘 새벽에도 소리가 납니다. 대피소를 탈출하여 밖으로 나오니 대피소 마당은 비박하는 산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복 받은 밤을 보낸 것입니다.
사람을 밟지 않으려고 살살 곡예를 하며 대피소 마당을 벗어나 오늘 새로운 하루의 첫발을 내 딛는 시간이 새벽 5시입니다. 토끼봉(6:10)에 오를 즈음 지리산의 날이 밝아오고 눈부신 태양빛이 나무들 사이로 강렬하게 비칩니다.
등산로 주위에는 구석구석 비박으로 밤을 지새는 산님들이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한밤 노고단에서 출발했음직한 산님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화개재(6:40)에서 바라보는 뱀사골 계곡의 풍경은 자연이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을까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들고 연신 사진기 셔터가 눌러집니다. 500개가 넘는 나무계단이 이번 산행의 마지막 고비입니다. 갯수를 정확하게 세어 보기 위해 읊어가며 올라갔지만 금새 헷갈리고 맙니다.
삼도봉에는 12시 대구에서 출발하신 네 분의 아저씨들이 여태까지 반대로 오는 사람은 처음 본 다며 반갑게 맞이하며 김밥 한 줄을 권합니다. 어차피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관계로 얼른 감사의 뜻을 전하고 바짝 다가 앉았습니다. 아직 단체사진을 한번도 못 찍어셨다기에 삼도봉 삼각뿔을 배경으로 한 컷 눌러주고 안전한 산행하시라는 인사말을 남긴 후 노루목을 향했습니다.
반야봉은 애초 계획에 없었기에 다음 개별 산행을 기약하기로 하고 노루목(7:40)을 지나 임걸령 샘터(8:00)까지 한달음에 도착했습니다.
피아골 삼거리(8:15)를 지나니 앵앵거리던 중국산 MP3가 밥이 다되었다고 멈춥니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주위경관을 만끽하며 노고단(9:05)에 올라서는 순간 긴장이 확 풀리면서 기분이 묘해집니다. 성삼재에서 올라와 구경하고 내려가는 관광객들과 같은 부류 속에 포함되니까 여태까지 걸어온 노력들이 허무해집니다.
노고단 대피소(9:15)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고 코재를 통해 화엄사 계곡으로 내려가려니 아직 7Km의 거리가 남아 있다는 팻말이 있습니다.
화엄사 계곡의 등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과 함께이며 물소리, 새소리가 싱그럽습니다. 2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이 길을 오를 때는 한밤중이라 지루한 줄 모르고 올라갔었으나 하산하는 오늘은 지친 몸과 마음 때문인지 지루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무념무상으로 집선대 (10:40), 참샘터(11:30)를 지나는 정말 멀고 먼 길을 걸어 내려오니 산중에 승용차 한대가 눈앞에서 휙 지나갑니다. 연기암(11:35)으로 들어가는 임도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여기서부터도 화엄사까지는 끝없는 돌길로 연결되어있어 지루하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화엄사(12:10)를 들르지 않고 곧바로 차도 옆길을 따라 화엄사 주차장(12:35)까지 걸어 내려가니 주차장 앞 한정식 집 예원 사장님이 자꾸 손짓을 합니다.
동동주 반되, 도토리묵 한 접시로 내가 낸 힘든 숙제 2박 3일간의 성공적인 화대역종주 완료를 혼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축했습니다.
화엄사 주차장에서 구례(1,000원)로 다시 구례에서 순천(3,300원)으로 또 순천에서 진주(5,900원)로 마지막으로 진주에서 거제(8,800원)까지 도착하니 컴컴한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에 덴 발등은 헤져 만신창이 되어버렸고 새끼 발톱 한 개는 아무래도 포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누가 나를 보고 지리산으로 가라 오라 하는 사람 없었는데 왜 보따리만 짊어지면 그곳으로 향하는지 딱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심리적인 중독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지리에 머무르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는 그 의미처럼 이번 나의 2박 3일 종주기간 중 발자국 하나 하나에 지혜 그것들이 살살 스며들어 내가 조금이라도 지혜로워 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군대 간 아들 제대하면 같이
“♬♪~~~ 만약에 당신이 그 누구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을 위해서 무얼~~~~ ♬♪“
이 노래를 MP3 에 넣어 들어가며 네 번째 지리산 종주길을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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