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1. 5. 12 ~ 5. 13 (1박 2일)
▣ 어 디 를 : 지리산 천왕봉, 촛대봉, 삼신봉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1일차: 맑음, 2일차: 맑음
▣ 산행 시간 : 11시간 40분
1일차: 중산리 주차장(13:05)→중산리 탐방안내소(13:45)→로타리대피소(15:50)
2일차: 로터리대피소(3:40)→천왕봉(5:15)→장터목대피소(6:20)→세석대피소(8:43)
→삼신봉(11:20)→청학동탐방안내소(12:35)
▣ 산행 거리: 중산리탐방안내소→천왕봉→세석→삼신봉→청학동안내소(약 20.4Km)
아직 근속휴가는 만장같이 남았기에 봄, 가을 안내산행으로 이어지는 칠선계곡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올라가기 탐방은 동작 굼뜬 인터넷 사정상 희망사항이 되었고 부득이 내려가기 탐방을 예약하기로 하고 사전 로타리대피소 예약을 걸고 1박 2일의 여행자보험까지 들었습니다.
11일 수요일 저녁의 봄비는 장마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지기에 함양분소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무슨 해괴한 일이라도 벌어지려는지 벨소리 한번 울리고 끊어지기를 거듭하면서 폰에는 발신했다는 메시지도 남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중산리분소로 전화를 돌려 이번 비로 인해 칠선계곡 탐방에 영향이 없는지 물어보니 아직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고집통 홀로 내려선 중산리 버스주차장은 언제 비가 내린 적 있었느냐며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마저 시원스럽게 불어줍니다. 평일 오후 1시이니 산님이 없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고집통 주식인 막걸리 두통을 배낭에 챙겨 넣고 결코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중산리 계곡을 따라 살랑살랑 걸어올라 봅니다. 국립공원직원 남녀 두 분이 탐방로에 어질러진 쓰레기를 수거하시며 내려오시다 칼바위 근처에서 쉬고 계십니다. 산행 중 처음 만나는 분들이라 살짝 말을 걸어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탐방객들의 도덕 불감증과 이런저런 산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탐방객들의 불만이 잘못 없는 비정규직인 자기들에게 쏟아진다며 안타까워하십니다. 정부기관 산하든 일반 사기업 산하든 어디를 가도 비정규직은 몸과 마음이 고달픈 것은 매 한가지인 모양입니다. 언제나 풀릴지 아주 어렵게 꼬인 실매듭 같습니다.
바쁠 일이 없으니 막걸리 한 잔을 비우면서 탱자탱자 놀며 올라도 로터리대피소에는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습니다. 법계사의 무량수전과 삼층석탑에 불공드리고 평소 잘 찾지 않던 산신각까지 들렀지만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가 아직까지 대피소에서 머물겠다는 사람은 나 고집통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내일 아침 칠선계곡 내려가기를 위해 왔노라고 하니 대피소 직원이신 이명희님께서 의아한 표정을 지며 분명히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칠선계곡 탐방이 취소되었을 것이라며 함양분소로 전화를 걸어봅니다. 곧바로 어제 저녁 염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최악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함양분소에 전화로 확인하니 계장이라는 직원 하는 대답이 무성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제 저녁 자기산하 직원이 일괄적으로 모든 예약 탐방객들에게 탐방이 취소되었음을 문자로 날렸는데 내게만 가지 않은 것 같다고 변명만을 늘어놓습니다. 구렁이 알 같은 평일 휴일 이틀과 여행자보험 등 투자한 시간과 경비가 얼마인데 이런 젠장 맞을 무성의한 국공파 직원으로 인해 순식간에 확 기분이 잡쳐버렸습니다. 어떻게 내게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니까 죄송하다는 사과는 고사하고 모든 탐방객에게 문자를 다 날렸는데 당신 핸드폰이 문제라며 안하무인 짜증까지 내고 있습니다. 공무원들 세상에서 계장이 얼마나 높은 직책인지 알 수 없으나 전형적인 대한민국 고위 공무원들의 더러운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 선량한 모든 국립공원 직원들이 덤터기를 뒤집어 써 불신을 받게 되고 하물며 비정규직 직원까지도 국민으로부터 욕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로타리대피소 직원 이명희님께서 영 안 되어 보였는지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양 사과를 하시면서 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풀게 하고 우천 시의 칠선계곡 탐방 어려움과 다음에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머리를 숙입니다.
꼭 칠선계곡을 고집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기에 잘 쓸어 담으면 되는 일을 잘못을 변명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탓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그 행태가 나쁜 것입니다.
일이 꼬여 버렸으니 계획을 급선회하여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한 지리산의 탐방로 중 1박 2일의 시간에 걸맞고 산행 후 귀가하기에 적당한 코스인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 탐방안내소로 하산하기로 하고 취사실에서 씁쓸한 나 홀로 만의 저녁식사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주에서 왔다는 30대 젊은 친구 오상묵씨와 수원, 해남에 사신다는 40대 후반의 두자매분이 대피소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여 합 네 사람이 로터리대피소 독채를 하루 저녁 전세 내었습니다. 내일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해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하고 그다지 개운치 않은 밤을 보내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새벽 3시 반의 로타리대피소 바람은 장난이 아니지만 하늘에는 초롱초롱 별님이 반짝입니다. 5월 봄날의 새벽 날씨치고는 손이 시릴 정도로 춥습니다. 주위에는 아직까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천왕봉은 아직 일출이 시작되지 않았건만 한 떼의 젊은 학생들이 시끌벅적 합니다. 지리산고등학교 전교생이 2박 3일에 걸쳐 지리산종주를 하고 있는 중이며 장터목대피소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일찌감치 나섰답니다. 역시 명문 고등학교라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이 있는 아주 멋있는 학교입니다.
우리 집안이 3대째 크게 잘못한 것이 없었나 봅니다. 천왕봉은 오늘도 역시 동쪽하늘에서의 멋진 일출을 선사해줍니다. 로타리대피소에서 함께 출발했던 두 자매 아주머니와 오상묵씨는 장터목대피소에서는 중산리로 하산하신다고 합니다. 장터목대피소 취사실에서 라면 끓여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그 세분들에게는 좋은 산행을 주문하고 세석을 향해 나 홀로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근처에서 이번에는 일본사람 한 무리를 만났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올라오면 일본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어제 오후 법계사에 전시해 놓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아 놓았다던 쇠말뚝을 본 후라 느낌이 묘합니다. 촛대봉에서는 또 한 떼의 학생들을 만났는데 서울 광현중학교 한 학급이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중이랍니다. 요즘 시절에 몸도 마음도 나약한 학생들을 강인하게 단련시키는 학교 방침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세석에서부터는 아직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지리산의 남부능선길입니다. 그저께 내린 빗물에 씻겨 내려갔는지 길바닥이 움푹 패여 형편없습니다. 음수, 양수가 바위 양쪽으로 흘러내려오는 음양수에서는 양쪽 물을 한 바가지에 섞어 마셔보았지만 특별한 맛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거대한 바위 문을 통과 하였는데 삼신석문이랍니다. 산죽이 키보다 더 높이 자란 남부능선을 무심으로 타박타박 걷고 있는데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맞은편 산길에서 오고 있는 산님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부능선 요지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고 장기간 머물 계획으로 왔는데 속세에서 긴급한 일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내려간다는 대단한 산님입니다.
남부능선은 그다지 높낮이 없는 산길이지만 거리가 만만찮고 산죽의 키가 높아 결코 쉬운 산행은 아닙니다. 삼신봉 근처에는 무슨 조화가 있었는지 엄청난 고사목 군락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산을 좋아했던 어느 산님의 가슴 시린 추모비가 있습니다. 어렵게 도착한 삼신봉 정상에서 내려 보는 짙은 녹음 속 청학동과 삼성궁이 보기에 좋습니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청학동과 고운동재로 연결되는 낙남정맥이 있는 곳이며 삼성궁과 쌍계사로 가는 방향입니다. 언젠가는 두 방향 모두 내가 가야될 길입니다.
수 분후에 청학동과 낙남정맥 갈림길이 나오고 낙남정맥 가는 길은 국공에서 나뭇가지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또 수분이 지나고 나니 반가운 샘터가 나옵니다. 오래간만에 세수도하고 고생한 발을 물속에 담가봅니다. 시원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청학동이 첩첩 산중이면서 고도가 높은 탓인지 얼마 내려간 것 같지가 않은데 금방 도착이 됩니다. 일이 잘 풀리려고 그런지 하루에 몇 대 없는 하동 가는 버스가 눈앞에 딱 대기하고 있습니다.
국공파의 성의 없는 일처리로 칠선계곡이 청학동으로 바뀌어버렸지만 오늘 새로운 지리산을 보고 왔습니다. 우매한 사람이 지리산에 머물다 오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해서 나온다고 지리산이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바뀌지 못해도 용서와 이해 정도는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도록 노력은 해봐야겠습니다. 제목을 바꿔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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