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1. 5. 27 ~ 5. 29 (1박 3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스물세 번째 구간(진고개~조침령): 북진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34 명과 고집통
◈ 날 씨 : 5/28(맑음), 5/29(흐림)
◈ 대간 산행시간 : 316시간35분(23구간: 20시간 27분)
34일차 진고개(2:45)→구룡령(14:10) 11시간 25분
35일차 구룡령(2:55)→조침령(11:35) 8시간 40분
접근거리: 조침령(11:35)→설피마을(11:57) 22분
◈ 대간 산행거리 : 719.05Km (23간: 44.75Km)
34일차: 23.5Km, 35일차: 21.25Km
◈ 총 산행거리 : 진고개→동대산→두로봉→응복산→구룡령→갈전곡봉→쇠나드리
→조침령→진동리 설피마을(47.75Km)
활활 타오르던 백두대간의 불씨가 사그라지고 있습니다. 종착역을 겨우 두 정거장 남겨놓고 날씨가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숨 가쁘게 달리던 기관차는 지난 12월 이후로 중간 기착지에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엿을 팔고 안 팔고는 엿장수 마음이듯이 차를 움직이고 안 움직이는 것은 기관사 마음인지라 재출발 날짜를 멀찌감치 다섯 달 후로 하겠다니 애매한 탑승객들 뭘 할지 몰라 갈팡질팡 거립니다. 그사이 대간길 기관차 쇠바퀴는 녹슬어 가고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은 정맥길을 기웃거리며 아주 옛날에 우리가 대간길을 달리고 있었구나 하는 가물가물한 추억으로 변할즈음 1박 3일의 진고개 조침령구간 스물다섯 번째 산행을 한다는 반가운 공지가 올랐습니다. 시간과 체력을 요하는 오래간만의 장거리 산행이기에 살짝 긴장이 되고 한편으론 설렘도 있습니다.
다섯 시간을 쉼 없이 달려 내려선 한적한 진고개는 졸고 있는 가로등만이 나름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야심한 새벽 3시의 진고개가 시끌시끌해지고 달밤의 체조가 아닌 달 없는 그믐밤의 체조로 몸을 푼 후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2:45)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대산 오르는 길의 경사각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쁜 숨을 거칠게 토해가며 오르다 호흡 조절을 위해 잠깐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의 북두칠성이 너무도 선명하게 반짝거립니다. 그래 맞습니다. 이것이 내가 산에 가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오대산은 높은 다섯 봉우리들이 편편한 대가 있어 동쪽의 옛 만월봉을 동대산이라 합니다. 오늘 첫 고봉 그 동대산(3:35)에서 기동 사모님께서 압력밥솥으로 직접 구웠다는 노릇노릇한 계란의 껍데기를 벗기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계란을 집에서 어찌 굽느냐니까 본인은 잘 모르겠으며 구워주면 가지고만 온답니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돌아와서 인터넷 조회를 하니 정말 간단하게 계란을 구울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삶는 것 보다는 시간은 약간 더 걸리지만 맛은 천양지차입니다.
이번에도 눈앞에 이해 안 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차돌들이 산등성이에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래전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이 차돌로 변해버렸다는 차돌백이(4:45)입니다. 신선목이(5:20)를 지날 즈음 동쪽 하늘이 붉게 불타오르고 그 아래 구름강도 흐르고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사진 속에 담고 싶은데 일출의 역광으로 자연이 연출하는 그 광경을 가슴으로만 담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긴 너무 좋은데 어떻게 사진과 글로 표현할 수가 없어 내 자신이 안타깝고 답답할 뿐입니다.
두로봉(6:15) 정상에는 지킴이는 없고 의자 저 혼자서 자리를 지키는 지킴터가 있으며 희귀 동식물 보호와 산불을 방지하기 위하여 출입을 통제한다는 표지판도 서있습니다. 대간길에서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니니 이제는 전혀 미안한 감 없이 나무 목책을 사뿐히 넘어섭니다. 이 또한 오늘 야심한 밤중에 걸어야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가지 말라는 곳에 발을 들여서일까 벌을 받습니다. 통제표지판에서 왼쪽으로 돌아야 하나 그냥 직진해버려 여기서 약간의 알바 선물을 받습니다. 자고로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되는 법입니다. 다음 달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하고 이후로는 하지 않도록 노력 해야겠습니다.
두로봉에서 하향 급경사길이 이어지고 근처에서 주목군락지를 만나고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걷습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일을 봅니다. 현재 시간 8시도 채 안되었는데 산나물 채취하는 아주머니 홀로 1,000m가 넘는 이 고봉에 올라와 있습니다. 도대체 저 아주머니는 어떻게 이 시간에 이곳까지 왔단 말입니까? 거제도라면 벌써 2개월도 더 전에나 나왔을 산나물들이 대간길에 지천으로 널려 산나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일행들은 그렇게 바쁜 걸음 중에도 잘도 산나물을 낚아챕니다. 덕분에 나도 곰취와 참나물은 어느 정도 분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믿음이 가지 않아 함부로 입에 넣지는 못합니다. 신배령(7:50)을 지나 메마른 충무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만월봉(9:35), 응복산(10:25)을 어렵사리 넘어서고 산꼭대기가 마늘모양이라 이름 붙여진 마늘봉(12:00)도 숨 가쁘게 오릅니다.
약수산(13:38) 오르는 길 또한 힘들긴 매 한가지지만 길가의 산나물을 구분하기 위해 땅만 쳐다보고 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라서 있습니다. 부부인 듯 한 남, 녀가 약수산정상 나무에 해먹을 걸쳐놓고 신선 노릇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 장을 찍었는데 희한하게 그 사진만 카메라 속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언제 산불이 났었는지 고사목 밭이 나오고 발아래 구룡령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룡령(14:10)은 아홉 마리의 용이 고개를 넘다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넘어갔다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합니다. 구룡령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두 사발로 오늘 산행일정을 마무리하고 인근의 민박집에 들러 내일 있을 산행에 대비해 아직 해가 중천에 남았지만 귀 틀어막고 잠을 청합니다.
어제저녁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소주 몇 잔 홀짝홀짝 받아 마시더니 보일러 끄는걸 잊어버렸답니다. 분명히 한 시간만 돌리고 끄기로 약속했는데 밤새도록 보일러를 최강으로 돌려 기동이 사모님 압력밥솥으로 계란 굽듯이 우릴 구워버렸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일보다 밤새 잠자는 일이 더 힘들었습니다.
새벽 1시가 되었을 뿐인데 민박집이 시끄럽습니다. 새 날의 산행을 위해 어제 그 구룡령으로 대경이는 우릴 이동해 놓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내뺍니다. 오늘도 초반(2:54)부터 가파른 나무계단을 치고 오르고 몇 번을 올랐다 내려갔다 하는 고개를 넘고 나니 옛 구룡령 정상(3:22)이 나옵니다. 정말 옛날 선조들은 어떻게 이런 산길을 넘어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랑이가 안 나오면 산적이나 귀신이 나오고도 남을만한 그런 첩첩 산중입니다.
칡넝쿨 밭이라서 갈전곡봉(4:24)이라는데 요즘은 칡넝쿨이 없답니다. 갈전곡봉이 오늘의 최고봉입니다. 이후로는 그다지 높지 않은 톱니모양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하염없이 걷게 됩니다. 구룡령 출발 당시에는 어제처럼 별들이 초롱초롱 하였으나 어느 순간 안개가 몰려오더니만 산행 내내 날씨는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날씨로 인한 산행의 어려움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연기리골(8:40)엔 약100m 아래 계곡의 물 사정이 좋아 여기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계곡 가엔 하룻밤 비박하기에 안성맞춤이며 아니나 다를까 비박텐트 2동이 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물을 보충하고 또 그렇고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어제처럼 또 그 많은 풀들 중에서 산나물 분석을 위해 땅만 쳐다 봐 가면서....
옛 조침령이라는 쇠나드리고개(10:45)에서 배낭속 모든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머지 않은 조침령을 향해 열심히 걷다보니 지난번 한계령에서 조침령으로 내려왔던 임도 길을 만납니다. 굳이 조침령 표지석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래도 44Km구간을 달려와서는 그것을 생략한다는 것이 내가 용납하지 않아 확실한 조침령(11:35)에서 인증 샷을 날렸습니다. 오래간만에 기동이와 같이 사진도 한 장 남겼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같이 다녔건만 둘이 찍은 사진이 또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홀라당 벗고 방태천에 뛰어들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알탕입니다. 전신이 쫙 오그라드는 냉탕이기에 금방 뛰쳐나옵니다.
처음 지리산에 발 들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대간길 나선지가 벌써 2년하고도 6개월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고 이젠 단 한번만의 마지막 구간을 남겨두었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을 내가 걸었고 중간 중간에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주위의 도움과 격려에 힘입어 슬기롭게 이겨내어 머나먼 대장정의 고지가 눈앞에 보입니다. 그 고지에 올라서고 나면 벅찬 감동 후에 밀려올 공황상태를 대비해 새로운 도전 목표를 정했습니다. 일부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약 2년에 걸친 호남정맥을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영하 20도의 지독한 한파와 무르팍까지 푹푹 빠지는 폭설이 길을 막았고 찌는 듯한 무더위 속의 갈증으로 탈진도 하였으며 폭풍우 몰아치는 비바람 속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었으며 끊어질 듯한 아킬레스의 고통과 100m 직벽의 로프를 놓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길들이었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그 길들을 언제 다시 한 번 또 밟아보나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다음 달이면 백두대간 종주 완성이라는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며 지나온 그 길들이 많이도 그리워질 것입니다.
그리움이란 단어를 논하자니 갑자기 내가 무언가를 이렇게 그리워하듯이 나라는 사람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존재로 남아질 수가 있을지 그것이 참 의문입니다. 물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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