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1. 6. 18 ~ 6. 19 (무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26(마지막)구간(미시령~진부령): 북진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4명과 고집통
◆ 날 씨 : 6/18(맑음), 6/19(맑음)
◆ 대간 산행시간 : 324시간 45분(26구간: 8시간 10분)
36일차~37일차 미시령(21:10)→진부령(5:20) 8시간 10분
◆ 대간 산행거리 : 734.65Km(26구간: 15.6Km)
36일차~37일차: 15.6Km
◆ 총 산행거리 : 미시령→상봉→신선봉→병풍바위→마산→흘리→진부령(15.6Km)
마지막 대간을 위해 오후 2시에 거제를 출발합니다. 대간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간이동은 처음이며 졸업 대간길이어서인지 이전과는 달리 버스 안 일행들의 분위기는 사뭇 들떠있으며 대낮부터 술잔이 돌아 화기애애하고 아주 밝은 얼굴입니다.
문제는 미시령에서 대간령 사이 구간이기에 주간에는 아예 근접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야간에는 서치라이트까지 동원하여 강력하게 단속한다는 입산통제구역이기에 국공파의 눈을 피해야 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나긴 대간길에서 국공파의 눈을 피해 야심한 밤중 도둑고양이 되는 일이 산길 가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은 익히 다반사로 경험하여 알고 있습니다. 가지 말라는 구역을 무던히도 많이 들어갔건만 귀신보다 더 무섭다던 국공파를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으니 그만큼 산행 전에 운영진에서 준비를 착실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미시령 100m 아래, 엔진은 물론 실내등마저 끈 대경이가 예정보다 한 시간 빨리 도착(20:50)해 있습니다. 미시령고개의 지킴터 가로등은 우릴 내려다보고 있고 정탐나간 산행대장은 지키고 있는 국공파들의 대화소리만 듣고도 기겁을 하고 쫓아 내려옵니다.
못 가게 하면 또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으면 인근에 틀림없이 개구멍이 있는 법입니다. 철조망으로 가로막고 숲으로 위장을 기가 막히게 해놓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거제도 산사나이들은 식은 죽 먹기처럼 미시령 개구멍(21:10)을 찾아내고 그렇게 대간 졸업행사를 야반도주 하듯이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다된 밥에 코 빠질까봐 미끄러운 자갈길을 뛰다시피 죽기 살기로 올라갑니다. 저녁식사로 먹은 황태 된장국이 목구멍에 역류할 정도로 숨이 까딱까딱 찰 즈음 산행대장으로부터 선 자리에서 5분간의 휴식 명령이 떨어졌으나 일행들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내뺍니다. 돌아본 미시령고개는 지킴터의 가로등이 빤히 올려다보고 있고 보름을 사흘 지난 둥근달이 붉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로등 불빛을 보듯이 헤드랜턴 불빛이 미시령으로 새어 나갔을 것이란 염려에 얼른 헤드랜턴을 꺼보지만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얼른 다시 켭니다. 아무리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국공파라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굳이 우릴 따라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괜한 걱정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장마철이라지만 꽤 가물어 길옆 샘터는 작은 그릇속의 장구벌레만이 꼬물거릴 뿐 먹는 물로는 부적합합니다. 딱히 물이 필요한건 아니기에 지나치지만 혹시 대간하는 산님들은 참고해야 되겠습니다. 조금 지나니 엄청난 너덜길이 나타납니다. 너덜길 정상에 올라서니 속초의 아름다운 야경이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오징어잡이 배 불빛이 아주 질서정연하게 불야성을 이루고 있고 그보다 더 너머 멀리는 캄캄절벽인 것으로 보아 북한 땅인가 봅니다. 마지막 이 구간을 내 두 눈으로 보지 못하는 야간산행으로 마무리함에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돌탑으로 정상을 표시한 상봉(22:40)입니다. 신선봉이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잘못된 것 같은데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상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그 흔한 로프 하나 준비 안 된 바위길이라 약간 위험합니다. 하얀 산목련일까 이제 한창 몽우리를 틔우기 바쁩니다.
오리지널 신선봉(23:30)에서는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를 마다하고 정상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참 후회스럽습니다. 내가 언제 또 이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인데 왜 그곳이 궁금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선봉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날로 바뀌었고 등 뒤에 따라오던 달은 어느 샌가 내 앞에서 길을 안내합니다. 멧돼지 땅 파 뒤집어 놓듯이 교통호가 거미줄처럼 엮어져 있고 비싼 군대 나온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빼치카도 구경합니다. 내 아들들이 고생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대간길의 마지막 단속구간이 끝나는 대간령(새이령)(1:00)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마지막 남은 막걸리와 족발로 허기를 채웁니다.
대간령까지 내려왔으니 공평하게 그 높이만큼 또 올라갑니다. 일행들은 마산이라며 10m만 올라가면 된다고 했는데 마산이 아니고 병풍바위(2:45)입니다. 거제 인근에 마산이 있으니 왜 마산이 여기에 있느냐는 둥 지금 진동 쯤 왔다는 둥 오밤중에 산행하는 대화거리 없는 우리들에겐 이것마저도 이야기 거리가 됩니다.
마산 정상에는 달리 정상석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이정목만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무조건 하산입니다. 백두대간을 통틀어 새로운 오르막은 이제 없습니다. 그 흔한 계단 하나 없이 급경사길이면서 미끄럼틀과 다름없는 흙길이라 자칫 방심하다가는 크게 어려움을 당하겠습니다. 알프스스키장 철망이 나오고 리프트 머신이 있고 대간꾼들의 마지막 시그널 전시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마어마한 리조트 건물이 나타나지만 불빛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철 지난 스키장의 리조트를 재정비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흘리마을(4:05)입니다.
군부대가 가로막혀 대간길이 이상해졌습니다. 산이 아닌 들길 시멘트길 로 이어집니다. 부지런한 농부의 트럭이 쏜살같이 스쳐지나가고 진부령관광 농원의 개떼들은 우리가 저들에게 해코지 한 것도 아닌데 새벽부터 온산이 떠날 만큼 왕왕거리며 위협하고 스피커에서는 개들의 정서 불안정을 달래주기 위해 아리랑 곡조가 흘러나옵니다. 개들에게 아리랑이라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등산로? 우리는 절대 모른다. 묻지 마 』 짜증일수도 있고 익살일수도 있지만 웃음은 나옵니다. 얼마나 많은 대간꾼들이 물어 왔으면 이런 문구를 농원 정문에 걸었을까마는 차라리 그 앞에 대간 가는 길 이정목 하나 예쁘게 만들어 세우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언덕길을 따라가다 46번 국도에 내려서면서 기나긴 여정 백두대간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전국의 산악단체에서 세운 백두대간 종주 기념비들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감회에 빠져보려 하였으나 단체사진 찍자고 빨리 오랍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하! 내가 엄청난 일을 해냈구나 라는 생각에 순간 머리꼭지에 야릇한 기운이 생기며 가슴에는 벅찬 감동의 물결이 밀려옵니다. 누군가 억만금을 준다 해도 하지 않을 어려운 일을 무엇을 얻으려고 내가 이 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 끝을 밟고 돌아온 지금 무엇이 남았는지 아직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다. 세월 지난 후 날 잡아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 감동 오래가지 않습니다. 진부령 정상석을 배경으로 나 여기까지 갔다 왔노라고 사진 팡팡 찍고 마눌님을 포함함 지인들께 대간길 무사 졸업 보고 문자를 날리고 거제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북통일 되면 이어갈 향로봉 가는 길을 찾아보니 모모 부대가 철통같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신고제로 향로봉 등정이 되었다는데 금강산 총격사고 이후로 전면통제 되어버렸기에 많이 아쉽습니다. 이로써 고집통의 남녘땅 백두대간종주를 야반졸업으로 이곳 진부령에서 아쉬운 마무리를 짓습니다. 약간의 여운을 뒤로 남기면서 그리고 후일을 기약하며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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