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0. 11. 06 (무박 3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25구간(미시령~한계령): 남진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35명과 고집통
◈ 날 씨 : 11/6 (맑음, 바람)
◈ 대간 산행시간 : 316시간 13분(25구간: 16시간 35분)
31일차 미시령(2:06)→한계령(18:41) 16시간 35분
◈ 대간 산행거리 : 628.7Km (25구간: 23.73Km)
31일차: 23.73Km
◈ 총 산행거리 : 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희운각→소청봉→중청봉→끝청
→서북능선 삼거리→한계령(약 23.73 Km)
설악(雪岳)의 악(岳)을 악(惡)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월악산, 치악산등 『악』자가 들어가는 산들의 산세가 험하기에 그냥 느낌만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번 대간길 설악산코스를 걸으면서 큰산의 의미가 있는줄 새삼 알았습니다. 과연 설악산은 이래서 설악산이구나. 하루 온종일 설악산을 이야기해도 입이 아프지 않겠습니다.
지난달 우천으로 연기되었던 설악산 무박 3일 17시간 산행이라는 대간 공지가 올랐습니다. 나름 충분하게 연습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집 나서니 가슴이 졸여집니다. 미시령 고개(2:06)의 11월 밤은 매서운 찬바람으로 순식간에 체온을 빼앗아 달아납니다. 대간 시작한지 세번째 맞는 겨울이며 지금 영하 4도입니다. 미시령 지킴터에서 사시사철 단속을 한다니 이번에도 야심한 밤 죄인이 되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습니다. 몇 일전 눈이 내렸는지 잔설이 등로에 남아 준비성 없이 아이젠을 챙겨오지 않은 내 자신을 질책해 보기도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 버렸습니다.
단속의 염려로 길거리에 서성거릴수 없으니 충분한 스트레칭 없이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순식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울산바위 갈림길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론 대간길에서 여태까지 한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고통을 경험합니다. 어마어마한 고바위에 펼쳐진 너덜바위들이 시작부터 사람을 주눅들게 만듭니다. 더구나 눈 덮인 바위는 힘이 평소에 비해 열배는 더 드는 느낌입니다. 일정하지 않은 보폭과 미끄러지지 않겠다고 용을 쓰며 버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선답자 누군가가 야광 봉을 세우고 밧줄로 가이드를 해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마저 없었다면 온 산이 너덜바위 천지이니 대간길을 찾아 오를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도상의 황철봉(4:40) 정상이라 생각되는 쪼뼛한 봉우리에서 내려보는 속초시의 야경은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참말로 기가 막힙니다. 그렇게 너덜지대를 죽으라 올랐는데 저항령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도 너덜지대이니 산 전체가 온통 바위덩어리로 쌓여있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세찬 바람이 잔설을 다 날려 내리막길은 눈으로 인한 미끄럼의 어려움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항령(5:11)에서는 암봉의 연속이고 30분만 더 진행하면 마등령이 나온다는 일행 중 한사람의 옳지 않은 정보로 말미암아 죽으라 걸었건만 2시간 동안 거대한 산봉우리만 우릴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날은 밝아오고 재수좋게 마등령 정상(7:10)에서 아침 일출을 맞이합니다. 오래간만에 맞는 대간길 일출입니다.
마등령에서 단속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 한마디에 부리나케 내려가니 마등령은 단속 나올 그런 장소가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말로만 들어오던 공룡능선입니다. 쭈뼛 쭈뼛한 바위들 형상이 공룡 등을 닮았다 하여 공룡능선이라하고 우측에 펼쳐진 용아장성도 공룡의 이빨을 닮았다고 그렇게 이름 지었다하니 옛날 공룡과 설악은 무슨 깊은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부터 각자 행동으로 재주껏 한계령까지 도착하면 된다는 운영진의 오더가 떨어졌습니다. 공룡능선을 기점으로 뒤로는 나한봉과 범봉이 받쳐주고 맞은편엔 중청봉, 대청봉이 멋지게 조망되며 좌로는 울산바위 너머 속초시와 동해바다가 펼쳐졌으며 우로는 용아장성, 귀때기청봉등 설악산이 보여 줄수 있는것은 모든것을 적나라하게 다 보여줍니다. 지금 얼마를 더 걸어야 할지 망각한채 설악의 경치에 흠뻑 빠져 쉬엄쉬엄 거북이 걸음으로 가며 사진을 찍기에 바빴는데 일순간 일행들은 이미 눈 앞에서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내 생애 이런 멋진 산은 처음입니다. 희운각대피소(11:20)에는 당연이 식수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벌써 동파에 대비해 수도꼭지를 밀봉시켜 놓았습니다. 3,000원이라는 거금으로 한통의 물을 구입했습니다.
점심식사하기엔 약간 이른 시간이라 중청대피소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곧바로 소청봉을 향해 출발 합니다. 새벽 초입부터 황철봉에 힘 다 뺏기고 공룡능선에서 녹초가 되었는데 눈까지 내린 급경사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그렇게 힘을 쓰고 있으니 체력은 완전 고갈되고 배까지 고파 한발자국 옮기기도 힘듭니다. 안가면 안되기에 한발 두발 억지로 전진하다 보니 결국에는 봉정암 갈림길이 있는 소청봉(12:49)에 올라서게 됩니다. 소청에서 중청, 대청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에는 모자를 잡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손이 시릴 정도는 아닙니다. 거대한 안테나군을 형성해 놓은 중청봉 허리를돌아 중청대피소(13:06)에 도착하게 되고 취사실 안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습니다.
꿀맛 같은 휴식으로 체력을 보충하며 뒤쳐져 오는 일행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지만 막상 바로 눈앞의 대청봉 가는것은 접기로 했습니다.
충분한 휴식이 있은 뒤 서북능선을 타고 귀때기청봉을 향해 다시 발길을 재촉합니다. 끝청봉(15:07)에서 바라보는 겨울 설악은 공룡능선에서와는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이제는 부드러움입니다. 우리 일행보다 약간 앞서 출발한 다른 일행들과는 한 시간의 간격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는 마음이 바빠집니다. 그다지 높낮이 없는 눈 덮인 길을 가끔 엉덩방아 찧어가며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어쩌자고 이런 어마어마한 곳에 자식들을 데려오려고 생각했는지 부모 잘못 만난 어린 초딩들의 지친 얼굴들이 가끔 눈에 띕니다. 마등령에서 올랐던 태양이 한계령으로 넘어갑니다. 하루 만에 일출과 일몰을 대간하는 중에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또한 참 아름답습니다.
한계령 갈림길(17:24)에서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합니다. 하산이라기에 그냥 내려만 가면 되는줄 알았지만 나의 오산이었습니다. 처음 1Km 구간은 오르내림이 장난 아닌 힘든 길의 연속이다가 그 다음 1Km는 돌 바닥의 길이 끝 모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엄청난 길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합니다. 기준을 벗어난 높은 계단에서는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로 말했습니다. 무르팍의 도가니 다 닳아 없어지겠다고.
고맙게도 아무 탈없이 한계령(18:41)에 내려서게 되고 대간 길에서 가장 힘들다는 미시령부터 한계령구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설악산은 오늘 하루동안 내게 모든것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최고의 멋진날을 선사했습니다. 과연 설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그런 설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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