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2. 3. 18 (당일)
◈ 어 디 를 : 호남정맥 열두 번째 구간(개기재~큰덕골재) – 계당산, 고비산
◈ 누 가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안개비 후 흐림
◈ 정맥 산행시간 : 137 시간03 분(12구간: 8시간 00분)
14 일차 개기재(6:00)→큰덕골재(13:33) 7시간 33분
접근거리 : 큰덕골재(13:33)→대덕마을(14:03) 30분
◈ 정맥 산행거리 : 245.2Km (12구간: 16.4Km)
14일차 : 16.4Km, 접근거리: 1.3Km
◈ 총 산행거리 : 개기재→계당산→예재→봉화산→가위재→고비산→큰덕골재→대덕마을 (약 17.7Km)
지난주 내내 고집통의 몸은 고뿔로 인해 거의 초죽음 상태입니다. 더구나 사내 승격자 발표로 인해 고집통 저가 승격한 것도 아닌데 술자리에 불려 다니는 일이 너무 많아 심신이 많이 고통스럽습니다. 혹자는 평소 고집통이 세상 잘 살아 그런 자리에 초청이 많다면서 감기에는 소주에 고춧가루 풀어서 마시면 바로 직방이라고들 합니다. 감기몸살에 술 마시는 일은 불난데 기름 뿌리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을 진데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왜 귀에 그렇게 쏘옥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이도 마셨습니다. 그 방법이 참이었다면 대한민국에 노벨 의학상 수상을 진작 했을 겁니다. 덕분에 지난 일주일 아주 맛이 가버렸습니다. 그런 몸을 이끌고 호남정맥 열두 번째 산행을 나섰습니다.
개기재 차로에 산토끼 세 가족이 놀러 나왔다가 차량 불빛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로 한가운데에 그냥 멈춰서 버립니다. 겁에 질려 뒤돌아보는 산토끼의 모습이 앙증스러운데 저러다 로드 킬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심히 걱정입니다. 안개비로 인해 앞뒤 구분이 되지 않아 개기재(6:00)의 산행 들머리를 한참 동안 찾아 헤매다 가까스로 찾아냈습니다. 직접 때리는 빗방울은 아니지만 안개비가 옷에 묻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이러나저러나 옷 젖는 것은 매 마찬가집니다. 제법 긴 시간을 올랐다 생각할 즈음 부근에 나무 벤치가 준비된 헬기장(7:00)이 나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매년 5월이면 철쭉축제를 하는 곳인가 봅니다. 머지않은 곳에 계당산(7:20) 정상이 나왔으며 2011년 봄날에 걸어 두었던 철쭉제 플랜카드가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참말로 남사스런 일입니다.
지난 겨울추위를 잘 이겨낸 춘란들이 꽃대를 살며시 밀어 올렸습니다. 오늘도 꽃샘추위로 여전히 차가운 날씨지만 봄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쁜 모습 보여주는 난 꽃이 경이롭습니다.
안개로 인해 한치 앞도 구분이 되지 않는데 산 아래에서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윙윙거립니다. 아마도 새로 뚫렸다는 예재 터널 바로 위에 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헬기장을 지나고 나니 이젠 그 역할을 다하고 난 26번국도 예재고개(9:33)가 나타납니다. 가끔 우리 같은 정맥꾼이나 이곳을 지나갈까 길 아래 터널이 생긴 이후로는 아무도 지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날씨가 궂은 관계로 조망하고 쉴만한 끈덕지기가 없어 앞만 보고 달렸기에 벌써 오늘 가야 할 길의 절반을 지나왔습니다.
온수산(9:49) 정상을 지나고 시리산(10:06) 정상도 나옵니다. 봉화산(10:15) 오르는 등로에는 유난히 가시넝쿨이 많습니다. 가시넝쿨 또한 다른 식물보다 한발 앞서 봄소식을 전해줍니다.
가위재(12:03)를 지날 즈음에서야 오전 내내 애먹이던 안개가 서서히 걷혀나갑니다. 지난번『똥벼락』에 이어 오늘은 『부산 산사람들』에 대해 연구해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산행 중 이벤트도 없고 지역에 얽힌 설화도 없어 딱히 산행기에 적을 내용이 없으니 내게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시그널 한 개씩을 선택하여 분석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알바를 예방해 주는 이런 시그널들이 초행길인 내겐 무조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고비산(12:16)에 오릅니다. 오르기 힘들어 마지막 고비라서 이름이 붙여졌나 생각했는데 그 고비가 아닌 모양입니다. 덕암산(12:39)도 지납니다. 남들은 방화선이라 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약 5m 폭으로 나무를 잘라내고 길 아닌 길을 내어놓았습니다. 동해안 산불 났을 때는 60m 계곡도 불꽃이 훨훨 날아다녔다는데 무슨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장흥군청에 근무하신다는 예닐곱 명의 산님들이 산모퉁이에 자리를 펴고 있습니다. 김으로 만든 부각이 맛있다며 한 주먹을 권합니다. 다음 정맥길에 장흥에 오면 연락하라며 처음 보는 내게 선뜻 명함을 내밉니다. 군청 직원답게 장흥 토요시장과 키조개 삼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큰덕골재(13:33)가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오늘 산행은 시간상으로 너무 일찍 끝나버렸습니다. 곰재까지 연장해서 갈까 아니면 오늘 목표로 한 여기까지만 할까 망설이다 여기서 멈추기로 하였습니다. 이양 개인택시 기사님께 전화하니 손님을 태우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답니다. 대덕마을(14:00)까지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로 하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고생시킨 고뿔이 떨어지지 않아 호남정맥 하면서 땀 한번 쏙 빼고 나면 제 풀에 떨어져 나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새벽 비를 맞고 상태가 더 나빠져 버렸습니다. 감기에는 소주에 고춧가루도 아니고 등산도 물론 아니었습니다. 충분한 휴식과 보신으로 몸을 추스르는 일 외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뿔은 정말 무섭습니다. 호랑이보다 곶감보다 귀신보다 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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