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호남정맥[완]

[호남정맥 - 13] 12년 4월도 내겐 잔인했다

산안코 2012. 4. 11. 21:01

◈ 언            제 :  2012. 4. 08 (당일)
◈ 어     디    를 :  호남정맥 13구간(큰덕골재~피재) 군치산, 가지산
◈ 누            가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아주 맑고 약간의 바람
◈ 정맥 산행시간 :  155시간47분(13구간: 11시간 10분)
                         15일차 큰덕골재(5:50)→피재(17:00) 11시간 10분
◈ 정맥 산행거리 :  265.1Km(13구간: 19.9Km)
                         15일차: 19.9Km
총    산행거리 : 큰덕골재→군치산→숫개봉→봉미산→곰치→백토재→국사봉→깃대봉
→땅끝지맥 분기점→삼계봉 →장고목재→가지산→피재( 약  19.9 Km)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 곰치휴게소 식당에 불이 꺼져있습니다. 분명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놓는다고 아주머니와 지난 금요일 전화통화까지 했건만 실로 낭패입니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돌려봐도 역시나 불통이니 꼼짝없이 아침밥을 굶고 산행을 하게 생겼습니다. 딱히 방법이 없으니 곰치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오늘 산행 목적지 피재의 싸리나무집 앞에 주차를 시키고 장평 개인택시 기사님께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잠결에 전화를 받으신 택시기사님(061-373-7184)이 흔쾌히 피재로 나오시겠답니다.
택시의 바닥과 옆면은 돌부리와 나뭇가지에 생채기를 당하면서도 큰덕골재 오르는 비포장 임도 길을 잘도 달립니다. 투다닥 투다닥 바닥 긁히는 소리에 타고 있는 내 가슴이 새가슴이 되는데도 기사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큰덕골재 도착한 택시는 요금조차 착하디착한 13,000원을 요구합니다. 다음에 꼭 한 번 더 이용하여 착하신 기사님 살림에 작은 도움이나마 주도록 해야겠습니다.
큰덕골재(5:50)에서는 죽산 안공의 치적이 적힌 비석 하나 달랑 정맥길을 외로이 지키고 있는데 사연 있는 비석 같아 약간의 의문이 생깁니다. 절기상 춘분이 지난 지 오래되었기에 해 뜨는 시간도 엄청 빨라졌습니다. 산행 시작과 동시에 동녘 하늘에는 붉은 태양이 솟아오릅니다. 4월의 상큼한 바람이 기분을 한층 고조시켜 줍니다. 오늘의 첫 봉우리 군치산(6:35) 정상에서 꿀맛 같은 절편으로 허기진 뱃속을 채우고 나니 사기충천해지고 다리에 힘도 팍팍 생기기 시작합니다.

  

■ 비포장 길 큰덕골재 - 호남정맥 열세 번째 산행 들머리

 

■ 2012년 4월 8일 일출

 

■ 나무 세 그루가 일률적으로 이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있음

 

■ 군치산 정상의 고집통

 
   

뗏재(6:57)를 지나고 아직 파종 전인 고랭지 채소밭(7:33)도 가로질러 갑니다. 그리고 그 이름 한번 이상한 숫개봉(7:52)도 지납니다. 정맥길을 따라 춘란들이 겨우내 낙엽 속에 꼬깃꼬깃 고이 간직해 두었던 수줍은 꽃들을 지천에 피우고 있습니다. 봉미산(8:55) 정상에 올라서니 839번 지방도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웅치라고도 하는 곰치(9:20)에 내려서서는 약 100m 거리에 있는 곰치 휴게소로 이동하여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자주 오르내리는 할매표 곰탕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물론 약간의 반주도 곁들였습니다. 주방의 연세 드신 할머니를 보니 아침 식사 약속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형편이 아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습니다.

  

■ 뗏재

 

■ 춘란 - 역시 봄은 난 꽃입니다

 

■ 고랭지 채소밭 가로 지르는 산타나, 감자바우

 

■ 숫개봉의 고집통

 

■ 춘란 - 소심인가?

 

■ 봉미산 정상

 

■ 곰치 위 방공호

 

■ 진달래 막 피기 시작함

 

■ 생강나무 꽃도 피고 있음

 

■ 주인 잃은 새집 - 왜 정맥길 옆에 이런 집을

 

■ 곰치 휴게소 - 10시에 아침식사

 
  

이후 곰치에서 차량으로 딱 5분 거리에 있는 피재까지는 정맥길을 따라 가자니 무려 7시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날씨는 4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염두에 두었었는데 올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무지막지한 봄 땡볕이었습니다. 곰치에서부터 진행하는 길은 행정구역상 전남 장흥 땅일 것입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이정표들이 산 꾼들의 간지러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주어 많이도 고맙습니다. 200~300m 급 높이의 봉우리들을 몇 개 지나고 나니 백토재(11:27)가 나옵니다. 산행 중 하얀 차돌 덩어리가 많이 눈에 띄었기에 백석재라면 몰라도 백토재는 의외입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제대로인 정상석이 준비된 국사봉(11:39)에서는 봄날의 햇살 받아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씻어 내려 봅니다.

  

■ 웅치에서 국사봉으로

 

■ 국사봉 정상의 고집통

 
   

이어지는 깃대봉(12:06)에 올라서니 맞은편에 기겁할 정도의 엄청 높은 산 능선이 기다립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거부할 수 없으니 포기하고 가는데 앞서가는 감자바우가 환호성을 지릅니다. 맞은편 능선은 우리가 가는 방향이 아닌 땅끝기맥으로 연결되는 산줄기라 우린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재(12:22), 노적봉 표지판이 나오고 호남정맥과 땅끝기맥의 분기점이면서 해남 땅 끝까지117Km 라는 작은 표지석이 나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 깃대봉 정상의 산타나, 감자바우

 

■ 정맥길에 세워 놓은 들꽃향기 펜션 광고판

 

■ 노적봉, 바람재 - 땅끝기맥 갈림길 표시석

 
    
오늘 지나갈 정맥길의 고도표상에는 약 200m 고지가 15개 정도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고도표상에15 개이면 높고 낮은 봉우리가 약 50개가 포진해 있다고 보면 옳겠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얼마나 많은 봉우리를 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오의 시간이 되어 가고 드디어 4월이 잔인함이라는 무기로 압박을 가해옵니다. 왼쪽 허벅지에서 연락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딴지에서도 연락이 옵니다. 삼계봉(12:47)에 올랐습니다. 다음 또 삼계봉에 올랐습니다. 이런 또 삼계봉에 올랐습니다. 무슨 삼계봉이 이렇듯 많단 말입니까? 산행하면서 약심을 빌리지 않으려고 버틸 만큼 버텼는데 결국 마지막 삼계봉 에서 근육 이완제라는 알약 처방을 받고 말았습니다.
임도가 있는 장고목재(13:23)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적당한 그늘이 있어 자리를 펴긴 했지만 산행 중에는 그렇게 귀하던 바람이란 놈이 여기서는 심술을 부립니다. 무슨 놈의 골바람이 그리 심하던지 준비한 살림살이가 핑핑 날아갑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산불내기 십상이라 가지 산 방향으로 약간 올라가서 바람을 피해 자리를 깔습니다.

  

■ 삼계봉 정상의 고집통

 

■ 장고목재 이정표

 

    

가지산 오르 중 허벅지에 또 연락이 옵니다. 철탑이 있는 정상(15:00)에서 잠시 휴식합니다. 눈앞의 암봉이 오리지널 가지산(15:27) 정상이며 정맥 갈림길에서 약 80m 정도 벗어나 있습니다. 철판으로 만든 가지산의 정상 표지판이 땅 바닥에 나뒹굴고 있어 가슴에 보듬은 채 인증을 남깁니다.
멀찌감치 탐진댐이 있고 그 아래로 탐진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경치가 아주 좋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곳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세월을 보내는 동안 탐진강 끝자락의 갈대밭을 찾으며 조선실학을 완성 시킨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탐진이라면 나 고집통의 본관이 탐진 안 씨이니 개인적으로 작은 인연 있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아주 먼 옛날 고려 공민왕시대때 순흥군의 셋째 아들이신 탐진안씨의 시조이신 안 원린님께서 문과에 급제한 후 정당문학(政堂文學) 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내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다하여 이런 연유로 후손들이 탐진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진으로 바뀐 탐진이라는 이곳 지명이 어째 먼 동네의 남 일 같지 않고 내 마음의 고향 같습니다.

  

■ 가지산에서 본 무등산

 

■ 가지산 철탑

 

■ 가지산(암봉) 정상에서의 고집통

 

■ 가지산에서 본 탐진호와 탐진강 - 고집통이 탐진안씨니까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음

 
  
아직까지 봉우리는 계속 이어져 올랐다 내렸다의 연속입니다. 내 다리는 풀릴 데로 풀렸지만 그래도 하산이라는 즐거움이 있어 희망이 보입니다. 결국에는 표고버섯 재배지가 있는 장평면 봉림리의 싸리나무집 앞에 도착하게 되었고 곰치를 출발하여 피재(17:00)까지 무려 7시간씩이나 걸린 산행을 하였습니다. 새벽 승용차로는 딱 5분 거리인데 말입니다. 정맥길 능선이 야속하게도 완전히 오옴(Ω)형상으로 생겨 사람을 있는 데로 골탕 먹였습니다.

  

■ 피재 도착 전 표고버섯 재배지 - 장흥은 키조재 삼합이 유명 (키조개 관자, 소고기, 표고버섯)

 

■ 동물 이동통로 공사 중인 피재 - 호남정맥을 싹둑

 

■ 피재의 싸리나무집 앞 고집통 - 호남정맥 열세 번째 산행 날머리

 
   

피재는 839지방도가 지나며 싹둑 잘라놓고 터널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는데 무얼 하자는 심산인지 도대체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동물 이동통로를 만들지 않나 생각하는데 잘 하자고 하는 공사이니만큼 결과는 좋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12년 4월의 어느 하루 봄날에 잔인하게 내리쬐는 땡볕 아래에서 고통스런 허벅지 경련을 짓눌러 가며 고집통은 호남정맥 열세 번째 산행도 기쁜 마음으로 완료했습니다.
키조개 관자, 쇠고기, 표고버섯이 잘 어울린다는 장흥의 토요시장에서는 먹다가 먹다 배불러서 도저히 먹지 못할 만큼 먹었습니다. 역시 음식의 고장 전라도가 오늘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