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호남정맥[완]

[호남정맥 - 15] 꽃 지니 벌 나비 간곳없다

산안코 2012. 6. 5. 20:56

◈ 언            제 : 2012. 6. 3 (당일)
◈ 어    디     를 :  호남정맥 15구간(곰재~그럭재) – 사자산, 일림산
◈ 누            가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동천(비트)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아주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176시간 52분(15구간: 11시간 05분)
                        17일차 곰재(3:55)→그럭재(15:00) 11시간 05분, 접근거리: 2분
◈ 정맥 산행거리 : 305.8Km(15구간: 23.6Km)                  
                        접근거리: 제암산 휴양림→곰재: 1.5Km
◈ 총   산행거리 : 제암산 휴양림→곰재→사자산→일림산→한치재→삼수마을→활성산
→봇재→봉화산→그럭재(약 25.1Km)
   

꼭 한 달 만에 나서는 정맥길을 초장거리 산행으로 확정했습니다. 약간의 어려움이 예상되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거리입니다. 제암산 휴양림에서 곰재를 타고 올라 사자산과 일림산을 지나 한치재, 봇재를 넘어서고 그럭재까지 접근거리 포함 약 25Km를 진행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남해고속도로를 잇는 목포간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거제에서 제암산 휴양림(3:30)까지 도착하는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연기통에 구멍이 나버렸는지 팡팡거리며 앓고 있는 내 삼철이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휴양림은 적막강산입니다. 새벽 3시가 약간 넘어서고 있습니다.

  

◈ 새벽 세시반의 고요한 제암산휴양림

 
  
채비를 갖추고 출발 전 인증을 남기려니 카메라 후래쉬가 터지길 거부합니다. 날이 밝아지기까지 옳은 사진 찍기는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 딸내미가 유럽 배낭여행에 들고 가더니만 뭘 잘못 만졌었나 의심했는데 살살 쪼물딱거려 보니 후래쉬는 살아나고 결론은 나의 조작 미쓰였습니다.
호남정맥 열다섯 번째 접근지역 곰재(3:55)까지는 완만한 경사길이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봄철이면 유명한 제암산 철쭉제는 오리지널 제암산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오르고 있는 곰재산(4:13)에서 시행하므로 곰재산정에다 거대한 철쭉제 제단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 보이는 장흥의 반짝이는 불빛들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반면 5월 철쭉시즌 그때 얼마나 많은 산님들이 족적을 남겼는지 등로에 쌓인 먼지가 포삭포삭 날아올라 퀴퀴한 흙먼지 냄새가 콧속을 어지럽힙니다. 인근의 곰재산과 전혀 성격이 다른 완전 바위산인 사자산에 오르는 일이 만만찬습니다. 어느덧 새벽은 밝아오고 나무 데크 전망대가 보이는가 싶더니 사자산(4:40) 정상에 올라서게 됩니다.

  

◈ 곰재 - 호남정맥 열다섯 번째 산행 들머리 (카메라 조작에 문제 발생)

 

◈ 곰재산 철쭉제 제단

 

◈ 사자산 정상의 고집통

 
  
석산과 육산을 교대로 이어지는 제암산, 곰재산, 사자산, 일림산등 산군 형성 스토리가 궁금하지만 알아볼 길은 없습니다. 사자산을 내려가는 바위길이 아주 위험했으나 이후로는 아주 원만한 능선길입니다. 장흥군에서 이색적인 쉼터를 곳곳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가 호남정맥을 시작한 이래 산님들을 배려한 이정표와 쉼터 조성이 이곳 장흥군이 최고입니다. 전국의 여느 농어촌과 다름없는 남도의 시골마을을 전국 최고의 반열로 올려놓은 장흥군 단체장들과 군민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익히 토요시장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졌었는데 이곳 호남길을 지나면서 그 생각을 더욱 굳혔습니다. 하날 보면 열을 안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골치를 지날 즈음 눈부신 태양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일출을 감상했었는데 오늘은 진행하는 정면에서 그 광경을 봅니다. 호남정맥을 타고 줄기차게 남으로만 내려오다 드디어 동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호남정맥도 남은 거리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나 봅니다.

  

◈ 골치 가는 길의 휴식처

 

◈ 날이 밝아 또 다른 휴식처 - 장흥군 업적

 

◈ 호남정맥 해도 오르고 - 진행 방향이 동쪽으로 바뀌었음

 

◈ 골치재 사거리

 
  
산죽터널을 지나고 꽃 없는 철쭉나무 터널을 지납니다. 철쭉꽃이라면 전국 제일을 자랑하는 일림산(6:35) 정상에 오릅니다. 지난번 제암산을 지날 때 건너편 능선에 붉게 불타고 있던 일림산이 이젠 철이 지나 그 화려했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녹음 짙은 밋밋한 산으로 변해있습니다. 세상 이치처럼 꽃 떨어지고 화려함이 가시고 나니 벌, 나비가 찾아주지 않듯이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그렇게 붐비든 사람들이 이곳 일림산을 아무도 찾는 이 없어 우리가 일림산 주인이 되었습니다. 가끔 뒤늦게 봉우리를 틘 철쭉이 관심을 끌라 하지만 게으른 꽃들에게는 일행들 중 누구 한 사람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일림산 정상에서는 탁 트인 보성벌판과 멀리 득량만의 바다가 조망됩니다. 소나무 한 그루가 절묘하게 강렬한 아침햇살을 막아주는 나무데크에 자리 잡고 간단하게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습니다.

  

◈ 철쭉 지나가고 녹음 짙은 일림산 전경

 

◈ 철쭉나무 군락지 사이의 정맥길

 

◈ 일림산 정상에서 본 득량만

 

◈ 일림산 정상의 평화로운 모습

 

◈ 일림산 정상에서 본 제암산 임금바위

 

◈ 일림산 정상의 고집통

 

◈ 뒤돌아 본 일림산

 

◈ 그 유명하다는 일림산 철쭉

 
  
우린 알바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한치재(8:25) 도착하기 전 아미봉에서 좌측 길을 택해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일행이 무려 네 명이나 되어도   아무도 그 아미봉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직진하고 말았습니다. 직진하였다고 해서 알바를 한 것은 아니고 한치재의 절개지로 인하여 옛길을 갈수 없어 삼수마을로 통하는 새로운 호남길까지 돌아서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삼수마을로 가는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까지 가지 않아도 될 길을 약 1Km 정도 더 걸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 한치재 가는 길에 본 득량만 바다

 

◈ 보성 들녘의 녹차밭

 
    
한치재를 따라 약 100m 가니 삼수마을이라는 표지석(8:35)이 있습니다. 아미봉을 찾아 제대로 내려 왔다면 이곳으로 바로 접속했을 겁니다. 들판을 가로 지르는 농로를 한참 동안 걸어갑니다. 농로 변 뽕나무에는 까만 오디가 지나가는 산객을 유혹합니다. 삼수마을 정자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삼수재까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시멘트 길을 오릅니다. 삼수재에서부터 임도길을 쭈욱 타고 가야하고 활성산까지 삥 돌아서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활성산(9:40) 정상을 막 넘어서고서는 온 산이 녹차 밭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보성 땅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봇재다원에서 철조망을 쳤나 본데 그냥 밟고 넘습니다. 봇재가든(10:20) 뒤 텃밭으로 길은 연결되고 무시무시하게 큰 개 두 마리가 왕왕거리다 우리가 근처에 접근하니 순한 양이 되었다가 우리가 멀어지니 또 왕왕거립니다. 겁이 참 많은 놈들입니다.

  

◈ 한치재 주차장을 통해 내려와서 삼수마을로

 

◈ 삼수마을 가는 길목의 오디나무에 관심 가진 감자바우, 동천

 

◈ 삼수마을로 가는 농로

 

◈ 삼수재까지 콘크리트길이 쭈~~욱

 

◈ 활성산 중턱까지 올라 온 녹차 밭

 

◈ 봇재 전경

 

◈ 봇재가든의 순진한 개 두 마리

 
  
보성에 도착했으니 녹차와 꼬막 관련 음식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봇재가든에서 녹차꼬막 비빔밥을 주문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맛없으면 돈 안 받겠다 하시고 옆자리에 식사하러 오신 아저씨께서는 여기가 보성이 아니랄까 봐 뻥 단수가 9단 이상입니다. 이 근처 산에서 혼자 노루를 쫓아 맨손으로 두드려 잡았다 하시는데 얼핏 보아 그럴 신체구조는 아닙니다. 보성 벌교에서 돈 자랑 힘 자랑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합니다.

  

◈ 봇재에서의 고집통

 

◈ 봇재주유소와 꽃

 

  
봇재주유소(11:15) 옆을 따라 봉화산으로 오릅니다. 녹차 밭 주위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길이 상당히 멀며 거의 임도 길을 걸어야 합니다. 산 능선에는SK, KT, LG  텔레콤 송신탑들이 줄지어 나오고 그에 따른 전봇대들이 촘촘히 온 산을 뒤덮어 산 모양새가 흉물스럽습니다.
나라가 위급할 때 불을 지펴 조정에 알리는 봉수대가 깔끔하게 정돈된 봉화산(13:02) 정상에 올라섭니다. 낡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2층짜리 팔각전망대와 군민들의 체력증진에 사용하라고 운동기구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 시절 보성 군수님이 뭘 잘했는지 치적을 기린 거대한 돌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서 운동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세금 낭비의 표본입니다.

  

◈ 봉화산 가는 길에 본 봇재 주위 녹차산

 

◈ SK, KT, LG .... 송신안테나 그리고 전봇대

 

◈ 봉화산 정상 전경

 

◈ 봉화산 정상 모습 - 팔각정, 운동기구들 (누가 475m를 올라와서 운동할런가?)

 
  
그럭재로 내려가는 길의 거리 표지판이 가관입니다. 10분을 가고 또 10분을 지나가도 같은 거리가 표시된 이정목이 나옵니다. 숫자 하나 틀리지 않은 이정목 세 개를 지나고 나니 짜증이 나려고 할 때쯤 급기야는 네 번째 이정목의 표지판을 누군가가 아주 부숴놓았습니다. 아침나절 지나온 장흥군과 지금 지나고 있는 보성군은 천양지차입니다. 보성군에는 돈은 많은 것 같은데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은 이웃 마을에서 벤치마킹 하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바람재(14:38)를 지나고 칡넝쿨 우거진 밀림지대와 잘 정돈된 편백나무 숲도 지나고 2번국도 그럭재(15:00)에 내려섰습니다. 그럭재 트럭주막의 냉 칡즙이 갈증을 확 풀어줍니다.

  

◈ 바람재(풍치재) 모습

 

◈ 아마존 밀림지대 모습

 

◈ 편백나무 숲을 지남

 

◈ 럭재(기러기재) - 호남정맥 열다섯 번째 산해 날머리

 
  
불과 몇 주 전 철쭉꽃이 만개했을 적에는 제암산, 일림산에 사람으로 인산인해로 발 들일 틈조차 없었는데 오늘은 딱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산 좋아해 보이는 아주머니와 스마트폰 음악에 빠진 중딩 정도의 아들래미였습니다.
꽃 없으면 벌, 나비는 오지 않겠지만 그 숲 속에는 텃새가 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텃새가 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