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2. 7. 07 (당일)
◈ 어 디 를 : 호남정맥16 구간(그럭재~주랫재) – 주월산, 존제산
◈ 누 가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흐렸다 맑았다 오락가락 후 보슬비
◈ 정맥 산행시간 : 187시간 10분(16구간: 10시간 18분)
18일차 그럭재(4:08)→주랫재(14:26) 10시간 18분
◈ 정맥 산행거리 : 350.8Km (16구간: 22.8Km)
◈ 총 산행거리 : 그럭재→오도재→방장산→주월산→무남이재→광대코재→유암재→존제산→주랫재(약 22.8Km)
원조 전주콩나물해장국 집은 전국 어느 지역에나 있듯이 순천에도 있습니다. 살짝 데워진 날계란에 김을 섞어서 수프처럼 먹어준다면 그 맛이 일품이라는데 우린 천지도 모르고 해장국에 계란과 김을 함께 넣고 휘저었습니다. 좋은 것이 눈앞에 있으면 뭘 합니까?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인걸요. 호남정맥 열여섯 번째 아침식사를 해결하러 새벽 3시에 일부러 순천을 찾은 결과입니다.
안개 자욱하여 한치 앞 구분이 되지 않는 주랫재에 도착하고 잠시 후 겸백택시 할배 기사님이 꼭두새벽 안개를 가르며 나타나십니다. 벌교 표준어를 사용하시는 기사님께서 들려주시는 요지경 손님들과의 재미있는 해프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내 그럭재에 도착합니다.
그럭재(4:08)는 옛 지명이고 지금은 기러기재라 불리며 우리는 2변 국도변에서 호남정맥 열여섯 번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호남길에서 약간 벗어나있는 대룡산 정상을 찾아가겠다고 지도에 표기까지 해 갔으나 어두운 밤길이라 놓쳐버렸습니다. 앞서가는 감자바우는 그렇게 캄캄한 와중에도 영지버섯을 잘도 찾아냅니다. 최근 장마철이라 호남정맥 하시는 분들이 뜸했었나 봅니다. 덕분에 내가 오늘 횡재하였습니다.
『따? 말어?』문자 날렸습니다. 마눌님에게서 바리바리 답장이 날아옵니다.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따』알겠습니다.
초암산 가는 길목 오도재(6:09)에 도착하니 산의 절반을 뚝 잘라 어딘가로 이동해버리고 없습니다. 아마도 인근의 고속도로 공사하면서 가져가버린 것 같습니다만 꼴 사납습니다. 국사봉(6:57)에서는 득량만 바다와 그 앞 평야도 볼만한 경치입니다. 산 복숭아, 때죽, 다래, 돌배, 계피등 온갖 열매란 열매를 다 만나고 산도라지, 영지버섯, 목이버섯 등까지 만나니 이곳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천연 보물창고입니다. 파청치(7:27)에서부터는 짜증스런 아스팔트 급경사가 이어집니다. 수남마을 샘터 갈림길(7:46)을 지나 방장산(7:54) 정상까지 참 멀고도 먼 길입니다. 어마어마한 KT송신탑을 관리하기 위해 그렇게 시멘트 길을 만들었나 봅니다.
옛날에 득량만의 바다 물이 불어 배가 넘어갔다 하여 배거리재(8:54)란 고개가 있고 또 주월산(舟越山)이라 이름 지어졌다 하는데 지난해 동일본의 쓰나미를 능가하는 거대한 쓰나미가 여기에도 있었던가 봅니다.
주월산(9:02)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으며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을 운동기구가 설치되어있고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까지 조성해 놓았습니다. 올 봄 초암산의 철쭉 산행 길에 하산한 무남이재(9:54)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리고 있던 하늘이 싹 개어 햇살이 강렬해 졌습니다. 고갈된 체력을 위해 약간의 에너지를 보충하고 광대코재로 올라갑니다. 오늘 방장산에 이은 두 번째 고비길 입니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 지경이 되어서야 초암산 갈림길인 광대코재 삼거리가 나오고 바로 613봉(10:40) 정상에 올라섭니다. 준비해 간 족발이 눈 앞에서 없어질 즈음 그렇게 좋던 하늘에서 부슬부슬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참말로 얄궂은 날씨입니다.
그렇게 많은 비는 아니지만 배낭커버를 씌워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린 호남길을 의심했습니다. 여태까지의 등산로와는 완전히 판이한 길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찔레넝쿨과 산딸기넝쿨이 길을 막았으며 온갖 잡풀들이 등로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시가 팔다리에 사정없이 파고듭니다. 더구나 빗물이 바지를 타고 내려 신발 속이 흥건하게 젖어 질척거립니다. 그나저나 산타나가 걱정입니다. 오늘 출발할 때부터 18만 원짜리 새 바지를 입었노라고 자랑이었는데 그 가시들이 새 바지라고 사정을 봐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산행은 계속되어 고흥지맥 갈림길(11:50)을 통과하고 최근 새로 포장공사를 마무리한 모암재(12:05)가 나옵니다. 동물이동 통로에는 얼마 전 식목한 나무의 넘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촘촘히 묶어둔 밧줄 때문에 지나가기가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세 번째 고비길인 존제산 오름은 이전의 방장산과 광대코재를 능가합니다. 이전에는 공군부대가 주둔하여 호남길을 우회하였으나 언제부턴가 부대가 이전해가고 새로 길이 열린 곳이기에 선명하지 못한 길과 무성하게 자란 잡초며 가시넝쿨로 최악의 길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가고 있는 호남길이 옛날 지뢰밭이었고 아직도 지뢰가 묻혀 있을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휴전선에서나 있을법한 둥글게 말린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숨 또는 발목을 저당으로 잡힌 채 우리가 산행을 하고 있다는 이야긴데 모르고 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과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여기서 통합니다. 세상사 몰라서 이득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알아야 할 걸 모르고 산다는 것만큼 어리석고 비참한 인생도 없을 겁니다. 물론 배워서 알 일이라면 배우고 익히면 되겠지만 배워서 알 일이 아닌 일이라면…. 그것참, 할 말이 없습니다. 모르고 사는 것이 약입니다.
철조망 밑으로 통과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한참을 우왕좌왕하다 좌측으로 희미하게 난 흔적을 따라 숲을 헤치고 약 10m 가량 이동하니 선답자들의 발길에 망가진 철조망이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한평생을 살다간 애국견을 기리는 군견묘지 비목(12:50) 앞을 지나갑니다. 요즘 세상에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자주 매스컴에 등장하곤 하는데 그 숭고한 개 정신을 인간들이 본을 받으라고 고이 묻어 놓고 비목까지 새워 놓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더 철조망을 지나고 그 철조망세 설치 된 철문을 지나고 나니 안개 속에 폐허가 된 공군부대 막사와 연병장이 나옵니다. 바람에 철문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말이지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존제산 정상은 약간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하나 정말로 지뢰가 묻혀있을지 모르니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군부대 연결도로변에 자리를 펴고 채 배낭을 열기도 전에 두 명의 군인이 정상 쪽에서 탈랑탈랑 내려오고 있습니다. 순간 아이쿠 뭣이 잘못되었구나 생각하며 잠시 긴장했었는데 주말 오후 바람 쐬러 내려오다 우릴 만난 것입니다. 오늘 산행 시작한 이래 만난 사람이 민간인이 아닌 이들 군인 두 명이 전부였습니다. 내 아들보다 어린 병사라 생각하니 배낭 속의 먹거리를 모두 다 주고 싶어졌습니다.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단체사진도 한 장 남겼습니다.
비포장 부대 진입로인 임도를 따라 하염없이 내려갑니다. 그리고 산길(14:02)로 진입 하였다가 또 다시 임도를 만납니다. 잠시 후에 오늘 새벽 주차를 위해 들렀던 주랫재(14:25)에 도착합니다. 주랫재에는 보성군에서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고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선생님 문학비와 팔각정을 세워 놓았습니다. 여순사건을 비롯하여 6.25를 전후로 하는 시대의 아픈 역사가 주무대라 하니 시간 나면 소설 태백산맥을 읽도록 해야겠습니다.
가시넝쿨과 철조망에 긁혀버린 18만 원짜리 산타나의 새 바지가 걱정입니다. 풀독이 올라 벌겋게 부풀어 오른 내 팔뚝이 근지럽고 많이 아립니다. 벌교읍내 국일식당의 꼬막정식이 하루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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