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호남정맥[완]

[호남정맥 - 18] 태풍 산바의 횡포를 당하다

산안코 2012. 9. 22. 20:16

◈ 언            :  2012. 9. 22 (당일)

◈ 어         호남정맥 18구간 (접치 ~ 송치) – 오성산, 바랑산

◈ 누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아주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210시간 08 (18구간 : 10시간 55)                            

                          20일차 접치 (5:35) → 송치 (16:30) 10시간 55

◈ 정맥 산행거리 :  369.4 Km (18구간 : 18.6 Km)   

     산행거리접치→오성산→유치산→희아산 삼거리→노고치→문유산 삼거리→바랑산→송치 (18.6 Km) 

 

 

얼마 전 대한민국을 관통해 지나간 태풍 산바의 위력이 엄청났었음을 실감했습니다. 매스컴은 사라와 매미의 위력과 맞먹는 크기라며 야단을 떨었지만 나로써는 그다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호남길에서 그 위력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족히 백 년은 넘었음직한 소나무들이 허리가 똑딱 꺾여 버렸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뿌리 채 쑥 뽑아 놓아 순천 일대 호남길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초토화 시켜놓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행에 별 문제가 없었을 호남길이 산바의 횡포로 인하여 나무들이 어지럽게 어질러져 가는 발길을 많이도 붙잡았습니다. 가끔 꺾인 나무 아래로 기어서 통과해야 할 일이 생겼고 넘어진 나무를 타고 넘어야 할 일도 생겼으며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 때는 가시 밭 길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며 돌아가야 할 일도 생겼습니다.

접치재(5:35)의 커다란 물 탱크 옆을 지나고 최근 깔끔하게 벌초한 묘지를 스쳐 지나면서 임도길을 따릅니다. 헤드랜턴을 켰다지만 안개로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아 출발과 동시에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별일이 없으리라 믿고 산꼭대기를 향해 풀섶을 헤치고 올라가니 가파른 오성산 정맥길을 만나게 됩니다. 길을 막은 나무들로 인해 돌아 가기도 하고 가끔은 수그리기도 하고 그 위를 넘기도 하다 결국 미끄러지면서 무르팍에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촛대뼈가 느끼는 아픔의 정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 안개 덮인 접치재 - 호남정맥 열여덟 번째 산행 들머리

 

◈ 접치재 물탱크

 

◈ 태풍 산바의 횡포에 넘어진 소나무

 

  

오성산(6:22) 정상에 올라서니 멀리 광양 하늘에서 벌겋게 태양이 솟아오릅니다. 한동안 그 모습에 매료되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반대쪽 하늘에 선물이 한 가지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남정맥 산줄기에 걸려 넘지는 못하고 걸려있는 솜구름이 서쪽하늘 일대를 하얗게 뒤덮고 있어 이 또한 일대장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남들은 꿈속에서 구름을 타고 있을 시간에 나는 산속에서 구름을 타고 있습니다. 힘들기로 치자면 내가 훨씬 힘들겠지만 그 맛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살얼음 생탁과 함께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 오성산 정상의 고집통 - 그런대로 폼은 괜찮습니다

 

◈ 오성산 정상의 송신탑과 산불 감시초소

 

◈ 오성산 오르다 넘어진 소나무를 밟고 넘다 미끄러지며 까져버린 촛대 뼈 - 아파 죽는 줄 알았음

 

◈ 오성산에서 바라 본 일출 - 이 맛

 

◈ 오성산 정상에서 생탁 준비하는 감자바우 - 또 이 맛

 

◈ 오성산 아래 자욱하게 깔린 구름 이불 - 산에 오르는 세 번째 맛

 

 

걸음걸이는 도통 진도가 나지 않습니다. 벌목지대(7:40)는 완전 쑥대밭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유치산 정상에 올랐지만 아무런 표시가 없습니다. 유치재(8:38)를 지나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개새끼 한 마리가 길을 틀어막고 무서운 기세로 짖어댑니다. 개새끼는 나를 보고 놀라고 나도 갑작스런 개새끼의 출현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 태풍 산바의 횡포가 이렇게 소나무를 초토화 시켰음

 

◈ 난 가지 말아야 될 길은 굳이 막지 않아도 가지 않습니다

 

◈ 뱃바위 삼거리 표지판 - 개새끼라는 놈을 만나 깜짝 놀람

 

◈ 농장 전경

 

◈ 구름 속에 잠긴 전라도 위쪽

 

 

~~ 뱃바위(9:03) 오르는 길이 정말 힘듭니다. 이름 그대로 옛날에 배를 묶은 바위라 하니 지난 조계산에서도 배 바위가 있었는데 이곳 인근에는 정말로 산꼭대기에 배를 묶을 그런 일이 있긴 있었나 봅니다. 막상 그 바위에 오르고 보니 뱃바위가 아닌 유치산이란 정상석이 떡 허니 버티고 있습니다. 지도, 고도표 등 어느 곳을 훑어 보아도 분명 뱃바위 이거늘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유치산이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건 순전히 사기입니다. 잠깐 후 희야산 삼거리가 나오고 헬기장이 있습니다. 근처에 명당자리를 잡고 오미자주 기본으로 우럭, 도다리, 돌돔. 쥐고기 횟감으로 판을 벌였습니다. 호남정맥 하면서 횟감으로 자리 깔기는 처음이며 그 맛은 한마디로 셋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깜빡 죽여주는 안줏감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른 오전부터 두 다리는 풀려버렸습니다.

 

◈ 뱃바위에 심어 놓은 유치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고집통

 

◈ 봐도 봐도 멋있는 운해

 

◈ 한번 더 운해를 보고

 

◈ 여덟 가지 중 잘린 한 가지 -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을까?

 

 

놀랍게도 노고치 방향에서 젊은 산님 한 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희야산을 오르고 있다 하는데 정말 힘들어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산님 한 분이 또 뒤따라 올라 오시고 만사가 귀찮은 듯 일행들의 인사에 아무런 대꾸 한마디도 없이 그냥 스쳐 지나칩니다. 875번 지방도 노고치까지는 예상외로 멉니다. 조금 전 올라간 두 분의 산님들 일그러진 표정이 충분이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노고치(11:20)에서는 잘 익은 밤송이들이 가는 발길을 자꾸 유혹하지만 갈 길이 너무 멀어 욕심을 버립니다.

 

◈ 노고치의 고집통

 

◈ 노고치 월등면 밤나무

 

◈ 이 열매 이름을 난 몰라요

 

◈ 점토봉 정상

 

◈ 봉수대인가? 아니면 고인돌인가?

 

 

노고치농장을 가로질러 지나야 하지만 농장주인님이 싫어한다기에 바로 옆의 벌목 지 임도길을 타고 올라가기로 합니다. 새벽 안개가 짙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가을 햇살이 죽여주도록 내리 쏟아 붓습니다. 벌목으로 인해 그늘이 없어 더워 미칠 지경인데 조금 전 그렇게 맛나게 마셨던 오미자 술이 온 몸을 확 달아 오르게 만들어 버립니다.아마도 고산삼거리(12:43)였었나 봅니다. 문유산 100m 이정표를 보고 희망을 가졌건만 아무리 가도 그 놈의 문유산은 나오질 않습니다. 1Km 를 지났다 생각될 즈음 엉성한 문유산 삼거리(13:23) 표지가 걸려있습니다만 육신이 너무 힘들어 문유산 찾아가는 일은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 문유산 이정표가 있는데 100m 거리에 문유산 정상 있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

 

◈ 문유산 갈림길에서 문유산 가는 일은 포기함

 

◈ 임도에 벌초하러 오셨나 왠 RV 차량이

 

 

넓은 농원(14:35)을 조성하는 양 기존 나무들을 깔끔하게 베어내고 엄청 많은 묘목들을 심어 놓았습니다. 분명 과수나무일 것이라 생각은 되지만 어린 묘목들이라 이름은 알 수가 없습니다. 중간중간 묘목 급수용 수도시설이 있어 식수를 보충하고 머리도 감아보며 더위를 식혀 봅니다. 머지않은 곳에 바랑산 정상이 보입니다. 마음 같아선 금방이라도 올라설 것 같으나 몸이 그렇게 따라주지 않습니다. 바랑산(15:26) 삼거리를 약간 지나 정상이 있어 인증을 남기고 아주 긴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물론 산바가 넘어뜨린 나무 밑을 수그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타고 넘기도 해가면서 말입니다.새벽에 주차시킬 때는 보이지 않았던 넓은 주차장과 야망연수원 건물이 있는 구17번 국도 송치재(16:30)에 내려서면서 머나먼 열여덟 번째 호남정맥길을 힘들게 마무리합니다. 송치재 바로 밑의 계곡 개울가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 이 농장은 어디?

 

◈ 농장 수돗물로 머리도 감고 식수도 보충하고

 

◈ 바랑산 정상의 고집통

 

◈ 느티나무는 아니고 정말 오래된 보호수

 

◈ 송치의 야망 연수원

 

◈ 서면 송치재 구 지방도로

 

◈ 송치재에서 고집통 - 호남정맥 열여덟 번째 산행 날머리

 


송치마을 레스토랑의 수제비와 돈까스는 여느 레스토랑에 비해 크기가 두 배 이상이라 배가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몹쓸 태풍 산바란 놈 때문에 촛대 뼈에 큰 상처를 입어가며 애초 예상한 거리보다 2Km는 더 걸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