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낙동정맥[완]

[낙동정맥 – 11] 더위 먹고 아들래미 기(氣) 받다

산안코 2013. 5. 26. 17:32

■ 언            : 2013. 5. 25 (당일)

■ 어          : 낙동정맥 11구간 (배내고개~소호고개) – 가지산, 고헌산, 백운산

■ 누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20명과 고집통

■ 날            : 맑고 너무 더웠음

■ 정맥 산행시간 : 145시간 15 (11구간 : 13시간 54), 접근구간 : 18

                         배내고개 (5:04) → 소호고개 (18:58) 13시간 54

■ 정맥 산행거리 : 323.5 Km (11구간:26.8 Km), 접근거리:소호고개→태종마을: 1.5 Km

                        알바거리 : 문복산 갈림길→문복산 (왕복) 6.6 Km
    산행거리 : 배내고개→능동산→석남산→상운산→운문령→문복산→문복산갈림길
→외항재→고헌산→소호령→백운산→소호고개→태종마을 ( 35.9 Km) 

 

『포기』란 배추나 무 등을 세는 단위라 했습니다. 백두대간을 시작한 이래 금남호남, 호남, 낙동, 금남을 수태 밟아가면서 아직 한 번도 포기를 해보지 않았고 그런 단어는 애초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나 고집통은 이번 낙동정맥 열 한번째 길에서 애석하게도 중도포기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리와 시간을 넘어서면서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혹시 닥칠 위험을 대비해 과감하게 중도포기라는 결단을 내리고 일행들에게서 이탈을 했습니다. 그러다 잘못된 판단임을 깨닫고 약간의 시간을 두고 몸을 추스른 후 포기라는 것은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란 걸 깨닫고 이내 대열에 합류하여 목적지까지 종주해내는 나만의 저력을 발휘해 냈습니다.

낙동정맥 열한 번 째날 기상청에서는 30도를 상회한다는 무더운 날씨가 예보되었고 산악회에서는 낙동길 시작하고 최장거리인 28Km 1,000m이상 고도를 오르내리는 영남알프스 당일치기 산행고지가 올랐습니다. 최근 어느 정도 체력에 자신이 붙어 크게 긴장하지 않았지만 전날 예정된 회사 당직이 약간 마음에 거슬립니다. 10시가 지나서야 퇴근하여 배낭을 채비하고 눈을 막 붙였는가 싶었는데 탁상시계가 시끄럽게 울어 됩니다. 새벽 2시가 되었으니 낙동길을 가야 하니 집을 나서야 한답니다. 감사하게도 마눌님이 그 시간에 낙동길 나서는 나를 위해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차수를 이어서 소호고개에서 남진해야 하나 태종마을에서 소호고개까지 올라가는 접근거리가 만만찮고 결정적으로 하산 후에 알탕하기 편한 쪽을 찾다 보니 배내고개에서 북진하여 태종마을로 하산하면 바로 개울가가 있어 알탕에 안성맞춤이라는 결정으로 대경이 버스는 배내고개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와 본 배내고개는 예전에 없었던 터널이 생겼고 주차장에는 뭘 만드는지는 몰라도 볼썽 사나운 공사판이 벌어졌습니다. 아직 이른 새벽인데 포크레인이 우르릉 쿵쾅거리고 있습니다. 잠깐의 시간을 두고 개인적으로 몸을 풀고 배내고개(5:05)를 출발하여 능동산을 향해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갑니다. 멀리 울산 쪽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의 모습이 녹음 우거진 나뭇가지 속으로 언뜻언뜻 비칩니다. 오늘 하루 땡볕으로 인해 몹시 힘들 것을 예고합니다.

  

■ 배내고개의 고집통 – 낙동정맥 열 한번째 산행 들머리

 

■ 능동산 오르다 본 일출

 

 

능동산 삼거리 200m 위에 능동산이 있다지만 오늘은 워낙 갈 길이 멀어 찾아 볼 만한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습니다. 능동산은 1,000m에서 약간 못 미친다는 이유로 영남알프스에 이름 석자를 올리지 못 할뿐만 아니라 낙동정맥에서도 약간 벗어나 있으니 불과 17m 차이를 두고 능동산에 대한 대접이 아주 소홀합니다. 돌탑이 있는 석남터널 삼거리(6:27)를 지나고부터는 본격적인 가지산 등산로로 접어들게 되고 젊은 선남선녀 산님들이 합류합니다. 석남대피소(6:45)를 지나고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지다 한 순간 시야가 확 트입니다. 신록의 계절인 5월답게 용수계곡과 쇠점골계곡에는 울창한 숲들로 뒤덮였으며 천황산, 제약산, 간월산, 신불산등 영남알프스의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말썽 많았던 얼음골 케이블카도 재 개시를 하였나 봅니다. 소싯적 도토리 배낭 짊어지고 혼자서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하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 오릅니다. 언제 날 잡아서 영알 태극종주를 다시 한번 해야겠습니다.

  

■ 낙동정맥 능동산 갈림길

 

■ 석남터널 위의 첫 번째 멋진 소나무

 

■ 석남터널 위 가지산과 능동산 갈림길

 

■ 가지산 석남사 대피소

 

■ 가지산 오르는 나무계단

 

■ 가지산 오르다 본 운문산 능선

 

■ 가지산 오르다 본 천황산과 제약산

 

 

가지산(7:30) 정상은 햇살이 너무 따갑고 산님들이 인산인해라 아침식사 장소로는 적당하지 않아 곧바로 쌀바위 대피소로 이동하여 아침밥상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쌀바위 대피소(8:03)에는 갈증을 해소해주는 시원한 물이 있고 순딩이 백구가 있으며 수염 기른 산장지기가 있습니다. 물론 라면과 막걸리도 있으니 돈으로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임도를 따라 운문령으로 내려갈 수 있으나 낙동길은 상운산 정상을 넘어야만 됩니다. 상운산(9:14) 정상을 올랐다 한참 동안 내리막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속도를 너무 낸 산행대장과 선두 권 일행 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 운문령으로 가는 임도를 타야 했으나 가지산 온천으로 내려가는 샛길로 새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산행대장은 운문령(10:02)으로 되돌아왔지만 더 멀리 내려 가 버린 세 사람은 되돌아 오기를 포기하고 외항마을로 이동하여 고헌산으로 먼저 가버렸습니다. 1차로 알바를 하고 말았습니다.

  

■ 가지산 정상의 고집통

 

■ 낙동정맥 가지산 정상의 고집통

 

■ 쌀바위에서의 고집통

 

■ 쌀바위 대피소와 백구

 

■ 쌀바위 대피소 내부 전경

 

■ 쌀바위를 배경으로 선 고집통

 

■ 상운산 정상

 

■ 운문령과 석남사 갈림길

 

■ 운문령 바로 위 산불감시초소

 

■ 운문령의 울산광역시 방향

 

 

다음은 2차로 알바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정말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고 아주 힘들게 학대봉에 올라섭니다. 학대봉(11:06)은 지도상에 없으니까 당연히 894.8봉으로 알고 좌측 길은 문복산이니까 우측 길을 택해 열심히 걸었습니다. 고도표상에는 거의 수직강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고도표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해도 우리가 잘못 가고 있다는 의심은 누구 한 사람 의심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선두만 뒤따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졌습니다. 항상 후미를 지키던 세 사람이 외항마을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입니다. 이때 우린 이미 문복산(11:56) 정상에 도착해 있었고『어, 이 길이 아닌가 벼?』 산행대장의 입에서 이 소리가 나오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가 풀리고 내 입에는 탄성이 나와 버렸습니다. 알바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조심한다고 애를 썼건만 대형 알바를 피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되돌아 894.8(13:46) 헬기장에 도달하니 문복산 3.3Km라는 화살표 표지가 바닥에 놓여있습니다. 그렇다면 왕복 6.6Km라는 거리를 2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오롯이 알바를 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 운문령의 경북 청도군 모습

 

■ 894.9봉 오르다 본 두 번째 멋진 소나무

 

■ 문복산 앞 갈림길에서 지도 보는 회장님 - 이 길이 아닌가 벼'''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 낙동길에 없던 학대산을 올라가며 보고 또 돌아오면서 바라보고 - 지금도 알바 중

 

■ 문복산 헬기장에 있는 문복산 표지목 - 헐! 3.3Km를 갔다 오니 알바거리 도합 6.6Km 씩이나

 

■ 외항마을 내려가다 본 세 번째 멋진 소나무 - 오늘 작품 많이 감상합니다

 

■ 외항마을 내려서기 전 일송수목원 표지석

 

■ 921번 지방도가 있는 외항마을 모습

 

 

외항마을(14:18)에 내려서서 간단하게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외항재(14:40)를 거쳐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고헌산으로 오릅니다. 심한 허탈감 때문인지 급격한 체력저하로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고헌산 오르는 길은 4륜 구동 오프로드였다 최근 폐쇄를 했는지 나무 한 그루 없는 자갈길이며 하루 중 가장 강렬한 태양의 직사광선이 머리 위를 내리쬐고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집니다. 가다 쉬기를 여러 차례 어렵사리 고헌산 서봉(15:54) 정상에 올라서니 먼저 올라온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주 고통스런 고헌산입니다.

여기서 난 아주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대간과 정맥을 수태 해오면서 아직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중도포기란 것을 하고 소호령에서 탈출하겠노라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더위 먹고 체력의 한계를 느껴 혹시 닥칠 불상사를 대비하여 소호령에서 그만 중단하겠다는 뜻을 일행들에게 전달하고 고헌산 정상 나무 그늘을 찾아 쫙 드러누워 눈을 붙였습니다. 아주 잠깐, 진짜로 잠깐 눈을 붙였다 생각했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 보니 몸이 홀가분합니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소호령(16:46)까지 내달려 보았습니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몸 상태가 극히 정상으로 돌아 와 있습니다.

  

■ 고헌산 오르기 전 외항재

 

■ 완전 초토화되어 버린 고헌산 등로 - 자동차 오프로드로 추정됨 (고집통 더위 먹은 지점)

 

■ 고헌산 정상의 돌탑과 정상석 - 더위 먹고 소호령으로 탈출하기로 마음 먹음

 

■ 고헌산 정상의 고집통

 

■ 고헌산 정상에서 소호령 내려가는 길 - 복원중인 등로

 

■ 복원중인 낙동길 고헌산

 

 

내가 탈출하기로 한 소호령에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패러글라이딩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지금 택시를 불러 내려간다 해도 시간이 너무 빠르기에 패러글라이딩 구경이나 하기로 하고 활공 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울산대학교 블랙호크 동아리모임 학생들입니다. 울산대학교 패러글라이딩 동아리라면 불과 몇 개월 전 졸업한 내 아들래미가 그 동아리 회장님을 역임한 아주 참신한 동아리 모임입니다. 사랑스런 아들래미의 후배들이며 졸업식 행사 당일 함께 사진까지 찍었던 학생도 두어 명이 있으니 엄청 반갑습니다.

아들래미 후배들이라 무지 반갑긴 하지만 내심 큰일이 났습니다. 가던 길 포기하고 소호령에서 탈출하기로 한 상태인데 아들래미 후배들을 만났으니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만났어야 했는데 선배님 아버지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에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곧바로 산타나에게 전화를 돌리니 약 2Km 전방에서 가고 있다니 지금이라도 바쁜 걸음으로 따라가면 충분히 될 것 같습니다. 블랙호크 학생들과 간단하게 기념사진을 남기고 부리나케 달렸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단숨에 고갯마루 하나를 훌쩍 뛰어넘고 백운산 오르기 전 안부에 쉬고 있는 일행들을 따라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아들래미가 보이지 않는 기()를 날려 후배들을 내 앞에 보내 배추 셀 때나 사용하는 『포기』란 놈을 버리도록 했었나 봅니다. 다음에 땜빵 할 일이 걱정이었는데 정말 천만다행이며 아들래미가 고맙습니다.

  

■ 소호령 - 더위 먹고 탈출하려 했으나 블랙호크 동아리 만나 계속 진행하기로 마음 돌림

 

■ 울산대학교 블랙호크 패러글라이딩 동아리 회원들 (한때 아들래미가 회장을 역임함)

 

■ 울산대학교 블랙호크 패러글라이딩 동아리 회원들과 고집통

 

 

백운산의 훼손 정도도 역시 아주 심각합니다만 그나마 고헌산에 비해 사정이 약간 나은 편입니다.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각종 나무를 심어 한창 복원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다지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정말 먼 거리를 올라갑니다. 언제나 그렇듯 힘이 거의 다 빠질 즈음이면 정상이 나오는 것처럼 백운산(17:47)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입니다.

저 멀리 소호고개가 보입니다. 아마도 호미곶으로 연결되는 기맥인 것 같습니다. 호미기맥(18:15)을 지나고 소호고개(18:58)를 지나 그냥 태종마을까지 단숨에 내달렸습니다. 태종마을(19:16) 앞 개울가에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알바와 접근거리를 포함하여 무려 36Km 를 오늘 하루 동안 걸었습니다. 당연히 내가 태어나서 하루 만에 세운 최고기록입니다.

  

■ 백운산 정상에 선 고집통

 

■ 호미기맥 갈림길을 통과함

 

■ 저 봉우리만 넘으면 오늘 낙동길 마무리를 함

 

■ 소호고개에서의 고집통 - 낙동정맥 열 한번째 산행 날머리

 

■ 태종마을 전원주택 단지 단풍나무 꽃 - 더위 먹고 알바에 어프로치까지 장장 36Km씩이나

 

 

벌써 수 일이 지났는데 발톱 하나가 피 멍이 들어 희멀겋게 죽어버린 것 같으며 발목이 팅팅 부어 붓기가 빠지질 않습니다. 다음주는 12일 금남정맥 졸업하러 가야 하는데 사실 걱정입니다. 어쨌든 아들래미 기()를 받아 이렇게 낙동정맥 열한 번째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밥 해준 마눌님 그리고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기를 보내준 아들래미, 서울에서 회사 생활 잘 적응하고 있을 딸래미에게도 감사하며 앞으로 표현해가며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