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3. 7. 20 (당일)
□ 어 디 를 : 낙동정맥 13구간 (안적고개~지경고개) – 천성산, 원효산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24명과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완전 땡볕
□ 정맥 산행시간 : 165시간 30분(13구간:9시간 50분)
19일차 안적고개(3:37)→지경고개(13:27) 9시간 50분
□ 정맥 산행거리 : 368.7 Km(13구간:21.4 Km)
□ 총 산행거리 : 안적고개→천성산→원효산→용원지맥분기점→운봉산→남락고개→지경고개 (약 21.4 Km)
산악회에서 마음이 많이 바쁜 모양입니다. 여름의 한가운데 선 7월의 중순에 31.6Km, 12시간이라는 낙동정맥 열세 번째 산행 공지가 올랐고 낙동정맥 졸업의 8월에는 36Km가 넘어서는 거리를 계획하고 있답니다. 산악회에서 야심 차게 출발했던 낙동정맥 산행의 그 속사정을 속속들이는 알 수는 없어도 어느 순간부터 눈엣가시가 되어있는 것 같고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는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조조군사는 복종만 있을 뿐 토를 절대로 달아서는 안됩니다.
영산대학교 주차장에서 준비된 두 대의 트럭에 나뉘어 타고 올라선 안적고개(주남고개)의 하늘은 오늘 진행할 길을 경계로 반쪽은 영롱한 별빛이 반짝이고 나머지 반쪽은 하얀 구름으로 덮여 정확하게 반분 되어있습니다. 하늘을 보아서는 오늘 산행에 날씨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적고개(3:37) 주남정을 출발하여 평산임도를 따라 남양홍씨 수목원 표지석을 지납니다. 넓은 임도 변 이정목에는 천성산2봉을 가려면 임도를 계속 따르라 합니다. 정상적인 낙동길을 밟으려면 임도를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야 함이 옳겠지만 우린 임도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지도상에는 천성산인데 정상석은 천성산2봉(비로봉)이라 적혀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성산2봉이라 해주어야겠습니다. 바위 덩어리 천성산2봉(4:48) 정상에 올라서니 동녘하늘에 해님이 올라온다며 붉은 여명이라는 전주곡을 깔아주고 서쪽으로는 구비구비 산골을 따라 하얀 구름이 넘실거리는 풍경을 연출시켜 이른 새벽 부지런한 산객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해줍니다. 모두가 황홀함에 빠져 있을 그때. 빠지직~. 누군가의 발 밑에서 스틱 부서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립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 마음은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닙니다.
은수고개(5:12)를 지나 원효산으로 갑니다. 이곳 또한 지도상 분명 원효산인데 산꼭대기에 올라보니 천성산이란 정상석이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나는 천성산을 오르고 있으며 능선을 따라 쫙 펼쳐진 천성산 억새밭에 붉은 햇살이 퍼지고 있으며 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적인 경치에 흠뻑 젖어 들고 있습니다.
천성산(5:48) 정상에는 공군부대가 주둔하였다가 지금은 철수한 상태이고 당시 곳곳에 지뢰를 심어 놓았었나 봅니다. 철조망으로 부대 근처 접근을 막아 놓았으며 예전에 지뢰 매설지역이었으니 혹시 지뢰를 발견하면 인근 경찰서로 연락하라는 경고문구를 곳곳에 설치해 놓아 지나는 이로 하여금 섬뜩하게 만듭니다. 그나마 최근 지뢰 제거구역을 골목길 형태로 설정해 주어 안심하고 군부대 내부의 천성산 정상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호남정맥의 존제산에 이어 이곳 천성산에서도 공군부대 철조망을 뚫고 통과하려니 잘하는 짓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어쨌든 인공위성이 하늘을 핑핑 날고 앉아서 천리를 보는 세상인데 이런 산꼭대기에 재래식 레이더랑 통신시설을 설치해놓고 나라의 안보를 챙긴다는 것은 시대에 떨어지니까 빨리 철수시키고 아름다운 천성산을 대한민국 국민들 품으로 돌려줌이 옳을 것 같습니다.
지뢰밭 통과하느라고 긴장하여 지율스님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했던 천성산 늪의 도롱뇽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천성산 원효터널이 뚫려 KTX 열차가 달린지 1년이 넘었다는데 천성산 도롱뇽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지율스님과 도롱뇽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율스님은 낙동강을 찾아 먼 길 떠났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도롱뇽은 알을 낳아놓고 후손을 기다린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합니다. 사람도 도롱뇽도 모두 잘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군부대 정문 아래 원효산을 우회하는 등로가 있고 그 바로 앞에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일본과 화상 통화를 한다며 커다란 접시 안테나를 설치해놓고 있습니다. 궁금하면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 탓에 말을 붙여봅니다. 통신이 잘 되느냐는 내 물음에 HD급 안테나라며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장황하게 자랑을 늘어 놓습니다만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수고하시라 인사하고 먼저 간 일행들을 쫓아 마구 내달렸습니다. 원효암(6:13) 진입도로가 여느 암자의 도로와는 판이하게 삐까 뻔쩍하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누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지율 효과로 생각됩니다.
산능성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울리고 낙동길은 산 옆구리를 타고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군부대에 아직 군인이 남아있는 부대가 있는가 봅니다. 우회하여 진행하니 질척질척한 실 개울들을 여럿 건너게 되고 거리 또한 한참 먼 느낌이 듭니다. 출입통제 군부대구간을 지나고부터 10m 폭의 급경사 방화선이 호계재(8:28)까지 내려갔다 운봉산 정상까지 올라가며 조성되어 있습니다. 방화선이라 함은 산불이 났을 경우 불길의 번짐을 방지하기 위해 긴 띠 모양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비워놓은 것을 말하는데 현재 상태로 보아서는 방화와는 아주 무관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잘 자란 억새가 내 키를 훌쩍 넘게 자라있어 방화는커녕 오히려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키 큰 소나무 밑을 통과할 때는 그다지 못 느꼈으나 방화선을 따라난 길을 걸어보니 머리위로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의 영향으로 그늘과 양지의 온도 차가 족히 10도 이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운봉산(9:09) 오르기까지 거의 초 죽음이 되어가는데도 시간은 아직 정오를 넘지 않았습니다. 유락농원 간판이 있는 군지고개(10:39)를 지나고 양산에서 울산으로 통하는 1077번 4차선 지방도로가 통하는 남락고개(11:15)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남락마을 정자에 도착했을 때는 네 명의 일행이 본진과는 한참을 뒤쳐져 있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이곳에서 산행종료를 했으면 하는 마음들을 비췄습니다만 운영진에서는 계획을 바꿀 수가 없었던지 계속 진행할 것을 명합니다.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운영진에서는 당연한 처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남락고개 4차선 중앙분리대를 뛰어 넘을 수 없어 300m 아래 위치한 굴다리를 통과하여 270봉을 오릅니다. 무더위는 절정에 이르고 진행해야 할 금정산을 마주하니 숨이 컥 막힙니다. 34℃가 넘어가는 이 날씨에 산행을 강행하여 어쩌면 큰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지난주 산행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로 낙동길에 동참한 버팔로의 얼굴도 많이 일그러져 있으며 말은 안 해도 힘든 표정이 역력하여 270봉(12:35) 정상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만 가자』는 내 제언에 『응』 버팔로의 반응이 몹시 빠릅니다. 지경고개의 녹동마을(13:27)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오늘 낙동길 산행을 마감하기로 했습니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호남정맥, 금남정맥을 통틀어 고집통 역사 상 처음으로 한 박자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산행에 앞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 하겠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모한 목표를 따르다 자칫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는 오히려 아니함만 못하기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섬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 내린 결정은 아주 잘한 판단이었다 하겠습니다.
녹동마을에서 시내버스로 온천장까지 그리고 택시로 금정산성까지 이동하여 맥주잔 앞에 놓고 편안하게 일행들을 기다렸습니다. 찌는듯한 무더위에 결국 고집통을 포함한 여섯 명은 중도 하차해버렸고 다른 일행들은 5시간이나 더 산행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산성고개까지 도착하는 저력을 보여주어 그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다음달에 진행 할 낙동정맥 졸업구간 또한 36Km 를 훨씬 넘어서는 거리라니까 어차피 내 체력이 불감당할 것이니 이번에 못다한 부산의 진산 금정산 구간 땜빵 10Km 에 다음달에 진행해야 할 백양산 구간 10Km 를 합해 졸업산행 전에 별도로 고집통 홀로 산행을 기획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내달 진행하는 졸업산행에 떳떳하게 동참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날씨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한 정말 힘든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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