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4. 4. 19 (당일)
◆ 어 디 를 : 지리산 천왕봉
◆ 누 가 : 재너머 형님과 고집통
◆ 날 씨 : 하루 종일 흐림
◆ 산 행 여 정 : 중산리탐방안내소→법계사→천왕봉→장터목대피소→중산리탐방안내소
◆ 산 행 시 간 : 7시간 47분
중산리탐방안내소(6:35)→천왕봉(9:51)→장터목대피소(10:34)→중산리탐방안내소(14:23)
◆ 산 행 거 리 : 약 12.4 Km
재너머(고O봉) 형님을 고느님이라 해야겠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지리산 천왕봉 산행과 지리 주능선 종주 그리고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고 밖으로 눈을 돌려 차마고도, 안나푸르나까지 발 밑으로 두셨으니 우물 안의 고집통으로써는 신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재너머 형님께서 폐암을 이겨낸 환갑의 나이라면 더 더욱 믿기지를 않습니다. 나 고집통의 입장에서는 신의 반열에 올려 하느님과 동격인 고느님으르 받들어 모셔야겠습니다.
고느님인 재너머 형님과 단둘이 천왕봉을 동행하게 되었으니 천운을 받았습니다. 날더러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꼬치만 잘 달고 오라 하셨지만 가끔 신께서도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빵 쪼가리 약간을 챙겨 놓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재너머 형님은 폐를, 나 고집통은 갑상선을 절반씩 자연으로 돌려보낸 입장이기에 부지런히 자연을 오가며 부족분을 보충해야 됩니다. 두 사람은 확실히 비정상인이면서도 극히 정상인입니다.
칼바위 삼거리에서부터 재너머 형님의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집니다. 법계사에서 만나자며 내게 먼저 가라 하시지만 어찌 내가 그냥 내뺄 수가 있겠습니까? 망바위에 먼저 도착하여 법천골 경치에 빠져있는데 재너머 형님은 주위에 아랑곳 않고 그냥 망바위를 스쳐 지납니다. 호흡이 곤란한지 몇 발자국을 걷다 멈췄다가 가쁜 호흡을 조절하기를 여러 차례 하곤 하지만 절대로 앉아서 쉬는 법은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내공을 지니신 분입니다. 법계사까지 쥐 죽은 듯 고요하게 살금살금 뒤를 따랐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뒤돌아보는 경우도 없습니다.
법계사의 비구니 스님께서는 나 고집통을 본체 만체 무량수전 법당 청소에만 열중이십니다. 스피커를 타고 무량수전에 울려 퍼지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경소리가 내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불경이 이렇게 슬프게 들리고 이유 없이 눈가에 눈물이 고일라 하기는 난생 처음 있는 일입니다. 범종불사를 위해 접수처에 들렀더니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죠지버나드쇼」의 묘비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년부터 범종불사 해야지 생각만 하다 때를 놓쳐버리고 종각 동판불사를 하고 있는 나를 두고 하는 글귀 같기도 하고 요즘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세월호의 사건을 두고 하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여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살아가면서 때를 놓치고 크게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법계사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고 재너머 형님이 천왕봉으로 출발한지도 오래되었기에 따라잡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천왕봉 정상에 도착하니 재너머 형님은 천왕봉에서 한참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합니다. 역시 고느님입니다.
하늘은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더니 지리의 주능선에 구름을 몰고 다닙니다. 웅장한 지리의 주능선과 반야봉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거듭합니다. 5월 연휴 때 계획한 화대종주 그날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천왕봉에는 겨울이 아직 가시지 않아 매서운 바람이 불어 오랫동안 머물 수가 없으며 통천문 안에는 아직까지 눈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지난 가을 장터목대피소에 공사가 한창이더니만 깔끔한 취사실을 새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오라시던 재너머 형님이 배낭에서 먹거리를 주섬주섬 끄집어내기 시작합니다. 찰밥, 삼겹살에 곰치 이파리 장아찌와 묵은 김치에 상추쌈이면 황홀한 산상만찬입니다. 형님! 고느님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법천계곡으로 빠른 하산을 합니다. 재너머 형님은 산을 오를 때만 호흡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하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칼바위를 약간 지나서 법천골 계곡 끝 지점의 계곡에서 온몸을 물속에 담갔습니다. 계절상 약간 빠른 알탕입니다. 물 속에서 5초를 버티면 사람 아닌 신입니다. 재너머 형님도 신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아침식사하고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산주 마시겠다고 중산리 식당에 들어가니 주인 마나님이 천왕봉을 갔다 온데 대해 의구심을 가집니다. 인증사진을 보고서야 믿어줍니다.
지리산 산행하다 우연히 몇 번 만나긴 했지만 재너머 형님과 같이 이렇게 지리에 들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형님! 덕분에 오늘 하루 무척 즐거웠습니다. 우리 자주 지리에 들도록 합시다. 고느님으로 잘 모시면서 많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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