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낙남정맥[완]

[낙남정맥 – 4] 뭔가에 홀려버린 낙남길

산안코 2014. 6. 15. 18:32

■ 언            제 :  2014. 6. 13 (당일)

■ 어    디     를 :  낙남정맥 4구간 (딱밭골재 ~ 진주분기점) - 태봉산, 실봉산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31시간 16분 (4구간 : 9시간 56분)

                          4일차 딱밭골재 (7:00) → 진주분기점 (16:56) 9시간 56분

■ 정맥 산행거리 :  69.1 Km (4구간 : 21.5 Km)

■ 총    산행거리 :  딱밭골재→선들재→덕천고개→태봉산→솔티재→유수교→비리재→실봉산→진주분기점 (약 21.5 Km)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시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낙남길 잊어버리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정맥 중에서 고집통 사는 거제와 가장 가까운 낙남길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나 아침 시간대의 시골교통사정이 워낙 열악한 관계로 그냥 딱밭골재까지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오늘의 불볕더위를 예고하는 안개가 달리는 통영 진주간 고속도로에 쫙 깔렸습니다.

지난번 하산한 딱밭골재(7:00)의 작은 개구멍은 지금 쳐다보니 내가 어떻게 통과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낙남정맥 네 번째 산행 들머리로는 개구멍 맞은편 농원으로 진입해야 하나 주인장님이 아주 싫어한다니까 우회하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약간 북쪽으로 발길을 주니 낙남정맥 이정목이 서 있습니다. 출발부터 가시넝쿨이 발목을 잡고 바짓가랑이는 이슬로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거미줄 또한 얼굴이며 목에 척척 감겨옵니다. 사냥개를 풀어 놓았으니 무단진입으로 사냥개에 물려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일신농원(7:20) 주인님의 경고문구가 섬뜩합니다만 낙남길이 본 농원을 통과하니 비록 사냥개가 걱정은 되어도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이 농원주인과 사냥개가 부재중이라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었으며 텃밭에서 까맣게 잘 익어가고 있는 오디랑 매실이 유혹을 해도 남의 물건에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는 고집통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어 마음을 꾹 누르기로 했습니다. 농원을 벗어나 시멘트 임도길을 따르다 한창 도로공사로 부산한 선덜재(7:49)에 내려섭니다. 선em재는 지난 차수에 목적지로 정했다가 고집통의 저질체력으로 포기한 장소이면서 지금은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낙남정맥의 한 부분을 무참히 훼손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 딱밭골재에서의 고집통 - 낙남정맥 네 번째 산행들머리

 

■ 사냥개에 물려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일신농원 주인님의 경고문

 

■ 사냥개가 무섭지만 낙남정맥이 농원을 통과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 오디가 잘 익어감

 

■ 선들재에 선 고집통 - 도로공사 중으로 낙남정맥이 또 잘리고 있음

 

 

엄청난 규모의 내동 공원묘지(8:13)가 나옵니다. 공원묘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성모마리아께서 한세상을 열심히 살다 간 영혼들을 달래주고 계시며 홀로 가는 고집통의 낙남길에 힘도 실어주고 있습니다. 자동차 달리는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4차선 2번 국도가 나오고 엄청난 규모의 진양호 캐리비안스파(8:55)가 보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이곳이 덕천고개인지 솔티고개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여기서 머지않은 곳에 소고기와 피 순대로 유명한 완사마을이 있습니다. 완사마을은 나 고집통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이어지는 정맥길 들머리를 잘 몰라 멀찌감치 옥녀봉 이정표를 보고 산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많지는 않지만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보여 안심하고 그냥 진행하기로 합니다. 작은 임도를 건너 빤질빤질한 옥녀봉 길을 이어가다 느낌이 좋지 않아 잠시 휴식하며 지도를 확인해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낙남길에서 옥녀봉 쪽으로 내 위치가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행운이랄까 내가 앉아 쉬고 있는 바로 옆으로 낙남길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고 시그널도 몇 개 보입니다.

임도변에 『애향』이라는 거대한 표지석(9:21)을 세워놓은 것으로 보아 정말로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양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곳이 옛날의 솔티재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햇살 받은 진양호의 물결이 언뜻언뜻 보입니다. 낙남길이 진양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태봉산(9:48)을 기점으로 벗어나고 있습니다.

경전선 철로와 2번 국도가 나란히 지나는 고개마루(10:04)를 지납니다. 어쩌면 이곳이 솔티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도상에 바락지산(10:16)이라 되어 있는 나지막한 산을 넘어 정동마을에 내려섭니다.

  

■ 진주 내동공원묘원을 내려다 보는 마리아상

 

■ 내동공원 묘원을 지나는 낙남정맥 길

 

■ 너구리 짓일까? 오소리 짓일까?

 

■ 진양호 캐리비안 스파 -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지...

 

■ 덕천고개에 도착한 고집통

 

■ 옥녀봉으로 가다 우측으로 내려감

 

■ 애향 좋습니다

 

■ 숲 사이로 언뜻 보이는 진양호

 

■ 태봉산 정상의 고집통

 

■ 솔티재 - 경전선 철로와 2번 국도가 지남

 

■ 살구? 매실? 열매가 너무 많이 매달려 나무가 쓰러짐

 

■ 바락지산이라는데 이런 산이 지도에 진짜로 있슴

 

 

대간과 정맥하면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領)』산은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 두 능선 사이에는 반드시 계곡이 하나 있다.

-. 두 계곡 사이에는 언제나 능선이 하나 있다.

-. 산에는 산으로 물을 건너지 않고 건널 수 잇는 길은 반드시 있으며 그 길은 오직 하나다.

-. 섬이 아니라면 나라 안 어디에서라도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갈 수 있으며 그 길은 오직 하나다.

-. 물길은 끊이지 않으며 강은 반드시 한 개의 하구를 갖는다.

-. 땅에서 물길을 빼면 산이고 산을 빼면 물길이다.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돌리기 위해 대간과 정맥을 통틀어 산자분수령의 원칙을 무참하게 깨트린 첫 번째 훼손 사례가 된 가화강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원래 가화천에서 남강 방향으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으나 남강댐(진양호)를 만들면서 낙남정맥 산줄기를 잘라내고 수문을 열어 홍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버린 강입니다. 남강 하구 주위 함안이나 의령 땅에는 홍수의 위험이 많이 줄었지만 반면에 사천만으로 흘러 들고 있는 많은 양의 담수로 인해 양식장에 엄청난 피해를 입혀 어민들과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니 자연의 이치를 무시한 대가입니다.

  

■ 진양호 물길을 돌리기 위해 낙남정맥을 잘라놓은 가화천 위를 건너는 경전선 철교

 

■ 가화천 유수교를 건너는 고집통

 

대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정맥위의 다리를 건넙니다. 가화강 유수교(10:40)입니다. 유수교를 건너 새로 조성되고 있는 오토캠핑장 옆 농장으로 진압하는데 갑자기 송아지만한 불독이 물어뜯을 기세로 쫓아 옵니다. 목줄을 묶어 놓았기에 망정이지 내 다리 30Cm 앞까지 입이 왔다 갔으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이제부터 온갖 과실나무가 심겨진 과수원단지를 지납니다. 전기 줄 펜스가 있는 밤나무 밭을 지날 때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혹시 전기에 감전되어 죽을까 두려워 전기 줄 펜스 옆 가시밭길을 헤쳐야만 하니 두 다리는 온통 가시 생채기를 당합니다. 날씨가 더워 밤나무 아래 그늘에서 잠깐 쉬는 동안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크기의 작은 모기가 또 얼마나 물어뜯는지 따끔거려 미칠 지경입니다.

산님 한 분이 백구를 데리고 오고 있습니다. 낙남정맥에서 사람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지라 엄청 반갑습니다. 진주분기점에서 출발했다 하며 얼마 가지 않으면 팔각정이 있으니 쉬어가라 하십니다.  팔각정에 가면 잠시 눈을 붙여야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속도를 내봅니다. 1049번 지방도가 지나는 비리재(12:00)를 건너고 야트막한 산의 과수원을 지납니다. 과수원을 관통하는 낙남정맥은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 않아 그냥 느낌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갑니다. 과수원 옆 민가에 들러 수돗물을 흠뻑 뒤집어 써봅니다. 다루황토집 찜질방(12:57) 옆을 지나고 시멘트 길을 쭉 따라가니 조금 전 만났던 산님이 알려 준 해맞이공원 팔각정이 보이긴 하나 정맥길에서 제법 멀리 벗어나 들르기를 포기하기로 합니다.

그 힘으로 정맥길을 한 뼘이라도 줄이는 것이 이익일 것 같아서입니다. 실봉산(14:08) 정상도 그냥 휙 지나치고 실봉산 해맞이 전망대(14:15)에 도착하니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진주분기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제 목적지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여유를 가지고 아무도 없는 팔각정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아봅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 가화천 위험을 알릴 때 방송용으로 사용할 스피커 탑이 산꼭대기에 있음

 

■ 밤 나무 밭을 지키려는 전기 줄 - 짐승이 밤 안 가져가니 아마도 사람을 잡을 모양임

 

■ 매실 과수원을 지나는 정맥길

 

■ 미니 태양광 발전시설

 

■ 더위에 지친 고집통

 

■ 비리재 지나 조림중인 나무?

 

■ 실봉산 정상 모습

 

■ 실봉산 해맞이 전망대가 보임

 

 

약 1시간이나 잠들었을까 진주분기점을 향해 출발(15:00)하고 전망대 바로 아래 임도사거리에서 직진하라는 친절한 표지판을 따라 직진합니다. 이상하게도 임도를 따라 하산하는 길입니다. 사거리로 되돌아 와 정맥길을 찾아 보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표지판의 안내대로 직진해보지만 조금 전 그 길 외는 대안이 없어 아닌 줄 알면서도 결국에는 낙남길과 연결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내려가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낙남길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진주분기점의 화원마을을 가려면 힘들어도 산 옆구리를 타고 올라 낙남길을 꼭 찾아야만 합니다. 산 능선이 그다지 높지 않으니 어렵지 않게 치고 올라 등로 하나를 찾았습니다. 여기서 큰 사단이 생겼습니다. 이 길이 낙남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낙남길을 찾아 산을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하염없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화원마을을 찾아간다는 것이 그곳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오직 엉뚱한 산줄기를 쳐다보고 가다 보니 결국에는 남해고속도로의 사천IC 근처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참말로 허무합니다. 약 4Km 나 되는 거리를 삥삥 돌아서 화원마을(16:56)에 도착하고 보니 허무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한심합니다. 순간의 방심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실봉산 해맞이 전망대에서 진주시를 배경으로 선 고집통 - 약 1시간 가량 오침 함

 

■ 진주 분기점에 도착한 고집통 - 낙남정맥 네 번째 산행 날머리 팔각정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곳에서 알바 했다는 산님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무엇에 홀렸었던 모양입니다. 다음부터의 낙남길은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