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4. 6. 29 (당일)
■ 어 디 를 : 낙남정맥 5구간 (진주분기점 ~ 봉전고개) - 화봉산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37시간 32분 (5구간:6시간 16분)
5일차 진주분기점(8:10)→봉전고개(14:26) 6시간 16분
■ 정맥 산행거리 : 79.8 Km (4구간:10.7 Km)
■ 총 산행거리 : 진주분기점→화봉산→모산재→109봉→새동네→계리재→봉전고개 (약 10.7 Km)
고성에 친구 모친상 문상 갈 일이 생겼습니다. 가지 않을 수는 없고 갔다간 일요일 하루가 그냥 지날 갈 판입니다. 낙남정맥을 이어가다 돌아오는 길에 문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남해고속도로 진주분기점(7:00)의 화동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낙남정맥 다섯 번째 여정을 시작하여 통영으로 갈라지는 고속도로 분기도로 아래 굴다리 두 곳을 통과하고 고구려삼계탕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의 분기도로와 나란히 뻗쳐 있는 시멘트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과수원에 산짐승들이 많아 사냥개를 풀어놓아 아주 위험하니 오늘은 그냥 지나가더라도 다음부터는 꼭 돌아서 다니라는 주인장 말에 「에이! 이런 곳에 개는 무슨 개를 풀어?」 속으로 의심했습니다. 여기다 개를 풀어 놓았다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 다 물려 죽겠다 생각했습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굴다리를 또 하나 지납니다. 이제 낙남길에 꼬이고 꼬인 진주 분기점 굴다리는 전부 다 통과했습니다. 어~! 개 한 마리가 목이 터져라 짖어대며 성큼성큼 따라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목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개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일 수 없으니 달려들 것에 대비해 「오기만 와봐라」냅다 걷어차겠노라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습니다. 내가 개를 겁내듯이 갠들 내가 겁나지 않겠습니까? 별일은 없었습니다.
민가의 마당 앞 남새밭을 지나 낙남정맥 화방산 산속으로 진행합니다. 6월의 끝자락 강한 햇살로 아침부터 땀이 삐적 삐적 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은 그런대로 길이 좋더니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길이 이상합니다. 산딸기 가시넝쿨이 발목을 할퀴고 찔레가시는 허벅지를 사정없이 파고듭니다. 최근에 이 구간을 지나간 정맥님이 아무도 없었는지 낙남길은 가시와 칡넝쿨로 정글 우림으로 덮여 발길을 멈출 수 밖에 없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우회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다시 민가까지 내려갔다 찬찬히 확인해가며 올라가 보았지만 조금 전 그길 외는 대안이 없습니다. 이번 구간을 비워두고 다음구간에서 시작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여유를 가지고 혼자 하는 낙남길인데 굳이 구간을 비워 놓으면서까지 가긴 싫어 한발자국을 가더라도 헤쳐가며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머리높이까지 막혀버린 칡넝쿨과 찔레, 산딸기 넝쿨들을 스틱으로 두드려가며 50m 가량을 헤쳐나갔습니다. 팔다리는 따끔거리고 손가락 끝은 아카시아 가시에 찔려 시뻘건 피가 줄줄 새 나옵니다. 산행 후 목욕탕에서 확인해보니 팔뚝이며 허벅지는 가시로 온통 생채기를 당해 벌겋게 줄이 그어지고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더운 날 길도 없는 야산을 헤매가며 도대체 뭘 얻겠다고 이러는지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힘들게 화방산(8:50)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그래도 첫 번째 목적지인 화방산에 올라서고 나니 조금 전 고생한 순간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금방 잊혀집니다. 그리고 모산재(8:55)에 내려섭니다.
과수원에 노랗게 잘 익은 매실이 아직까지 매달려 있습니다. 매실은 새파랄 때 엑기스나 장아찌 또는 담금주를 담가야 함에도 가격과 인건비가 맞지 않아 그냥 버려둘 수밖에 없답니다. 길바닥에 낙과한 매실을 밟고 지나가는 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내 마눌님은 시장 가서 비싼 돈을 주고 매실을 구입하여 엑기스를 담갔는데…. 작은 돈이라도 지불하고 우리 같은 사람이 직접 수확할 수만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과수원의 울타리가 낙남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낙남님들의 발길을 아주 막아버리면 결국 울타리가 부서질것에 대비해 작은 쪽문을 만들어 놓고 열고 지나가라는 표지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보통은 전기 울타리를 치던지 아니면 콱 틀어막아 버리는데 이곳 농장주인님의 배려가 우리 같이 정맥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고맙습니다.
정촌-호탄간 국도(9:19)를 연장하고 있습니다. 포장은 다 끝났지만 아직 차선은 그어지지 않았고 내년에 개통예정이랍니다. 등로가 구분되지 않아 고구마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서 겨우 등로를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나 같은 등산객이 가끔씩 보였으나 최근에는 별로 없다 하십니다. 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와룡산이 어딘지 확인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고 엄청 넓은 대나무 밭을 지나갑니다. 대나무 밭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알바하지 않고 운 좋게 정맥길을 잘 따랐습니다. 진행하는 좌측으로 최근 새로 이전한 웅장한 진주역사가 조망됩니다. 과수원 한가운데 낙남길의 명물인 산불감시초소(10:16)가 있습니다. 과수원 중간중간 농가가 있어나 사람 구경하기는 힘들고 가끔 큰 개들이 정맥길 길목을 가로막고 있어 우회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도로공사(10:25)로 한창입니다. 낙남길이 다시 뚝 잘려나가는 현장입니다. 혁신도시 진주가 한창 발전해 나갈 모양입니다.
임도를 따르면 정맥길을 놓치고 능선을 따르면 과수원 속에 갇히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아직 과실이 익기 전이라 다행이지 수확 철이었다면 욕 꽤나 얻어먹겠습니다. 미송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또 미송사 갈림길에서 또 좌측으로 진행하니 새 동네(10:48) 고갯길에 내려섭니다. 새동네 과수원에서 노부부를 만나 한참을 이야기하다 발걸음을 재촉하려니 산행 중 목마를 때 먹으라며 살구를 한아름 배낭에 담아줍니다. 배낭 무게가 줄어야 할 판에 오히려 묵직해져 버렸습니다.
야트막한 능선을 넘고 2차선 용골도로(11:11)를 만납니다. 친절하게 등산로라는 팻말을 보고 과수원 속으로 들어가 과수원의 넓은 임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도로가 나옵니다. 생각 없이 맞은편 과수원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농장의 건물(11:29)이 있고 사나운 개가 마구 짖어댑니다. 건물을 통과하여 과수원 속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디 한곳이라도 정맥길이라는 표시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과수원을 빠져 나오려니 사방이 울타리로 막혀 탈출이 어렵습니다.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개구멍을 발견하고 과수원을 벗어나고 앞서 지나온 과수원으로 되돌아가니 낙남길이 있습니다. 한 시간 가량을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다녔습니다.
계리재(12:40)에는 무선산 4.4Km 이정표가 있고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오늘 산행을 시작한 이후로 낙남님들을 위해 설치해놓은 첫 번째 시설물입니다. 정맥길을 따라 임도 공사가 진행 중이며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능선안부의 그늘에 공사 인부들이 낮잠을 즐겼는지 보기 좋게 종이박스가 깔려 있습니다. 그 자리에 살짝 몸을 눕혀 보았습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 산행 중 낮잠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단 5분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면 금방 힘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무선산을 넘어 돌장고개까지 가려고 계획했으나 막상 봉전고개(14:26)에 도착하고나니 오늘 악착같이 돌장고개까지 왜 가야만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산행을 바로 접어버렸습니다. 16.5Km를 계획했으나 11.5Km로 만족했습니다. 봉전고개는 진주 금곡면과 사천 정촌면을 잇는 지방도길입니다. 봉전고개에 앉아 30분을 넘게 기다려도 오가는 차량은 한대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정촌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약수암까지 걸어 내려가니 트럭 한대가 내려옵니다. 축동까지 트럭으로 다시 화동마을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힘든 낙남길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천의 사우나에서 옷을 벗어보니 팔다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도루코 칼로 좍좍 그어놓은 것 같습니다. 이 계절에는 절대로 낙남정맥 이런 것 함부로 하면 안되겠습니다.
때 빼고 광내고 양복 갈아입고 친구 모친상 문상도 끝냈으니 오늘 두 가지 일을 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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