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4. 10. 18 (당일)
■ 어 디 를 : 낙남정맥 6구간 (봉전고개 ~ 봉대산) – 무선산, 봉대산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42시간 57분(6구간:5시간 25분)
알바 및 접근 : 봉대산↔죽곡마을(2회), 봉대산→상객방마을 (3시간 26분)
6일차 봉전고개(6:30)→봉대산(11:55) 5시간 25분
■ 정맥 산행거리 : 92.1 Km (6구간:12.3 Km)
■ 총 산행거리 : 봉전고개→무선산→돌장고개→357봉→객숙치→봉대산→죽곡→봉대산→죽곡→봉대산→상객방 마을 (약 22.3 Km)
뭔가에 홀린 듯 왔다 갔다 진탕 고생을 했습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처럼 이런 경우를 당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눈 앞의 철탑 방향으로 가면 되는 줄은 뻔히 알고 있어도 산행 들머리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봉대산에서 부련이재로 가는 길 이야깁니다. 결국 봉대산 올랐던 길을 되돌아서 허무하게도 길 아닌 길을 따라 상객방마을로 조기 하산하고 말았습니다.
사무실 야유회로 금요일 저녁 가조도에 있는 펜션을 잡았다 합니다. 보나마나 야유회 스토리 전개가 뻔합니다. 초저녁부터 부어라 마셔라 마구 퍼 마실 것이고 얼굴도장 찍은 몇몇의 인원은 있지도 않는 스케줄 핑계로 줄행랑 칠 것이고 남은 일행들은 아침 늦게까지 뒹굴다 대충 눈 비비고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후딱 보내버리면 이 좋은 가을날 황금시간을 허비해 버릴 것이니 이틈을 노려 아껴놓은 낙남정맥을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고집통은 조용히 펜션을 빠져 나와 봉전재를 향해 달렸습니다. 봉전재(6:30)는 진주 금곡과 사천 정촌을 잇는 지방도이며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무선산 중간 정도 올라갈 즈음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금곡 벌판에는 운해가 자욱이 깔려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등로 주변 사정이 좋지 않아 조망할 만한 곳이 없어 감상할 기회는 잡지 못했습니다.
정맥길에서 100m를 벗어난 거리에 무선산 정상이 있다 하나 실제로는 약 20m정도 올라가면 길다란 의자 두 개가 있는 무선산(6:51) 정상이 있었습니다. 요즘 고집통은 셀카 찍는데 완전 선수가 다되었습니다. 무선산 정상에서 얼른 인증을 하고 곧바로 낙남길을 부지런이 달렸습니다.
지난 차수에 푹푹 찌는 무더위로 봉전고개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돌장고개까지 왔었을 겁니다. 돌장고개(7:51)는 진주-통영간 고속도로가 지나므로 약 1Km를 돌아 굴다리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허구한날 이 고속도로 위로 승용차를 타고 지나 다녔어도 이곳에 낙남정맥이 지나가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외인 출입 금함. 일단 개조심, 무섭다, 무식하다, 주인 말 안 듣는다, 중국어 가능 주인 통역 안됨, 물리면 보험 안됨 등등』 한글 오자(誤字) 투성이지만 경고판이 이렇게 사람을 웃길 수 있구나 싶어 한참을 보고 있었습니다.
고르릉 쾅쾅. 주위가 굉음으로 쩌렁쩌렁 울립니다. 석재 채취자입니다. 쩍 벌어진 밤송이가 널 부러진 밤 밭을 지납니다. 과수원에 단감이랑 홍시 감이 잘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가을철이라 산소 벌초하면서 만든 길과 정맥길이 구분되지 않아 좋은 길만 따르다 보니 애석하게도 어느새 장재마을 인근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되돌아 올라가기보다는 그냥 감나무 과수원을 가로질러 통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 과수원 세 곳을 지나고 나서 임도를 만나 한참을 따라가다 정맥길에 올라섭니다.
낙남길에서 진흙과 누런 색의 계란 노른자가 범벅이 된 천 원짜리 한 장이 꼬깃꼬깃 접힌 채 버려져 있습니다. 저걸 줍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으니 스틱으로 툭툭 건드리다 그냥 지나칩니다. 아니지, 저것도 돈인데 싶어 풀잎을 한 장 뜯어 돈에 묻은 오물을 쓱쓱 비벼봅니다. 그래도 지저분해 땅바닥에 버렸다가 다시 배낭 옆 주머니에 주어 담았습니다. 이것으로 로또 사야지….
낙남길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쉽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무척 반갑습니다. 열심히 땅 바닥을 보고 도토리를 줍다 나를 보고 적이 놀라는 표정입니다. 친척집에 왔다 봉대산 등산 하던 중 도토리가 눈에 띄어 줍고 있다는데 요즘 사회 통념상 도토리 줍는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했습니다.
객숙치라면 손님이 잠을 자고 가는 고개? 뭐 그런 의미 같은데 잠을 자고 말고 할 그럴만한 곳은 아닌 것 같은 산 꼭대기입니다. 객숙치(11:34)까지 가파른 비탈길을 바짝 치고 오릅니다. 봉대산 정상 역시 가파르게 치고 오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낙남정맥길에서 정상석다운 정상석을 만납니다. 봉대산(11:55)입니다. 그리고 오늘 낙남정맥 산행은 여기까지로 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봉대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헬기장으로 내려서니 최근에 깨끗하게 잡목을 제거해 놓았습니다. 아직 점심식사 시간으로는 약간 이르고 그다지 배도 고프지 않아 조금 더 진행하기로 합니다. 헬기장 반대쪽에 내려가는 길이 잘 정돈되어 있어 의심 없이 산행은 시작되고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평길 능선이 이어져 최대한 갈수 있는 것만큼 더 진행하다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헬기장 정리할 때 함께 정리했는지 등로가 신작로처럼 아주 잘 다듬어져 있어 발걸음 가볍게 펄펄 날아갑니다.
산돼지 목욕탕을 지납니다. 산소도 여럿을 통과합니다. 자동차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부련이재 인근에 도착한 것으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GPS를 돌려 보았습니다. 엥 뭐이래? 아이구야~~~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맥길과는 완전 다른 방향인 죽곡마을 근처에 내가 도착해 있습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는 진주-통영간 고속도로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억울하게도 봉대산으로 발길을 되돌렸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대형 알바에는 뭔가가 씌었기 때문이라는데 생각이 맞추어지면서 급기야는 줍지 말아야 할 천 원짜리를 주었기 때문이라는데 까지 왔습니다. 산돼지 목욕탕에서 잠시 휴식하며 그 천 원을 버려 버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봉대산(13:44) 헬기장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가야 할 정맥능선과 철탑이 보이지만 아무리 샅샅이 훑어 보아도 길이라고는 오직 조금 전 되돌아 왔던 그 길 외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되돌아 올 때 너무 힘들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해 정맥길을 보지 못했나 싶어 그 알바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봅니다. 조금 전 버렸던 천 원이 눈에 들어오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다시 GPS를 켜보니 아까처럼 또 죽곡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다시 봉대산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네 번째 돼지 목욕탕을 지나게 되고 그 천원을 다시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이 천원은 나 고집통과 무슨 깊은 인연이 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냥 두고 가서는 안될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 꼭 이 천 원짜리로 복권을 사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물론 거제에 돌아와서 그 돈으로 천 원짜리 단독 복권을 구입했습니다. 당연히 꽝이었습니다. 복권은 무슨 내 복에....
또다시 봉대산(14:43)에 올랐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올라올 때 길이 있었는데 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 반대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길은 없었습니다. 계속 도전하기에는 심신이 너무 지쳐버렸고 희미하나마 내려가는 등산로가 보여 하산을 서두르니 상객방마을(15:00)로 내려서게 됩니다. 집 마당에서 도토리를 말리고 계신 어르신을 만나 등로 찾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해 보니 헬기장에서 가는 길이 있긴 있다 하시며 아마도 헬기장 잡목 정리하며 길을 덮어버린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천택시까지 불러주셔서 고마움의 표시로 비록 몇 개 먹긴 했지만 건빵 봉지를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어째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물론 벌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엄청난 알바를 했어도 그 알바 속에 인생이 녹아 있어 뭔가를 느낄 꺼리가 있다면 이 또한 받아들이기가 쉽다 생각됩니다. 오늘 찾지 못했던 낙남길은 내 머지 않아 꼭 상객방 마을에서 시작하여 내려왔던 길로 다시 봉대산에 올라 기필코 그 정맥길을 찾아 가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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