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낙남정맥[완]

[낙남정맥 – 2] 외로운 구름(孤雲)이고 싶었다

산안코 2013. 9. 16. 11:07

■ 언            :  2013. 9. 15 (당일)

■ 어         낙남정맥 2구간 (고운동재 ~ 돌고지재) - 칠중대고지, 방화고지

             고집통 홀로

             맑음

 정맥 산행시간 :  13시간 30(2구간 7시간 30), 알바 시간:1시간 00

                          2일차 고운동재(8:20)→돌고지재(15:50) 7시간 30

 정맥 산행거리 :  26.4 Km (2구간:14.4 Km)

                         알바거리:902.1봉 갈림길→양수상부댐 왕복 3.0 Km

■ 총    산행거리 : 고운동재→902.1봉 갈림길→양수상부댐→902.1봉 갈림길→길마재→칠중대고지→양이터재→방화고지→돌고지재 (17.4 Km)  

 

낙남 첫 구간을 끊어 놓고 이어가기를 계속했어야 하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고운동재까지 가는 교통사정도 그렇고 구간 도착지인 백토재 위치도 가늠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시간만 흘러갑니다. 그러던 중 가을 코스모스로 유명한 하동의 북천역을 찾아가다 우연히 백토재를 넘게 됩니다. 대충 해답이 나왔으니 당장 실천으로 옮겨 3개월 만에 낙남의 백토재를 향해 달렸습니다. 택시가 길마재의 꼬부랑길을 잘도 타고 넘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지리산권에서 벗어났다지만 아직 지리산의 산등성이가 이어져 고개마루는 높고 골은 아주 깊습니다.고운동재 가는 길에는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아침부터 도로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명 운동을 하는 것 같은데 지난 1구간 하산 때는 한낮 땡볕에 달리고 있었고 오늘은 아침부터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온 종일 달리는 모양인데 이런 첩첩 산중에서 저렇게 달려야만 하는 사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고운동(孤雲洞)은 고운 최치원선생이 머물다 신선이 되었다 하여 그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 하며 외로운 구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고집통도 오늘 하루만 외로운 구름이 되어 지리산의 신선이 되고자 합니다.

  

■ 고운동재 - 낙남정맥 두번째 산행 들머리

 

 

고운동재(8:20) 도로변 두 개의 자동차 표지판 가운데로 풀섶을 헤치고 들어가면서 낙남정맥 두 번째 산행을 고집통 홀로 시작이 됩니다. 약간의 비탈길을 치고 오르니 양수발전소 상부 댐이 보이고 이어서 산죽 밭이 나옵니다. 지난번 묵계재 산죽밭을 생각하며 바짝 긴장하였으나 걱정과는 달리 한결 수월하게 통과가 되니 마음이 놓입니다.

긴장을 너무 일찍 풀어버린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엄청나게 넓은 산죽밭이 나오고 가도가도 그 끝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신체 컨디션은 아주 좋아 산죽터널을 막힘 없이 헤쳐나가고 길이 희미해질라 치면 『마창진 송죽』이라는 시그널이 길을 잘도 안내해줍니다. 추석맞이 벌초로 깔끔하게 정리된 묘지를 지나고 벌초꾼이 만든 깨끗한 길을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우째 방향이 산 아래로 향하는 것이 느낌이 이상합니다. 그래도 별 의심 없이 진행하는데 왠 댐이 눈 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스마트폰 GPS 를 켜보니 낙남길에서 한참 벗어난 양수발전소 상부댐(9:00) 근처에 내가 있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놈의 송죽산악회가 많이도 원망스럽습니다. 독사 한 마리가 길 가운데서 꼼짝 않고 버티며 노려보고 있습니다. 독 가진 놈이 버티는데 어쩔 수 있겠습니까? 내가 돌아가면 됩니다. 내리막길을 지날 때 넘어졌던 산죽은 되돌아가는 오르막길에서는 거의 죽창 수준이 되어 얼굴이며 모가지를 사정없이 마구 찌릅니다.

  

■ 지리산 양수발전소 상부댐 모습

 

■ 산죽밭 낙남정맥

 

■ 마창진 산죽산악회 시그널

 

■ 알바 중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제석봉과 천왕봉 그리고 중봉

 

 

사력을 다해 902.1봉 갈림길(9:53) 되돌아 와서 보니 고운동재에서 산죽 밭을 헤집고 가다 정맥 갈림길을 만나 그곳에서 급우회전을 했어야 하나 마주보는 직진길에 송죽산악회 시그널이 정면 눈높이에 매달려 있어 그것을 따라 그냥 그대로 지나쳐 버렸던 것입니다. 정말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내 잘못입니다. 오늘 고집통은 고운동 산자락에서 외로운 구름(孤雲)이 되어 훨훨 날고팠으나 괴로운 구름(苦雲)이 되어 산죽 밭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제대로 된 낙남길을 찾고부터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 천왕봉과 촛대봉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가을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줍니다. 알바로 인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내달리니 아침에 택시로 넘었던 길마재(11:30)에 도달합니다. 고운동재를 출발한 이래 처음으로 음식이란 걸 입에 넣어봅니다.

  

■ 돌아 온 902.1봉 낙남정맥 갈림길

 

■ 낙남정맥 790봉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과 조금 전 알바한 능선

 

■ 버섯1

 

■ 버섯2

 

■ 낙남정맥 790봉 모습

 

■ 길마재 모습 - 아침에 택시 타고 넘었던 고개

 

 

길마재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산불 감시초소가 있습니다. 초소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니 그냥 스쳐 지나 칠중대고지(12:17)까지 한달음에 내달립니다. 칠중대고지는 한국전 때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7중대가 머물렀다 하여 1955년부터 그렇게 불러졌다 합니다. 584봉을 지나고 바로 양이터재(13:05)로 내려섭니다. 양이터는 동학란 당시 양씨와 이씨가 피난을 와서 삶의 터전을 잡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하동군 옥종 땅에 있습니다. 양이터재는 지리산 둘레길이 낙남정맥을 교차하기에 쉼터와 화장실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둘레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승용차만 한 대 보았습니다.

  

■ 칠중대 고지에 선 고집통

 

■ 양이터재 모습 - 지리산 둘레길이 지남

 

■ 양이터재 - 지리산 둘레길 벤치에 앉은 고집통

 

 

오늘은 이름있는 봉우리는 없고 칠중대고지에 이어 전쟁하고 관계가 있을 듯한 방화고지(15:02)를 또 만납니다. 이때쯤 체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처음 고운동재를 출발할 때 마음 같아서는 계획한 백토재까지 얼마든지 가고도 남을 것 같았으나 시작하자마자 산죽밭에서 치른 알바가 심신을 약하게 만들어버려 백토재까지 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목적지를 돌고지재로 급 수정했습니다.

목적지를 줄이고 나니 시간에 여유가 생겨 쉬엄쉬엄 내려가다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아 낙남길을 약간 벗어나 자리를 잡는데 주위에 온통 밤알이 쫙 깔렸습니다. 고집통 완전 횡재를 했습니다. 어차피 돌고지재에서 산행을 종료할 것이니 주울 수 있을 만큼 주워 배낭을 빵빵하게 만들었습니다.낙남길 옆으로 차도가 나옵니다. 마음 같아서는 차도를 걷고 싶었으나 오늘 최종 목적지를 돌고지재로 줄였는데 마냥 편한 것만을 추구한다면 굳이 내가 낙남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어 계속 산길을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개인 사유지인 농장 철문(15:40) 안쪽으로 진입이 되고 농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풀숲이 짙어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농장 바로 아래 돌고지재(15:50)가 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낙남정맥 두 번째 산행을 이곳 돌고지재에서 멈추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 놓았습니다.

  

■ 버섯3

 

■ 버섯4

 

■ 버섯5

 

■ 방화고지의 시그널들

 

■ 버섯6

 

■ 버섯7

 

■ 버섯8

 

■ 돌고지재 근처 농장 안으로 연결된 낙남길

 

■ 돌고지재에 선 고집통

 

■ 돌고지재 - 낙남정맥 두번째 산행 날머리

 

 

택시비를 절약하기 위해 지나가는 트럭을 히치하여 횡천삼거리까지 내려가서 옥종택시를 불러 고운동재로 이동했습니다. 옥종택시는 미터기를 꺾지 않고 부르는 것이 택시비라 기분이 썩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는 돈을 많이 달라합니다.

 

오늘 고집통은 외로운 구름이고 싶었는데 괴로운 구름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