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4. 8. 08 ~ 09 (1박 2일)
■ 어 디 를 : 설악산 대청봉
■ 누 가 : 고집통과 아들래미
■ 날 씨 : 맑음 / 춥고 운무 심함
■ 산 행 여 정 : 거제→속초(1박)→용대리(버스)백담사→영시암→수렴동대피소→봉정암
→소청대피소→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1박)→희운각대피소
→마등령삼거리→오세암→영시암→백담사(버스)→용대리→경주(1박)→거제
■ 산 행 시 간 : 15시간 10분
1일차 백담사(8:15) → 대청봉(14:55) → 중청대피소 (15:20) 7시간 05분
2일차 중청대피소(6:30) → 공룡능선 → 백담사(14:35) 8시간 05분
■ 산 행 거 리 : 약 28.7 Km
1일차 백담사→봉정암→소청대피소→중청대피소→대청봉→중청대피소 (13.5 Km)
2일차 중청대피소→희운각대피소→마등령삼거리→오세암→백담사 (15.2 Km)
아들래미 회사와 여름휴가가 일치합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낚시를 슬쩍 던졌습니다. 『설악산 가자』『예! 그러지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덥석 물었습니다. 설악산까지 이동거리가 멀어 내심 신경이 쓰였었는데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습니다. 요즘 시절에 아버지 따라 등산 갈려는 자식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아버지 입장에서는 같이 놀아주겠다는 아들래미 심성이 무한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휴가철 성수기 대피소예약 시스템을 추첨제로 운행한다기에 적이 걱정하였으나 중청대피소 당첨소식에 안도합니다. 걱정거리 하나를 해결하고나니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된 태풍 할롱이 북상하여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설악산에 발도 못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만 뒷일은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일단은 백담사 들머리인 용대리를 향해 출발해봅니다.
아들래미가 한창 커 갈 때는 공부 때문에 해보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장성하고서는 취직준비로 인해 같이하지 못하다가 실로 오래간만에 이렇게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공부에 목숨 걸어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 실정으로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지금이라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그나마 다행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여행길이 시작됩니다. 7번 국도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지만 믿음직한 아들래미의 운전실력을 믿고 아버지인 나 고집통은 옆자리에서 꼬빡꼬빡 졸고 있습니다. 비 내리는 화진포해수욕장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잔을 비우는 여유도 갖고 모래시계로 유명한 동해안 최고 여행지 정동진에 들러 백사장을 함께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속초 전복 뚝배기 탕은 명성에 걸맞지 않아 약간 실망합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는 평소 같아서면 8시 첫차이나 하절기에는 7시부터 운행하고 있습니다. 첫차 출발시간을 미리 알았었다면 조금 빨리 서둘렀을 텐데 아쉽습니다. 요금은 성인기준 3,200원이며 겨우 차량한대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백담계곡 길을 15분간 달리면 백담사 앞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무려 7.5Km 거리이고 보니 걸어서는 족히 시간 반은 소요될 거리입니다.
수심교를 건너 금강문을 지나 백담사로 들어갑니다. 백담사는 30년도 더 전에 내가 기억이 감감한 시절에 들러본 적이 있어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며 만해선생이 『님의 침묵』을 쓴 곳이기도 하며 전 전대통령이 칩거한 곳이기도 합니다. 수심인지, 무심인지? 어떤 마음으로 쌓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무수한 돌탑들이 백담계곡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분신과도 다름없는 아들래미와의 설악산 산행이 수렴동계곡을 따라 발걸음 가볍게 시작합니다. 수렴동계곡의 시원한 바람과 물소리, 매미소리에 심신이 깨끗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새 영시암에 도착합니다.
수렴동대피소에서 수렴동계곡은 끝나고 천하절경 구곡담계곡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내설악의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만수폭포, 용아폭포에 이어 쌍용폭포가 발길을 붙잡습니다. 이제 내가 설악산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소청대피소 오르는 길이 만만찬습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소청대피소에 올라서니 발 아래 펼쳐진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에 하얀 구름이 휘감아가며 춤추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사여구에 뛰어난 작가가 글로써 표현한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없으며 아무리 사진을 잘 찍는 명 찍사가 찍는다 한들 내가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는 그 이상을 사진기에 담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래미의 입에서는 감탄사에 이어 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예약된 중청대피소에 도착했건만 시간이 너무 이릅니다. 중청대피소에서 바라보는 대청봉 정상은 구름에 갇혀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다 감추곤 합니다. 내일 새벽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있고 대피소 입실 시간도 넉넉하여 일단은 대청봉을 오르기로 합니다. 새들로부터 잣 씨를 보호하기 위해 잣 방울을 그물망으로 감싸놓은 키 작은 눈잣나무들이 등로변에 엄청 많습니다. 멸종위기종이며 국내 유일의 눈잣나무가 국공 직원들의 노고에 힘입어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에서 군락지를 이루며 복원되고 있습니다. 눈잣나무와 함께 금강초롱도 지천에 널렸습니다. 청사초롱을 닮아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나 봅니다.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합니다.
대청봉을 무려 30여 년 만에 올랐으니 산 좀 한다는 나 고집통도 참 무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두대간 종주 때는 정말 가보고 싶었으나 공룡능선 넘으면서 온몸이 파김치가 된 상태였고 세찬 눈보라로 인해 중청대피소에서 눈앞의 대청봉을 쳐다보며 애만 태우다 결국 가기를 포기한적이 있습니다. 사실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거리인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의 게으름 탓이었습니다.
중청대피소로 되돌아와 오리고기 안주 만들어 아들래미는 맥주로 아버지는 맹물로 오늘의 안전했던 산행에 감사하고 내일 있을 대청봉 일출과 공룡능선 안전산행도 함께 기원하면 잔을 부딪쳤습니다. 대피소 3층 침상을 아들래미랑 둘이서 통째로 전세를 냈습니다. 태풍 할롱의 간접 영향으로 구름을 몰고 다니는 바람은 밤새도록 윙윙거리며 슬피 울어대고 중청대피소의 기온을 뚝 떨어뜨려놓았습니다.
새벽 4시에 대청봉 일출을 위해 눈을 떴습니다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안개비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 한여름인데도 너무 춥습니다. 다행이 어제 대청봉을 다녀왔으니 대청봉 일출 보기는 취소해도 될 것 같아 아침식사만 해결하고 또 다른 목적인 공룡능선을 넘기로 했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양은 구름 사이로 희뿌옇게 살짝 보였다 사라집니다.
희운각대피소까지 내리막길이 생각보다 멀다는 느낌이 듭니다. 백두대간 시절 미끄러웠던 이 길을 아이젠도 없이 쌩 고생하며 올라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시작되는 공룡능선의 거리가 5Km가 넘을 것이라는 소리에 아들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어제에 이어 아들래미 오늘도 고생을 좀 하게 생겼습니다. 산 좋아하는 아버지를 둔 원죄 값을 톡톡히 하게하여 아버지로써 약간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룡능선에는 고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래미가 평생을 살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 한아름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아버지로부터 받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아버지인 나 고집통의 생각입니다.
본격적으로 공룡 등을 올라탑니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위험한길이 우릴 맞이합니다. 첫 번째 공룡 등인 신선대에 오르니 조금 전 내가 했던 이야기들이 거짓이 아님을 설악산이 바로 증명해줍니다. 우측의 천불동계곡은 구름에 가려 조망이 없어 약간 아쉽지만 좌측의 가야동계곡과 그 너머 용아장성 그리고 저 멀리 귀때기청봉이 있는 서북능선등이 한눈에 조망되어 사람을 황홀하도록 합니다. 가야 할 공룡능선 또한 일대장관입니다. 1,275봉은 신선봉보다 더 힘듭니다만 아름다운 절경들이 있어 힘듦도 잊은 채 앞으로 진행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탄이 한탄으로 변해갑니다. 경치는 뒷전이고 빨리 공룡능선을 벗어 났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해지고 아버지도 아들래미도 많이 지쳤습니다. 나한봉을 지나면서 공룡능선은 끝이 나고 마등령 삼거리에서 오세암 방향으로 하산을 하게 됩니다.
공룡을 넘고 하산하게 되면 아주 편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끊임없는 내리막길도 절대로 편하질 않습니다. 오세암에 도착하고나니 공교롭게도 오늘도 점심시간이 되어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어제는 봉정암에서 오늘은 오세암에서 점심공양을 받습니다. 나 고집통은 한때 사찰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고 버티며 쓸데없이 고집을 부린 적이 있습니다. 절 밥이 이렇게 맛난 줄을 모르고 말입니다.
오세암에서 나지막한 능선을 2개정도 넘어 약 1시간을 부지런이 내려가니 봉정암과 갈라지는 삼거리길이 나오고 이내 영시암에 도착하게 됩니다. 토요일 봉정암과 오세암에 불공 드리러 오는 불교들과 많이 마주치게 됩니다. 고3 수험생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수능시험이 그리 멀지 않았으니 많은 기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제 올라갈 때는 그렇게 멀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올랐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려니 생각보다 지루한 길입니다. 백담계곡으로 들어가 계곡물에 발까지 담가보니 발목의 피로가 싹 가십니다. 백담사 앞 안내판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1박2일 동안 아름다웠던 설악산 산행을 종료합니다.
마을버스가 용대리까지는 태워주지만 아들래미가 사는 울산까지 천리 길을 내려갈 일이 걱정입니다. 아들래미는 힘든 산행에 이어 운전까지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울진, 삼척 근처를 지날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집니다. 결국 경주시내의 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더 같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들래미가 시회에 진출한 이래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회사에서 여름휴가를 받아 자기 시간을 가져야 하나 흔쾌히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설악산에 함께 올라 준 아들이 무척 고맙습니다. 언제 시간이 허락될 때 지리산, 한라산도 함께 가자고 제안했더니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설악산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다리가 아파 걷기가 힘 든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했었다. 다음은 지리산 화대종주에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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