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5. 12. 17 ~ 20 (3박 4일)
■ 어 디 를 : 지리산 화대종주
■ 누 가 : 덕규형님과 택규 그리고 고집통
■ 날 씨 : 12/18 ~ 12/19 맑음, 12/20 흐림
■ 산 행 여 정 : 거제→개양→하동(1박)→화엄사→노고단→연하천대피소(2박)→벽소령→
세석→장터목대피소(3박)→천왕봉→치밭목→유평마을→대원사→진주→거제
■ 산 행 시 간 : 28시간 14분
1일차 화엄사(6:00) → 연하천대피소(16:26) 10시간 26분
2일차 연하천대피소(6:47) → 장터목대피소(15:20) 8시간 33분
3일차 장터목대피소(6:05) → 대원사주차장(15:20) 9시간 15분
■ 산 행 거 리 : 약 50.8 Km
1일차 화엄사→노고단고개→노고단→연하천대피소 (18.5 Km)
2일차 연하천대피소→벽소령→세석→장터목대피소 (13.3 Km)
3일차 장터목대피소→천왕봉→치밭목→대원사→대원사주차장 (19.0 Km)
불과 4개월 만에 또 화대종주에 들어갑니다. 비록 짧은 기간의 틈이지만 한여름과 한겨울의 차이이며 눈길 산행입니다. 예년에 비해 적설량이 약간 떨어진다 해도 산방기간으로 인해 지리산 주능선길이 열린 지 3일밖에 되지 않았고 평일이라 찾는 사람이 적어 눈길 러셀 유무가 약간 걱정이 됩니다.
역사는 종종 술 자리에서 툭 튀어나오는 말 한마디에서 엮이듯이 이번에는 덕규형님과 택규 그리고 나 고집통 세 사람이 소주잔 기울이다 마음이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여름화대에서 한번 경험을 한 행님은 여유롭지만 화대에 처음 도전하는 택규는 바짝 긴장하는 눈칩니다. 더군다나 겨울산행이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본인은 걱정하는 눈치지만 MTB로 다져진 체력이 우리 중에서 최상위급이라 사실 난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첫날 산행시간을 줄이기 위해 계획보다 하루 전 저녁에 출발하여 구례에서 숙박하기로 했는데 애석하게도 14번 국도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구례도착이 불가능해져 하동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합니다. 시골읍내에는 24시간 영업식당이 없습니다. 새벽부터 밥집 찾아 30여분을 헤매다 결국 밥 먹기를 포기하고 구례화엄사까지 택시로 이동합니다. 화엄사입구 도적들에게 통행세를 떼이지 않아 아침밥을 굶어도 기분은 좋습니다.
2박3일치 배낭무게가 어깨를 짓누릅니다. 셋이서 짊어진 주류를 읊어보니 웬만한 시골 점빵집 하나를 짊어지고 가는 느낌입니다. 집선대에서는 아이젠이 필요했습니다. 노고단대피소에서는 떡라면이 끓고 1.8리터 전주 한 병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새벽부터 쫄쫄 굶어가며 악명 높은 코재를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준비해간 가솔린버너의 밸브가 부러져있습니다. 가스버너를 여유분으로 준비했었기에 천만다행이지 완전 산행을 망칠 뻔 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 원망을 평생 동안 짊어질 뻔 했습니다.
노고단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며 나뭇가지에 얼음 꽃이 피었습니다. 겨울 지리산이 주는 선물입니다. 멀리 S자 선명한 섬진청류가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지리산 주능선에는 작년에 비해 눈이 조금 내렸습니다. 걷기에 아주 적당한 적설량입니다.
택규의 지리산 첫사랑 찾기에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져봅니다. 화대종주 중에 보너스로 노고단을 올랐으니 반야봉은 보이콧하기로 합니다. 화개재 계단은 아직도 551개임을 확인했습니다. 토끼봉 오름 길에서 체력 좋던 택규가 뒤쪽으로 쳐지기 시작합니다. 경치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하지만 약간 힘듦을 난 알고 있습니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연하천에 발라 놓은 꿀을 찾아 그냥 내쳐 달렸습니다. 삼겹살 세 근을 세 사람이 해치웁니다. 소주병도 함께 비워져 나갑니다.
화대종주 첫날밤은 새 단장한 연하천대피소에서 피곤이란 놈을 가슴에 보듬고 깊숙이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냈습니다. 둘째 날의 목적지는 장터목이니 널널산행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침식사로는 소고기 죽 한 개면 충분합니다. 형제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한 장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내일 있을 천왕봉 일출도 기대해봅니다. 12월의 지리산 날씨가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봄 날씨에 가까운 수준이니 조금 양지바른 곳은 눈이 녹아버리고 없습니다. 벽소령을 지나 덕평봉 오름 길도 한방에 오케이 입니다. 선비샘의 선비님께 깍듯이 인사 올리니 이번에는 수량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십니다. 여름 화대 때는 정말 감질나게 줬다 말았다를 하시더니 이번에는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조건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침 없이 세석에 도착하고 꽁치찌개 끓여 오래간만에 밥이란 것을 맛봅니다. 한국사람의 입에는 밥이 들어가 줘야 먹은 것 같은 포만감을 느낍니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 해도 지리산은 지리산입니다. 잘 다져진 눈을 밟고 지나가니 여름에 비해 발목은 다소 편하긴 하지만 촛대봉을 넘고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힘들긴 매 한가집니다.
연하천에서는 꿀만 있었다면 장터목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피소 옆 벤치에 자리를 잡아도 결코 춥지를 않습니다. 소주에 절은 훈제오리가 목구멍을 타고 짜르르 내려갑니다. 환상의 장터목 해넘이에 넋도 내려 놓습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지리산의 둘째 밤도 지나갑니다. 자정에는 지리산의 하늘이 궁금해 대피소 밖을 나가 보았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합니다. 아름다운 새벽을 기약하며 귀마개를 끼웠습니다.
대피소 안이 시끌시끌하고 사람들은 천왕봉 일출을 찾아 한 명 두 명 대피소를 벗어납니다. 자정에는 그렇게 맑았던 하늘이 밤새 무슨 조화가 있었는지 희뿌연 안개가 대피소를 덮쳤고 살을 에는듯한 세찬바람이 기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지리산 천왕봉이니 지금은 이럴지라도 언제 어느 때 하늘을 열어 행운을 선사해 줄지 모르니 희망을 가지고 천왕봉에 올라갑니다.
난 최근 몇 년 동안 천왕봉 일출을 접견하지 못했습니다. 여태까지 동행했던 사람들의 덕이 부족하여 내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편안하게 네 탓으로만 돌렸습니다만 이번에 난 크게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구름 한 점 없이 그렇게도 좋았던 지리산의 하늘이었는데 결정적으로 내가 천왕봉에 오르려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입니다. 지리산은 내가 행한 만큼만 내게 주시니 욕심 부리지 않고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바로 자리를 뜨기로 했습니다.
천왕봉 바위에서 내려서는데 아이젠이 돌부리에 걸려 1m 높이에서 굴러 떨어집니다. 누가 볼 새라 재빨리 일어나 배낭을 둘러메긴 했지만 허벅지에 약간의 고통이 밀려옵니다. 살살 움직여보니 그런대로 참을 만 합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천왕봉은 내게 마음의 힐링과 육체의 고통을 함께 주셨습니다.
이제 대원사로의 하산입니다. 그다지 많은 사람이 지나가지 않은 길이기에 선명하지 않습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밭목대피소까지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늘 그랬듯이 치밭목에서는 모든 양식들을 깨끗이 처분하고 화대종주길의 유일 폭포인 무재치기폭포에 들러 땀에 절은 얼굴도 씻어냈습니다. 이번에는 새재 방향이 아닌 바로 유평으로의 하산을 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터목에서 일행이 한 명 더 생겨 있습니다. 장터목에서 내 옆 자리에 자리를 편 탓에 졸지에 대원사로의 하산을 결정한 부산에서 온 성찬이입니다. 가끔 지리산을 찾는다는 로스쿨 출신 대학원생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입니다.
유평에서는 2박3일 동안 알뜰살뜰 잘 모아 온 쓰레기를 그린포인트 적립도 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를 구입하여 내가 모르게 살짝 버려놓고도 두 사람은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내가 그린포인트에 그렇게 신경 써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다는데 많이 섭섭했었습니다. 천왕봉에 해가 뜨지 않는 것도 내 탓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도 내 탓입니다. 어제는 네 탓이었는데 오늘 비로소 알고 보니 모두가 내 탓입니다.
참새들이 방앗간을 너무 좋아합니다. 틈만 생기면 방앗간으로 쪼르르 달려갑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알콜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있을 정도입니다. 화대종주에서의 산 타는 재미 외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까지 함께 해준 택규가 고맙고 한해 동안에 여름과 겨울 화대종주에 동행한 덕규행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또 같이 할 날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내일 모레면 2015년을 멀리 보냅니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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