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2008. 11. 15 ~ 11. 16 (1박 2일)
● 어 디 를: 백무동~한신계곡~세석~벽소령~반야봉~뱀사골계곡~반선
● 누 가: 고집통, 경만, 기동
● 날 씨: 맑음(15일), 흐린 후 갬(16일)
● 산행 거리: 36.1km 15일(14.8km),16일(21.3km)
● 산행 시간: 20시간 25분 15일(8시간 50분), 16일(11시간 35분)
● 산행 여정: 백무동→세석→선비샘→벽소령대피소(1박)→연하천→화개재→반야봉→화개재→뱀사골→반선
이번에도 지리산입니다. 벽소령 대피소에 15일 날짜 예약접수를 하니 대기번호입니다. 채 3분이 가시기도 전에 “ 삐리릭”예약으로 바뀌었다고 핸드폰 신호음이 들어옵니다. 마침 16일부터는 산불예방기간이라 지리산 산행통제구간이 생기고 대피소 문을 닫는다니 하루 상간으로 행운을 손에 잡은 것입니다. 좋은 느낌의 산행이 예상됩니다.
기동에게 벽소령 대피소 예약결과를 통보하니 백무동, 벽소령, 반선 코스를 쭉 그립니다. 내겐 미답지역인 한신계곡과 뱀사골계곡을 동시에 접할 기회를 얻었고 더더구나 청명한 가을 하늘의 벽소명월이 눈에 잡힙니다.
올 가을은 유난히 깁니다.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가물었던 날씨로 말라 비틀어진 나뭇잎에 가을인가 깜짝 놀라 일찍이 가을 산행을 서둘렀었는데 뒷동산 계룡산에는 이제서야 옷을 갈아 입습니다. 개천절 그날, 천왕봉 번개산행도 가을이었고 백무동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도 가을입니다.
새벽 4시 집앞에 기동의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옵니다. 새벽 5시에 먹는 산청휴게소 장터국밥은 정말 맛대가리 없습니다. 백무동 주차장에는 이른 새벽 천왕봉으로 오르는 몇몇 산님들이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른 새벽 잠 없는 아저씨가 주차비를 받으러 옵니다. 당일치기라고 4,000원만 지불하고 때우려 했는데 다음날 아저씨 용케 기억을 하고 주차비를 더 내놓으라 했습니다.
내년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요령으로 55L+15 배낭을 구입하여 시험운행 차 가져 왔는데 기동이 준비해온 각종 준비물을 넣고 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닙니다. 내 평생 그렇게 무거운 짐 처음 짊어져 보았습니다. 올해만 네 번째 천왕봉을 올랐건만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양쪽 종아리 쥐를 이번에 만났습니다.
6시 30분 출발하여 백무동 탐방안내소(6:45) 앞에서 새로운 산행역사의 시작을 카메라에 담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한신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을이리라 생각하고 나왔는데 계곡에는 이미 낙엽은 없어지고 바싹 마른 나뭇잎들만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고 어제 올랐던 달님은 무엇이 아쉬운지 아직 못 넘어가고 저만치 하늘에 남아있습니다. 오늘 저녁 저 달이 벽소령 하늘에 다시 떠오르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낙엽 밟히는 소리,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아침공기 모두가 상큼합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이 참 정겨운 첫나들이폭포(7:15)가 나타납니다. 폭포는 전망대 아래 위치하여 보이지 않아 간판만 보고 지나갑니다.
가파른 길을 바짝 치고 오르니 발아래 가내소 폭포(7:35)가 있어 땀도 식힐 겸 계곡을 내려서니 물이 얼마나 맑은지 깊이를 전혀 어림해 볼 수가 없습니다. 내 키의 세배 정도일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도인이 마고할미에 속아 도 닦는 일을 실패하고 “나 이만 가내”하여 가내소가 유래되었다니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계곡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 오층폭포(7:50)를 지나고 산행 시작한지 두 시간 만에 처음으로 40대 중반의 남자를 따라 잡았습니다.
서울손님이고 촛대봉에서 하루 비박하며 이것 저것 정리할 것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언뜻 요즘 어렵다는 실물경제에 희생을 당했구나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잘 정리하여 제대로 된 아이템 한 개 가져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세석평전을 700m 남겨둔 지점부터 정말 깔딱고개입니다. 평소 마라톤으로 잘 단련된 경만은 거리낌없이 올라가고 난생 처음 박용 배낭을 둘러메고 올라가는 기동과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 오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 종아리에 쥐 한 마리 왔다 갔습니다. 평소 내 페이스를 놓친 것입니다. 왼쪽 다리에 신경을 써가며 오르기를 잠깐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에도 요놈의 쥐가 나타나더니만 이젠 꼼작 못하도록 합니다. 오늘 좋은 것 하나 배웠습니다. 경만이 다리 경련에는 테이프 요법이 좋다며 가지고 온 테이프를 발 뒤꿈치에서 종아리까지 발랐는데 정말 신기하게 발을 들면 쥐가 왔다가 디디면 쥐가 잡히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벽소령 대피소에 뛰어다니는 쥐만 보았을 뿐 내 다리에는 쥐 없었습니다.
세석 대피소(10:25)에 자리를 깔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햇반 데우고 라면 끓이는데 이번에는 기동이 새로운 것을 하나 보여줍니다.
전투식량이라나? 비닐 봉지에 찬물을 부었는데 김이 무럭무럭 생기며 물이 뽀글뽀글 끓어 올라 밥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대피소에서 밥하던 다른 산님들도 감탄을 합니다.
허기진 배를 채운 후 계획에 없던 촛대봉(11:50)에 올라 저 멀리 천왕봉과 반야봉을 뒤로 사진 한 컷 남기고 내년 꽃피는 봄날 세석평전 철쭉이 만발할 때 거림을 통해 한번 오르기로 약속하고 영신봉(12:20)으로 향했습니다.
칠선봉(13:10)을 지나고 선비샘에 다다를 즈음 지나가는 아가씨가 식수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물어옵니다. 아마도 선비샘에 물이 가뭄으로 인하여 말랐는가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선비샘(14:20) 물 구멍은 바싹 말라 파란색 바가지들만 물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산님들이 곤란을 당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리산을 세 갈래로 댕강 잘라 놓은 구벽소령 임도(15:00)부터는 아주 넓은 평지길입니다. 보기에는 금방 도착해질 것 같아도 무려 20분이 지나서야 오늘의 목적지 벽소령 대피소(15:20)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 벽소령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이름을 붙였다니 오늘밤이 달이 기대됩니다.
이내 기동이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각종 야채와 삼겹살로 화려한 산상파티를 펼쳐 오늘 하루 산행여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 시켜줍니다.
벽소명월을 예감하며 날이 어두워지고 달이 오르기를 한참을 기다렸건만 희멀건 별 몇 개 가물거리고 오늘 아침 그리도 밝게 비추던 달은 누군가 오르지 못하도록 묶어 두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취기가 오르고 바깥날씨도 쌀쌀하여 일찌감치 대피소 마루에 몸을 눕히니 금새 꿈나라로 갑니다.
여타 대피소가 늘 그랬듯이 오늘도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3시입니다. 출발예정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경만, 기동은 이 시간에 출발하겠다고 배낭을 챙기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빨리 오라고하지도 않고 갈 곳도 마땅찮은 데 다른 산님들 코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으니까 그냥 가자고 합니다.
혼자 버틸 수 없어 대피소를 출발(3:25)하여 둘째 날 첫 목적지인 연하천대피소로 향했습니다. 캄캄한 지리산 주능선은 거의 바위길이며 어제 그렇게 좋던 하늘은 안개로 인해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합니다. 그리고 빗방울도 간간이 떨어집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어둠 속에 희미한 실루엣으로 비치는 형제봉(4:10)을 지날즈음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아버지와 아들, 또 한 사람 우리를 스칩니다. 아버지는 오늘 노고단까지 가야 하니까 발길을 서두르고 아들은 힘이 들어 죽겠다고 버팁니다.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오늘 아들이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연하천 대피소(5:30)에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합니다. 취사실에 스위치를 올리니 뜻밖에 불이 들어옵니다. 여기서 밥 한 숟갈로 아침끼니를 때운 이후 뱀사골 반선에 도착 할 때까지 밥 구경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허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토끼봉(7:25)에 이르니 날이 밝아지고 화개재(8:00)에서는 날씨가 좋아져 햇볕도 보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뱀사골로 하산하자고 하고 싶으나 시간이 너무 일러 반야봉에 발 도장 찍고 오기로 하고 삼도봉까지 이어진 나무계단의 정확한 개수를 파악하기 위해 세 명이 각각 세어 보기로 했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세 명 모두 실패했습니다.
반선까지 9.2km라는 표지가 맥을 놓게 만듭니다. 옛날 내가 하루 저녁 머물렀던 뱀사골 대피소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작은 컨테이너 크기의 탐방안내소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급경사의 돌길을 끊임없이 걸어내려 가는데 경만은 이미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멀어진 지 오래입니다. 가면 갈수록 몸이 지치니 배낭 무게는 어깨를 더 짓누르고 발바닥에 불이 붙는 듯 뜨거워지며 다리는 힘이 다 풀려버렸습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힘들게 벗어나니 계곡에 아주 넓은 웅덩이가 나타납니다. 옛날 화개재에서 넘어 오던 소금장수가 발을 헛디뎌 소금과 함께 빠져 죽어 그 후로 물이 간장처럼 짜졌다 하여 간장소(11:55)라 한다니 내 사정이 소금장수와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완만한 계곡을 따라 펼쳐져 있는 산수화와 크고 작은 폭포, 물이 너무 맑아 깊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각종 소들을 감상하며 내려가니 용과 뱀, 소와 관계되는 많은 전설을 가진 제승대(12:20), 병풍소(12:40), 병소(12:50), 탁용소(13:15)등이 나옵니다.
요룡대(13:25)에 도착하니 이제는 콘크리트 길 3km가 눈앞에 쫙 늘어져있고 계곡 아래로는 아름다운 뱀사골계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탐방객들의 편의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로 죽었다는 전설을 가진 반선(14:00)이라는 뱀사골계곡 탐방 안내소 앞에 마지막으로 도착하니 32.1km, 1박 2일의 기나긴 산행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동동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너무 시원하여 “ 캬 ~~”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힙니다.
곰곰이 분석해 보니 어려운 산행 마무리에 감동 먹고 체해서가 아니고 어제 10시에 밥 구경하고 이후로 제대로 탄수화물 섭취를 하지 않아 나타나는 체력 고갈 현상이었습니다. 밥 두 그릇 비웠습니다.
백무동까지 이동할 택시가 없어 지난 추석휴가 지리산 종주할 때 알아둔 장터목산장 택시기사님께 전화하니 한달음에 마천에서 반선까지 오십니다.
19,000원에 반선에서 백무동이면 공짜나 다름 없습니다. 친절에, 속도에, 가격에 우리동네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다음에 다시 기사님을 찾도록 만듭니다. 더구나 기사님 이름 팔아 더 내놓으라는 주차비 4,000원도 남겼으니 마무리가 너무 좋습니다.
한숨 자고 나니 집 앞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이틀 동안 함께한 경만, 기동이 고맙게 생각되며 앞으로 좋은 인연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무래도 얼마지나지 않아 또 누군가와 지리산의 겨울 눈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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