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3. 2. 12 (당일)
□ 어 디 를 : 지리산 영신봉 (1651.9 m), 칠선봉, 덕평봉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흐림, 눈
□ 산 행 여 정 : 백무동→세석대피소→영신봉→벽소령대피소→음정마을
□ 산 행 시 간 : 8시간 50분
백무동(6:40)→세석대피소(9:50)→벽소령대피소(12:35)→음정마을(15:30)
□ 산 행 거 리 : 약 19.5 Km
설 명절을 부모와 함께 보내겠다고 울산, 서울에서 아들, 딸이 거제로 속속 몰려듭니다. 지난 추석 까지만 해도 꽉 찬 학년의 학생이었는데 이번 설에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신분을 바꿔준 자식 새끼들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부담 없는 포근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토, 일요일을 겹친 설날휴가는 예년에 비해 턱없이 짧아 금방 저들만의 생활영역으로 떠나버리고 다시금 집안은 휑해졌습니다.
그래도 내겐 이틀이라는 자투리휴가가 남아있어 나를 위해 하루, 마눌님을 위해 하루를 할애하기로 정하고 날 위한 시간은 그냥 그랬던 것처럼 지리산행이 되고 몇 일 후면 산방기간으로 막힐 주능선 길을 찾기로 했습니다.
고집통 홀로 내려선 백무동은 설날이 지난 평일이라 여느 산골의 새벽처럼 쥐 죽은 듯 고요하며 적막강산입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하늘의 기상을 가늠하진 못하지만 기온이 따뜻해 장갑을 착용하지 않아도 그다지 손이 시리지 않은 날씨입니다. 일기예보상에서는 오늘 남부지방에 한바탕 비를 뿌릴 것을 예보했습니다. 마을 초입의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산행 채비를 하고 나니 희끄무레하게 날이 밝아져 오고 있습니다.
백무동 탐방안내소를 지나 한신계곡을 타고 세석대피소로 향합니다. 첫나들이폭포, 한신폭포를 지나고 가내소폭포 전망대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해봅니다. 눈과 얼음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 한신계곡이 너무 아름답고 멋있습니다. 약 1시간 가량 산행을 진행할 무렵 하늘이 어두워지며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은근히 눈을 기대하긴 했지만 내 바램 대로 일이 이루어지니 기분이 썩 좋습니다.
한신계곡 등로는 그 길이가 짧아 단시간 산행으로 지리산 주능선에 오를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반면 산비탈의 난이도가 지리산 등로 중에서 최상급이기에 산님들이 오르는 길로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선택한 한신계곡 등로는 가파르기도 최상급이지만 온통 얼음이 등로를 뒤덮어 최악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차 하면 큰일이니까 무조건 조심만이 내가 살길입니다.
스치는 산님께서 왜 홀로 산행을 하느냐고 내게 묻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나는 빨리 가고 싶지도 멀리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혼자가 좋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아주 깊고 생각거리가 많지도 않습니다. 혹자는 고집통이 저러다 득도하는 것 아니냐고 염려들 하는 눈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그냥 머~~엉 입니다.
세석대피소에 올랐을 때는 한치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눈보라가 몰아칩니다. 라면을 끓이기에는 아직은 일러 간단하게 요기만하고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신봉에 올라보기로 했습니다. 생태복원을 위해 가지 말라는 펜스를 쳐놓았지만 나중에 내가 가야 할 낙남정맥의 시작점인 그곳이 너무 궁금했기에 미안함을 갖고 선을 넘었습니다. 정상에는 그냥 커다란 바위 덩어리 몇 개 있었습니다.
설 명절의 뒤끝이라 그런지 예상외로 많은 산님들이 지리주능선에 머뭅니다. 평소 같았으면 주능선 길이 바위길이라 발목에 큰 무리를 주지만 지금은 눈이 덮여 걸음걸이가 한결 가볍습니다. 선비샘에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물맛을 보려면 누구라도 선비님께 깍듯이 허리를 굽혀야만 합니다. 그러면 천하 최고의 물맛을 볼 수 있습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음정으로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벽소령대피소 바로 아래 몇 발자국 내려가지 않아 임도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지루한 6.7Km 임도길을 내려갑니다. 정말이지 그 임도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터덜터덜 그냥 그렇게 음정까지 걸어 내려갔습니다. 재미 하나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장터목펜션 택시를 음정으로 불러 백무동에 도착하니 내가 산에 든 시간 동안 제법 많은 눈이 내렸었는지 내 충실한 삼철이가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채 고집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설 명절 휴일을 쪼개 홀로 지리산을 찾았으니 마눌님께 살짝 미안함이 들어 돌아가는 길에 마천의 흑 돼지 목살을 조금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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