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8. 12. 20 ~ 12. 21 (1박 2일)
▣ 어 디 를 : 백무동 ~ 장터목산장 ~ 천왕봉 ~ 치밭목산장 ~ 대원사
▣ 누 가 : 고집통, 기동
▣ 날 씨 : 20일(비), 21일(눈)
▣ 산행 거리 : 총 21.2 Km. 20일(5.8 Km), 21일(15.4 Km)
▣ 산행 시간 : 12시간 30분 20일(4시간 15분), 21일(8시간 15분)
▣ 산행 여정 : 거제→원지→함양→백무동→하동바위→참샘→소지봉→장터목산장(1박)
→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산장→대원사주차장→원지→거제
곱디고운 하얀 백설도 다이아몬드 모양, 별 모양, 육각기둥 모양 등 사람처럼 여러가지 형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속살을 들여다 보면 수증기가 미세먼지를 품고 엉겨 있기도 한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 쏟아지는 눈을 보는 내 마음은 이리도 새하얀데 내일 당장 저 아래 내려가면 그렇지 못합니다. 누군가 내 가슴에 불을 지펴 애간장을 태우게 하고 그 마음을 새까맣게 만들어 버립니다. 또 누가 내 심기를 살짝 건드리는데 화~~~~악.
이번에는 기동이 한 수 앞서 선수를 쳐버려 장터목산장 예약을 완료해 버렸습니다. 지난번 산행을 함께했던 경만의 원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자기만 쏙 빼버리고 지들 끼리만 간다는 얘기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하고 기동이 집에서 출발했다는 연락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이쿠 이게 무슨 일인가? 6시 출발이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마눌님이 한해 농사인 김장을 한다는데 혼자 지리산 찾아간다고 집 나서려니 가슴 짠해 걸리는게 있었는데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집안 분위기를 흐려 오늘 벌 받을 일을 많이 했는가 산행 시작부터 비 흠씬 맞았습니다.
이번에는 버스를 이용하여 산행하기로 작전을 살짝 바꾸었습니다.
원지(7:03) 시외버스주차장에 승용차를 받쳐두고 버스에 올라 함양(7:40)으로, 다시 1시간이나 기다려 백무동(9:15)으로, 마지막 하선은 대원사로 하기로 코스를 정했습니다.
백무동 길 아래 옛고을 식당에 들러 아침식사 김치찌개 한 그릇을 주문하였는데 식당 사장님 귓속말로 앞 테이블 손님들이 함안에서 멧돼지 한마리를 몰고 왔는데 돈을 받지 않을테니 맛을 보라 하십니다.
그 맛도 맛이려니와 멧돼지고기에 혹해 내가 오늘 산에 올라가야되는 것을 망각하고 아침부터 무리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항상 내게는 이 음식의 유훅이 나를 힘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백무동 탐방안내소 앞에서 지난번에는 세석을 향했었고 이번에는 장터목 방향입니다. 출발(10:00)과 동시에 때맞추어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채 500m를 진행하기도 전에 빗방울이 굵어집니다. 갑자기 경만과 울 마눌님 얼굴이 또 한번 나타났다 스쳐 지나갑니다.
에이구 지가 조금있으면 그치겠지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나아갔지만 도대체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정말이지 비 쫄딱 맞고 우의 끄집어 내어 입었는데 때를 맞춰 바로 멈춥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게 매사 이 모양입니다.
하동바위(11:05)에 올라 하산하는 첫 산님을 만나고 참샘(11:05)근처에 도달하니 한 떼거리의 고딩들이 제대로 겨울 등산장구도 갖추지 않은채 무리지어 내려옵니다. 많이 넘어지고 고생한 흔적이 겉으로만 봐도 훤히 보입니다. 길 바닥은 금방 내린 비로 질척질척해져 있고 돌 길 위엔 얼어 붙은 눈들이 날 바짝 긴장 시킵니다.
도대체 요놈의 하동바위는 왜 여기에 있나 궁금했는데 이런 사연이 있답니다.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 함양원님과 하동원님이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상의 장날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로 향했습니다. 풍류를 잘 알았던 두 원님은 뜻밖의 만남에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장기를 두게 되었는데 하동원님의 압승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내기에 진 함양원님은 수중에 내어 놓을만한 변변한 것이 없는 터에 승자를 놀려 줄 요령으로 눈 앞에 우뚝선 바위를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설마 바위를 가져갈 수 있겠느냐는 투였습니다. 하동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나중에 사람을 동원하여 가져가기로하고 우선 이름을 하동사람의 바위란 뜻으로 「하동바위」로 이름지어 버린것이 그만 함양 땅에 있으면서도 산 너머 하동바위가 되고 말았다 합니다. 시쳇말로 카더라 그것입니다.
소지봉(12:30)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상봉 천왕봉이 저만치에서 오라하고 또 잠시 후에는 오늘의 목적지 장터목산장도 우릴보고 빨리 오라 손짓합니다.
장터목 산장에 올라서니 중산리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얼굴을 쓰윽 핥고 지나가고 사진 한장 찍으려니 손이 시려 쉽사리 용납을 해주지 않습니다.
1박 2일에서만 누릴수 있는 메뉴,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오늘의 피로를 풀고 대피소 딱딱한 마루에 몸을 눕히면서 오늘 하루가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만일 장터목 산장을 이용해서 하루를 보낼 요령이라면 겨울 가뭄으로 산장 근처에는 식수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산장 매점에서 구입할 수가 있지만 그 마저도 시간내에 도달할 수 없으면 식수 땜에 큰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용케 명당자리를 잡아 현관문 앞이 내 자리인데 밤새 들락거리는 산님들로 인해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햇반과 라면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스팻츠, 아이젠, 헤드렌턴등 산행준비를 야무지게 갖추고 산장 밖을 나서니 밤새 하이얀 눈들이 세상을 확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침 7시가 되었어도 아직 눈빨이 날리는 캄캄한 한 밤중입니다.
제석봉, 통천문을 지날즈음에 날은 희뿌옇게 밝아지고 캘린더의 12월의 사진일까 아니면 함양휴게소 화장실 오줌싸다 쳐다보는 한 장의 사진인가 오늘 제대로 된 지리산 천왕봉의 눈 덮인 산을 내 눈으로 직접 감상합니다.
천왕봉 정상(7:50)은 바람 세기가 너무 강해 마주보고는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눈 바람이 얼굴을 때리니 따가워서 사진 한장 찍는 여유도 부려볼 수 없습니다.
밤새 바람들이 눈을 휩쓸어 대원사 방향의 등로로 발자국을 모두 지워 버렸습니다. 몇 사람이나 갔을까 이 길을? 희미한 발자국으로 보아서는 네 사람입니다. 중봉에 이를 즈음 화엄사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대원사까지 제대로 된 화대종주를 하고 있는 내 또래 되어보이는 부부와 수능을 갓 마치고 멋 모르고 따라나선 고 3생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아들과의 화대종주를 이 부부는 뭣 땜새 하고 있는지 너무 부럽습니다. 이 아들이 부모가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를 알고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지나면 말 안해도 자동빵으로 알겠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엉덩방아 수 없이 찧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며 써래봉(09:15)에 도착하여 잠시나마 여유를 부려가며 마눌님에게 문자도 넣어보고 지리산의 겨울 정취에도 빠져봅니다.
정말 멉니다. 치밭목산장(10:10). 천왕봉에서 첫번째로 눈 발자국을 내며 내려온 첫 산님을 따라 잡았습니다. 여기도 겨울 가뭄은 여전해 취수장이 폐쇄되어 기존의 샘터보다 약 300m 아래에서 눈이 녹아 졸졸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식수로 대용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휴가 때 들러서 하룻밤을 보냈던 그 기억들이 새록새록합니다. 머지않아 화대종주 가족이 도착하고 성삼재에서 출발했다는 광주 아저씨도 도착하고. 이 길로 하산하는 산님들은 결국 대원사 주차장에 기다리는 버스에서 모두 만났습니다.
약 1시간의 여유를 부리고 무재치기폭포(11:35)곁을 스쳐지나 새재삼거리(11:55)를 통과하고 한 없는 오르내림이 있은 후에 드디어 유평리 삼거리(13:40)에 도달했습니다.
개울가에 들어가 아이젠, 스팻츠 벗고 손을 물에 담그니 손이 얼어 붙는 느낌입니다. 고생한 발을 담가볼까 생각했는데 1초의 생각도 없이 거두어 들였습니다.
대원사(14:05)에 들러 무사산행을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대원사 주차장(14:40)에 내려서니 진주행 버스가 오후 3시35분에 있다고 합니다.
하산하면 파전에 동동주를 할까? 아니면 시원한 맥주를 할까? 고민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을씨년스런 겨울의 대원사 주차장 주위 가게는 문을 닫아 버려 하산주는 언감생심입니다. 하다못해 음료수라도 한 잔 했으면 했는데 그 마저도 내 욕심인가 자판기 전기가 죽어 버린것입니다.
입 맛만 다셨습니다. 무료하게 1시간을 기다렸다 버스에 오르고 40분후에는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는 원지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거제도입니다.
주말이면 제대한다는 아들이 집에 와 있어 깜짝 놀라 무슨 일인냐고 물어보니 열심히 삽질만 하다보니 말년에 4일짜리 휴가가 떨어졌다 합니다. 반갑기도하고 요녀석 제대 해봐라 내가 요녀석을 데리고 지리산을.... ㅋㅋㅋㅋㅋㅋㅋㅋ.
한 해가 또 저물어가는 이 겨울 나는 지리산에 올라 하얀 세상을 보았고 그속에 있어도 보았습니다. 오르면 천상 무아가 되고 내려오면 현실인데 그 현실을 거역해 보지 못함이야 나만의 문제이겠습니까?
결국 다들 같은 세상을 힘들게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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