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9. 1. 17 ~ 2009. 1. 18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구간(천왕봉~성삼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5명과 고집통
◈ 날 씨 : 1/17 맑음, 1/18 폭설
◈ 대간 산행시간 : 16시간 30분(1구간: 1시간 30분)
1일차 천왕봉(10:10)→벽소령(16:50) 6시간 40분
2일차 벽소령(06:10)→성삼재(14:00) 9시간 50분
접근 거리 : 중산리(06:10)→천왕봉(10:10) 4시간 00분
성삼재(14:00)→시암재(14:45) 45분
◈ 대간 산행거리 : 28.13Km (1구간: 28.13Km)
1일차 : 16.6Km, 2일차: 11.53Km, 접근 거리: 1일차 5.4Km, 2일차 1 Km
◈ 총 산행시간 : 총 21시간 15분
◈ 총 산행거리 : 중산리→천왕봉→장터목대피소→세석대피소→벽소령대피소(1박)→연하천대피소→화개재→삼도봉→노고단→성삼재→시암재(약 34.23Km)
무엇이 나를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에 끌어 들이게 하였는지 무엇을 위해 이런 끔찍한 일에 내가 서슴없이 발을 들여 놓아 버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미스테리입니다.
태만한 정신과 건강에 대한 맹신으로 뒷동산 계룡산 산행마저도 외면하고 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거제 지맥을 찾고 지리산 종주산행에 매달리더니 급기야는 언감생심 국토대장정 백두대간 종주에 발을 내딛고 말았습니다.
지리산 화대종주 이후 내 자신에 감동 먹고 코 끝 찡하며 벅찬 감동을 느꼈었는데 이 무모한 도전을 완성하는 날이면 알수 없는 희열로 대성통곡해 세인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망설이고 망설임 끝에 삼성중공업 산악회 30주년을 기념하는 백두대간 종주 희망자 명단에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올렸습니다.
첫 번째 구간이 1월의 지리산 종주코스이니 겨울 산행에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고 등반장구 또한 시원찮아 바짝 긴장 먹고 열심히 계룡산 오르내리고 뻔질나게 지리산 들락거려 다리 힘 올려 놓고 인터넷을 수시로 왔다 갔다하며 배낭이야 침낭이야 준비하느라 없는 살림에 재정이 이만 저만 축 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이면 첫 출정이라 혹시나 사그라질 의지가 두려워 직장 동료들에게 『나 백두대간 종주하러 갑니다』고 온 동네방네 떠들어 놓았렸습니다.
내 마눌님 힘들고 먼 길 나서는 남편을 위해 방한모, 방한 장갑 구입했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경만, 택규가 꼭 중도 포기하지 말고 완주하라며 소주 한 잔에 힘을 팍팍 실어주기도 합니다.
고마운 마음 씀씀이에 코끝이 찡해지고 혹시 눈가에 맺힌 이슬이 비칠까 부끄러워 얼른 소주랑 마셔버렸습니다. 중도 포기하면 열 배, 완주하면 다섯 배, 첫 번째 구간 무사히 갔다 오게 되면 저녁밥을 사겠노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새벽 세시 반. 마눌님과 군 제대하여 집 지키는 아드님 그리고 삼손이, 삼식이의 희망과 걱정 섞인 눈빛의 배웅을 남겨두고 첫 출정을 위해 집을 나서 새벽 하늘을 바라보니 유난히 초롱초롱한 반달과 별빛도 나의 백두대간 무사 완주를 기원해주는 것 같습니다.
마흔다섯 명에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정원을 한 명 넘긴 버스가 열심히 달려서 중산리주차장에 새로운 도전의 꿈으로 가득 찬 일행들을 우르르 쏟아 놓습니다.
6,000원의 밥값이 아까운 중산리의 한 식당 시래깃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단한 스트래칭으로 몸을 풀어 준 뒤 이마빡에 반딧불이 하나씩 매달고 천왕봉을 향해 지리산계곡(6:10)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갑니다.
캄캄한 계곡에 줄지어 선 깜빡거리는 불빛들이 새로운 볼꺼리입니다. 내 마눌님의 표현으로는 따뜻한 봄날 한떼의 개미들이 먹이를 가져다 나르기 위해 줄 지어선 모습과 비교하였는데 그 모습이 언뜻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자아집니다. 너무나 개미의 모습과 흡사하고 나도 그 일원에 포함되어 있으니 내가 개미를 바라보는 모습과 저 위에서 지리산 산신령님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똑 같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목표하는 바가 있어 희망을 찾아 움직이는 일행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칼바위(6:45), 망바위(7:30)를 지나고 있는 도중 먼동은 밝아 왔고 로타리산장(8:10)에서는 맥주 한 깡통에 달콤한 휴식이 꿀맛 같은 안주가 되어줍니다.
고개 들어 바라보는 먼발치의 천왕봉은 엄청 푸른 색깔을 연출해내어 신 만이 그려 낼 수 있는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개선문(9:15)에서부터는 눈과 얼음으로 인해 아이젠을 착용치 않고는 도저히 미끄러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눈 속에 푹 파묻혀 버린 천왕샘을 지나치고 천왕봉 마지막 난코스인 나무 계단과 돌계단이 내 발길을 자꾸 더디게 만듭니다.
천왕봉(10:10)에 올라서니 맞은 편 함양 땅에서 불어오는 한 겨울의 마파람이 내 머리를 자꾸 뒤로 밀어 냅니다. 네 시간여의 힘든 산행으로 백두대간 시작점인 천왕봉에 올라 앞으로 펼쳐질 고되고 험난한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것을 마음으로 몇 번이나 다짐하며 나와의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이로써 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꿈의 백두대간 길에 내가 발을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항상 천왕봉에 오르면 정상석과 엉성하게 어깨동무하고 사진 한 장을 남기듯이 이번에도 그 엉성한 폼을 한 채로 기념할만한 사진을 또 한 장 남겨 놓았습니다. 힘찬 구호로 백두대간을 완주하겠노라고 지리산 산신령님에게 길 좀 열어 달라고 간절한 부탁도 했습니다.
제석봉(10:50)을 가로질러 내려가 장터목산장(11:05)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준비하려니 취사장 내부에는 엄청난 인파로 발 들여 놓을 틈이 없습니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마련하여 끼니를 해결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일행이 움직이니 앞으로의 여정도 큰 부담입니다. 게다가 배낭 엉덩이에 태극기를 달고 있는 인천에서 왔다는 모 산악단체도 백두대간 산행을 오늘부터 시작한다며 우리와 같은 일정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겨울산행에는 가뭄이 워낙 심해 장터목산장에서도 그렇고 지리산 모든 산장에서 식수를 구하기가 엄청 힘이 듭니다. 다행이 나는 중산리 출발할 때 식수를 넉넉하게 준비해 갔으니 망정이지 세석산장(13:30)에 이를때까지 많은 산님들이 물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선비샘(15:55)에도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만이 뒹굴 뿐이지 한 방울의 물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벽소령산장(16:50) 취사장에서는 귀신이 울고 갈 일이 생겼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소주 한 잔 한답시고 삼겹살 굽고 있는데 잘 사용하고 있던 설거지용 화장지가 아주 통째로 사라지고 없습니다. 누군가 혼잡한 틈을 이용해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필요하면 말을 할 것이지 그 날 저녁 정말 애로를 많이 겪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하룻밤을 벽소령산장에서 보내고 출발 준비에 여념 없는데 여기저기서 신발 분실 했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알고 보니 밤새 바깥세상이 궁금하여 부지런히 들락거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으로 어디에 신발을 벗어 두었는지 기억을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스패츠, 아이젠등 장구를 단단히 갖추고 대간종주 이튿날째를 위해 산장 밖으로 나오니(6:10) 벽소령골의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캄캄한 어둠 속 희뿌연 운무가 한치 앞 구분이 되지 않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의 첫 고비 형제봉(6:55)을 지날즈음 멀쩡하던 몸에서 이상 징후의 신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 합니다. 매일 아침이면 하던 행사를 벽소령 화장실에 대기 손님이 너무 많아 뒤로 미룬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안하게도 하얀 백설 위에 바지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발목까지 푹 빠지는 백설 위에 쪼그리고 앉으니 강력한 눈보라가 눈을 뜰수 없는 세기로 몰아칩니다. 칼 바람이 아랫도리를 금방이라도 냉동 시켜버릴 태세입니다. 손 하나 대지 않고 정말 동그랗고 예쁜 작품을 지리산 주능선에 남겨 두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잘 냉동 되었을 테고 후일 꽃피는 봄 되면 길 가던 산돼지 횡재수를 만날 것입니다. 그 돼지 횡재가 더블입니다. 바로 옆에 새 손님이 나랑 나란히 자리를 폈습니다.
약 30분 정도 지났을까 지난 여름 깔끔하게 단장한 연하천산장(8:00)이 나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곳 취사장도 내가 들어갈 만한 여유 공간은 없습니다. 별수 없이 눈보라 속에서 라면 물을 올렸습니다. 정말이지 개 떨듯이 벌벌 떨어가며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왜 그리도 토끼봉(10:25)은 멀게 느껴지며 삼도봉(10:55) 올라가는 계단은 어찌 그리도 힘이 들며 앞서 가는 형님들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발걸음 가볍게 날아 가버리는지 마음이 바쁩니다. 나중 노고단산장에 도달 했을 때 일행들 중 내 뒤로는 채 열명도 남지 않았었습니다. 앞으로의 머나먼 여정을 감안할 때 체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언제부턴가 눈은 멎어 있었고 운무만 자욱하여 어디가 어딘지 한 치 앞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앞만 보고 무심히 걷고 있는데 전화기에서 음악소리가 울립니다. 피아골에서 비 쫄딱 맞아가면서 노고단에 올라오신 재택 형님이 다른 사람들은 보이는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걸어 온 것입니다. 전화를 끊을 즈음 노고단 돌탑이 어느듯 눈 앞에 있었고 잠시 후 노고단산장(13:40)에 내려서니 재택 형님과 형수께서 반갑게 맞이하면서 이것저것 먹거리를 듬뿍 내어 놓습니다. 오래간만에 입이 호강을 합니다.
성삼재로 내려가는 시멘트길은 얼음으로 옷을 입고 있어 아주 미끄럽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열심히 걸어 오늘의 목적지 성삼재주차장(14:00)에 도달합니다. 이로써 1박 2일 일정의 백두대간 첫 번째 구간 종주를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흠씬 젖은 장갑 속의 손가락은 팅팅 불어 쪼글쪼글 해졌습니다. 기념사진을 남기며 백두대간 첫 번째 구간 무사종주를 자축하고 싶었으나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먼저 도착했을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습니다. 알고보니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시암재휴게소(14:45)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끝난 줄 알았던 산행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죽기로 걸었습니다.
매년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하고 3년째 아름다운 지리주능선을 걸었었는데 올해는 일찌감치 백두대간 첫 구간에 업혀 자연스럽게 지리의 겨울산을 종주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남들이 장에 가니 별 볼일 없는 나도 거름이라도 지고 장에나 가 본다고 준비 안된 자세로 따라 나섰다가 그야말로 혼쭐이 났습니다.
백두대간을 완주 하려면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자주 발목을 잡아 당길 것이라고 그리고 다음 구간부터는 고도의 높낮이가 심하며 비박 또는 무박 산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완벽한 체력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며 산행대장이 특별한 주문을 합니다.
이로써 백두대간 첫 번째 구간을 무사히 끝내고 그 기쁨을 지금 『 꿈길에 발을 올리다』를 글로 옮기듯 이 백두대간 전 구간을 내 발로 모두 걸어 30장의 글을 이 바닥에 차곡차곡 남기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내 자신에게 기를 불어 넣는 화이팅을 외쳐봅니다.
'백두산·백두대간·정맥 > 백두대간[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 6] 대간병에 걸려 들다 (0) | 2009.06.15 |
---|---|
[백두대간 - 5] 고집통 식겁 먹다 (0) | 2009.05.31 |
[백두대간 - 4] 사월은 잔인한 달 맞다 (0) | 2009.04.15 |
[백두대간 - 3] 춘삼월 칼바람 오는 봄 시샘하다 (0) | 2009.03.19 |
[백두대간 - 2] 그림자를 두고 오다 (0) | 2009.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