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2] 그림자를 두고 오다

산안코 2009. 2. 21. 10:21

◈ 언            제 : 2009. 2. 14~ 2009. 2. 15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2구간(성삼재~복성이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4명과 고집통
◈ 날            씨 : 2/14~2/15 맑음
◈ 대간 산행시간 : 33 시간10 분(2 구간: 16 시간40 분 )
                        3일차 성삼재(8:00)→여원재(17:00) 9시간 00분
                        4일차 여원재(7:10)→복성이재(14:50) 7시간 40분
         접근 거리 : 여원재→봉송마을 20분, 봉송마을→여원재 20분
◈ 대간 산행거리 : 70.21Km (2구간: 42.08Km)
                        3일차: 20.5Km, 4일차: 21.58Km, 접근 거리: 왕복 2.4Km
◈ 총   산행시간 : 총 17시간 20분(접근 시간: 40분 포함)
◈ 총   산행거리 : 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기리→노치마을→수정봉→여원재
→봉송마을(1박)→고남산→매요마을→사치재→복성이재 (약 44.48Km)

 

빗방울이 간간이 듣더니만 급기야 돌풍과 함께 세찬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전국에 겨울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어찌 이 단비가 고맙지 않으랴만 나는 내심 걱정입니다.
저녁 TV뉴스에서는 예년의 겨울날씨에서 볼 수 없었던 소형 태풍 급 바람이 불어 부산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선박이 좌초되고 쌓아 둔 컨테이너가 날려 큰 사고가 났답니다. 내일 새벽 백두대간 두 번째 구간 나서야 하는 나를 위해 직장 동료와 내 마눌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애당초 사치재까지가 두 번째구간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시간과 거리를 감안하여 복성이재까지만 진행하기로 계획이 수정되었다고 산악회에서 메일이 들어옵니다.
이번 산행은 지난번과 사뭇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대간 3일째 구간 종착지 여원재 인근에서 야영을 해야하므로 별도의 배낭을 준비하여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두고 행동식 배낭을 지고 산행을 한답니다.
새로이 영입한 겨울침낭은 아무리 푹푹 다지고 눌러도 부피가 줄지 않아 배낭의 절반을 차지하고 비비쌕과 몇몇의 옷가지를 넣고 나니 덩치 큰 매트리스는 들어오지 말랍니다.
지난번에 손이 시려 죽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몇 개의 손 난로와 장갑도 더 준비했습니다. 이 정도면 만반의 준비가 되었으리라 믿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새벽 4시 반. 버스에 자리를 잡고 나니 바로 뒤 좌석에 지리산구간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평소 잘 아는 후배 후종이 앉아 있습니다. 내게는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산행이 끝날 때까지 도움을 엄청 많이 받았습니다.
백두대간 산행의 인기가 열화 같아 이번에도 45인승 버스가 꽉 채워졌으며 산악회원들의 그 열화 무게와 배낭무게가 벅찬지 대경이 버스가 켁켁 거리며 성삼재를 향해 달립니다.(4:55)
한참을 졸다가 눈을 떠보니 버스는 지리산 온천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막다른 길에서 유턴을 하고 한참 후엔 화엄사주차장에서 또 유턴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산행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알바를 해보았지만 산행 시작도 하기 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버스가 알바를 해버립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족히 한 시간은 까먹었을 것 같습니다. 구불구불 성삼재를 오르는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남원 골 구름이 환상의 그림입니다.  산 넘어 구름이요 또 그 너머 산. 겹겹이 쌓여있는 산골짜기 사이의 구름 잔치. 이 멋진 그림을 보여주려고 기사 아저씨가 아침부터 뺑뺑이를 그렇게 돌았나 봅니다.

 

◈ 성삼재휴게소의 아침 전경

 

◈ 성삼재에서 바라 본 환상의 남원골

 

◈ 성삼재 출발 - 백두대간 두번째 산행들머리

 

◈ 작은고리봉 오르면서 본 성삼재

 

◈ 작은고리봉에서 본 반야봉

 
성삼재(8:00)의 하늘은 어제 비바람을 몰고 왔던 거제도의 하늘과 너무나 판이합니다. 반야봉과 노고단이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김밥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인월방향 약10m 아래 철망 사이로 난 좁은 문을 통과(8:30)하면서 백두대간 두 번째 구간이면서 3일차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배낭무게가 가벼워서일까 아니면 충분하게 몸들을 단련시켜서일까 일행들은 단숨에 작은고리봉 (9:00) 까지 치고 오릅니다 .  지리산 서부능선은 키가 큰 나무들은 없으며 고만고만한 철쭉나무와 산죽으로 잘 어우러져있어 지리산 주능선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새로운 맛을 보여줍니다. 등산로는 어제 내린 비와 오늘의 따뜻한 햇살로 인해 겨우내 얼어있던 얼음이 녹아 질척질척해져 버렸습니다.
유난히 많다고 생각되는 헬기장을 몇 개나 지나치고 나니 만인에게 복을 나누어준다는 만복대(10:30)정상이 나옵니다. 만복대에서 아침 일찍부터 소주 한병 비워버렸습니다. 저만치의 반야봉은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모습이나 여기 만복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이나 똑같은 모습의 아가씨 엉덩이입니다.

  

◈ 작은고리봉에서 성삼재를 뒤로하고 선 고집통

 

◈ 작은고리봉 정상

 

◈ 만복대 오르는 일행들

 

◈ 지리산 서부능선 펼쳐진 운무

 

◈ 만복대에서의 고집통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면서 음지이고 길 바닥은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어째 살살 버텨가며 잘 내려가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맙니다. 얼음바닥에 넘어지기를 망정이지 뾰쪽한 돌멩이에 넘어졌다간 큰 일 나겠습니다. 배낭 속에 아이젠 짊어지고 다니면서 엉덩이 깨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얼른 착용하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정령치 약 100m 전 오늘 처음으로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일부러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가씨 두 명이 백두대간을 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넓은 주차장 그리고 정말 맛깔스럽고 아담한 휴게소가 있는 정령치휴게소(11:40)가 나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겨울철에는 아예 이 정령치로는 차량이 전면통제된다고 합니다.

 

◈ 정령치 휴게소

 

◈ 정령치 휴게소 앞의 고집통

 

◈ 정령치 휴게소에서 본 천왕봉

 

바래봉을 마주 보고 오른편은 그 유명한 달궁계곡이고 왼편으로는 구름의 고원 운봉마을입니다. 날씨가 좋으니 천왕봉도 눈앞에 보입니다. 한참을 이렇게 유유자적 걸어가니 흐미~~~ 또 고리봉이 나옵니다. 지도상엔 큰고리봉(12:10)이라는데 정상석도 준비되지 않았고 어째 작은고리봉에 비해 모습이 초라합니다. 인월의 덕두봉에서 시작하여 바래봉을 통과하여 조금 전 걸어온 이 길이 지리산 태극종주의 길인만큼 얼마지 않아 내가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기에 머리에 잘 담아두고 고기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마도 내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큰고리봉에서 고기리 삼거리까지 완전히 바닥을 칩니다. 백두대간이라면 산에서 산으로만 계속 연결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의 생각이 옳지 않았습니다. 고기리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14:00) 이제는 자동차들이 쌩쌩 질주하는 60번 국도를 약 20분간 걷습니다. 국도변을 두 줄로 걷는 모습이 TV에 자주 나오는 국토 대장정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 큰고리봉에서의 고집통

 

◈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벗어나는 고기리 삼거리

 

◈ 60번 국도 - 고기리 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노치마을 골목 어귀에는 대간길에 심신이 피로한 산님들이 목을 축이고 갈 수 있도록 마을 주민이 배려해 놓은 노치샘(14:25)이 있습니다. 커다란 향나무 아래 샘물이 펑펑 솟고 있으니 그냥 그 느낌만으로도 약수인데 물 맛조차도 꿀맛입니다. 인고의 세월을 노치마을 역사와 함께 했음직한 당산소나무들이 갈길 바쁜 우리를 또 붙잡습니다. 노치마을에는 복 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정봉(15:15)까지의 길은 정말 가파르고 힘 들었습니다. 거제도 망치마을과 어감이 비슷해 웃음이 나오는 입망치(15:50)라는 고갯마루도 나옵니다. 옛날에는 갓바래기재라고도 불리었답니다.
령도 넘고 재도 넘고 이번에 치도 넘었습니다. 너무 궁금하여 네이버에게 물어보니 네이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내가 이해하기 좋은 정답을 이것으로 정해 옮겨 보았습니다.
『재』는 고개의 순 우리말로 성삼재, 복성이재가 있고 『령(嶺)』은 우마차가 넘는 고개 치고는 험하고 높으며 벽소령, 진부령이 있고 『치(峙)』는 산이 우뚝하여 사람이 힘들게 넘나드는 고개란 뜻으로 정령치, 입망치가 있습니다. 또『현(峴)』은 평소 잘 듣지 못했던 말이지만 이것 역시 고개이고 우수현, 갈현등이 있답니다.
어쨌든 고개란 것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으며 아주 힘들게 넘는 것은 의견이 일치하는데 보릿고개, 아리랑고개, 환장고개, 깔딱고개도 이런 고개의 부류에 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지사가 산 기슭에 있는 모양입니다. 신도들 돈 많이 들고 편히 오십사 하고 산허리를 뚝 잘라놓고 주지사 이정표를 세워놓았습니다. 여원재(17:00)에서는 오늘 아침 우리를 태운 버스와 무사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일행을 운성대군 나무장승이 길목에서 맞이합니다.
야영지로 정한 봉송 황토마을은 500m라고 적혀있으나 2km가 훨씬 넘겠습니다. 산행 중 미리 예약을 해둔다면 하룻밤 묶고 가기에는 적격입니다. 

 

◈ 노치샘 물맛을 보려는 일행들

 

◈ 노치마을 뒤 당산소나무를 지남

 

◈ 여원재에 선 고집통

 

◈ 여원재의 운성대장군 - 봉송 황토마을로 이동하여 야영

 

야영의 기억이라면 20년도 넘은 세월이 지났기에 오늘밤은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저녁시간 한때 동행했던 기동, 후종이 그리고 산악회원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벽 네 시경 비비쌕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하늘을 보니 꼬부랑 손잡이의 바가지 모습이 선명한 북두칠성 이 머리맡에서 내려보고 있습니다. 밤새 서리가 많이 내렸고 신선한 아침 공기가 상쾌합니다. 바로 이 맛에 야영이며 비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식사가 끝나고 아침이면 꼭 치르는 행사를 치르고 돌아오니 트럭에 배낭을 싣는다는 소리에 바쁘게 서둘렀던 것이 화근이 되어 나중에 두고두고 여운을 남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황토마을에 내 그림자를 두고 나왔는데 산악회 운영진이 그 그림자를 잊지 않고 버스까지 들고 온 것입니다.
4일차 시작은 해발 470m인 여원재(7:10)에서 다시 시작하여 나즈막한 동산과 밭 두렁길을 약 20분간 걸어가니 바로 발 아래 하룻밤을 머물렀던 황토마을이 있습니다.
송신탑을 힘들게 업고 있는 고남산이 지도상에 846.4m라고 적혀있고 여원재 해발을 제하고 나면400m도 되지 않는데 엄청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넘어야 할 산중에서는 최고 으뜸인 고남산(9:10)이 쉽게 정상을 내주지는 않습니다. 오늘 고남산에서 한 무리의 산님들을 만났을 뿐 그 뒤로는 아예 사람 구경을 못했습니다.
통안재, 유치재를 언제 넘었는지도 모르게 바쁜 걸음으로 넘고 맛있는 동동주를 마실 수 있다는데 희망을 걸고 부지런히 매요마을(10:30)로 내달렸습니다. 대간 산행기에 감초처럼 출연하는 마음씨 좋은 할머니께서 계신다는 매요휴게실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그렇게 맛있다는 동동주는 빈 병만 헛간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할머니는 일요일이라 바로 집 뒤 교회에 예배 보러 가셨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참을 기다렸지만 무심하게도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 고남산 정상에서의 고집통

 

◈ 고남산 정상에서 본 운봉마을

 

◈ 매요마을 매요휴게소

 

입맛만 다시고 갈 길을 서둘러 내 아들 또래의 아들과 부부가 열심히 나무를 고르는 목공소 옆을 줄지어 지나자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난생처음 고속도로를 내 두 발로 무단횡단도 해 보았습니다. 사치재(11:30)는 88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지나가던 차들이 위험하니 비키라고 경적을 빵빵거립니다.
지하통로가 있었으나 시간을 조금 절감하고 힘도 조금 덜 들이려고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사치재를 건너 헬기장이 있는 첫 번째 봉우리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는데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고   세찬 눈보라로 변하더니 뺨을 사정없이 때립니다. 새벽에는 그렇게 좋던 하늘이 변덕을 부린 것입니다.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가 없기에 모두들 서둘러 출발하기를 권합니다. 이번에도 바쁘게 달려 새맥이재가 어딘지 그리고 시리봉을 어떻게 넘었는지도 모르게 휑하니 달려 아마도 복성이 뒷재일 것이리라 생각되는 곳에서 배낭 속의 모든 먹거리를 깨끗이 비웠습니다.
옛날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피 터지게 싸웠다는 아막산성(14:30)이 나옵니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무너진 산성터가 그대로 있고 그때 흘린 군사들의 피가 땅속에 스며들었어 일까 이 곳의 흙이 유난히 검고 포슬포슬한 시루떡의 팥 고물처럼 신발에 묻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막산성에서 복성이재(14:50)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 88고속도로 - 고집통 생애 처음으로 고속도로 횡단

 

◈ 88고속도로 건너 첫번째 봉우리에서의 고집통

 

◈ 아막성의 선돌

 

◈ 백제와 신라가 전투가 치열 했다는 아막상터

 

◈ 복성이재에 내려 선 고집통 - 백두대간 두번째 산행날머리

 

인근 인월IC 주위의 한 식당에 들러 매요마을에서 아쉬움을 남긴 그 인월 동동주를 실컷 마시고 버스에 오르니 산악회 대장님께서 백두대간 두 번째 구간의 성공적인 산행 총평과 앞으로 이어갈 대간 산행 계획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십니다.
두고 온 그림자가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잘못 잡은 버스 맨 뒷좌석이 너무 높고 눈에 잘 띄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동동주 취기인양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눈을 감은들 그 무엇 하나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그래야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세상사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뱅뱅 꼬이고 그러면 꼬인다는 것을 타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건만 나만 모르고 있으니 잘난 양 살아가는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