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3] 춘삼월 칼바람 오는 봄 시샘하다

산안코 2009. 3. 19. 16:04

◈ 언            제 : 2009. 3. 14 ~ 2009. 3. 15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3구간(복성이재~육십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4명과 고집통
◈ 날            씨 : 3/14(맑음, 강풍), 3/15(맑음)
◈ 대간 산행시간 : 45시간 00분(3구간: 11시간 50분)
                        5일차 복성이재(7:40)→영취산(15:50) 8시간 10분
                        6일차 영취산(7:20)→육십령(11:00) 3시간 40분
◈ 대간 산행거리 : 101.1Km (3구간: 30.9Km)
                        5일차: 19.8Km, 6일차: 1.1Km, 접근거리: 영취산→무령고개 왕복 1.4Km
◈ 총    산행시간 : 총 12시간 25분 (접근시간: 35분 포함)
◈ 총    산행거리 : 복성이재→봉화산→중치→백운산→영취산→무령고개(1박)→영취산
→북바위→구시봉→육십령 (약 32.3Km)
 

『형님! 나 이번 백두대간 못 갑니다』1, 2 구간을 동행했던 기동이 아쉽게도 때맞추어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답니다. 세 번째 구간에는 당장 준비해야 될 장비들이랑 일용해야 할 양식 챙기는 일이 늘었습니다. 이전에는 고맙게도 기동이 모든걸 준비를 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금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이번 비로 남부지방에는 겨울 가뭄이 어느 정도 해갈이 되었다니 반가운 빗님입니다.
주섬주섬 산행 준비물을 챙기는 내게 우리 마눌님 내일은 엄청 추워질 것이라며 옷가지를 단단히 챙겨야 할 것을 주문합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고집통이지 않습니까? 웬만해서 마눌님 주문을 듣겠습니까? 간단하게 겉옷 하나 달랑 챙겨두고 잠자리에 듭니다.
거제 출발시간이 5시라는데 이놈의 버스가 정각을 맞추어서 나타납니다. 거제도의 새벽 기온이 무척 찹니다. 이번에도 45인승 버스(5:15)에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여원재에 두고 온 그림자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산행 대장님 지난번처럼이라는 수식어를 꼭 달고 다시 다짐을 줍니다. 언제쯤에나 그 그림자가 지워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청휴게소의 순두부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내 입 속을 확 뒤집어지게 만듭니다. 그 뜨거운 국물을 입은 곤욕을 치르는데 말 못하는 식도와 위는 또 어떻게 받아내고 있는지 잘도 버텨냅니다. 흥부, 놀부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복성이재(7:40)의 하늘은 맑고 깨끗하나 골바람 세기는 장난이 아닙니다. 근처에는 흥부마을이 있다고도 합니다. 약간의 가루눈이 날리면서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립니다. 완만한 산등성이를 타고 열심히 올라 꼬부랑재(8:20)일 것이리라 추측되는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단숨에 봉화산(9:00)정상에 올라섭니다. 

 

◈ 복성이재의 일행들 - 백두대간 세번째 산행들머리

 

◈ 꼬부랑재에서 본 경치

 

◈ 봉화산 정상의 고집통

 

오늘도 내가 위치한 곳은 길게 늘어진 일행들 중에서 가장 꼬리부분입니다. 광대치(10:30)를 지날 즈음 앞서가는 네 분의 형님들 『왜 광대치(廣大峙)지?』하면서 의문을 갖습니다. 돌아가서 네이버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깊은 산 고갯마루에 넓고 큰 억새 밭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어 그렇게 이름 지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산 꾼들로부터 약초 밭을 지키기 위해 산 능선을 따라 철조망이 쳐져 있고 엄청나게 많은 대간꾼들의 시그널들이 철조망에 보기 좋게 걸려있습니다. 『내가 백두대간을 밟고 가고 있습니다』라고 산님들이 흔적을 남겨놓은 표식들을 바라보며 그 길을 따라 내가 걷고 있다는데 대해 내 자신이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을 지나 지도상의 월경산을 찾아보았으나 이미 지나쳐 버린 후였고 아마도 그 철조망 근처에서 월경산을 비켜온 것 같습니다. 

 

◈ 월경산 삼거리

 

◈ 중치에서 식사중인 일행들

 

◈ 중치에 활짝 핀 봄의 전령사 버들강아지

 

◈ 중재의 멋진 나무

 

지난번 산행 때 재와 치가 모두 고개라고 했는데 중치(11:20)가 나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중재 (12:40)가 있어 내 상식을 흔들어버렸습니다. 중치에는 2009년 봄이 왔다며 버들강아지들이 한껏 뽐내며 나를 맞이합니다.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백운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니 저만치 백운산 정상이 완전히 새하얗게 변해있습니다. 이름과 같이 하얀 구름이 산 정상에 걸린 것이라고 혹자는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정상 부근 나무에 칼 바람이 빚어낸 하얀색 얼음 꽃을 아름답게 피워놓은 것이었습니다.
백운산 능선을 기준으로 좌로는 전북 장수군이고 우측은 경남 함양군 땅입니다. 거짓말을 조금 섞어서 왼쪽 콧구멍을 통과하는 바람은 엄동설한이요 오른쪽 콧구멍을 통과하는 바람은 훈풍을 싣고 오는 봄바람으로 확연히 기온차이가 납니다. 

 

◈ 백운산 칼바람이 피운 꽃 1

 

◈ 백운산 칼바람이 피운 꽃 2

 

백운산(13:55) 정상에서는 간단하게 대간산행의 의미를 실은 행사와 더불어 기념촬영으로 흔적을 남기고 사방을 둘러보니 남쪽에는 눈보라 속에 걸었던 지리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내가 앞으로 지나가야 할 덕유산이 희미하게 조망됩니다. 영취산을 향하는 길에는 백운산의 하얀 얼음 꽃이 뇌리에 여운이 남아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카메라에 계속해서 담았습니다.
선바위고개(15:35)를 지나 마지막으로 제법 힘이 드는구나 생각되는 고갯마루를 올라서니 오늘 대간 마무리를 하는 영취산(15:45) 정상입니다. 무령고개까지는 길이 아주 가파르며 얼었던 길바닥이 녹아 질퍽질퍽하여 내려가는데 아주 어려움이 많았으며 내일 다시 이 길을 올라갈 것을 생각하니 내려서는 발걸음이 아깝습니다.

 

◈ 백운산 정상 - 옛날 정상석 앞에 큰 정상석 있슴

 

◈ 백운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 백운산 정상에 핀 얼음꽃

 

◈ 영취산 정상의 고집통 - 무령고개로 이동하여 1박함

 

무령고개(16:00)에는 최신식 화장실이 있으나 날씨가 추워 얼어 버릴 것을 대비해 폐쇄시키고 간이 화장실을 준비해 놓았으며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어 하루 저녁 비박하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무령골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춘삼월 칼바람이 오는 봄을 시샘하는 냥 매몰차기가 그지없습니다. 기온이 영하 10도보다 더 떨어졌답니다. 『마누라 말을 잘 들어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그 누가 말을 했습니까? 마눌님 시키는 대로 그냥 두꺼운 옷을 가져올 것을 몇 번씩이나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으니 숙고할 일입니다.
화장실 처마 밑에 비비쌕 준비하고 침낭 속에 몸을 눕히니 오늘 산행의 피로 때문인지 이웃집에서 얻어 마신 소주 기운 탓인지 곧 바로 곯아 떨어졌습니다.
아침 추위에 덜덜 떨어가며 비비쌕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보니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바람은 잠들어있고 하얀 서리가 비비쌕을 덮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지난달 보았던 그 북두칠성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침 기온 역시 영하 5도 안팎입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잠자고 있으니 느낌은 포근합니다. 

 

◈ 고집통의 비박 장비

 

무령고개(7:05)를 출발하여 오늘의 시작점 영취산(7:25)까지의 가파른 길에서 제대로 워밍업을 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바라 본 덕운봉에서 길게 내리 뻗은 함양 땅 골짜기의 민가며 들판들이 정말 아늑하고 아름답습니다.
전망대바위(8:15), 북바위(9:20)까지는 내 키보다 약 한 뼘 정도를 능가하는 산죽들의 군락지입니다. 북바위에서 경치구경 잠깐 하는 사이 앞서가는 네 분 형님들 어느새 멀리 사라져버리고 혼자가 되어있습니다. 산중 고속도로와 다름없는 민령(9:35)까지는 거의 뛰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앞서가는 일행들은 자꾸 시야에서 멀어져만 갑니다.
멀리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미끈하게 잘 빠진 고속도로가 한 순간 구간이 끊겨있으니 아마도 내가 서있는 바로 밑이 대진고속도로 상의 육십령터널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구간 마지막 고비인 구시봉(9:55)에 올라서니 깃발 없는 깃대 세 개가 우릴 맞이합니다. 깃대봉이었을 텐데 왜 구시봉으로 바뀌었을까 추측해 보건대 산님들이 깃대봉에 오르다가 너무 힘들어서 구시렁거리면서 올라 왔다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무척 힘듭니다. 

 

◈ 영취산을 출발한 후 나타난 산죽밭

 

◈ 북바위 모습

 

◈ 육십령을 통과한 대진고속도로

 

◈ 구시봉(깃대봉)

 

깃대봉 샘터(10:10)도 겨울가뭄의 피해자로 물방울은 한 방울도 구경할 수 없습니다. 약1 2Km의 결코 가깝지 않은 산길을 시속 3Km의 속도로 달려 육십령(10:55)까지 도달하고 보니 시간은 채 11시도 되지 않았습니다. 추억 속의 꼬부랑고개 육십령은 대진고속도로가 뚫린 이후 차량통행이 현격하게 줄어들어 오늘은 아예 지나다니는 차를 한 대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 바싹 마른 깃대봉 샘터

 

◈ 육십령고개 - 백두대간 세번째 산행날머리

 

◈ 육십령 - 장수방면 휴게소 화장실 명문구

 

이어지는 백두대간 구간인 육십령에서 덕유산구간 진입로에는 봄철 산불예방기간을 지정하여 금줄을 쳐놓아 여기서 발길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범칙금 50만원 감수하고 국공파 눈을 피해서 들어가면 되겠지만 그러기엔 서민에게 너무 큰 돈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는 구간을 바꾸어 삼봉산 구간을 먼저 하고 5월에 빠진 이빨을 채워 넣기로 한답니다.
이곳 육십령에는 같은 이름의 휴게소가 함양과 장수에 각각 있는데 함양 땅의 휴게소 측 막걸리와 뼈다귀 탕이 일품이라 대간하면서 그 맛을 보지 못하면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소문이 나있어 그것들을 가지고 이번 세 번째 백두대간 산행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배낭 풀고 샤워하고 일요일 오후 한때 백주대낮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니 해외출장 갔다 오던 기동이 김포공항 도착하자마자 백두대간 산행 잘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옵니다.
혼자는 백두대간 길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꼭 같이해서 좋은 추억 계속 엮어가자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빼 먹은 세 번째 구간을 꼭 채우라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