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9. 5. 16 ~ 2009. 5. 17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4구간 (육십령 ~ 신풍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1명과 고집통
◈ 날 씨 : 5/16(흐린 후 맑음), 5/17(맑음)
◈ 대간 산행시간 : 73시간 51분(4구간: 17시간 21분)
8일차 육십령(07:37)→동엽령(19:03) 11시간 26분
9일차 동엽령(05:30)→신풍령(수령, 뼈재, 빼재) (11:25) 5시간 55분
◈ 대간 산행거리 : 158.2Km (4구간: 32.5Km)
8일차: 18.9Km, 9일차: 13.6Km
◈ 총 산행거리 : 육십령→할미봉→서봉→월성재→삿갓재휴게소→무룡산→동엽령(1박)→송계사 삼거리→횡경재→지봉(못봉)→월음재→대봉→갈미봉→신풍령(약 32.5Km)
한마디로 말해 이번 대간길의 고집통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양다리 동시 다발적으로 쥐가 발생하여 드러누워 버렸으니까요.
지난번에는 물이 없어 이번에는 물이 많아서입니다. 대경이네 사장님께서 각고의 신경을 쓰셨는지 어제 막 공장에서 빠져 나온 깔끔한 놈을 일찌감치 공설운동장에 딱 대기 시켜놓으셨습니다.
그 대경이가 지난달 국립공원 산방기간으로 빼먹은 육십령고개(7:37) 마당에다 줄줄이 일행을 부려 놓습니다. 한결 같이 일행들의 배낭이 심상찬습니다. 동엽령에서 비박을 해야 하니까 짐들이 장난이 아닙니다. 집에서 메어 본 배낭은 그래 할만하다 이었는데 기동이 챙겨온 식량을 넣고 보니 양쪽 어깨에 중압감이 밀려옵니다.
어찌되었든 무겁다는 생각은 들지만 출발하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첫 번째 헬기장(8:15)까지는 무리 없이 치고 오르고 그 다음 할미봉을 향해 오르는데 배낭 위에 올려놓은 매트가 자꾸 나무에 걸려 뒤를 잡아 댕깁니다. 배낭을 다시 채비하고 할미봉(8:45)에 올라서니 일행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할미봉 바로 너머 한 떼거리의 산님들이 있고 그 뒤에 몇 안 되는 우리 일행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바로 앞 나무계단 밑에 암벽 낭떠러지가 있고 거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창원의 S&T중공업 직원 4백명이 줄지어 서서 내려가고 있어 도저히 추월해서 지나갈 수가 없답니다.
오늘 목적지가 멀기에 먼저 통과할 수 없겠느냐고 양해를 구하니 비켜주지도 않을 거면서 세 사람이 동시에 따따따 거리며 핀잔을 줍니다. 『그래! 알았으니 한 번만 하고 마소』라고 일침을 놓으니 그제서야 조용합니다.
무려 차량 11대를 동원했다고 하니 44인승이면 440명이고 두당 5m씩만 늘어져도 2Km이니 산길 그 정도면 오늘 산행은 조져버린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산행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입니다.
가까스로 그곳을 통과하여 앞서 간 일행들을 따라 뛰다시피 달렸습니다. 어느 순간 나는 제일 마지막 주자가 되어있었고 혹시 나로 인해 발생되는 민폐가 걱정되어 내가 잘 아는 길이니까 천천히 따라 가겠노라고 일행을 안심시켜놓고 서봉을 향해 꾸준히 올랐습니다.
『목적지가 어딥니까 ?』『멋집니다.』『배낭 무게가 20Kg이 넘겠습니다. 』등등 산님들이 내게 관심이 많습니다. 이때부터 왼쪽 장단지가 이상함을 느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장단지가 또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에이 무슨 별일이야 있을라고. 다리에 테이프도 바르고 만반의 준비를 해 왔는데」이렇게 생각을 가졌습니다.
서봉 오르는 길이 제법 너덜지대이면서 바위를 껑충 뛰어올라야 하는 곳이 자꾸 나타납니다. 한 순간 양손으로 나무를 잡고 영차 하면서 몸을 당겨 올리니까 다리가 허공으로 뜨게 되고 순간 동시에 양쪽 장단지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도저히 꼼짝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공포의 양다리 쥐가 찾아 온 것입니다.
마침 지나던 산님 한 분이 배낭을 옆으로 올려주고 다리를 들어주어 잠시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고 준비해간 테이프로 응급처치를 하고 웬만하면 발을 높이 들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올라가니 먼저 간 기동이 걱정이 되는지 전화를 걸어옵니다. 양 다리에 쥐가 나서 조금 늦는다고 하니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답니다.
서봉을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기동과 만호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오늘 결국 내가 민폐를 끼쳐 버렸고 그 자리에서 배낭 속의 맥주 두 깡통을 비우고 무려 2리터의 물을 버렸습니다.비록 다리에 쥐가 났지만 지난번 물 부족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뼈저렸기에 미련스럽게 아꼈었는데 이번에는 과중한 물 무게로 인해 한마디로 식겁을 한 것입니다.
운무로 인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돌탑(12:05)이 나오고 바로 위에는 드디어 서봉(12:10) 정상이 나옵니다.
서봉 정상에서는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상석도 이정표도 무엇 한 가지도. 단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만 보았을 뿐입니다. 정상에는 조금 전 그 440명 일행들이 가득 메우고 있어 어디로 빠져야 하는지 길 조차도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인파를 뚫고 반대쪽에 있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수가 있었으며 대간길에서 약간 벗어난 남덕유산 정상은 포기해야만 했고 한참을 가다 점심식사를 우리 세 사람이 해결했는데 만호님께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월성치(13:55)에 도착하니 그 많던 사람들이 고맙게도 황점으로 내려간답니다. 길이 막혀 도무지 진도가 나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속이 후련합니다. 월성치에서 산마루를 치고 올라가는데 『으~ 잉』눈앞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수님과 홍만님이 등로변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앞서 있었던 암벽 릿지에서 천수님이 무릎을 바위에 부딪쳐 다리를 절고 있었으며 홍만님도 속도를 오버하여 지친 상태였습니다.
삿갓봉 갈림길(15:20)에서는 만호님 혼자 삿갓봉을 갔다 오기로 하고 우린 우회로를 통해 삿갓재 대피소(15:40)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대피소 마당의 벤치에 몸을 눕혀보니 장딴지의 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젠 감도 없어졌고 노곤한 몸이 너무 편안합니다. 대피소직원이 혹시 우리가 내려가지 않고 머무를까 봐 대피소 예약은 끝났으니 하산하라고 미리 경고를 합니다.
저만치 나무계단으로 오르는 길이 보입니다. 저기만 오르면 무룡산이겠지? 작년 초 삿갓재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쉬고 캄캄한 새벽에 눈보라 속을 혼자서 천지도 모르고 올랐던 그 곳 무룡산(17:05)입니다.
그때 하얀 덕유산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돋이에 넋을 잃고 있었던 그 곳을 걷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돌무더기가 있는 1,380봉(18:13)에는 이제서야 봄이 오는지 막 연분홍 철쭉꽃이 피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열심히 걸었습니다. 동엽령의 3단 나무데크에서는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마지막 주자의 입성을 환영하는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어 준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동엽령(19:05)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는데 대해 감개무량하고 끝까지 챙겨준 기동, 만호님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1,000m 고지에서의 비박은 처음이며 삼각형의 비닐 텐트로 비박 준비를 해놓고 나 고집통과 기동님 11시간 30분의 산행을 자축하는 소주와 삼겹살의 만찬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아이고야! 고산지대의 새벽바람은 너무 춥습니다. 그리고 바람소리 너무 요란합니다. 밤새 비닐 펄럭거리는 소리에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찬바람 속에 눈을 뜨고 일어나야(4:00) 했습니다. 아침식사를 해야 둘 째날 계획된 산행을 하는데 온 몸이 꽁꽁 얼어 붙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춥고 떨리는 와중에도 끼니는 해결되고 다시 출발 준비(5:30)를 끝냈습니다.
헤드랜턴 밝히고 새로운 날의 대간길로 발길 재촉하니 가야산 방향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덕유산과 한 폭의 그림을 연출(5:55)해주고 백암봉(송계사 삼거리)에서 뒤돌아 본 남덕유산도 몰려왔다 사라지는 운무와 함께 새로운 그림을 선사해 줍니다. 이른 새벽 산정에서 덕유비경을 두 가지나 만나는 행운을 누립니다.
송계사 삼거리(6:25)에서 천수님은 어제 다친 다리가 문제되어 향적봉을 통해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통해 하산하기 위해 혼자서 떠나고 대간팀 각자의 사진을 한 장씩 남기고 신풍령 방향으로 발길을 틀었습니다. 나중에 하산하여 알았는데 하필이면 향적봉 시계가 좋지 않아 곤돌라를 운행하지 않아 천수님은 그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백련사를 통해 삼공리로 하산하였다 하니 운이 참 없는 하루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거의 달리기 수준입니다. 횡경재(7:45)를 지날 즈음에는 매회 한 번씩 겪는 엉덩방아도 찍고 산 능선의 바닥을 찍기도 하고 다시 1,000m 고지를 올라서는 과정을 몇 번씩이나 하는 동안 지봉(8:15), 못봉(8:30), 대봉(9:20), 갈미봉(10:10)을 지나고 드디어 거창에서 무주를 넘는 빼재의 도로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빼어날 수(秀)자의 빼재, 수령, 뼈재등의 이름을 많이도 가진 신풍령고개(11:25)에 도착하니 대간길 다섯 번째 둘째 날 약 6시간의 산행도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로써 느낌이 많은 구간인 덕유산구간, 빠진 이빨 한 개를 채워 넣고 나머지 빠진 이빨 하나인 신풍령에서 덕산고개 코스는 다음달 6월에 채워 넣기로 했습니다.
자만이 키운 게으름 속에서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고 연일 이어지는 음주가무가 몸을 많이 망가뜨려 놓았으니 이제라도 대오각성하고 새로이 몸 만들기에 돌입해야겠습니다. 이번 산행은 최소한 나로 하여금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일생일대의 실패사례입니다.
세상일이란 것이 한가진들 쉬운 것이 없듯이 대간길의 한번 한번이 내게는 매번 힘들고 고비입니다. 한걸음 한걸음의 고통이 그냥 의미 없는 고통으로 남지 말아야 하는데 나중에 내게 무엇이 남아 있을지 벌써 궁금해지고 걱정이 찾아옵니다. 단지 산에만 갔다 오지만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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