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9. 4. 11 (당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6구간(덕산재~우두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2명과 고집통
◈ 날 씨 : 4/11(맑음)
◈ 대간 산행시간 : 56시간 30분(6구간: 11시간 30분)
7일차 덕산재(7:00)→우두령(18:30) 11시간 30분
◈ 대간 산행거리 : 125.67Km(6구간: 24.55Km)
7일차: 24.55Km
◈ 총 산행거리 : 덕산재→부항령→백수리산→삼도봉→삼미골재→밀목재→화주봉(석교산)→1,272 봉→우두령(질매재) (약 24.55Km)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그리고 주절주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엇인가 외국에 누군가 하는 시인이 저렇게 썼다고 하는데 고집통도 오늘 대간 가다가 감히 말해버렸습니다. 워낙 잔인하게 나를 괴롭혔으니까요.
네 번째 이야기도 그 잘난 대경이 버스로 시작합니다. 새벽 4시. 기 약속되었다는 45인승이 아닌40인승이 눈앞에 나타나버렸습니다. 이렇게 판판이 고객을 힘들게 하는데 대경이 사장님은 사업 번창하시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희망자가 많았는데 두 사람이 펑크를 내어버려 가고 싶은 사람도 못 가게 되었다고 운영진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이번 대간길은 출발지가 경북 김천에서 전북 무주를 넘어가는 덕산재입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육십령에서 남덕유산을 통과하여 신풍령(빼재)까지 이지만 국립공원 산방기간이라 입산통제로 두 구간을 훌쩍 뛰어넘어 덕산재에서 시작한답니다.
덕산재는 해발 644m의 고갯길이라 우리 동네 계룡산보다 무려 80m가 더 높습니다. 덕산재(7:00) 에서 출발하는 대간길은 이제 갓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나뭇가지에서 막 눈을 틔우는 새 이파리들이 보기에 싱그럽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간에 올리는 발걸음은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기분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서 열기가 서서히 뻗치기 시작하여 옷가지를 양파 껍데기 벗기듯이 한 꺼풀씩 벗어내기 시작합니다. 지난번 추위에 너무 놀라 생 식겁을 하였으니 나름대로 이번에는 준비를 단단히 했었는데 쓸데없이 짐만 늘어 버렸습니다.
아침에 배부르면 산에 오르기가 힘들 것을 예상하여 한참 산행을 진행하다 아침식사(7:30) 자리를 깔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찹찹한 소주가 목 줄기를 타고 내립니다. 다년간 소주를 마신 경험자로써 분명 아침과 저녁의 소주 맛은 느낌이 다릅니다. 산중의 지금 이것은 온몸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가 내포되어 있어 몸엔 짜릿한 전율을 주는데 저녁의 그것은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면서 잊고 싶은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나름의 욕망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침은 첫 잔부터 맛이 쓰고 저녁때의 그것은 처음에는 달다가 나중에는 맛을 알지 못하고 그 다음날 심신이 무척 쓰디씁니다.
지도상의 부항령(9:00) 그 아래에는 삼도봉 터널이라 되어있습니다. 꼬불꼬불 시멘트길이 참 힘들게 기어 올라왔다 터널과 손잡고 다시 그 너머로 내려가지만 내가 바라보는 그 길엔 자동차가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왜? 누가? 그기에 삼도봉 터널이라고 지도에 이름을 붙여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나는 삼도봉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금방 도착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마루금 뒤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봉우리가 보입니다. 아~하 저기만 오르면 삼도봉이구나. 흙 먼지가 펄펄 날리는 그 길을 정말 열심히 걸었습니다. 콧구멍에 흙먼지가 시커멓게 묻어 나옵니다. 4월의 봄날 오전 한때. 봄 땡볕에 밭일하러 딸래미는 내보내지 않고 며느리만 내보낸다는 시어머니 심정을 헤아릴 것 같습니다. 너무 덥습니다.
그곳은 백수리산(10:10)이었습니다. 수리들은 온데 간데없고 까마귀만 『까~~악 까~악』거립니다. 저놈들은 날 때부터 저거 어메들이『아』만 가리켜 『아』외엔 아는것이 없다고 마음씨 좋은 형님들이 우스갯소리로 잠시 나를 웃겨줍니다. 그러고 보니 『까~~악 까~~악』이 아닌 『아~ 아 ~』로 들립니다.
또 저 너머 아까 것이랑 똑같은 마루금이 보입니다. 아 저기가 삼도봉이구나. 또 열심히 걸었는데 이곳 또한 1,170고지(11:15)이었으며 그 꼭대기에서 저건 민주지산, 저건 석기산, 저것이 삼도봉(1,176m)이라고 손가락질 해 주는데 내 눈이 잘 못된 건지 아니면 생각에 비해 너무 멀리 있어서인지 가물 가물거려 눈에 선명치 못합니다. 바로 밑의 옛날 목장터에는 목장은 간데없고 민둥산 복원을 하기 위해 나무다리 길을 만드는 등 투자가 되고 있었으며 그 길 위에서 편하게 퍼질러 앉아 달콤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등산객의 발길에 혹 밟힐까 염려스럽도록 등산로 주변에 지천으로 꽃피운 노란 야생화의 노랑이 그 도를 넘어 아주 샛노랗습니다.
4월의 정오가 이렇게도 더울 줄 너도 나도 그리고 이웃집 할배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 배낭 속엔 작은 물통이 세 개나 남아 있다는 생각에 길목의 30m 아래 산삼약수터가 있다는 이정표를 잠시 보았지만 찾지 않았습니다. 숨을 할딱이며 삼도봉에 올라보니 먼저 올라온 일행들이 아이스께끼 한 개씩 입에 물고 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께끼 아줌마 앞으로 직통으로 내달렸습니다. 한 개 2,000원이고 토, 일요일이면 하루에 200개를 짊어지고 올라와서 팔고 있으며 께끼 아줌마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성격이 밝아 장사 한번 기가 차게 잘 합니다. 우리가 삼도봉을 떠날 즈음(14:00) 께끼 아줌마는 오늘의 목표개수를 다 팔았으며 민주지산으로 간 다른 아줌마의 오늘 매상을 걱정하며 하산하십니다. 지리산의 삼도봉은 경남, 전남, 전북이었는데 이곳 삼도봉은 경북과 전북, 그리고 충북이 만나는 곳입니다.
삼도봉 정상에는 상징물을 어마어마하게 웅장한 석조물로 축조해 놓았으며 어떨 때 쓰려는지 모르지만 심지어는 앞에 제단까지 마련되어있습니다. 이곳은 민주지산과 석기산, 삼도봉이 잘 어우러져 산님들에게 인기가 제법 많은 모양입니다. 오늘 산행 시작하여 구경 못한 산님들을 엄청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삼도봉이 오늘의 종착지가 아니고 딱 중간 지점이란 것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물을 최대한 아꼈었어야 했는데 사람이 우둔하여 삼마골재(14:15), 밀목재(15:00)에 도달하고 나서야 아직까지 남은 거리가 장난이 아니고 물병에 물이 떨어져 버렸다는 것과 입 속은 너무 말라 침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천에 걸려있는 햇볕은 그늘이 없어 직통으로 머리에 내리쬐고 바람은 날 외면하는데 산을 오르는 다리의 힘은 풀려 버렸고 하하 내뿜는 입은 벌어져있어 흙먼지는 필터 없이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숨쉬기가 자꾸 힘들어집니다.
1,272봉(16:30)에서 기동이도 지친 눈치이고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지만 지도를 잘못 읽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오늘의 최고봉 석교산(1,195m)을 넘어야 되는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암벽 릿지가 나오고 로프를 잡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는 위험한 길이 있습니다. 석교산 오르는 길에는 산악회 운영진에서 산이라면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도 고통을 호소합니다. 목이 말라 헛구역질이 나고 다리에 쥐가 발생하니 아마도 이 정도이면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드디어 석교산(화주봉, 17:20) 정상에 올라서고 멀리 진짜 멀리에 우두령 넘어가는 도로가 보입니다. 내 뒤에는 달랑 두 명의 회원만 남아있어 마음이 바빠 정말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입니다. 석교산을 조금 지나는 음지 길에 낙엽이 깔렸고 그 밑에 얼음이 꽁꽁 언 채로 그대로 있습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길바닥의 얼음을 깨뜨려 먹어볼까도 생각했을까요? 나뿐만 아니고 먼저 내려간 일행도 마음이 같았다니까 이번에 대간 값을 톡톡히 내는 것입니다. 후종은 진달래꽃을 씹어 먹으면서 갈증을 해소했다니 내가 그걸 왜 생각 못했는지 듣고 보니 많이 아쉬웠습니다.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내 평생 몸과 피부로 실감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질매재라고도 불리는 우두령(18:30)에 도달하니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습니다. 여기가 오늘의 종점인 충청북도의 영동 땅입니다.
버스 안에는 생명수 꿀물이 있겠지 달렸지만 매정스러운 대경이 기사 아저씨 물이 없답니다. 어찌나 밉던지 계속 궁지렁 궁지렁 거렸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뒤에 쳐진 일행이 도착 할 때까지 살짝 잠들어 있었는가 봅니다. 30분이 지나서야 버스는 우두령에서 출발할 수가 있었고 첩첩 산중 꼬부랑 길을 돌고 돌아 한 시간이나 버스가 달려서야 식당에 도착하였고 막걸리, 맥주는 안중에 없고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물을 원 없이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버스 좌석에 머리를 살짝 갖다 대니 이내 잠들어 버렸고 밤 10시가 훌쩍 지나서야 거제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간 길에 올라선지 벌써 네 번째지만 아직 한 번이라도 쉽게 길을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가던 길 멈출 일은 아니지만 구간 구간이 녹록하지가 않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도록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번 기회로 대간길을 다시 보게 되었고 앞으로 다가올 혹서와 내 정신력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슬기로운 대처방안 마련을 숙제로 남겨놓습니다.
정말이지 대간 길의 4월은 아주 잔인한 달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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