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23. 5. 24 ~ 26 (2박 3일)
□ 어 디 를 : 지리산 화대 역종주
□ 누 가 : 안코 홀로
□ 날 씨 : 맑고 무더움
□ 산 행 여 정 : 거제→진주→대원사→유평→치밭목대피소(1박)→천왕봉→장터목→세석
→벽소령→연하천대피소(2박)→노고단→화엄사→하동→진주(계양)→거제
□ 산 행 시 간 : 24시간 30분
1일차 대원사주차장(10:45)→치밭목대피소(15:40) 4시간 55분
2일차 치밭목대피소(2:45)→연하천대피소(15:10) 12시간 25분
3일차 연하천대피소(5:30)→화엄사주차장(12:40) 7시간 10분
5월말까지 3일의 남은 연가휴가를 소진 시켜야 합니다. 주말과 겹친 부처님오신날 대체휴무일을 합쳐 6일간의 휴일이 손에 잡혔습니다. 코로나로 하지 못한 2박3일 일정의 화대종주를 하기로 했습니다. 주말 대피소 예약은 이미 만료되어 주중을 검색하니 치밭목과 연하천이 대기모드로 남아 있고 거제에서의 버스 교통 상황을 감안해보니 대원사에서 출발하는 화대역종주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5년만의 화대종주이면서 10년만의 화대역종주를 안코 홀로 나선다는데 가슴이 설레기도 합니다.
거제발 진주 버스(7:30), 진주발 대원사 버스(9:40)를 갈아타가며 대원사 주차장(10:40)에 도착합니다. 오늘 가야할 곳이 치밭목대피소이니 시간은 느긋합니다. 진주 터미널에서부터 보이던 어르신 한 분께서도 화대종주를 위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보리때모자에 배낭 상태가 약간 허술하며 연세 또한 있어 보입니다. 대원사까지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누니 오늘 목적지가 세석대피소이고 75세 연세이며 부산에서 경비일을 하시는데 오늘은 휴가를 내어 주위사람은 물론이고 가족도 모르게 지리산을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과연 안코도 그 나이에 저런 도전이 가능할지를 생각해봅니다.
대원사 앞에서 갈길 바쁜 어르신은 앞서 보내고 홀로 유평마을로 살방살방 걸어 올라갑니다. 예전 같았으면 유평마을에서 참새방앗간인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올라 갔을 것인데 오래간만에 시도하는 종주길이라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합니다. 유평삼거리에서 콘크리트 길을 버리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 후 채 100m도 가기 전에 갑자기 가슴이 퍽퍽해져서 물 한 모금으로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움직이니 이상 증세가 사라졌습니다.
한참을 부지런히 올라가는데 등로가 시끌시끌합니다. 스무 명 남짓의 고등학생들이 등로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어 살짝 비켜갑니다. 새재삼거리에 도착되면 잠깐 쉬어갈까 생각하며 새재삼거리가 나오기를 애태웠는데 막상 삼거리에서는 그냥 지나치고 무재치기폭포까지 내쳐 달려 집에서 나서기 전에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는 부실한 아침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쇠고기죽 한 통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예전 건물을 걷어내고 새 단장을 한 치밭목대피소(3:40)에 도착합니다. 한발 앞서 도착한 청주의 양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있어 대피소 마당은 생기가 넘쳐납니다. 예전에 보지 못한 치밭목대피소의 모습을 봅니다. 대피소 앞 벽면에 붙은『말투는 투박해도 마음만은 따뜻한 대피소 직원 ~~~』이라는 플랜카드 문구가 무색하게 접수처 젊은 직원의 말투가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말투가 투박하면 상냥하게 교육시켜서 배치해야지 대피소를 찾는 고객더러 그걸 이해하라 하니 『우리는 싸가지가 없어도 아주 착해요』라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경상도의 타 관공서와 금융권, 서비스 업종 종사원들은 모두 상냥하고 친절한데 국립공원은 특별한가 봅니다.
저녁 식사시간, 취사장에서는 양업고 선생님과 3학년 학생들이 정성으로 요리하여 1,2학년들에게 무한 공급을 해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학생들은 내일 새벽 천왕봉 일출을 보고 연하천대피소에서 머물렀다가 화엄사로 하산할 것이라니 안코와 동선이 정확하게 일치하며 내일 새벽 산행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피소 딱딱한 마루바닥이 너무 괴로워 엎치락 뒤치락 하며 내일 산행을 위해 억지로 눈을 붙여 보지만 자는 둥 마는 둥입니다.
새벽 2시에 천왕봉 일출을 위해 안코가 눈을 떴습니다. 취사장에 들러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사이 조금 일찍 출발한 학생들의 뒤를 따릅니다. 만약 학생들이 앞서 가지 않았더라면 캄캄한 밤길을 많이 긴장했을 것인데 혼자라도 마음이 포근합니다. 써리봉 즈음에서 약간 휴식하고 다시 부지런이 치고 올라 중봉에 도착하고서야 학생들을 따라 잡았습니다.
천왕봉(5:05)에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산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코가 최근 몇 년 사이 덕을 쌓지 못했는지 멋진 일출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포기는 빠를수록 몸에는 좋은 일이기에 또 다른 날을 기약하고 미련 없이 장터목으로 발길을 돌렸고 장터목대피소에서는 식수만 약간 보충한 후 그대로 패스 했습니다. 5월의 철쭉꽃이 지천으로 깔린 지리 주능선 연하선경이 너무 아름다워 자꾸만 발걸음이 멈추게 됩니다. 역주행 길이라 마주 오는 산님들로 인해 길을 비껴주는 시간도 많아지고 급기야는 50명도 넘는 중학생들로 인해 등로변에서 한참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세석대피소에는 더 많은 산님들과 학생들이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산 종주하기에 정말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아점으로 떡라면을 준비하는데 치밭목에서 함께 출발했던 학생들이 도착하고 인솔 선생님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어보니 백두대간과 네팔 트래킹을 하셨으며 지리종주 또한 수 차례나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무리 없이 진행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선생님으로써 학생들로부터 충분히 존경 받고도 남을만한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선비샘 다다를 즈음 70대중반 할머니께서 마주 오시며 안코에게 말을 붙여옵니다. 스무 살 시절부터 지리산을 찾았다 하며 오늘은 통영에서 오신 산님의 고충을 30분 이상 상담해주셨다며 안코를 붙잡고 또 30분 이상을 말씀하시고는 가던 발걸음을 옮깁니다. 할머니는 산행하며 이런 재미로 즐거움을 찾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선비샘 물은 시원하며 달콤합니다. 벽소령대피소에서도 물 한 모금으로 지나치고 형제봉 근처 전망바위에서 멀리 대성골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 때림 해봅니다. 이 또한 지리를 찾는 즐거움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연하천대피소(15:15)에 도착하니 학생들을 모아놓고 젊은 국공직원이 심폐소생술을 시범 보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시범하고 있는 대피소 막내 국공 직원에게 어떻게 해서 국공 직원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는지 학생들에게 취업 성공담을 들려달라 요청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대로 하면 됩니다』고 합니다. 정답인 듯 아닌 듯 모호합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김치 볶음밥입니다. 식사 후 밖으로 나오니 연하천 마당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고 늦은 시간이지만 벽소령으로 가야 할 몇 분의 산님이 우의를 입고 있는 모습이 걱정스럽습니다. 안코도 내일 산행에 살짝 신경이 쓰이지만 준비된 자이기에 별 걱정은 없습니다.
『우당탕 쾅쾅! 콰르릉 쾅쾅!』한쪽은 공사판 불도저이고 한쪽은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코골아 소리가 대피소 수면실 내부를 진동합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한밤중 밖으로 나와보니 연하천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습니다. 이번 산행에 안코가 실수로 준비 못한 물건이 한가지 있는데 바로 귀마개였습니다. 밤새 많이 괴로웠습니다.
어차피 코골이 소리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으니 이른 새벽 출발을 위해 대피소를 나왔습니다. 노고단을 출발한 부지런한 산님들이 벌써 연하천에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안코도 연하천을 출발(5:30)해야겠습니다.
토끼봉 정상에 예전에 없었던 쉼터가 설치되어 있고 화개재도 생태복원을 위해 데크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삼도봉 오르는 계단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551계단입니다. 마주 오는 산님들과 인사를 나누느라고 개수 세는데 오류가 생길뻔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삼도봉 정상에서 인증사진 한 장 남겼습니다.
삼도봉을 막 출발하는데 마주 오는 산님 한 분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보조밧데리를 가졌으면 자기 것과 바꾸자는 생뚱 맞은 부탁을 해옵니다. 인월에서 왔으며 노고단대피소 취사장에서 충전 할 계획이었는데 대피소 신축공사를 하는 바람에 충전을 할 수 없었다며 눈빛이 아주 간절해 합니다. 이럴 때 안코는 왜 냉정하지 못한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될 것을….
안코의 것은 돈 주고 구입한 새것 정품인데 그분 것은 기업체 선물 헌것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련 없이 바꿔주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안코의 휴대폰 충전상태가 40%쯤에서 까딱까딱 합니다. 거제도까지 갈려면 앞으로 12시간 이상은 더 버텨야 되는데 큰일났습니다. 그분의 고민을 안코가 대신 짊어지게 되어 거제 도착할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임걸령에서 목을 축이고 노고단대피소에 들어서니 대피소 신축공사를 하고 있어 화장실 앞 벤치에서 배낭을 풀고 간식 섭취를 한 후 화엄사 방향 무넹기로 하산합니다. 코재 아래로 까꼬막이 심하고 길고 긴 계곡을 하염없이 걸어 화엄사 앞에 도착(12:40)하면서 10년만에 기분 좋은 화대역종주를 완성했습니다.
지금부터 집으로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화엄사 탐방안내소에 들러 국립공원 여권을 발급받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하동(진교)가는 버스가 대기 중입니다. 어째 오늘은 재수가 좋다 생각했는데 진교에서 1시간, 진주(계양)에서 2시간 이상 버스를 기다려 통영으로, 그리고 통영에서 1시간을 기다려 거제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고 휴대폰의 밧데리 잔량도 2% 남아 먹통되기 직전이리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착한 일 일지라도 한번쯤 생각해보고 실행으로 옮겨야겠습니다.
오늘 딸램이 생일이라 저녁식사를 같이하자 약속했는데 내일로 미루었습니다.
오래간만의 화대종주인데도 아직 정신력과 체력이 가능하다는데 대해 대만족입니다. 아름다운 도전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 산행 > 지리산 화대종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화대종주] 삼식이의 화려한 외출 (0) | 2018.08.09 |
---|---|
[지리산 화대종주] 아름다운 동행 (0) | 2016.05.12 |
[지리산 화대종주] 내 탓이다 (0) | 2015.12.22 |
[지리산 화대종주] 폭염과 사투하다 (0) | 2015.08.09 |
[지리산 화대종주] 겨울 지리도 행복이다 (0) | 2014.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