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6] 대간병에 걸려 들다

산안코 2009. 6. 15. 14:41

◈ 언            제 : 2009. 6. 14 (당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5구간(신풍령 ~ 덕산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3명+일반회원 20명과 고집통
◈ 날            씨 : 흐림
◈ 대간 산행시간 : 80시간 11분(5구간: 6시간 20분)
                        10일차 신풍령(7:55)→덕산재(14:15) 6시간 20분
◈ 대간 산행거리 : 173.4 Km (5구간: 15.2Km)
                        10 일차: 15.2Km
◈ 총  산행 거리 : 신풍령→수정봉→삼봉산→소사고개→삼도봉→대덕산
→덕산재(약 15.2Km)
 

몇 일전 모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운동중독의 심각성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는걸 보았습니다. 술과 음식에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운동중독이란 단어는 약간 생소 합니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졌을 경우 주위 환경을 무시한 나만의 생활을 집착하게 되면 그것이 병이 시작되고 중독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지난번 덕유산구간에서 그렇게 식겁을 먹었고 그리고 겨우 어제 대간길을 다녀왔건만 벌써 대간길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며 다음 행차 날이 기다려지는걸 보니 틀림없이 그 이름도 얄궂은 대간 중독이라는 정신병이 내게 찾아온 모양입니다.
대간 여섯 번째이면서 5구간도 역시 지난 국립공원 산방기간에 미루어 두었던 빠진 이빨을 메워 넣는 구간인 신풍령에서 덕산재까지의 당일코스이면서 삼성중공업 산악회의 일반회원과 함께하는 구간입니다.
4시 30분 내게 친절한 기동이 어디만치 왔을까 전화 걸어보니 전화소리 듣고 지금 잠에서 깨어났답니다. 어이쿠 기동이 점심식사 준비하기로 했었는데 큰일입니다. 바로 집을 나와 오늘 점심식사를 장만하기 위해 고현사거리 24시 김밥집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런데 김밥집이 없어졌습니다.  년중 무휴의 그 김밥집이 하필 오늘 간판 불 끄고 휴무일입니다. 언뜻 지나다 보아두었던 근처 포장마차에 물어보니 딱 김밥 세 줄이 남아있습니다. 새벽부터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 신풍령의 고집통 - 백두대간 여섯번째 5구간 산행 들머리

 

◈ 신풍령(빼재)에서 출발하는 일행들

 

◈ 거창 삼봉산 정상 모습

   

대간팀 44명에 일반팀 20명이 합류한 64명이 빼재(7:55) 나무계단을 시발로 수정봉(8:25)을 치고 오릅니다. 아침부터 숨 소리가 거칠어집니다.
순식간에 빼재에서 1.9Km를 왔다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그리고 한참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빼재에서 2Km를 왔다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불과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또 빼재에서 3Km를 왔다는 이정표가 나와 이제 그 놈들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틀림없이 게으른 공무원이 들고 가다 힘드니까 대충 아무데나 이정목을 심어놓고 가버린 모양입니다.
전망 좋아 쉼을 누릴 수 있는 넓은바위(9:03)가 있어 휴식을 취하고 잠시 발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유월의 거창 산하를 조망해 봅니다. 한 무더기의 돌들 위에 거창 삼봉산(9:14)이라 명명한 정상석을 까딱 잘못했으면 지나칠 뻔하기도 했습니다. 

  

◈ 삼봉산 정상 지나 대간길의 멋진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거창산하

  

1,254m의 삼봉산에서 680m의 소사고개로 바로 직하하는 하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한참을 내려가니 대간길 옆으로 어린 모종을 심어놓은 배추밭이 있고 탁구공만한 사과가 달려있는 과수원도 나타납니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구경 못한 고랭지 배추밭이 여긴 지천으로 널려져 있고 대간길을 뚝 잘라놓은 소사고개(10:14)도 나옵니다. 바로 아래 소사슈퍼마켓이 있어 막걸리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합니다. 배추밭 언덕배기에는 뽕나무 열매 오디가 새까맣게 익어 갈 길 바쁜 일행들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이때쯤 일반산행으로 참가한 몇몇의 일행들이 고통을 하소연합니다. 

  

◈ 잠시 휴식 중 고집통 한 컷

 

◈ 소사고개의 고랭지 채소밭

 

◈ 소사고개에서 채소밭 옆 임도를 따라 삼도봉으로

 

◈ 삼도봉 오르다 뒤돌아 본 소사마을과 삼봉산

  

눈 앞에는 1,250m의 삼도봉이 있어 이번에는 제대로 힘 한번 써봅니다. 오르다 뒤돌아 본 삼봉산과 소사마을의 전경이 정말 아름다운 절경입니다.
누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삼도봉(11:37) 정상석의 허리를 뚝 분질러 놓았고 또 누군가가 치료를 하였건만 많이 아프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나마 버리지 않고 두었기에 내가 여기가 삼도봉이란걸 알아 다행입니다. 삼도봉을 세 번째 만나는 이곳은 경남거창, 경북김천, 전북무주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다시 한참을 내려가다가 오늘의 주인공 대덕산(12:15)을 오르니 소사고개에서 출발한 일반 산행팀이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옵니다.
새벽부터 땀 흘려 구입한 김밥에 짜릿한 소주에 맥주까지 오늘 내 배가 호강을 합니다. 학성이 소사슈퍼에서 사왔다며 포천이동막걸리 한 병을 들고 가까이 옵니다. 산중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 삼합을 만났으니 산행 목적의 주객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 허리가 부러진 삼도봉(조점산)정상석과 고집통

 

◈ 대덕산 정상의 고집통

 

◈ 대덕산 정상에 선 고집통

  

대덕산 얼음골 약수터(13:25) 표지판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로 머리 나쁜 나를 헷갈리게 하지만 얼음골 약수로 목을 축이려면 한동안 줄 서서 기다려야 하고 그 물이 너무 졸졸 흘러 바가지를 한참이나 갖다 대어 있어야 채워지니 거기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 한 조각을 좋은 뜻으로 되새김질 하게 합니다.
목마름의 고통으로 내가 그토록 잔인하다고 말했던 4월의 대간길 출발지점 덕산재(14:15)가 반가이 맞이해 줍니다. 

  

◈ 대덕산 얼음골 약수터 - 받을때는 감질맛 마실때는 감칠맛

 

◈ 대덕산 얼음골 약수터

 

◈ 덕산재에 도착한 고집통

 

◈ 덕산재 대경이 버스와 일행들

 

◈ 덕산재 - 백두대간 여섯번째 5구간 산행 날머리

  

김천시 지례면의 한적한 시골 마을 뚜꺼비 불고기식육식당 주인은 몰려드는 80명의 단체손님에게 혼을 빼앗겼나 봅니다. 흑 돼지 김치찌개의 맛은 일품인데 밑반찬 준비가 시원찮아 주인은 최선을 다하건만 곤욕을 치릅니다.
돌아와서 그 집을 인터넷 조회해 보니 김천에서는 제법 이름난 맛 집으로 정평이 나 있어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더 들러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 맛이 있어서 이렇게 깨끗이 비웠을까?

  
이제 여섯 번의 백두대간 산행으로 30구간의 1/5구간과 천왕봉과 향로봉 사이의 690Km 중 180Km 를 쉼 없이 걸었으니 약1/4 을 걸었습니다. 첫 발을 내디딜 때 백두대간에 감히 도전하는 내 자신은 두려움으로 바짝 긴장도 하였으나 어느 듯 지나온 발자국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고 다가올 새로운 길들에 대하여 사뭇 기대가 됩니다.
천지도 모르고 앞 사람의 꽁무니만 따라 잡던 내게마저도 멀리 대간에서 불어주는 거절하지 못할 향수가 가슴에 밀려드니 아마도 나는 그 무섭다는 대간병에 슬슬 빠져들고 있나 봅니다. 아프지 않으니 뿌리치지 말고 즐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