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9. 7. 18 (당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7구간 (우두령~추풍령)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2명과 고집통
◈ 날 씨 : 흐림, 바람
◈ 대간 산행시간 : 90시간 31분 (7구간: 10시간 20분)
11일차 우두령(7:20)→추풍령(17:40) 10시간 20분
◈ 대간 산행거리 : 197.14Km (7구간: 23.74Km)
11일차: 23.74Km
◈ 총 산행 거리 : 우두령(질매재)→바람재→형제봉→황악산→백운봉→운수봉→여시골산→괘방령→가성산→장군봉→눌의산→추풍령 (약 23.74Km)
아킬레스(Achille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강력한 전사로 「아킬레스가 태어나자마자 육체적으로 불사신을 만들기 위해 그의 어머니가 지옥의 강에 몸을 담갔었는데 이때 발목을 잡은 부위가 이 신비한 물에 닿지 않아 그곳만 약점으로 남아 나중에 이 부위에 활을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흔히 남의 약점을 콕 집어 거슬리게 하면 아킬레스를 건드리지 말라며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오르막길을 오르자면 발 뒤꿈치의 아킬레스건이 땅기면서 아파옵니다. 딱히 그래야만 할 이유가 없었기에 세월 지나면 낫겠지 생각하며 그냥 그렇게 세월을 흘려버렸습니다.
애초 산행 스케줄 상 우두령에서 추풍령구간은 18~19일로 1박 2일 여정이어서 부모님 칠순 잔치가 19일로 일정이 중복되어 이번 차수는 산악회와 같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개인적으로 괘방령에서 1박을 하면서 단독산행을 생각했었는데 산악회의 일정조정이 있어 토요일 당일치기로 바뀌어 같이 할 수있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모든 것들이 순조롭던 중 결정적으로 내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고 마눌님 또한 충격적인 화장실 엉덩방아로 인근 백병원 응급실 신세까지 지게 되니 한 주간 생활이 뒤죽박죽 꼬여 버렸습니다.
올해는 요상하게도 장마가 중부내륙은 제외하고 어제는 서울에 한바탕, 오늘은 부산에 한바탕, 내일은 또 서울로 올라간답니다. 아래 위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물 폭탄을 쏟아 부어 서울과 부산이 비 피해가 심각함을 연일 TV뉴스에 도배질을 합니다.
장마철이기도 하고 일기예보에서도 그랬듯이 오늘 오후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기에 당연히 이번 산행은 빗속을 거닐 것이라 예상하고 새벽 3시 30분 문 밖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찌 활동하는 사람이 이리 많단 말입니까?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북진하는 대간 시작점이 거제에서 자꾸 멀어져 가니 출발시간(4:00)이 한 시간 앞당겨지고 이름으로 보아서는 소머리가 있어야 하지만 실제론 소 형상이 지키는 우두령(질매재, 6:55)에서 간단하게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내가 세상에 있기도 전에 유행했다던 그 노래 『바람도 자고 가고 구름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 고갯길』을 찾아가는 7월의 대간 길에도 한 발(7:20)을 올렸습니다.
예보와는 달리 카메라에 잠자리가 들어올 정도로 하늘은 맑고 산행하기에 안성맞춤 식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줍니다. 막상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니 오른 발뒤꿈치의 아킬레스에서 약간의 신호가 오고 자연스럽게 몸의 무게중심은 왼 다리로 쏠리면서 뒤뚱거리게 됩니다.
지금부터는 지도를 기준으로 아래는 경북 김천이고 위로는 충북 영동 땅입니다. 짧은 기간에 우리는 무던히도 먼 길을 올라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 오르막을 오르니 부산의 모 단체에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칼라풀 1,030m 여정봉(8:25) 정상 표시판이 나옵니다. 머지않은 거리에 바람재로 오르는 차도가 속살을 허옇게 내놓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황석산에서 거망산으로 산행할 때 나무 풀숲가시로 인해 얼굴이 할퀴고 긁힌 길과 흡사한 산길이 나타나고 가시 넝쿨이 제대로 한번 눈두덩을 핥고 지나갑니다. 정말 아픕니다.
바람재 정상(8:33)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곳은 송신탑이 있고 아래는 인공으로 지하 깊숙이 사람이 생활이 가능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해놓은 방공초소가 숨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도상에 폐 초소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바람재(9:00)입니다. 글자가 삐뚤삐뚤 하게 씌어있는 표지석이 한 운치를 합니다. 형제봉(9:29)임을 알려주는 이정목도 지나고 내가 훌라 판에서 좋아하는 에이스 네 개가 줄지어 있는 황악산 정상(9:48)에 올라섭니다.
황악산은 우리나라에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등 몇 되지 않는 악(岳)자 들어가는 산중에 유일하게 육산입니다. 김천 시내가 조망되고 손가락과 연관 있는 천년 고찰 직지사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간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직진은 금물이랍니다. 황악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90도 바로 꺾어 돌아 내려가야 하는데 지도 좀 본답시고 고집을 부렸다간 알바 하기 십상입니다. 여기서부터 제대로 된 백두대간 시그널 하나 없고 직지사로 통한다는 표지만 있어 의심의 눈초리로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GPS상 1m의 오차가 없다고 공대장님 안심을 시켜줍니다.
황악산 오르기까지 한 명의 산님도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 길로 내려오다 몇몇의 산님을 만나게 되었고 운수봉(11:00)에 도착할 즈음 성주에서 오셨다는 아주머니께서 성주참외가 너무 달고 맛있다며 가시던 발길을 멈추고 아낌없이 두 개를 넘겨주십니다. 성주참외, 달긴 정말 답니다.
길 옆에 그냥 깊은 굴이 있구나 하고 무심코 지났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왔을듯한 여시굴이었고 효자 나무꾼의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하루를 남기고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해 실망한 구미호가 두 자식을 데리고 떠나갔다는 여시골산(11:36)입니다 .
괘방령(12:00)산장은 사전예약을 하였건만 보유한 밥솥이 작아 한꺼번에 몰려든 배고픈 일행들을 감당 해내기가 버거운 모양입니다. 젊은 주인 내외가 한참 동안 진땀을 흘립니다. 본래대로라면 이 곳에서 1박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아니면 나 혼자 이곳을 넘었더라도 여기서 1박을 했을 것입니다. 하루 저녁 쉬어가기에 아주 그만인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과거 보러 가는 사람들이 인근의 추풍령을 통과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기에 이 곳 괘방령(해발 300m)을 통과하면 장원급제를 많이 하였고 이곳에 급제를 알리는 방을 붙였다 하여 이 길을 괘방령이라 했다고 합니다.
괘방령을 출발(13:00)하여서부터 급격히 체력이 소진되어 일행들의 뒤를 따르기가 버겁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다리가 풀리는가 싶더니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안 와서면 좋은 반갑잖은 그 쥐가 또 찾아옵니다. 징글 맞습니다.
설상가상이 무엇입니까?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급기야 구토가 발생하고 얼마 먹지 않은 음식물을 그냥 위로 쏟아냅니다. 이때부터 내겐 한발 한발들이 고역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햇볕을 가려주는 구름을 보내주시었고 숨통을 열어주는 바람을 주시었으니 더위로 인한 탈진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도 발 아래 펼쳐진 그 마을은 시작할 때 그 모습 그대로 전혀 변함이 없고 기다리는 가성산은 나와 주지 않습니다. 나중에 알고 본 일이지만 오늘 하루 그 놈의 김천시만 바라보고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산꼭대기에서 뺑뺑이만 신나게 돌았습니다.
정말 지루한 오르막길을 올라 산 등성이를 따라 약간 이동하니 벼랑 끝에 소나무 한 그루가 완전히 등허리가 굽은 채로 지친 나를 맞이합니다.
드디어 오후의 첫 번째 목적지점 가성산(15:00)이 나옵니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주위 의식 않고 정상 헬기장에 쫙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엄청 편안합니다.
채 숨도 돌리기 전에 산행대장께서 출발 2분전을 외칩니다. 마냥 편안함을 추구할 수 없으니 서둘러 뒤따르게 되고 누적된 피로로 발 무게는 천근만근으로 느껴집니다. 일행들 다 지나가고 잠시 앉아 쉬어보니 순간 현기증이 일면서 스르르 잠이 쏟아집니다. 정신을 차려 출발하고 가다 쉬기를 여러 번 끝에 장군봉(15:35)을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늦게 도착하면 거제로 돌아가는 차량출발이 늦어진다는 생각이 드니 이제 내게는 휴식이란 말은 사치가 되고 말았기에 줄곧 앞만 보고 정신 없이 걷노라니 반가운 명석님 배가 고파서 도저히 못 가겠다며 계란 껍질을 벗기고 있습니다. 계란 먹기를 권하나 먹고 싶긴 하지만 더부룩한 배를 생각하니 군침만 삼키고 말았습니다.
줄곧 나보다 앞서 갔으리라 생각한 학성이 웃으면서 뒤에서 나타납니다. 조금 위안은 되지만 학서이도 이내 스쳐 지나가고 또 꼬랭이에 내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참 힘들게 한 발씩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니 머지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들리고 일행들이 정상식을 하고 있습니다.
눌의산 정상(16:35)에 내가 도착하니 정상식을 끝내고 또 출발 2분전을 알립니다. 오늘 아침부터 달려온 이 구간에는 많은 정상석들을 지났는데 특이하게도 모두 무릎 높이의 작은 크기로 세워놓아 사진 찍기에 어정쩡한 폼만 나옵니다.
지금부터는 가파른 하향 경사길입니다. 지도상 추풍령까지는 1시간 20분이라고 표기되었지만 발만 들어주면 앞으로 진도는 나간다고 생각되니 한층 마음이 가벼워졌고 나로 인해 버스 출발이 지연된다면 그 부끄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기에 열심히 걸었습니다. 내 아킬레스는 언제 아팠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까맣게 잘 영근 포도밭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을어귀에 호두나무에 호두도 엄청 달려있습니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한 개 통과했습니다. 다음은 철도 굴다리도 통과합니다. 굴다리 밑으로 시원한 물 줄기가 쏟아집니다.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앉아 있노라니 탈~~~~탈~~~~탈 경운기 한 대가 옆에서 멈춥니다. 나이가 오십 정도 잡수신 시골 아저씨께서 낮술 거나하게 취하신 채 내게 살살 시비를 걸어 오십니다. 혹시 잘못되어 탈나면 큰일이니 얼른 짐 챙겨 자리를 뜨니 또 탈~~탈~~탈 경운기로 따라 오면서 시비를 걸어옵니다.
지나가는 말로 『경운기 좀 태워 주이소』하니 얼른 타라고 하십니다. 덕분에 국도변에 세워진 추풍령(17:40)의 거대한 표지석까지 경운기를 타고 쉽게 이동했습니다. 일행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아저씨에게 인사 하였는데 내가 차에 오를 때까지 저 고속도로 너머 자기 집이 있으니 다음에 꼭 들르랍니다.
왜 옛날 사람들은 추풍령에 령(嶺)자를 붙였고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간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추풍령은 백두대간 중 해발이 가장 낮은 220m 고갯길로 나와 있는데 말입니다.
우려 했던 바와 달리 마지막 추풍령에서의 단체사진에는 당당히 내 얼굴도 올렸고 거제로 향하는 버스가 제 시간에 출발하게 되었으며 직지사 앞마당 「대구식당」에서 벌어지는 자축 뒤풀이에서 동동주 잔을 높이 들어 『위하여』 삼창을 할 수 있었기에 힘들었지만 무척 고마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매회 백두대간 할 때마다 『요놈의 백두대간 때려 치워야지, 때려 치워야지』하면서 죽기로 따라가고 산에서 내려오면 싹 잊어버리고 맙니다. 아니 일부러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님 잃어버리던지……. 가면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나만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앞으로 큰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컨디션은 날이 갈수록 좋아 보이는데 나만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오늘 병원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고 약도 받았습니다. 좀 좋아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휴가 기간에 화대 지리종주를 해야 하는데 그 다음 주 진행되는 8차 대간은 40Km가 넘어 더 빡시다 던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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