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0. 9. 18 ~ 9. 19 (1박 2일)
◈ 어 디 를 : 조계산 장군봉
◈ 누 가 : 공오회원 11명과 고집통
◈ 날 씨 : 맑음
◈ 산행 시간 : 선암사 주차장(12:20)→장군봉(14:20)→선암사 주차장(16:40) 4시간 20분
◈ 산행 거리 : 선암사 주차장→선암사→대각암삼거리→향로암 절터→장군봉→배바위
→작은굴목재→큰굴목재→선암사→선암사 주차장(8.8Km)
삼성중공업에서 제법 잘나가는 부장님들이 있습니다. 부산 지사장님도 있고 대표명함을 가진 어엿한 사장님도 중견 회사의 상무님도 어울렸습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배가 나오고 틀이 잡힌것이 한눈에 보아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 같습니다. 머리엔 서리가 뽀얗게 내려 앉았고 직사광선이 부담스런 넓어진 이마도 보입니다.
한 순간 선암사 입구 주차장이 떠들썩한 모습이 들뜬 초등학생들 봄소풍 나온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그들은 월급 잘나오는 탄탄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먹고 사는 일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내일 모레 오십줄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들로써 단체로 전라남도 조계산 앞에 몰려 왔다는 이야기 입니다.
대통령은 박정희만 하는 줄 알았던 그 시절 공고에 들어가면 기술 배워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기에 한치의 의심없이 공고를 선택하였고 부모님들의 희망대로 우린 학교의 졸업장을 받기도 전인 1980년 9월 25일 지금은 삼성중공업이 되어있는 거제의 삼성조선에 공고 5기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습생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삼성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온 공고 5기생(공오회)이 만난지 30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포츠머리에 교복까지 단정하게 갖춘 전국의 모범생들이 가슴엔 희망 보따리를 안고 어깨엔 담요 보따리를 둘러메고 회사 정문 앞 훈련소에 몰려 들었습니다. 마산에서 배를 탄 나는 고현 선창으로 첫발을 내렸으며 그날도 올해처럼 추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가을 하늘이 청명한 날이었으며 황금빛 벼가 잘 익어가고 있는 논두렁길과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전형적인 시골 비포장 자갈길을 따라 조선소의 거대한 크레인을 향해 부푼 가슴으로 걸었습니다.
그렇게하여 조선소의 신입사원이라면 응당 한번은 거쳐야만 하는 딱딱한 마룻바닥 훈련소 내무반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왼쪽 가슴에는 어느 학교 누구라는 이름표를 부착한 누리끼리하고 두꺼운 작업복에 생전 처음으로 신어보는 안전화를 신고 새벽마다 찬바람을 갈라가며 삼성찬가를 외치는 햇병아리 삼성인들로 변신해 갔습니다. 딱딱한 안전화에 발뒤꿈치가 벗겨졌지만 용케도 견뎠습니다. 걸핏하면 학교로 돌려보내 버리겠다는 교관의 어름짱도 무사히 잘 이겨내고 우린 서로의 얼굴도 채 알기도 전에 훈련소 생활 10일만에 학교에서 배운 각자의 전공에 따라 생소한 부서로 배치되었습니다.
정말 80년대의 전설의 고향에서나, 이웃 나라 일본에서나 있는 이야기 처럼 앰프 속 구령소리에 맞춰 전사원이 아침체조를 하는 진풍경이 여기저기 벌어지고 거제 전역에까지 시간에 맞추어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로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배 고픈 훈련생 우리는 점심시간의 그 사이렌 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조선소 끝자락의 섬 죽도에서 대빗자루를 만들어 쌓인 눈을 쓸기도 하고 죽도 해변의 바닷물이 너무 맑아 사회초년생 소년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해삼, 꼬막잡이 갔다가 선배에게 혼쭐도 났습니다.
지금이라면 중소 조선소에서도 짓지 않을 그런 크기의 범건호라는 2만톤급 탱크선인 1001호선에 처음 올라보고 그 어마어마한 덩치에 뒤로 나자빠질뻔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조선소 생활은 용접불빛이 불꽃놀이로 그라인더 소리가 음악으로 들리면서 우린 서서히 조선소의 일원으로 융화되었습니다.
가끔은 회사에서도 위기탈출의 일환으로 무슨 작전이란것이 필요 했는가 봅니다. 우린 힘든 930 작전도 88년 거센 민주화운동 바람도 슬기롭게 잘 이겨냈습니다. 착한 나무들은 아무짓도 하지 않았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시원한 그늘과 맛있는 열매를 제공 할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지 더 많은 열매를 요구하는 자들이 많이 더 많이와 빨리 더 빨리를 외쳤고 거센 비바람이 심술을 부렸을 뿐입니다. 시대가 원했기에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갑자기 되돌아보니 세월이 우릴 가만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아간 친구들이 대다수였으며 몇몇 친구들은 이 세상이 힘들었나 봅니다. 이 세상을 등지고 다른 세상을 택했습니다.
독신생활이 참 외로웠었나 봅니다. 의지하며 안식을 위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남들보다 빨리 필요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희망을 찾아 거제에 올 때보다 더 훌쩍 커버린 아들, 딸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들 자수성가, 입신양명 한 거지요. 혈혈단신으로 거제에 입성하여 힘든 세파 물리치고 직장의 주요 요직을 담당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일원으로 활동하는 멋진 중년 가장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렇게 후회 없는 삶을 산 중년들이 삼성중공업 입사 30년을 맞아 그냥 있을수가 없었던가 봅니다. 잊고 살았던 세상의 필름을 되돌려보고 새로운 30년을 기약하고 싶어 처음으로 특별한 외출을 갖기로 하고 조계산 등산과 함께 선암사 계곡 조용한 가든에서 밤을 지새면서 술잔을 비우기로 하였습니다.
지고 있던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조계산 정상을 향했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만은 무척 즐거워 보였습니다. 경치 좋은 바위 위에서 땀방울을 닦으며 마시는 막걸리가 기쁨을 더해줍니다. 그렇게 잦던 비까지 멈추니 가을하늘이 우리가 조계산에 오른다는 정보를 입수했나 봅니다. 올 들어 이렇게 멋진 하늘은 처음 보았습니다. 당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군봉에 올라 화이팅을 외치며 30년 공오회를 멋지게 자축했습니다.
저녁.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실줄 알았습니다만 사람이 술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존재란걸 이미 연륜이 깨닫고 있었습니다. 도란도란 정감있는 30년의 이야기 보따리와 함께 밤은 깊었습니다. 가슴 콩닥거리는 우리들의 동침은 햇병아리 훈련소 시절 내무반에서 함께한 후 첫 경험이었습니다. 순천만의 갈대숲과 장뚱어탕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들의 특별한 외출은 하나가 되고도 충분한 남음이 있었습니다.
세월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세파에 나약하게 흔들리자니 너무 억울할것 같습니다. 30년만의 특별한 외출을 가진 우리 공오회의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우리는 삼성중공업이 맺어준 귀한 인연의 끈을 이제는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날들 우리에게 펼쳐질 희망과 아픔, 즐거움을 우린 계속 함께하기로 하는 간절한 바램들이었습니다. 공오회 파이팅입니다.
'전라남도·전라북도 > 광양·순천·여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양] 간만에 삼중이 산악회랑 – 백운산 [1,222.2 m] (0) | 2019.07.15 |
---|---|
[순천] 백발가, 사랑가, 만고강산 – 조계산 [887m] (0) | 2019.02.26 |
[여수]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 영취산 [510 m] (0) | 2014.03.29 |
[광양] 아픔을 이겨내는 산 즐거움 – 백운산 [1,222,2 m] (0) | 2013.11.17 |
[순천] 조계산에 조개 없어요 - 조계산 [887m] (0) | 2008.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