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1. 12. 24 (당일)
◈ 어 디 를 : 호남정맥 7구간 (오정자재~방축재)– 강천산, 광덕산, 덕진봉
◈ 누 가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그리고 나(고집통)
◈ 날 씨 : 눈 오다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79시간 51분(7구간: 9시간 00분)
8일차 오정자재(7:05)→방축재(16:05) 9시간 00분
◈ 정맥 산행거리 : 143.4Km(7구간: 16.4Km)
8일차: 16.4Km
◈ 총 산행거리 : 오정자재→강천산 왕자봉→금성산성→광덕산→덕진봉→방축재(금과동산)
국도보다 못한 88고속도로에서 함박눈을 만납니다. 내심 반갑긴 하지만 너무 많이 내리시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순창읍내 곤이네 집은 이른 꼭두새벽에 불 밝히고 손님을 받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낙지 다리가 아직 꼬물거리고 있는 모습이 조금 전까지 소주 손님이 있었나 봅니다. 생태탕을 시켜 막걸리 한통과 함께 아침식사를 해결합니다.
금과동산이 있는 방축마을에 주차하고 금과택시 기사님께 전활 돌리니 금방 달려가겠다는 흔쾌한 대답이 반갑습니다. 택시는 윈도우 와이퍼를 아무리 힘껏 내저어 보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함박눈으로 인해 속도는 거북이가 되었습니다. 이러다 못 간다 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친절한 기사님께서는 호남정맥하러 오는 손님을 많이 모셨든 탓인지 이 분야 박사님이라 걱정은 붙들어 매어도 될 것 같습니다.
택시가 오정자재에 도착할 때 까지도 눈은 계속 내렸으며 약 5Cm 가량의 적설량을 보였습니다. 호남지역에 눈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호남정맥 길에서 이렇게 빨리 눈 산행을 접할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멋진 산행이 기대됩니다.
헤드라이트 불 밝히고 스패츠, 아이젠 야무지게 갖추고 오정자재(7:05)를 출발하여 아무도 가지 않은 강천산 방향 정맥길에 발자국을 찍습니다. 시작은 여느 구간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빡십니다. 숨이 할딱할딱 아주 넘어갈 것 같습니다. 참나무 이파리 낙엽위에 내린 눈은 엄청 미끄럽습니다.
송전탑을 지나고 위험천만인 암봉을 로프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오릅니다. 아차 하다간 큰일 당할 그런 곳입니다만 막상 올라서보니 노송나무 한그루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과 어우러져 멋진 경칠 만들어냅니다. 언젠가부터 눈은 멈추었고 진행 방향 강천산 산마루에 어느새 햇님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사거리 하날 지나고부터는 왕자봉 삼거리(8:56)까지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전혀 보이지 않아 혹시 정맥길이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왕자봉은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으나 이곳에 들러보지 않는다는 것은 강천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발길을 주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왕자봉(9:00)에 간다는 일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지금 따뜻한 방에서 꿈속을 헤매고 있을 지인들께 나는 이 시간에 산속을 헤매고 있노라고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는 글귀와 함께 사진 한 장 날려 보려니까 요것이 또 잘 날아가지 않습니다. 이놈의 스마트폰은 항상 이럴 때 문제입니다. 손 시려 죽겠는데 말입니다. 내 사진을 받아 본 우리가족들은 삐리릭 삐리릭 카카오 속에서 문자주고 받고 난리가 났습니다.
형제봉삼거리(9:36)에서는 송낙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오른쪽에 설경이 멋진 추월산이 있고 그 아래 담양호의 경치가 한폭의 그림입니다. 산꼭대기에 거대한 바위 담벼락이 나타납니다. 금성산성으로써 호남지역 3대 산성의 하나입니다. 옛날 삼국시대에 축성하였으며 임진왜란과 동학농민운동 때 많이 소실되었지만 최근 거의 복원되었으며 곡식 1만 6천섬을 저장하였다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내 눈으로 보는 금성산성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금 내가 처음으로 만난 담벼락은 북문(10:22)터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산님 한분을 북문에서 만납니다. 컵라면과 캔 맥주를 눈 속에 묻어 놓았는데 맥주는 그렇다 치고 컵라면은 왜 묻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연유를 물어 봤어야 했는데 아직도 궁금합니다.
성곽을 따라 정맥길을 쭉 걷던 중 강천저수지 삼거리를 약간 지나고부터 내 걸음걸이가 이상해집니다. 몸의 균형은 완벽하게 잡혔으나 왼쪽은 한자리에 고정인데 오른쪽 다리는 자꾸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결국에는 다리 찢기 형국으로 엉덩방아를 찧게 되고 산행 내내 왼쪽 무릎에 이상 징후로 불편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착용한 아이젠에 시루떡처럼 눈덩어리가 달라붙어 산성 돌바닥이 엄청 미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금성산성 동문(11:07)에 도착하니 순백의 겨울을 즐기려고 나온 산님들을 제법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산님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아주 밝습니다. 간격이 엄청 넓은 철계단을 지나고 광덕산을 앞에 둔 헬기장(12:52)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따뜻한 햇살 받은 눈이 살짝 녹으면서 바닥의 낙엽과 엉겨 접착력이 좋아져 신발에 떡판 같이 쩍쩍 달라붙습니다. 두 발짝 걷고 털어내고 세 발짝 걷고 털고 영 진도가 말이 아닙니다.
광덕산(13:15) 오르는 길은 아주 급경사입니다. 강천산 군립공원 끝자락인 모양입니다. 시야가 확보되면서 왼쪽으로는 순창과 오른쪽으론 담양의 하얀 평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 가슴이 뻥 뚫립니다.
세 번의 임도길을 지나고 뫼봉(14:56)을 향해 나가던 중 반대쪽에서 진행해오는 정맥꾼 한사람을 만납니다. 엄청 사람이 그리웠나 봅니다. 우릴 만나자마자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인증 사진 찍기를 원합니다. 광주에서 오셨다하고 일행들이 금성산성에서 기다린다는데 이분이 어느 천 년에 일행을 만날지 내가 걱정입니다. 방축재에서 출발하였다 하는데 진행한 거리와 걸린 시간을 계산해보니 홀로 산중에서 많이 헤맨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 고비 덕진봉(15:24) 오르는 길은 정말 힘듭니다. 신발에 달라붙는 눈들로 인해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아이젠을 벗으면 미끄러지고 착용하면 눈덩어리가 또 미끄럽고 그래도 착용하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덕진봉부터 반대쪽으로 나있던 한사람의 발자국이 없어졌습니다. 조금 전 만났던 그 산님은 정맥길 진입길을 잘못 택했었나 봅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결렸다 생각했더니만 아마 제대로 알바를 한 것 같습니다.
방축마을(3:52) 어귀에 내려섭니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약 50m 정도 내려가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음 마을로 넘어 가야만이 금과동산 입간판이 있는 방축재(4:07)에 도착하게 됩니다. 반대방향으로 호남정맥을 타다가는 들머리 찾기가 정말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조금 전 정맥꾼님이 그만큼 시간이 걸린데 대해 이해가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새벽 눈으로 인해 온 산하가 순백으로 변해 정말 멋진 경관을 선물 받았습니다. 타인들은 꿈속을 거닐고 있을 때 우린 새벽을 달려 호남정맥길에 올라 이 겨울 최고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금과면의 막창 옛날순대가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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