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2. 7. 31 (당일)
□ 어 디 를 : 낙동정맥 1구간(매봉산 낙동정맥 갈림길~석개재) – 백병산, 면산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아주 맑고 올 들어 가장 더운 날
□ 정맥 산행시간 : 38시간 21분(1구간:14시간 00분)
4일차 피재(5:21)→매봉산 낙동정맥 갈림길(5:43)→석개재(19:21) 14시간 00분
□ 정맥 산행거리 : 79.9Km(1구간:25.3Km) 4일차: 25.3Km
접근거리: 피재→매봉산 낙동정맥 갈림길: 1.1Km, 백병산 왕복: 0.8Km
□ 총 산행거리 : 피재→매봉산 낙동정맥 갈림길→작은 피재→대박등→통리→백병산 삼거리→백병산→토산령→구랄산→면산→석개재(약 27.2Km)
한나절의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찌는 듯한 무더위 속 아무도 찾지 않는 낙동정맥 길바닥에 큰 대(大)자로 몸을 뉘었습니다. 너무 편안하여 스르르 잠이 쏟아집니다. 눈을 뜨고 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그것은 오직 생각일 뿐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은 꼼짝달싹 할 수가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으니 그냥 이대로 깊이 잠들었다가 어둠이 내려오면 움직여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야밤중에 강원도 첩첩 산중을 홀로 헤매고 있을 내 모습을 연상하니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세워야 될 것 같습니다. 허기를 달래려고 먹었던 몇 점의 빵 조각과 방울토마토는 이미 토해버린 지 오래되었고 헛구역질로 인해 텅 빈 창자가 뒤틀리면서 옆구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 뜨끔거리고 뒤통수는 뭔가가 압박을 해오는 양 욱신거립니다. 어쩌면 이러다 험한 꼴을 당할 것 같기도 합니다. 배낭 속엔 먹거리라곤 텅텅 비어 버렸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얼음이 녹지 않은 생수 두 통이 남아 있어 그것들이 나를 산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제 고집통 홀로 개고생 하며 걸었던 낙동정맥 첫 구간 종주를 시작하도록 해야겠습니다.
2012년 여름휴가입니다. 일부 힘 꽤나 있으신 분들은 공짜휴가를 가지만 고집통과 같은 조조군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알토란같은 연차휴가 다섯 개를 사용하며 휴가를 쉬어야 합니다. 생각만 있지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는 불쌍한 중생들입니다.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해 친구 아버지 문상으로 하지 못한 낙동정맥 첫 구간을 땜방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챙겨야 할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당연히 태백 인근에 마눌님을 모셔야 하니 그 아래 딸린 식구와 준비물이 장난이 아니게 불어납니다. 쉽진 않지만 삼손이, 삼식이, 영심이가 함께 숙박해야 하는 펜션을 찾아야겠고 강아지 텐트, 강아지 화장실, 강아지 유모차, 강아지 밥과 간식 등등도 승용차에 실어 담아야 합니다.
삼척 신리 소재 『산목련펜션』은 마눌님을 포함한 대한민국 사모님들의 절대적인 로망입니다. 펜션 사장님 내외분이 직접 빚은 와인과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두고 서울 손님 부부와 함께 와인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신리 계곡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시작한 환상의 파티는 두 마리의 흑룡이 물어 올린 붉은 여의주가 건너편 산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밤이 깊음을 알고 자리를 파하였습니다. 교교하게 비치는 달빛과 잔잔히 흐르는 음악이 어우러져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의 도란도란 이어지는 이야기들….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호사스런 밤을 보냈습니다.
3년 전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소나기 흠씬 두들겨 맞으며 백두대간을 출발했던 그 자리 삼수령(피재, 5:21)에 고집통이 홀로 왔습니다. 오늘 낙동정맥 첫 구간을 종주하기 위함입니다. 야심한 밤까지 와인 잔을 기울였건만 한껏 고조된 기분으로 마신 알코올이라 그런지 몸과 마음이 산뜻합니다. 매봉산 풍력발전 단지로 가는 시멘트 길로 찬찬히 발길을 옮깁니다. 뒤돌아 본 자작나무 군락지 사이로 멋진 일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양은 떠오르지만 여름 내내 달구어진 지열은 쉬 식지 않아 아침부터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마음 같아선 매봉산 정상까지 올라 멋진 풍력단지와 고랭지 채소밭을 둘러보고 싶지만 다른 이들은 1박2일에 걸쳐 진행했던 정맥길을 홀로 당일에 끝내야 하는 일생일대의 사명이 있어 천의봉 중턱 낙동정맥 갈림길(5:43)의 표지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 위에는 지난번 백두대간 때는 보지 못했던 팔랑개비 두 대가 아침햇살을 받아 번쩍거림과 함께 굉음을 지르며 핑핑 돌고 있습니다.
여기 매봉산 중턱 낙동정맥 갈림길에서 아홉 정맥 중에서 세 번째인 낙동정맥의 첫 구간을 시작하려 합니다. 백두대간 매봉산 천의봉에서 출발하여 부산 몰운대까지 장장 370Km 거리의 낙동정맥 시작점에 내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고개 숙여 내가 가는 낙동정맥길도 안전하고 무사한 길이 되도록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기념할 수 있는 셀카를 남기고 부산 몰운대를 향해 새로운 발을 내 디뎠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으나 목장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이 중간 중간 있었기에 요행이 목장으로는 들어가지는 않았나 봅니다. 작은 피재(6:02)에 내려섭니다. 하늘이 너무 푸르고 맑아 매봉산의 팔랑개비들과 아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을 자아냅니다. 구봉산(6:07)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야생화 흐드러진 임도 길을 살방살방 따라가다 보니 금세 대박등(6:36)에 도달합니다.
산 중에 태백시 쓰레기소각장(7:19)이 있습니다. 근처 고갯마루까지 승용차가 올라와 있습니다. 전망대 가는 길에는 작은 돌들로 등산로를 잘 꾸며 놓았으며 전망대(7:44)에 올라보니 백두대간 중에 하루 왼 종일 비 맞아가며 걸었던 덕항산과 푯대봉이 올망졸망 조망됩니다. 3년 전 기억들이 아련합니다.
유령산(7:54)이라면 귀신산일까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느티고개(8:15)는 삼척과 태백을 잇는 고개이며 옛날 사나운 호랑이가 뭇사람들은 다 잡아 먹어도 효자는 잡아먹지 않았다는 호랑이에 얽힌 전설 속의 유령산령당도 있습니다. 우보산 오르는 길이 약간 힘들지만 그래도 단숨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느릅령(8:43) 돌탑을 지나고 바로 직진 하산하여 통리역(8:57) 앞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낙동정맥 1구간이라 칭하며 홀가분하게 산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통리에 도착하다 보니 아직 식당에 문 열린 곳이 없습니다. 큰일입니다. 어제 저녁 와인으로 배 채우고 오늘 밥 구경 하기 글렀기 때문입니다. 통리역 앞 가게에 들렀을 때 배고프지 않게 먹거리를 챙겼어야 했는데 생각 없이 맥주 1통에 옥수수 수염차 1병만 달랑 구입하고 통리 철길을 건너고 말았으니 아마도 이것이 오늘 산행 중 개고생하게 된 전주곡이 되고 말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곧바로 백병산을 향해 38번 국도를 건너 산능성이를 타고 오릅니다. 사람의 통행이 없었기에 거미줄이 얼굴을 칭칭 감습니다. 어~!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됩니다. 에이 이까짓 것. 팍팍 치고 올라갑니다. 어느 순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내 몸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면안등재(11:18)에서 휴식을 취하며 통영 꿀 빵을 입에 넣어보니 퍽퍽한 밀가루가 목구멍에 걸려 쾍쾍 거립니다. 아무래도 팥으로 만든 앙코가 상한 느낌이 들어 배낭 속의 통영 꿀 빵을 모두 버렸습니다. 고비덕재(11:37)를 지나고 백병산 삼거리(11:57)까지 가다 쉬다 수차례 끝에 억지로 도달합니다. 400m 거리에 백병산 정상이 있다 하니 힘들지만 가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백병산(12:02) 정상을 오르고 나니 갑자기 없던 힘이 펄펄 나기 시작합니다. 조금 전 마신 맥주의 힘 인가 생각됩니다. 이제부터 완전히 산죽천지 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산죽 밭을 헤쳐 가며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백병산 삼거리에는 다음 목적지 면산이 8.5Km 지점에 있다는 이정목이 있습니다. 백병산 오르다 소비한 시간이 너무 많아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서둘러 달렸습니다. 육백지맥 갈림길(12:27)을 휙 스쳐 지나고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 휴양림과 전망대(13:27)가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산행 시작이래 제대로 된 요기를 하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대형 마트산 꿀빵을 먹어 보기로 합니다. 더위에 지친 내 입은 이것마저 거절 합니다.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니 체력은 고갈되고 다리는 점점 풀려가고 있습니다. 덕거리봉(13:38) 정상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땅 바닥에 몸을 눕혀 봅니다. 너무 편안해 스르르 잠이 쏟아집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절정의 무더위 속에서 8시간을 넘게 산행을 하였으니 지금쯤 체력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눈앞의 작은 봉우리들도 너무 높게 느껴집니다. 가파른 하향길로 뚝 떨어지더니 토산령(14:24)이라는 표지석이 나옵니다. 이렇게 산행이 힘들 때는 지도를 확인하지 말고 산꼭대기를 쳐다보지 않아야 산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수한 시그널이 있는 쪼뼛한 산꼭대기(14:41)에 힘겹게 올라섰습니다. 나는 이곳이 당연히 구랄산일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럼 저기 눈앞의 거대한 산이 면산이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이 지난 차수에 통과한 묘봉일 것이리라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고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하고 배낭을 등 뒤에 기대며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뱃속이 꿈틀거리며 구토가 확 올라옵니다. 먹은 것이라곤 몇 시간 전에 먹었던 꿀빵 쪼가리 몇 점과 방울토마토 몇 알이니 올라올 것도 없습니다. 머리맡에 토해낸 이물질이 있지만 움직일 힘이 없어 그냥 그 자리에 한참을 드러누웠습니다. 그대로 잠들고 싶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사력을 다해 일어났습니다.
이런 지랄 맞을 일이 있습니까? 면산 정상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랄산(15:32) 정상석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지도를 잘못 읽고 있었으며 오늘 나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묘봉이 묘봉이 아니고 면산이란 말인데 까마득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난 이제 죽었습니다.
고도표상에 면산은 화살표처럼 뾰쪽하게 솟구쳐 있습니다. 구랄산에서는 아래로 콱 쳐 박았다가 까마득한 오름길로 올라야 합니다. 몇 발자국 걷고 휴식하고 또 몇 발자국 걷고…. 그렇게 뽀작 뽀작 올라갑니다. 호흡이 너무 가빠서 선채로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무조건 땅 바닥에 퍼질러 앉습니다. 면산을 오르면서 도대체 몇 번을 땅바닥에 앉았는지 셀 수도 없습니다. 스무 번도 더 넘을 겁니다.
어떻게 그 높은 곳까지 올랐는지 몰라도 결국에는 면산(17:10)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너무 좋아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마냥 좋아하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석개재까지 남은 거리가 4.5Km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 마저도 힘이 부칩니다. 잠시라도 앉아 쉴라치면 어김없이 잠이 쏟아지고 엄지 손톱만한 똥파리가 어디 알 낳을 곳 없나 내 몸 주위를 빙빙 돌며 살피고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간 것 없고 40도가 오르내리는 땡볕에서 그렇게 땀을 흘렸으니 체력 고갈은 당연지사인데 용케도 다리의 힘은 다시 살아납니다. 아마도 살아서 내려가라는 것 같습니다.
근처에 펜션이나 가든이 있는지 앰프의 음악소리가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지만 내가 있는 곳은 1,000m가 넘는 고지대이기라 소리만 들릴 뿐 무엇 하나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이제는 고도차가 10m만 되는 작은 능선이 나와도 걱정되고 질리기 까지 합니다.
능선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진행하는 오른쪽 편에 벌목지대가 나옵니다. 벌목지대라 함은 틀림없이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임도가 있기 마련이고 길이 있다면 그 길로 탈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임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은 바빠지고 다리 놀림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숨이 턱밑까지 차고 오르더니 갑자기 헛구역질이 시작됩니다. 텅 빈 뱃속이라 올라 올 것이 없으니 헛구역질은 그치질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옆구리가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전달됩니다.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면서 재빨리 얼음물을 입에 물었습니다. 잠시 후 안정은 찾아오고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휴식을 위해 잠을 자 둬야겠습니다. 체력의 문제로 인해 내가 산을 못 내려가고 누워 있으나 현재 상황이 그렇게 느낌이 나쁘진 않습니다. 그냥 포근하고 아늑합니다. 말 그대로 지금은 못 내려가고 있지만 후일 필요에 의해 안 내려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려가야 할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약간 빨리 가보려고 속도를 내면 땀이 많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다가 구토증세가 생긴다는 것을 말입니다. 천천히 아주 살살. 그렇게 색시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언젠가는 내가 석개재에 도달해 있을 것이고 이 산행이 모두 끝나고 나면 결국에는 추억의 한 장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마눌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산에서 내려가야만 하는 이유 중의 한 가지입니다. 내가 힘들게 오르고 있는 이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생각대로 마지막이 맞았으며 석개재를 보고 나서야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곧 바로 봉화 석포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우유 큰 놈으로 한 통 사가지고 오실 것을 부탁하고 석개재(19:21) 팔각정에 완전히 뻗어버렸습니다.
기사님이 사가지고 온 1.8리터짜리 우유 한 통을 그 자리에서 다 비워버렸습니다. 4만원으로 피재에 돌아와 승용차를 픽업하여 태백시내 식당에 들러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켰으나 자갈을 씹는 느낌이라 한술 떠 보지도 못하고 그냥 펜션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쉰이 지난 나이에 하는 고생은 생산성이 전혀 없는 무모한 짓입니다. 오늘 내가 한 일련의 행위들을 두고 바로 개고생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잘한 건 아니지만 극한의 개고생일지라도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둔다면 이 또한 추억으로 남길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 여름휴가 기간에 강원도 태백의 낙동정맥 자락에서 추억 하나 잘 만들어 내려갑니다. 힘들었지만 아주 아름다운 추억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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